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도 선택과 행동의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복지의 기본입니다." 우리고장에서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식당은 어디일까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술 한 잔하고 싶을 때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주점이 있긴 할까요? 장애인들이 집에서 옥천역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느 길을 가야 하는 걸까요? 비장애인들은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우리고장의 문제를 샅샅이 살피면서 지역 장애인의 권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인도가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하는 것부터 지역 내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상가와 기관, 길 등을 파악하는 복지지도 제작까지 중증 장애인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습니다. 지역의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작지만 큰 사업을 유쾌하게 벌이고 있는 곳은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우리고장 중증 신체장애인이 지역에서 겪는 여러 가지 불편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0년 4월 개소했습니다. 지역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마음 편히 생활하는 그날까지 힘찬 손놀림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리는 그들을 만나봤습니다. |
■'처음엔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모였죠'
| |  | | | ▲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전국적인 조직이지만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몇몇 중증 장애인들의 자조모임으로 시작했다. 비장애인의 시선을 피해 집안에만 있던 장애인들은 각종 질병과 우울증 등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지고 무기력해지기 일쑤였다. 그런 장애인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뜻에서 2008년 자조모임이 결성됐다. 처음에는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가벼운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었지만 서로가 장애인이다 보니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고 한다.
모임이 진행되자 자연히 장애인들의 복지문제가 나왔다. 1급 장애인들은 경중에 따라 활동보조지원을 받는다. 활동보조지원은 최저 40시간에서 최대 160시간까지 활동보조원의 도움을 할당된 시간만큼 받을 수 있는 제도로 보건복지가족부가 장애정도에 따라 시간을 정해뒀다. 당시 옥천군은 장애정도에 상관없이 모두 60시간으로 일률책정을 했는데 이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임경미 센터장은 이 사건을 통해서 센터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처음 활동보조지원문제를 군에 이야기 했을 때 그것에 대해 아는 공무원이 없었어요. 지원을 받는 장애인들도 홀로 집에만 있다 보니 그게 잘못된 건지도 몰랐던 거예요. 결국 자조모임원들의 노력으로 규정에 맞게 바꿔놓았는데 이후 모임원들 사이에서 장애인들의 권리를 말할 단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죠."
| |   | | | ▲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최명호 사무국장, 임경미 센터장, 이종도 정책팀장, 이병길 자립팀장(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 |
■'우리가 갈 수 있는 술집은 한곳뿐'
중증장애인의 삶과 센터의 정책·활동에 대해 묻자 최명호 사무국장이 대뜸 '옥천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술집이 어딘지 아시냐'고 묻는다. 그렇다. 장애인들도 삶의 피로를 날려버리기 위해 술을 마신다. 하지만 기자는 장애인문제 하면 장애인들이 응당 받아야 할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피해를 입고 고통을 받는 경우만 생각했지 일상의 영역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했다. 최 사무국장은 비단 기자뿐 아니라 군이나 비장애인들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우리고장에서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술집은 장야주공 앞에 있는 '블루'가 전부에요. 그곳은 엘리베이터가 있고 출입구 턱이 낮아 혼자서도 갈 수 있거든요. 그 외에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요. 비장애인들은 술집을 가더라도 선택권이 있지만 저희는 없다는 점. 장애인이 받고 있는 피해는 이렇듯 광범위합니다. 장애인들의 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하는 건 우리 생활의 변화가 이뤄져야 가능합니다."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크게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중증장애인을 밖으로 이끌어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과, 지역 내 장애인의 인식변화와 환경개선 등 두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활동은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동료상담'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은 그 공간이 그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우주다. 그렇다보니 사회화과정이 비장애인보다 늦어져 자립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임경미 센터장은 사회에서 충분히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애인들이 가정과 비장애인의 과소평가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이라고 집안에 두거나 특정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장애인의 성장과 사회화를 막는 행위입니다. 비장애인이라면 사회화과정을 거치고 직업을 가지고 자아실현을 해야 할 나이에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어떠한 발전도 없이 정체되고 있으니까요. 몸이 불편하더라도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인간관계를 맺도록 하는 건 장애인 인권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동료상담을 통해 집에만 있던 장애인을 집밖으로 이끌어내고 그가 하고 싶어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도와 자립을 하도록 하는 것.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목표다.
이 목표를 위해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자립생활기술훈련과 장애인 인식개선사업, 보장구 수리사업, 주택개선 수리사업, 자립생활을 체험하는 체험홈 등 다양한 사업을 한다. 또한 회원들과 함께 여행도 가고 극장이나 연극을 보는 등 소외되기 쉬운 문화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 |   | | | ▲ 센터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동료상담'이다. 센터 직원들이 모여 동료상담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
■복지지도 만들어 장애인 권리 보장
| |   | | | ▲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그동안 활동한 사진을 벽에 붙였다. 즐겁게 활동하는 직원과 회원들의 모습이 엿보인다. |
지난달 21일 도에서 7천만 원의 예산을 받으면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영역은 더 커질 전망이다. 기존에는 순수하게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으로 운영해 활동의 폭이 넓지 못했다. 도에서 받은 예산으로 다양한 사업이 가능해지자 지난달 1일에는 이병길(30) 자립팀장과 이종도(30) 정책팀장을 채용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하기 위한 준비도 마쳤다. 더불어 회원도 103명(비장애인 포함)으로 늘어나 인력이 풍부해져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복지지도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복지지도는 중증 장애인들이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길과 상가, 관공서, 복지시설 등 장애인의 입장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지도형태로 만든 것이다. 임경미 센터장은 장애인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한 옥천에서 장애인지도는 장애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복지지도가 만들어지면 장애인들의 활동범위가 지금보다 훨씬 넓어질 것입니다. 지도를 만드는 동시에 장애인의 사회활동을 위한 인프라도 구축할 계획인데요. 우선 군과 협의해 장애인콜택시를 도입 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휠체어가 다니기 힘든 인도를 개선하는 작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리프트가 있는 택시가 생기고 인도가 정비되면 지금보다 이동권이 훨씬 보장될 것입니다." 센터 자립장애인 2호 이종도씨
| |  | | | ▲ 이종도씨 |
이종도씨는 센터가 개설된 뒤 처음으로 자립에 성공한 회원이다. 비록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취직을 하긴 했지만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에게 이번 기회는 목표에 적합한 선택인 셈이다. 이종도씨는 처음부터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10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그는 이후 3년간을 집에서만 보냈다. 사고 전에는 친구들과 교류가 활발할 정도로 외향적이었지만 사고 이후 타인의 시선 때문에 집 밖을 나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이 지난 뒤 우연히 자조모임에 참석하면서 마음이 치유되고 변화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집에만 있던 3년간 밖으로 얼마나 나가고 싶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스쳐지나가는 눈길에도 화끈거리고 아는 사람을 만나면 숨고만 싶을 정도로 괴로워 도저히 밖에 갈 수가 없었어요. 자조모임에 나가면 일단 마음이 편해서 좋았어요. 서로 비슷한 처지에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모임을 하다 보니 장애가 부끄러운 게 아니란 걸 알게 되고 밖으로 나갈 용기도 얻게 되었죠."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생긴 뒤 이종도씨는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비장애인을 거리낌 없이 만나고 시내도 자유로이 다닐 정도로 변했다. 또한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다른 장애인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사고 이후 장애인의 삶을 절실히 느끼게 되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단다. 그런 모습을 본 임경미 센터장과 최명호 사무국장은 함께 일을 할 것을 제의했고 고민 끝에 정책팀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아직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책에 대해 그다지 할 말은 없네요. 하지만 중증 장애인에게 제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전해주고 싶어요. 집에서 고통 받고 있는 장애인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하자 이 말을 꼭 해야겠다며 말을 잇는다. "집에 홀로 있는 장애인 여러분,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주변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남들 시선을 겁낼 필요 없어요. 혼자 괴로워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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