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가 있는 달력
김승희
나의 친구
고독사 전에도 고독했고
고독사 후에도 고독하다
애너벨 리처럼 싸늘하게 죽었다
그 방에 찢어진 달력이 신문지와 함께
뒹굴고 있었는데
막상 벽에 걸린 달력에는
샛노란 수선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3월, March라고 또렷하게 쓰여 있었다
노란 수선화
노란 프리지어
우리는 3월의 봄꽃을 좋아했지
차가운 대지를 뚫고 총알처럼 올라오는 샛노란 꽃들
냉수 속에 몸을 떠는 노란 새싹들
가난과 고독이 산을 이루는 동안
친구는 홀로 달력 밖으로 길을 나섰네
수선화는 꽃샘바람에 시달리며 피는 꽃
몰려오는 찬 바람을 두 팔로 밀치며 피어나지
영하 50도의 불꽃처럼
확실히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우리는
고독사한 친구의 고독을 새로 가지게 된 것이다
영하 50도의 불꽃을 지닌 수선화로 함께 피어나는 것이다
수선화가 돌을 키우는 그런 평생이 있다
김승희
전남광주 출생.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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