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모세신부님

[스크랩] [양성 책임자, 구역장 교육] 소화데레사의 영의 가난함

작성자모세수사|작성시간22.02.28|조회수740 목록 댓글 2

+ 찬미예수님!! 

 

각 단위재속회에서 참사와 양성 책임 및 구역장 소임을 맡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소화데레사의 영의 가난함에 대해서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자신이 맡고 있는 소임에 대한 자질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각자가 하느님께 받은 은사와 선물에 대해서 너무나 보잘것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것을 공동체에 선용을 위해 나누는 것에 

기꺼이 내어놓기를 꺼려하는 분들이 많이있습니다. 이 작은 것들이 정말로 소용이 있을까?? 소화데레사가 자신의 전체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 영의 가난함을 어떻게 이해했고, 살았고, 이웃들에게 나누었는 지를 통해서 우리들의 아주 작은 것 하나를 공동체 선용을 위해서 나누었을 때에 우리안에 계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로 인해서 그 보잘것 없음은 공동체를 변화시킨다는 확신을 성녀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금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화 데레사에서 드러난 “영의 가난함”

 

 “복되어라, 영이 가난한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영)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3)

성녀 소화 데레사가 “영의 가난함” 대해 우리에게 아주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 준니다. 데레사 성녀의 글에서 영의 가난함에 대한 이해는, 그녀의 가르침에 나타나는 그녀 자신의 ‘작은 길’, 영적인 어린시절, 겸손함과 비슷한 다른 주제들에 대한 그녀의 이해와 동일합니다. 그녀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세 가지의 차원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그 세 차원은 영의 가난함에 관한 이해, 영이 가난하게 사는 법그리고 주위의 세상과 가난함을 나누는 것입니다.

 

1. 영의 가난함에 관한 이해

영의 가난함은 복음서 내에서 중요한 주제이며, 여러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삶의 한 단면에 국한되지 않으면, 삶의 모든 면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영의 가난함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고 이해했으며, 바로 복음의 핵심 두 가지 주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예수님이 나에게 은총을 주셨다”

 

데레사 성녀에게는 모든 것이 선물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짧은 그녀의 삶을 회상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삶, 가족, 그리고 가르멜 수도회에의 부르심 모두가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의 표현이었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바오로 사도가 고린토 신자들에게 던졌던 다음의 질문을 매우 잘 이해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다 받은 것인데 왜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의 것 인양 자랑합니까?” (고린토 1: 4:7). 그녀는 성장시기와 또한 가르멜 수도회에서의 매일 매일의 경험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세상의 물질은 내 것이 아니기에, 설사 빼앗긴다 하더라도 그것을 포기하는 것에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자서전 제3부 1장).그녀가 받은 영적인 축복에 관해서도 같은 원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것들도 내것이 아니며, 하느님이 나에게 빌려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걷어간다 하더라도 나는 불평할 권한이 없습니다”.(자서전 제3부 1장)

영의 가난함과 세상을 초월함의 원리는 데레사 성녀가 살고자 하던 우선순위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삶이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삶이 어디에서 오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속적인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것에 더 집착하지 않도록 예수님이 나에게 은총을 주었다고 난 말할 수 있다”(자서전 제3부 1장). 데레사 성녀의 말과 행동은 영의 가난함이란 단지 우리가 개발하는 성격이나 우리가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며, 교만의 원인이 될 수 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아무 열정이 없는 연기나, 목적이 없는 계획으로 전락할 수 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영의 가난함을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도록 불리워졌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우선순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우리 안에 현존하셔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반영하는 것임을 깨닫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영의 간남함은 하느님의 일하심이며,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던져진 도전은 이 하느님이 일하심을 환영하며 이 선물을 써야하는 것입니다.

 

②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

 

영의 가난함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단순한 말로는 데레사 성녀가 이해하는 위의 복음의 주제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이 선물의 근본적인 성질을 우리에게 일부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자신의 자서전(영혼의 이야기)에서 그녀는 첫영성체를 준비하던 때 특히 그 당시 알랑송을 방문하던 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곳에서 살지 않았던 것이 큰 은총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장).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 곳에 있던 친구들은 너무 세속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즐거움과 하느님에 대한 봉사를 구별하지 않았습니다.”성녀 데레사는 그 당시의 삶을 화상하면서, 그녀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난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영의 가난함의 핵심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곳,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루가 12:34). 영의 가난함은 우리의 정체성을 제시해주고 만들어 줍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에게 뿌리를 두고 있으면, 하느님에게 보물인 우리의 정체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다른 곳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 우리 자신도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너그럽게 선물을 주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선물이 우리 내에 영의 가남함을 키우게 하려면 우리는 하느님에게 초점을 맞추어야만 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정말로 선물을 주시지만, 이것은 우리를 자신에게 오게 하기 위한 목적이며, 이 목적이 달성되면, 이 외적인 선물은 사라진다.” (서한 2, LT 147).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이 일을 경험하는 사람은 두려워지면, 아무 쓸데 없는 사람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들의 받기만 한고, 아무것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정확히 이런 식으로 일을 하신다. 그것은 오로지 주님만이 일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동상).

성녀의 지혜는 주님이 주신 선물을 사용할 때 항상 깨어 있도록 상기 시키십니다. 이런 선물을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주님을 보다 더 느끼게 하고, 주님과 보다 더 가까운 관계를 갖게 하는 데에 쓴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물이 쓰여지는 가장 고상한 봉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결과를 우리의 공로로 주장하는 잘못을 범하고, 우리의 선물은 주님의 일에 쓰여져야 한다는 것을 잊어 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교만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주님의 현존과 활동이 우선임을 우리의 선물로 확인이 되어야합니다. 이 확인은 바로 영의 가난함을 반영하는 것이며 우리의 정체성이 주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2. 영이 가난하게 살기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하느님의 선물인 영의 가난함은 분석할 이론이 아니며, 우리가 살아야 할 현실입니다. 복음서의 다른 요구사항들과 같이, 영의 가난함도 세상에 보여지고 진짜가 되려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현실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영이 가난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의 세 가지 요소를 지적하였습니다.

 

① “영혼에 넘치는 평화”

 

수도자로서 성녀는 청빈을 서약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그녀의 가르멜 수도회에서의 삶은 그녀의 자라왔던 가정의 안락한 삶과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오히려 가난을 깨닫는 일이 생기면 저는 기뻐해야 합니다.” (자서전 3부 1장)하지만, 성녀는 또한 “나는 때때로 내가 매우 불완전하다” (동상) 는 것을 인정합니다. 성녀가 이야기 하는 불완전은 어떤 범법행위가 아니고, 심리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즉,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때 생기는 씁쓸함과 분노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한계와 태도에서 오는 피해를 극복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 매우 설득력 있는 또 다른 시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 인간의 기본 감정을 넘어설 때, 평화가 영혼에 넘치는 구나! 진정한 영의 가난함을 경험할 때 느끼는 기쁨에 비교되는 것은 없다” (동상).

평화와 기쁨은 영의 가난함을 찾는 사람들의 삶에서 점점 확실하게 들어나게 됩니다. 평화와 기쁨은 우리가 매일 쓰는 의미 이상으로 우리를 깊이 감동시킵니다. 평화는 어떤 외적인 고요함의 이상이며, 기쁨은 내적인 환호이상입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의 “마지막 대화”에서, 그녀는 언니 폴리나 (예수의 아녜스)에게 다음과 이야기 하였습니다. “나는 어떤 확신을 갖기 위해 내 선행을 비롯한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1897, 8, 6)병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도의 의무를 행 할 수 없었을 때, 그녀는 하느님께대신 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녀는 ”하느님으로써 해 주시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죽은 사람에 대한 기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완전히 가난할 때, 그리고 하느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위존하지 않을 때 엄청난 평화를 경험한다” (동상).이것이 모든 것을 하느님에 의존하며 우리자신의 것에 의존하지 않는 참된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기쁨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녀의 언니 레오니아가 성모방문수도회 입회와 서약이 지연되고 있다고 편지를 보냈을 때, 소화데레사는 자신이 가르멜 수도회 입회 당시의 어려움에 대하여 답장을 보냈습니다. 성녀는 레오니아에게 자신이 단지 예수님이 마음대로 하는 작은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가난함을 기뻐했고, 더욱 더 가난해 지고 싶었다” (서한 2, LT 176).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들자신의 업적에는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참 기쁨입니다.

 

② “나의 맹목적인 희망”

 

소화 데레사 언니 마리아(성심수녀회의 마리 수녀)는 소화 데레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물었다. 마리아는 특히 데레사의 순교에 대한 열망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데레사는 평상시의 강한 신념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내 순교에 대한 열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내 마음에 있는 무한한 확신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서한 2, LT 197).열망은 신앙의 지속적인 성장에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상입니다. 그런 열망은 “그것에 안주해서 만족하고 열망 자체를 무엇인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면, 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영적인 풍요이다” (동상).

데레사 성녀는 영적인 삶에는 항상 교만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마리아 언니가 그러한 열망에 깔려있는 배경을 보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이야기 하였습니다; “내 이 작은 영혼에 하느님을 기뻐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열망이 아니라, 나의 보잘것 없음과 가난, 그리고 하느님이 자비에 모든 것을 맡기는 맹목적인 희망이다” (동상).그것이 아무리 고상하다 하다라도, 영적인 풍요를 주시는 하느님에 희망을 두지 않고 그 풍요자체에 희망을 두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영의 가난함은 희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그녀의 언니 셀리나 (즈느비에브 수녀)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하느님은 수 많은 태양과 이 광대한 천국을 창조한 것 보다. 그녀의 영혼에 하시는 일을 더 자랑스러워 하신다!” (서한 2, LT 227).데레사 성녀의 경우에도 같습니다. 그녀의 영의 가난함은 오로지 하느님에게만 희망을 두게 하고, 그녀가 받은 엄청난 선물에 방해받지 않고, 주님에게만 초점을 맞추도록 하게 하였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절망보다 산만함이 희망에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은 깨달았다. 산만함은 우리의 정체성을 하느님이 아닌 곳에 머물게 하고 우리의 희망과 기쁨을 하느님을 떠나 세상현실에서 찾게 합니다. 이런 산만함은 절망을 불러오게 됩니다. 여기서 성녀 데레사는 우리에게 아주 실용적인 충고를 준다;

“세상의 화려한 것들로 부터 좀 멀리 떨어져 있으며, 우리의 보잘것 없음을 사랑하며, 또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사랑하자. 그러면, 우리의 영은 가난해 질것이며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실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하고 멀어져 있어도 그는 우리를 사랑의 불길로 변화시킬것이다” (서한 2, LT 197).

희망은 우리가 받은 선물과 우리가 경험하는 열망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하느님에게 머물러 있게합니다. 이 선물과 열망은 우리의 희망과 원천이며 유지시키는 힘이며 또한 희망의 최종목적지인 하느님에게 우리가 다가가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녀가 이야기하는 “맹목적인 희망”입니다.소화 데레사는 “세상의 모든 화려한 것들 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데레사의 영의 가난함이 우리에게 희망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③ “예수님이 유일한 인도자”

 

성녀가 세상을 떠난 지 한 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성녀 소화데레사의 말들과 가르침을 특정지워지는 지혜와 통찰력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있던 시기에도, 그녀와 함께 살았던 많은 수녀들과 수도원 밖의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조건과 영적인 삶에 관한 성녀의 관찰에서 도움을 받았으며 그 관찰의 명확성과 깊이에 언급을 하곤 했습니다. 이런 지혜는 그녀의 성격에 내재한 많은 선물에 바탕을 두고 쌓인 것이지만, 단지 그녀가 갖고 있는 천성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통찰력의 참된 원천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영적 지도자였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걷는 방법은 아주 똑바르고 명확하여, 나는 예수님 외에는 다른 인도자가 필요없다. 나는 영적지도자를 영혼에 예수님을 반영하는 믿을 수 있는 거울에 비교했다. 하느님은 나에게 중간 매체를 사용하지 않으셨고, 나에게 직접 행동하셨다라고 말했다!” (자서전 5장).데레사는 지혜의 길을 예수님에게서 직접 배웠습니다; “내가 작고 약하기 떄문에, 예수님을 자신을 낮추셔서 나에게 오셔서, 그의 사랑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나에게 직접 가르치셨다” (동상).

지혜는 지성의 힘이나 학문적인 정확성으로만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지혜는 머리의 문제보다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평화와 기쁨 그리고 희망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삶을 믿음으로 사는데에 있고, 과감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에서,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의 일을 계속하는 데에서 발견된다고 지혜는 알고 있습니다. 데레사는 그녀는 완벽이라는 것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그 은총을 입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비밀을 소유하려면 영이 가난해야 하기 때문이다!”(동상). 라고 말합니다. 영의 가난함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말씀과 행위를 듣고 배우게 하며, 우리 안에 주님의 자리를 유지하게 한다. 지혜는 주님의 현존과 활동에서 생기며,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할 때 성장하게 된다.

 

3. 영의 가난함을 나누기

 

영의 가난함은, 우리를 하느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으로, 평화와 기쁨 그리고 희망속에 사는 사람, 하느님의 지혜에 동참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게 합니다. 그러나, 영의 가난함은 단지 자기 수양만은 아닙니다. 또한 영의 가난함은 자신 안에 멀물러 있지 않으며, 다를 이들에게 다가가 나누며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포함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다른 이에게 다가감을 두가지 면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① “내가 가진 것을 그들에게 준다”

“나는 아무것도 내 손에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가진 것, 내가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교회와 영혼을 위한 것이다. 내가 여든 살 까지 산다하더라도 나는 지금같이 항상 가난할 것이다.” (마지막 대화, July 12, 1897).영의 가난함은 어떤 사도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이 특성이 매우 발달된 데레사는 자신도 모르게 “나는 하늘나라에서 사는 대신 지상에서 좋은 일을 하면서 보내고 싶다” (동상, July 17, 1987)라는 유명한 선언을 했는데, 이 말로 그녀는 우리들 사이에 지금도 지속적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녀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영적인 풍요함을 축적하고 있던 것이 아니며, 그녀가 갖고 있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바오로 사도가 고린토인들에게 상기 시킨 다음의 말을 잘 이해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당신의 가난으로 여러분이 부요하게 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고린토 2, 8:9).데레사 성녀의 삶은 예수님 안에서 풍성하게 사는 모델로서 우뚝 서있는 것입니다.

영의 가난함은 너그럽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물질이든 영적인 것이든, 선물로써 남들과 나누도록 되어있습니다. 성녀는 이것을 아주 잘 분명하게 이야기 한다.

“내가 부자 였다면, 가난한 사람을 보고 내 것을 주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영적인 보물을 얻었을 때 나는 그 순간에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내가 가진 것을 준다. 나는 아직까지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일해야지 라고 말 할 수 있는 순간이 조금도 없었다.” (동상, July 14, 1897)

 

이 말이 바로 데레사의 선교적인 열정을 감동적으로 표현해줍니다. 이 열정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항상 촉각을 맞추고 있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너그러움 때문에, 데레사는 “나는 지금 같이 언제나 항상 가난할 것이다”라고 확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의 가난함은 우리를 관대함을 봉사에 투신하게 하며, 이 봉사는 우리의 전 삶에 영향을 미치고, 데레사 성녀의 경우 같이 이 지상의 삶이 끝난 후 에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② “사랑의 신비여!”

 

데레사 성녀의 사촌인 마리 게랭(성사수녀회의 마리 수녀)은 자신이 겪고 있던 어려움과 하느님 앞에서 느끼는 무력함에 대하여 성녀에게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데레사 성녀는 비록 수련 수녀 였지만, 그녀의 전 생애를 통하여 주었던 조언에 담긴 지혜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성녀는 마리 게랭에게 다음과 같이 답장을 하였습니다.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면, 예수님이 “모든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너는 너의 그 아무것도 아님을 예수님의 무한한 “모든 것”에 잃어 버리고, 이 유일하게 사랑할 만한 “모든 것”만 생각하라. 너는 네 노력으로 얻어지는 열매를 열망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너의 그 작은 아무것도 아님을 자신이 혼자 소유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서한 1, LT 109).

 

영의 가난함은 하느님의 사랑이시고 “유일하게 사랑할만하다”는 진리에서 우리를 떠나지 않게 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 사랑에 끌려야 하고 그 사랑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랑을 받은 것 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성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완전에 이르는 길로 사랑밖에는 모른다. 우리의 마음은 그 사랑을 위해서 잘 만들어 졌다.” (동상).

데레사 성녀는 더 깊이 파고듭니다. 육화를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가 되고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똑같이 되셨다. 성녀는 다음과 같이 감탄하였습니다.

“자신을 극도로 미천하게 낮춘 친구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으며, 예수님이 자신의 약혼녀과 같이 되었으니 어찌 우리가 감히 가난을 이야기 할 수 있으랴! 그는 부자였지만, 우리의 가난함에 자신의 가난함을 결합하기 위하여 자신을 가난하게 만드셨다. 이 엄청난 사랑의 신비여!” (동상).

우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주장할 수 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와 하나가 되고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 했듯이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을 머므르게 하셨”기 때문이다. (골로사이 1:19) 우리의 아무것도 아님이 충만함이 되고, 우리의 가난이 예수님이 우리와 결합함으로써 부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충만함과 부유함이 하느님에 대한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나는 것입니다. 영의 가난함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받아들이라고 도전을 줍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랑에 의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선물이고, 은총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이 선물에 관한 우리의 태도는 감사이거나 또는 욕심일 것입니다. 영이 가난해야만 진정으로 감사함을 선포하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선포는 심각할 것이고 우리의 삶은 진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체성은 주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느님 안에서만, 우리는 삶의 목적과 우리가 전달하는 메세지의 힘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주신 선물과 정체성을 믿음으로 사는 것은, 우리에게 평화, 기쁨,희망 그리고 지혜를 가져다 줍니다. 이런 것들이 예수님의 삶에서 확연히 들어 났듯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들어 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체도, 하느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활동하고 계시고,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며, 언제나 성령으로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믿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야 말로 은총에 의한 축복입니다. 영의 가난함은 다른 사람들 특히 그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우리가 가진 소유물에 너그러워지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열망하는 보물은 바로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 이하가 아니기 떄문입니다. 영의 가난함은 사랑에서 완전함을 찾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율법과 예언자와 하느님의 모든 약속을 포함하기 떄문이다.

 

벨리에르 신학생에게 쓴 편지에서, 데레사 성녀는 자신을 “매우 불완전하고,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당신같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요구가 있는, 보잘 것 없는 작은 가르멜 수도자” (서한 2, LT 213)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성녀의 영의 가난함은 그녀의 짧지만 찬란한 일생을 지탱시켜 준 것이었다. 그녀의 삶이 찬란한 것은 단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만이 아니며, 하느님의 영광이 그 삶에 들어나서 우리의 영적인 삶을 비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미주 가르멜 가족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관구총무참사 | 작성시간 22.03.03 [양성 책임자, 구역장 교육] 소화데레사의 영의 가난함
    고맙습니다
  • 작성자김정자(lusia) | 작성시간 23.01.16 신부님 감사합니다.
    조용한 시간에 다시한번 더 꼼꼼히 읽고 묵상해보아야겠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