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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시모음

[얼굴]을 주제로 한 시

작성자미소|작성시간15.03.24|조회수327 목록 댓글 0

모래 속의 얼굴

 

유홍준

 
    
해운대 백사장 여기저기에     
얼굴들이      
박혀 있다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다

     
머리통만 내놓고 온몸이 모래로 묻힌 사람들……

     
두어 삽 모래 끌어다 얼굴만 묻어버리면      
주검 --     
영락없이 주검이겠다
       
검은 썬글라스를 끼고 모래 속에 누워      
고요히 명상에 잠긴--

    
(오, 주검의 저 평온한 얼굴들!)

     
올 여름에도    
해운대 백사장엔 인산인해,   
벌거벗은 비키니 상주들과 문상객들이 어울려   
웃고 떠들고 마신다 주검 곁에서     
무더기 무더기 평토제 지낸 음식과 술을 나누고 수박을 쪼갠다

     
어이쿠 이놈의 염천지옥--    
잘못 걸어가다간     
덜커덩,    
주검의 얼굴을 밟겠다    
땅 밖으로 불거져나온 주검의 얼굴을 밟고 기절초풍 하겠다

 

 

너의 얼굴

 

이수명

 

 

   빌딩들 속에서 너의 얼굴은 둥근 바퀴와 같았다. 빌딩과 빌딩 사이로 그렇게 천천히

허공을 굴러가는, 허공 중에 떠 있는,멈춰버린 바퀴. 정오였다. 너의 얼굴은 멈춰버린

바퀴였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있는 태양이 가시 덤불이 되는 시간, 사람들이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 바퀴들로 멎고 있었다. 너를 막고 너처럼 허공에 서 있는 군중들. 매달

려 있는 도시의 외바퀴들. 너는 그들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네게서는 심한 탄내가

났다.

 

 

페이스오프

 

김륭

 

 
엎어지면 코가 닿는 곳으로부터 얼굴이 시작됩니다

 

입에 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의 혀가 갈라져 길이 뒤엉킵니다

 

뱀이 드나들던 창문을 닫고 가만히 손을 내밉니다

 

책장처럼 접혀있던 거울 한 귀퉁이가 바스락거립니다

 

물 대신 불을 주어야하는 꽃밭입니다

 

동쪽에 두고 온 머리에 바람을 옮겨 심습니다

 

나를 흔드는 것은 꽃이 아니라 밥이라고 쿨럭쿨럭

 

단풍을 받아쓰는 순간 얼굴이 툭, 꺼졌습니다

 

백년을 넘게 기다렸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사내입니다

 

애인이 보낸 생일케이크가 봉분처럼 도착합니다

 

서쪽에서 밥을 먹기로 합니다

 

 

얼굴반찬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때는 외지에 나가서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것입니다.
밥상머리레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얼굴

 

차주일

 

  

아이가 도회지에 처음 그린 얼굴

입이 없어 완벽하다

평생 살아내야 새길 수 있는 주름살같은 선(線)은

다빈치도 그려낼 수 없는 입술을 감춰놓고 있다

아이 같은 마음에게만 그려지는 숨겨진 입술이 비칠 때

선은 주름의 본성을 드러내고 숨쉬기 시작한다

막, 선의 눈이 깜박여 체온을 부풀리고 있다

본디 도화지같이 평면이었던 내 얼굴도

누군가의 안에서 그려지는대로 자리잡아 왔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연필이 무뎌진 흔적일까, 내 광대뼈는

한 사람의 사랑 고백을 부추겼던, 뺨의 홍조는

또 얼마나 많은 불면의 지우개가 문지른 핏빛일까

내 소리를 주리틀어 말(言)되게 했던 정신과

이곳까지 걷게 한 소멸로 짙어지는 것들 , 모두

얼굴에서 주름살로 되살아난다

주름은 아래쪽으로 처져 있다

입 하나 달아맨채 선(禪)에 들어 있다

나는 그 앞에 아무 것도 묻지 않기로 한다

아이가 숨겨둔 미소 하나 들려나올 뿐이다

 

 
얼굴 

 

마경덕

 

                                                   

 심벌이 불거진 근육질 남자, 브래지어 팬티 한 장 걸친 미끈한 여자,

 버젓이 대로변에 서있는 목 잘린 속옷가게 마네킹들 

 

 죄짓고 싶었네 뻔뻔하고 싶었네 많은 사람에게 면목 없고 싶었네

 저런, 쳐 죽일, 배터지게 욕먹고 싶었네

 목 위에 얼굴만 달리지 않았다면
 기왕이면 여러 개의 목을 갖고 싶었네 꽁꽁 머리통 숨겨두고

 일회용 목으로 바꿔 달고 싶었네 재빠른 자라목이 되고 싶었네

 

 왜 목은 하나일까
 건드리면 부러지는 한심한
 목 위엔 얼굴이 있고 얼굴에는 마경덕이라는 이름이 있네

 툭하면 짐승 발톱이 돋네. 제발 나이값 좀 하라고 엄마는 말하네


 나 아직, 사람이 되지 못했네

 

 

그의 얼굴

 

정병근

 

  

머리카락을 뭉쳐놓았나 악몽처럼 눌린
저 철근 더미의 실마리는 언제 푸나
마당에는 전기선들을 태운 구리더미와
텔레비전 오디오 컴푸터 껍데기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어져 있다
목잘린 기차 레일도 몇 개 보인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한낮의 고물상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양철 울타리
열린 문 안으로 주인 없는 라디오 소리 낭자하다
미친 발명가의 집처럼
물고 자르고 비틀고 때리고 조이는 연장들이
작업장 벽에 훈장처럼 주렁주렁 걸려 있다
안 보이는 누가 그를 움직이는가
무엇이 그를 소모하게 하는가
지금쯤 콩나물을 후드득 흘리면서
어디에서 밥을 먹고 있을 그의 얼굴
누렇게 바랜 한 장의 사진 속에
찡그린 그가 웃고 있다

 

 
옆 얼굴

 

강미정

 

 

   고구마 밭에 쪼그리고 앉아 더딘 손길로 고구마 순을 투둑투둑 따내던 하루, 친구와 약속한 영화를 보러가지 못한 나는 하루가 차암 지루하여 날 참 길다 길다, 입이 댓발이나 나와 똬리 열 두 개 걸고도 남을 입 좀 봐라, 서리가 내리기 전 고구마 순을 다 걷어야지, 걷어야지, 지는 햇살 속 서리 인 바람이 굴밤나무 잎을 쓸어낸 가지를 흔들고 가는 게 보였는데, 뉘엿뉘엿 앞산 너머로 넘어가던 해를 주름 진 얼굴에 잠시 붙잡아 놓으시곤, 길게 후욱, 담배연기 뿜어내시며 거, 차암, 해 빨리 식네, 하실 때 붉게 떨리는 서걱임이 굴밤나무 가지 끝에서 인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가슴께서 뿌욱, 가늘게 인 것도 같아 댓발이나 기어 나온 입이 쑥 들어간 내 가슴쪽이 서늘해져,

 

   보이지 않던 허연 귀밑머리 눈 붉게 적시는 저녁,  해 떨어진 뒤 잠시 고왔던 먹구름 한 무더기, 베란다에 서서 같이 쳐다보며 차암 해 빨리 식네, 빨리 식네, 굽어보는 귀밑머리 허연, 당신의 옆얼굴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마라

지금 한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벽시계의 얼굴 

 

조성식 

 

 
벽시계를 떼었다
동그란 얼굴이 벽에 새겨져 있다
파리똥도 안 묻은 얼굴로
똑딱이는 심장소리를 두근두근
얼마나 들었는지
금이 가있다
등 뒤에 서있는 일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시계를 떼어낸 자리가
창백하다  영정사진
걸었던 곳처럼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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