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
- 러시아의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가 1878년 남긴 유일의 바이올린 협주곡.
차이콥스키가 1878년 영감에 사로잡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의 것과 더불어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하나로 꼽히는 걸작이다.
작품 배경
1877년 7월 18일 37살의 차이코프스키는 안토니나 밀류코바(Antonina Milyukova)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이 일로 상처를 안게 된 그는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자주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여, 10년간 53개월을 해외에서 보냈다. 이렇듯 그가 잦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후원자인 나데즈다 폰 메크(Nadezhda von Meck) 부인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인데, 일체의 만남없이 서신만을 주고 받는 조건으로 성사된 차이콥스키에 대한 폰 메크 부인의 후원은 14년간 이어졌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두 사람은 1204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폰 메크 부인은 결혼생활 때문에 몹시 우울해하던 차이콥스키에게 경제적, 심리적 안정을 안겨주면서 그의 작곡가로서의 운신의 폭도 넓혀주었다.
차이콥스키는 1878년 요양을 이유로 스위스 클라랑스(Clarance)에 체류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소일하게 되는데, 3월 초 방문한 빈에서 자신에게 작곡을 배운 바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시프 코텍(Yosif Kotek)를 만나게 된다. 그는 가방 한가득 악보를 가져와 새로운 곡들을 소개했고, 일부 곡은 직접 연주해보이기도 했다. 그 때 소개받은 곡 중 프랑스의 작곡가 랄로(Lalo)가 작곡한 독특한 형식의 바이올린 협주곡 《스페인 교향곡 Symphonie Espagnole in D minor, Op. 21》은 차이콥스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고, 창작의 열망을 불러 일으켰다. 이윽고 사흘 뒤 바이올린 협주곡 작곡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차이콥스키는 불과 일주일만에 1악장을 완성했고, 사흘 뒤엔 2악장을, 이틀 뒤엔 3악장을 완성했다. 이때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주체하기 힘든 열정과 영감에 사로잡혀 곡을 쓰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25일만에 곡을 완성한 차이콥스키는 4월 1일 코텍과 자신의 동생 모데스트[Modest Ilyich Tchaikovsky]를 불러 곡에 대한 최종 점검을 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으로부터 2악장이 곡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고, 이에 차이콥스키는 아예 2악장을 다시 작곡했다. 그리고 이 곡에서 빠진 2악장은 훗날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 Souvenir d'unlieu cher, Op. 42》의 첫 곡으로 재활용되었다.
곡은 4월 11일 최종 완성되었다. 작곡 후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코텍이 아닌 당대 러시아 음악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드 아우어(Leopold Auer)에게 헌정하려고 했다. 아울러 초연까지 맡아주기를 희망했으나 아우어가 연주 불가능이라는 이유로 거절함에 따라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결국 초연은 무한정 연기되었고, 1881년 12월 4일이 돼서야 러시아가 아닌 빈에서 이루어졌다.
이때 바이올린은 아돌프 브로드스키(Adolph Brodsky)가 맡았고, 거장 한스 리히터(Hans Richter)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했다. 하지만 초연은 실패로 돌아가 차이콥스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또, 당시 빈의 평론가들은 일제히 혹평을 했는데, 특히 저명한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slick)는 악평을 남겨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 곡이 재평가를 받는 데에는 브로드스키의 헌신이 있었는데, 그는 초연의 실패 후에도 이 곡을 다시 무대에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브로드스키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낀 차이콥스키는 이 작품을 그에게 헌정했다. 이윽고 1882년 4월 런던 공연을 필두로 작품은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고, 1882년 8월 20일 모스크바 초연 때는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음악 구성
전체 3악장으로 되어있는데, 전편에는 러시아적인 정서가 녹아 있다.
-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Allegro Moderato)
폭발적인 힘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악장이다. 감미로운 선율로 조용하게 시작해 두 개의 매혹적인 주제가 제시되고 이어 바이올린 카덴차(Cadenza; 독주자가 일체의 반주없이 홀로 자신이 가진 기교를 마음껏 과시하는 부분)가 현란하게 펼쳐진다. 한편, 오케스트라도 가공할 힘과 에너지로 바이올린과 경합을 벌이면서 곡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처음의 주제가 반복되며 절정으로 치닫은 후 격렬하게 마무리된다.
- 2악장 칸초네타: 안단테(Canzonetta–Andante)
A-B-A의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차이콥스키 특유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진한 감동과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는 최초 완성한 2악장이 전체적인 곡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아예 이 악장을 새로 작곡했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 전체적인 조형미를 고려해 완성한 악장이다.
- 3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비바치시모(Allegro vivacissimo)
짜릿한 쾌감과 벅찬 환희를 안겨다주는 악장. 2악장에서 바로 이어지는데, 긴장감 넘치는 오케스트라의 울림으로 시작한다. 이어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펼쳐지고,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여기서 제시되는 제1주제는 흡사 러시아 민속 무곡을 연상시키며, 제2주제는 좀 더 이국적인 집시 성향이다. 이후 자유분방하면서도 화려한 연주를 들려주다가 강렬하게 끝을 맺는다.
연주 정보
바이올리니스트가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는 데 최적화된 곡인 관계로 비르투오소(virtuoso)들의 단골 레퍼토리이며, 신인들의 도전이 끊이지 않는 곡이기도 하다. 때문에 뛰어난 테크니션일수록 여러 차례에 걸쳐 녹음을 남기고 있다. 그 중 20세기 바이올린 음악계를 양분했던 러시아의 두 비르투오소,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의 녹음은 전설의 명연으로 꼽히는데, 특히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녹음 두 종은 이 곡의 결정적 명연으로 인정받아왔다. 하나는 오이스트라흐가 헝가리 출신의 지휘자 유진 오르먼디(Eugene Ormandy)가 지휘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Philadelphia Orchestra)와 협연한 1959년 녹음이며, 다른 하나는 오이스트라흐가 자국인 러시아에서 러시아의 간판급 지휘자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GennadyRozhdestvensky)가 이끄는 모스크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Moscow Philharmonic Orchestra)와 함께 한 1968년 녹음이다. 야사 하이페츠의 녹음은 헝가리 태생의 미국인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Fritz Reiner)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oston Symphony Orchestra)와 협연한 1957년 녹음이 압도적인 테크닉을 구사한 명연이다.
한편, 한국의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가 남긴 두 종의 녹음도 역대급 명연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나는 22살 때 독일 태생의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André Previn)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honyOrchestra)와 협연한 1970년 녹음이며, 다른 하나는 좀 더 원숙해진 33살 때 샤를 뒤투아가 이끄는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Montreal Symphony Orchestra)와 협연한 1981년 녹음이다.
그 외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천 페라스(Christian Ferras)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 Philharmonic Orchestra)와 협연한 1973년 녹음, 러시아 출신의 막심 벤게로프(MaximVengerov)가 이탈리아의 마에스트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95년 녹음도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