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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면의 죄까지 단죄

작성자박호정|작성시간17.02.17|조회수346 목록 댓글 0



                                                                                                                     매일미사


2017년 2월 12일 (일)(녹) 연중 제6주일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과 달리,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제1독서

<노아가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8,6-13.20-22
6 사십 일이 지난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8 그는 또 물이 땅에서 빠졌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9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10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11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12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려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자 비둘기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3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20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21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22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22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의 ‘산상 설교’(5─7장)를 들으면, 구약 성경의 집회서를 읽는 느낌이 듭니다. 읽을수록 감추고 싶은 내 치부가 하나씩 드러나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단호하십니다. 겉으로 드러난 중죄를 넘어 죄의 근원인 내면의 죄까지 단죄하십니다.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사람, 정당하더라도 아내를 버리는 사람, 헛되게 거짓 맹세를 하는 사람. 당장은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죄는 아니지만, 결국에는 죄에 이르게 하는 우리 영혼의 죄들을 피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윤리적으로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옛말처럼, 내 의도와 속내까지 깨끗하다고 자부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렇게 철저한 내면적 도덕 가치를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육체적 감각이 지닌 편향성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각이 죄를 일으키는 대상을 지속적으로 지향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동물적 감각에로 귀의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깊은 병은 자신 안에 있는 신적 지성을 잃고, 동물적 감각을 탐닉하는 데 있습니다. 내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면, 내 영혼이 지향하는 것도 보이기 마련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감각이 지향해야 할 신비롭고 감추어진 지혜를 전합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는 고백은 하느님을 맛본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탐닉하는 사람에게는 감추어져 있지만, 하느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화를 찾은 사람은 율법 조항에 얽매이지 않고도, 내면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작은 계명 하나라도 지키고 가르치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 되는 법입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라는 집회서 저자의 말씀에 귀 기울여보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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