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로 부터 외워야 하냐는 질문을 때때로 받는다. 심지어는 교과서에 나온 모든 반응들을 통째로 외우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도 봤다. 하루에 반응 열개씩만 외우자는 각오로 수행하는 수도승 처럼 정진하는 당신.... 제발 참아주라. 개념 없이 외우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만약 외웠다고 해도 교과서의 반응과 똑같은 문제 안나온다.
유기화학은 논리의 학문이다. 단순 암기가 필요한 것들은 극히 일부이다. 친구 이름 외우는 방법이나, 전화번호 혹은 영어 단어 외우는 특별한 방법을 아시는 분 손~! 마찬가지로 유기화학은 또 하나의 언어이며, 나름대로의 단어들을 갖는다. 이러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단순암기는 오히려 유기 공부에 해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왕성한 암기력을 앞세워 처음부터 암기로 도전하는 사람들.. 장담하지만 일백퍼센트 실패한다. 기초 개념 잡는데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반드시 잡고 가야한다. 교과서 진도를 예로 들자면 어떤 책이던 처음 5장 정도까지는 답답하고 느려도 철저하게 개념을 잡고 시작해야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섣불리 빨리 끝을 보려는 조급함이 오히려 유기화학을 더 어렵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훨씬 더 많은 시간 투자에도 불구하고 소득은 형편없이 적어진다.
1) 반드시 암기해서 알아야 할 것들.
- terminology : 각종 용어및 약어들, 인명이 포함된 개념 용어 또는 반응 (반응 자체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반응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
- 명명법 체계, 자주 쓰이는 물질들의 관용명, 작용기 구조식 등
- 유기물의 pKa값 : 단순 암기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워낙 많다. 단, 산염기에 관한 정확한 개념이 없거나 유기 반응에 대해 적용 능력이 없는 경우는 외우나 마나.
2) 암기가 필수는 아니지만 암기해두면 도움이 되는 것들
- 메커니즘이 불분명하거나 너무 복잡해서 결과만 알고 있어도 되는 일부 소수 반응들.
- proton 및 carbon NMR chemical shift, 작용기에 따른 IR absorption band 등 분광학 자료들
- 유기 실험에 관련된 몇가지 용어와 테크닉, 기구들의 이름 등
- 생화학 부분에 등장하는 물질들의 특성및 용어. 특히 분자 생물학쪽으로 접근할 때 큰 도움이 된다.
- 금속의 이온화 경향 및 주요 원자들의 전기음성도.
3) 암기하려는 시도조차 하면 안되는 것들.
- 전자 흐름의 원리 : 유기 반응은 화학 결합, 즉 전자의 놀음이다. 전자가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만 알면 된다. 화살표랑 친해져라. 유기 공부를 하는 동안 최소한 삼만개 정도는 그릴 각오를 해야한다.
- 반응 유형 및 반응 메커니즘 : 논리적인 추론을 따라가는 버릇을 들인다. 익숙해지면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암기가 된다. 또 그래야 처음 보는 반응이라해도 반응 생성물의 예측이 가능해진다.
- 기본 메커니즘을 따르는 개별 반응식 : 초보자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 교과서 초반부에 등장하는 반응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 암기하고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얼마 못가서 유기화학의 포기로 이어진다. 각 장의 뒷부분에 정리된 주요 반응의 요약 부분은 처음 공부할 때는 눈길도 주면 안된다. 이부분이 바로 초보자에게 가장 큰 유혹이고 또 함정이다. 개별 반응들은 전자 이동의 원리를 이해하고 화살표를 그릴줄 알게되면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한마디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 문제 풀이 : 교과서든 어떤 문제집이든 문제의 답을 다짜고짜 외우는 것은 곧... 죽음이자 파멸이다. 답을 봤는데도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면 차라리 그냥 넘어가라.
- 물리유기화학 : 반응 속도론, 열역학, 반응성, 산염기성, 산화와 환원, 물리적 성질, 입체 화학 등과 개별 반응과의 상관관계 등등 외우지 말고 이해하라. 반복한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라. 논리적인 과정에 연결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한다.
이상, 회원 모든 분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또 다른 의견이나 제안, 질문등은 언제든지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