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이클
김종연
새벽에 부음을 들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의사는 죽은 지 백년이 넘
은 환자의 예를 들면서 자신이 죽었다고 믿게 되는 것도 하나의 증상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죽은 지 백년이 지났지만 이렇게도 살아 있습
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부활이라고 한다면 영원히 사는 것은 증상입
니다만 저는 제 손으로 시신을 몇번이나 수습한 적이 있습니다 운명
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깊은 퇴폐의 밤을 보내도 범해지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무언가 저를 이토록 아름답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가 있는 창부가 아이를 생각하다 절정을 맞게 되는 것처럼 다
잃고 조금 구하는 일입니다 사랑 없이도 저를 흔드는 비밀은 거의 다
보고 나서야 재방송인 걸 깨닫게 되는 판타지입니다 여자는 이미 낳
아버린 아이를 안고 자주 저울에 올라갑니다
백년 후의 제가 누워 있는 작은 방 안에서 체념할 수도 있는 인생이
아직도 몸을 쓸어주고 갑니다 이 새벽의 몰락과 부흥을 동시에 바라
면서 하룻밤 만에 부활하고 이틀을 기다린 여자가 되어
너는 내가 죽었다는 말에도 눈 하나 깜작이지 않는구나 백년 전에
죽은 아이가 백년 후의 거짓말 때문에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해방촌
해방이후…… 전쟁놀이 하는 아이들
멀쩡한 다리를 절어대면서 나 잠깐 죽고 다시 태어날게 죽는 척을
하고는 금방 일어나 작대기를 휘둘러대는 병신 같은 놀이…… 재미있
어 보인다
늙은이들은 벤치에 앉아 취해간다 술과 담배가 중독은 아니었지 나
는 무엇에든 중독되었을 것이다 늙은 부인과 헤어지기만 하면 누구와
도 사귈 수 있는 양
중성화한 개처럼 짖어대는 저 늙은이들처럼
나는 요즘 오래 키운 개가 성욕이 없어서 걱정이다
근황이랄 건 어머니가 늙었고 아버지는 그보다 더 늙었다
전장에서의 사랑이란 그렇듯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평생을 살게 되
는 것이지 아플수록 외로워지고 싶어지는 이곳이 병동이라면 응급실
도 중환자실도 없이 환자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미리 다쳐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늙은이들은 자식을 욕해도 자식의 자식은 사랑하고 다른 늙은이에
게 자랑하다 싸움을 하고
전쟁은 모르지만 전쟁영화는 알아서 어머니 티브이 좀 보세요 우리
집이 날아가고 있네요 이건 정말…… 진짜 같구나
우리 집이 날아가면 어디로 가야 하나 집과 함께 날아가겠지
친구의 이를 날리고 돌아와 복수를 배웠다 이 없이 웃는 게 못생겨
서 몇대 더 때리고 싶었지만 두들기다보면 안다 멈추면 내가 맞는다
사랑……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될 수 있나 고백하려 산 꽃한
테 고백이나 받게 되겠지
사랑해요 그냥 나와 결혼해쥐요 청혼을 기대한 여자의 뺨을 속으
로 몇번이나 후려갈기면서 비관에 사로잡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필 그럴 때마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 오래전에 죽은 사람
같고
오년 전에 죽은 할머니와 삼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에미야 국이 짜구나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처럼
귀신이 되는 건 무엇인가 죽는 순간의 모습으로 귀신이 된다면 이
제 죽어도 나쁘지 않다
해방촌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 귀신들 사이에서
자꾸 내가 떠나거나 죽는 꿈을 꾼다는 어린 친구를 위로해주고 동
시에 떠날 생각을 하면서 점점 아름다워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휴전이 길어 전쟁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다
해 질 때까지 전쟁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내일 다시 하자 약속하고
돌아가는 길 너희는 약속이 없어도 다시 만나게 되겠지 그런데 너는
왜 돌아가지 않고
죽었다 살아나면 아픈 곳은 사라진다네 친구여
김종연
서울예술대학 미디어창작학과 1학년. 1991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