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24,17-25
17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 유다의 대신들이 와서 임금에게 경배하자,
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18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해가 끝나 갈 무렵,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올라왔다.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들어와
백성 가운데에서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
모든 전리품을 다마스쿠스 임금에게 보냈다.
24 아람 군대는 얼마 안 되는 수로 쳐들어왔지만,
유다 백성이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을 저버렸으므로,
주님께서는 그토록 많은 군사를 아람 군대의 손에 넘기셨다.
이렇게 그들은 요아스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하였다.
25 아람 군대는 요아스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고 물러갔다.
그러자 요아스가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을 죽인 일 때문에,
그의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그를 침상에서 살해하였다.
요아스는 이렇게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지만,
임금들의 무덤에는 묻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님 나라는 그분의 힘, 그분의 자비와 사랑으로 건설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걱정의 바탕에 어떤 감정이 존재하는지 묵상해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먹을 양식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마실 음료가 없으면 어쩌나? 내 편안한 안식처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내가 더 나이 들어가면서 병고가 찾아오면 어쩌지? 내가 지금 버티고 있는 무대에서 밀려나면 어쩌나?
결국 우리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 그 가장 근저에는 나란 존재의 소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수시로 등장하는 하느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과 반드시 쌍으로 붙어 다니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항상 함께 하겠다!
정녕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세상 재물이 사라지는 것,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지상의 평화와 안녕이 붕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우리 영혼 구원과 관련된 두려움입니다.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인간의 근심과 걱정,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 그분의 자비와 사랑으로 건설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공포심이나 불안한 마음과 더불어 찾고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의 마음 안에는 이미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시기에, 그는 이미 하느님 나라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육체와 재물 자체를 단죄하거나 의식주의 필요성을 부인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분께서 제자들과 오늘 우리 각자를 향해 특별히 경고하시는 바는 목숨과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요 탐욕입니다.
매일의 안정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한 경제적 기반은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침입니다. 미래를 위한 재물의 축척도 어느 정도여야지, 너무 지나칠 때 인간은 재물의 노예가 되고, 언젠가 그 지나친 재물이 오히려 큰 재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진정으로 추구할 보물은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나라요, 그분의 다스림입니다. 내일에 대한 지나친 근심 걱정을 모두 말끔히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고 나머지는 한없이 자비하신 하느님의 두 손에 우리들 인생을 몽땅 맡겨드리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자체 해결해 버리고자 기를 쓰면, 그분께서 활동하실 여지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