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꽃의 일기
김승희
최진실의 묘소 근처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피어 있었다
최진실은 일기를 쓰던 사람이었다
장미가 피어나던 시간에
장마가 지나가던 시간에
천둥 번개가 지나가던 시간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져서 비에 젖어 울고 있던 시간에
머리카락을 말리는 시간에
눈에 별이 반짝이던 사람
이처럼 애틋한 생명
빛을 발하는 기쁨
눈에 기쁨의 빛이 흐트러지고 조각조각 빛났다
일기를 쓰던 사람은 책을 읽던 사람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불편했던 여자
피와 살과 신경이 그렇게 살아있던 여자
그녀는 죽었고 또 살았다
아이들은 그녀의 지푸라기
우울한 날에는 매운 고추장 수제비를 펄펄 끓여서 먹었다네
인생,
누군가 했던 말,
얼굴 속에 꽉 찬 들판이 있었는데 뭐가 있는 줄 알고 바라보았는데
텅 빈 벌판만 있고 아무것도 없어서
얼굴 속에 텅 빈 바람만 들고 가는 길
아무것도 없어도 개나리꽃을 들고 헌화를 놓는 두 손
속에 뼈가 있는 파란 사과
- 계간 《시인시대》 2024년 봄호
김승희
전남광주 출생.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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