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詩 감상실

시 파는 사람 - 이상국

작성자미소|작성시간19.09.17|조회수197 목록 댓글 1

시 파는 사람

 

이상국

 

 

 

 

젊어서는 몸을 팔았으나

나도 쓸데없이 나이를 먹은 데다

근력 또한 보잘 것 없었으므로

요즘은 시를 내다 판다

그런데 내 시라는 게 또 촌스러워서

일 년에 열 편쯤 팔면 잘 판다

그것도 더러는 외상이어서

아내는 공공근로나 다니는 게 낫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저마다 품격이 있는 법,

이 장사에도 때로는 유행이 있어

요즘은 절간 이야기나 물푸레나무 혹은

하늘의 별을 섞어내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서울에서 주문이 오기도 한다

보통은 시골보다 값을 조금 더 쳐주긴 해도

말이 그렇지 떼이기 일쑤다

그래도 그것으로 나는 자동차의 기름도 사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는데

가끔 장부를 펴놓고 수지를 따져보는 날이면

세상이 허술한 게 고마워서 혼자 웃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 시의 원가가 만만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우주에서 원료를 그냥 퍼다 쓰기 때문에

팔면 파는 대로 남는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시 파는 집 간판을 내리지 않을 작정이다


이상국

강원 양양 출생. 1976년 《심상》등단

시집 : 『동해별곡』『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외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칠부능선 | 작성시간 19.09.17 작정을 잘 하셨네요. ^^ 시 파는 집, 오래 번창하시길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