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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감상실

그믐 - 조정인

작성자미소.|작성시간26.06.22|조회수8 목록 댓글 0

그믐

 

조정인

  

검은 달빛 아래 나는 생의 기초에 등을 기댄다
나는 그들과 더불어 잔병치레를 한다

어둠이 툭툭 실밥 터질 때
머리 위 하프 뜯는 희고 긴 손가락을 상상했다
그것은 백양나무 그림자 때문일지도 모른다
껍질은 감자를 더 이상 가둘 수 없다, 던가 하는―해빙기의
많은 것들이 달의 댓돌 밑에서 기어나왔다

빛을 더듬는 수많은 섬모에 싸인
발아기의 감자는 더는 식물이 아니다
싱싱한 독이 고인 턱을 들어 시간의 기슭을 기어가는
다지류 곤충의 표표한 그림자

종양의 신열 속에는 진초록 눈썹 한 낱이 묻혀 있다
은밀하고 재빠르게 진행되는 음모의 전모
살아있음의 비밀한 무늬
감자의 전신이 끓고 별자리의 기미가 푸릇푸릇 떠올랐다

그믐, 빛과 어둠에 걸쳐진 실낱의 눈썹 밑
눈 속에서 펄럭, 개기월식이 이루어지는 사이
감자가 구근의 경계를 훌쩍 넘어서고
백양나무 마른 가지 위 반뜩, 소리 한 음(音)이 일어섰다

 

 

조정인 

서울 출생.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사과 얼마예요』『장미의 내용』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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