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임 <산에 대하여> 22차 정기산행지는 강원도 춘천 북산면과 화천 간동면의 경계에 있는 오봉산이다. 전국 어느 곳이든 봉우리가 5개가 있는 산은 오봉산(경주에도 오봉산이 있다)이기 마련이지만, 그중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오봉산은 단연 이 춘천 오봉산이다. 춘천에는 삼악산, 가리산, 용화산 등 한국100명산에 드는 산들이 더러 있어 명산이 많은 지역인데 그 중에서도 오봉산이라면 춘천에서는 단연 최고의 산으로 꼽힌다. 서울 친구들이야 경춘고속도로로 달려오면 이곳까지의 거리가 별 것 아니지만 경주에 있는 나로서는 춘천은 먼 거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연일 비가 내리고 있으니 더우기 그까지 올라가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느 친구는 위험하니 올라오지 말라고도 했지만 또 몇몇은 꼭 오라고 하는 바람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춘천으로 올라간다. 뭐, 늙어서 늘 이런 장거리산행만 할 것은 아닐 것이다. 하다보면 멀리도 가고 가까이도 가겠지. 경주를 출발하면서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비는 대구 지나 금호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서고부터는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쨌든 오늘 저녁에는 춘천에서 친구들과 반가운 해후를 하게 될 것이고 즐거운 주말을 보내게 될 것이다.
중앙고속도로 동명휴게소 근처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원주 부근에 오자 폭우로 변해 앞이 안 보일 정도여서 치악휴게소에서 차를 세운다.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치악에 내려서 잠시 비가 잦아 들기를 기다린다. 고속도로 휴게소, 내리는 비 그리고 진한 커피.........갈 길은 멀지만 나는 유유자적이다.
드디어 친구들이 만났다. 춘천 시내를 뚫고 지나 화천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배후령 지나 화천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배치고개를 넘어 청평사로 들어가기 직전에 위치한 하늘소민박이 우리들이 만나는 장소이다. 좌로부터 나, 김경배, 문성호, 전종성, 이정, 김형철이다. 우리는 이제 장년일까? 여전히 술 잘 마시고 산 잘 타는 친구들이 모였다. 건강하다는 증거겠지.
우리는 민박집을 잘 골랐다. 하늘소민박은 네티즌들이 가보라고 강추하길래 선택한 곳인데............멋진 곳이었다. 예전에 전문 음식점으로 꾸몄다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그만두고 민박집으로 바꾼 것 같은데 전체 건물을 빌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15만원의 싼 가격으로 전체를 빌렸더니 방이 4개나 되고 큰 주방에 큰 거실, 그리고 노래방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완전히 땡 잡았다.
밥 먹고 한잔 마시고 이제 잠시 놀아야지. 밤 늦게 장사를 마치고 뒤늦게 빗속을 뚫고 달려온 서울의 이정 부부까지 합세한 놀음이 밤 가는 줄 모른다. 너무나 피곤하지만 멀리서 온 친구가 있으니 쉽게 잠자리에 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시끄새, 이정과 함께 밤 3시까지 마신다.
강남에서 외제 화장품 대리점인지 오파상인지? 하는 김형철이 가정마다 각각 선물한 화장품 세트다. 이게 내가 받은 세트인데 싯가로 60여만원이나 된다니 고맙기도 하다. 물론 나는 약소하지만 다른 것(?)으로 화답을 했다.
여느 산행객들처럼 우리도 오봉산을 배후령에서 오른다.
배후령은 춘천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화천, 양구쪽으로 20-30여분 가면 나오는 고개 이다. 배후령 고개에서 북쪽을 보고 오른쪽 산이 오봉산이고 왼쪽 산이 용화산이다. 오봉산과 용화산은 하나의 산줄기로 연결된 산으로 둘다 한국 100명산에 드는 명산들이다. 하지만 관광버스가 배후령에 와서는 내리는 등반객들은 모두가 오봉산으로 오르지 용화산으로 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봉산이 훨씬 더 유명한 산이기도 하지만, 용화산 등반의 들머리는 주로 여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후령의 해발이 600m이므로 오봉산 정상까지는 고도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말 그대로 다섯개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므로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다. 특히 청평사 천단으로 내려가는 암릉지대의 하산길이란..........스릴 만점이었다.
여기가 오봉산 들머리이다. 여기서 부터 산에 오르는데, 작년 여름에 왔을 때 없었던 초소가 하나 생겼다. 여느 때 처럼 산행객들을 통제하는 곳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고 춘천시에서 마련한 산행 안내소였다. 어느 노인이 우리들에게 현재의 산 상태나 기상 상태를 설명해 주었는데 이런 업무들은 춘천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베푸는 시의 복지 서비스지만 그보다는 노인 고용 창출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오봉산은 높이 779m로, 소양강댐 건너 청평사 뒤세 솟은 비로봉,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나한봉의 다섯 봉우리를 말하는데 유명한 보살 이름은 모조리 갖다 붙여 놓았다. 옛 이름은 경운산이었고 오봉산, 경수산, 청평산으로도 부르다 등산객에게 알려지면서 현재의 오봉산이 되었다. 오봉은 기차와 배를 타고 가는 철도 산행지, 산과 호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호반 산행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첫 들머리는 가파르다. 하지만 잠시 지나면 곧 편평해 진다. 영차, 영차 줄을 잡고 오르는데 옆에서 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봉산에는 1,000년이 넘은 고찰 청평사(강원기념물 55), 청평사 회전문(보물 164), 아홉 가지 소리로 떨어진다는 구성폭포, 중국 원(元) 순제의 공주와 상삿뱀의 전설이 얽힌 삼층석탑(공주탑:강원문화재자료 8), 공주굴, 공주탕, 연못의 시조라는 영지(남지) 등의 구경거리가 흩어져 있다.
봐라! 이제 바로 편평한 길이 되었다. 하지만 또 바위길이 나온다. 오봉산 자체가 육산이 아니라 골산, 즉 바위산이다.
서쪽으로 보이는 산이 바로 용화산이다. 용화산도 우리가 지금 산행을 출발한 배후령에서 출발해 능선을 가다보면 무수한 바위로 이루어진 바위 능선을 지나게 된다. 정상부근 뾰족한 바위가 칼바위이다.
주능선에 올라 밑을 내려다 보니 우리가 출발했던 배후령 길이 보인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바로 화천이다.
진혼비도 있다. 산에서 죽은 사람도 있고 일상에서 죽었지만 산친구들이 그 넋을 기려 망자가 좋아하던 산에 진혼비를 세우는 경우도 있다. 나의 산 친구 이종률도 뇌출혈로 죽었는데 그가 평소 좋아하던 경주 함월산 정상에 진혼비를 내가 붙여 놓았다.
이제 바위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거린다.
능선 북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 마을이다. 저기에서 북으로 계속 가면 바로 유명한 화천의 파로호가 나온다.
벌써 1, 2봉을 지나고 이제 3봉 문수봉을 오른다. 3봉 문수봉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지만 쇠봉과 로프가 걸려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앞에 꺼부정한 사람이 이정의 아내이다. 산에 처음 온 까닭에 혼줄이 난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멋진 추억으로 남으리라. 단미는 벌써 앞에 날라가고 없다. 오봉에는 두번째라 모든 것에 익숙한 모양이다.
3봉(문수봉)과 4봉(보현봉)은 칼등 같은 암릉에 박힌 쇠막대에 걸린 줄을 잡고 오르내리는데 절벽 같은 낭떠러지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 앞에 여인네들이 있어 쌕쌕 대기가 민망스러워 단숨에 올랐더니 입에서 불덩어리가 나온다.
이제 4봉 보현봉으로 올라간다. 쇠봉에 매인 로프를 잡고 바위를 올라가지만 역시 위험하지는 않다. 오른쪽이 절벽이지만 그 역시 크게 위험하지 않다. 단미는 없다. 신나게 달리는 모양이다.
정상에서...............정상? 산이름 그대로 1,2,3,4봉 지나 5봉이다. 그래서 오봉산이다.
지도를 잘 살펴보면 현위치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구멍바위가 있고, 거기서 좀 더 내려오면 갈림길이 있다. 왼편 적멸보궁 길은 쉬운 코스로 해탈문-청평사로 내려오는 길이고(이건 가족산행용이다), 계속 직진하면 암릉지역이 나온다. 여기가 오봉산 산행의 백미인 천단코스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로 내려간다. 그리고 수직의 바위를 타고 청평사로 바로 떨어질 것이다. 이정이 집사람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비장한 얼굴, 여유 있는 얼굴, 술에서 덜 깬 얼굴........갖가지 얼굴이다.
정상이 지나도 또 오르막 바위가 나온다. 있으면 올라야지.
제법 고도감도 있다.
누가 장난스레 깎아 놓은 남근을 시끄새가 한번 빨아보려고 시도한다. ㅎㅎ 조심해라! 물 나온다!
구멍바위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통과하려면 여의치 않다. 잘못하면 팔이 까지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만약 이런 길 뒤에 천왕봉이 있다면 이 문의 이름은 반드시 통천문일 것이다. 이 구명이 통천문이 아니라 구멍바위라면 정상 이름은 천왕봉이 아니라 비로봉이다. 산 곳곳의 지명이 토속적인 이름이냐, 불교 용어로 된 이름이냐의 차이이다.
구멍바위를 통과하는 단미. 이제서야 단미를 만난다.
3번째로 구멍바위를 통과하는 김형철.
구멍바위를 통과하면서 하나 둘씩 모인다.
여기가 갈림길이다. 이 계단으로 내려가면 길이 쉽다. 적멸보궁 터, 공주탑, 해탈문을 거쳐 청평사에 쉽게 이른다. 하지만 직진하면 바위지대로 간다. 청평사 천단 코스이다. 물론 왼편으로 나루터로 직행하는 약간 쉬운 길도 있지만..............우리는 암릉 코스를 선택한다.
암릉을 즐기려면, 또 오봉산행의 진수를 맛보려면 능선 따라 직진해야 한다. 이 길은 암릉지대가 거의 수직으로 나 있어, 설치된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한다. 암릉지대가 청평사까지 이어지고 등산로가 매우 험하다. 아기자기한 암릉과 소양호의 시원한 조망을 보며 내려갈 수 있으나, 릿지화나 장갑을 갖추는 것이 좋다. 나는 장갑을 끼지 않는 바람에 손이 벌개졌다. 곧 물집이 생길 지경이었다.
저건 배후령 고개가 아니고 화천에서 다시 청평사로 넘어오는 배치고개 길이다. 이 길이 나기 전에는 오봉산은 반드시 배를 타고 들어와야만 했다. 그래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산이었다.
오봉산에서 배치고개 넘어 있는 부용산. 산꾼들은 오봉을 타고 배치고개로 나아가 부용산까지 타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어리석은 짓이다. 부용은 그렇게 가치있는 산이 아니다. 산에 무슨 가치가 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다. 물론 세속적인 기준을 적용해서 보자면 그렇다. 부용을 타기 위해 저리로 나아간다면 오봉 최고의 코스인 천단 코스를 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암릉을 치기 전에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아름다운 노송에 잠시 포즈를 취하는 단미. 그녀는 최근에 서예에 빠져 있는데 그 선생이 아호를 쓰기를 권유해 현재 단미라는 닉네임이 있다고 하니 그것도 괜찮다며 그대로 하되....................丹 자를 바꾸라고 권했단다. 붉다는 뜻은 화류계를 뜻하니 좋지 않다는 얘기였다. 丹을 緞으로 바꾸란다. 비단단(緞)자. 비단같이 아름다운..............으로. 하지만 그녀는 바꾸기를 싫어한다. 그녀는 丹자를 좋아한다.
죽음 직전의 식사............라면 어색한 표현인가? 우리는 밥 먹고 바로 바위 코스로 클라이밍 다운을 시도할 것이다.
송곳바위................
청평사가 내려다 보이는 정경에 이상한 바위가 있다. ㅋㅋ 남근바위다. 내가 보기에는 젖꼭지바위 같은데.............
드디어 클라이밍다운 코스가 시작된다. 겁대가리를 완전히 상실한 단미................이젠 완전히 스파이더우먼이네. 많이도 컸다.
경배가 내려가고..................
마지막으로 나의 안내에 따라 이정부부도 내려온다. 하이고! 미안합니다. 이런 곳으로 안내를 해서................
여기서 밑으로 보이는 청평사까지는 숲이 보이지만 사실은 바위길이다. 그대로 곧장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코스이다.
이렇게 거의 수직벽으로 줄을 잡고 내려간다. 주의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여자와 노약자, 또는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겨울에는 이 코스를 피하라. 잘못하면 산화할 수 있다. 산화? ㅋㅋㅋ 전방에 오니 용어도 전쟁 분위기다.
어랍쇼! 한번 온 곳이라고 선두에 서서 잘도 내려간다. 산행력도 늘긴 많이 늘었다. 늙어가는 나는 자꾸 약해지고 단미는 점점 더 강해진다. 원래 남녀 관계가 그런 것 아닌가? 나이 들수록 여자가 호랑이가 되어가는.....................벌써 우리는 쥐새끼가 되어 버렸다.
약간의 여유가 있는 곳에서 안경도 고쳐 쓰고................
이쯤 되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자세도 믿음직하고...............
단미가 내려가고 내가 두번째로 내려가니, 또 뒤에는 한참 쳐져서 뒤따르니 사진은 온통 단미 뿐이다.
이제 로프에 몸을 의지하는 것도 질린다. 너무 저런 식의 산행을 많이 했더니 작년 겨울부터 오른팔에 테니스엘보가 생겼다. 서라벌정형외과 박춘근 선배 왈, 로프를 많이 잡아서 그렇단다. 테니스 그만 둔지가 벌써 20년인데 무슨 테니스엘보인가?
climbing down..............
이제 거의 마지막 코스..................
단미가 안착하고 세번째로 뒤 따르던 김형철가 클라이밍 다운을 시도한다.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앞서 보낸다.
문성호도 내려온다.
드디어 하산하여 청평사에 도달한다.
청평사는 973년(고려 광종) 승현선사가 창건하고 백암선원이라 하였으나, 그 뒤 폐사되었다. 1068년(고려 문종)때 이의(李顗)가 중건, 보현원이라 하였다. 이의의 아들 자현(資玄)이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자 오봉산에 도적이 없어지고 호랑이와 이리가 없어졌다고 하여 산 이름을 청평이라 하고 사찰 이름을 문수원(文殊院)으로 하고 중창하였다. 1550년(조선 명종) 보우(普雨)가 청평사로 개칭하였다. 6 ·25전쟁으로 구광전(九光殿)과 사성전(四聖殿) 등은 소실되고, 현재 보물 제164호인 청평사 회전문과 극락보전 등이 있다.
절터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으며,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호인 3층석탑이 있다. 이 탑에는 상삿뱀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원나라 순제(順帝)의 공주가 상삿뱀이 붙어 고생을 하다가 이 사찰에 와서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한 후에 상삿뱀이 떨어져 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순제가 지었다고 하며, 그래서 이 탑을 공주탑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사찰 내에 있는 고려정원은 일본 교토[京都]의 사이호사[西芳寺]의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여 년 앞선 것이다.
청평사에는 일주문도 없고 큰 두 그루의 잣나무가 일주문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바로 정면에 보이는 문이 보물 164호인 회전문(回轉門)이다. 뒤에 우리가 내려온 바위지대가 조금씩 보인다.
하산으로 진땀을 뺀 뒤 잠시 쉰다. 아직 뒤에 오는 팀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평사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오봉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과 주변의 경관이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 없는 구성폭포가 나온다. .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 하여 명명된 것이란다. 높이는 9m로 상사뱀에 연루된 평양공주가 목욕을 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 동상이 바로 상사뱀의 전설과 관련된 공주상이다. 공주는 원나라 왕 순제(진종?)의 딸로 이름은 평양공주라고 했다는데, 그 전설이란 대강 이렇다.
옛날 옛적에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미천한 가정의 총각이 가엾게도 임금의 딸인 공주를 사랑했다. 비록 그의 가정이 미천하기는 하지만 그 총각의 순박한 진실성에 공주도 마음이 차츰차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챈 임금은 당황했다. 임금은 미천한 총각으로부터 공주를 떼어 놓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허사였다. 그 총각이 공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집념은 그만큼 강했다. 이에 임금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미천한 총각을 죽여 버렸다. 그 후 어느 날 밤 공주가 혼자 있는 방에 커다란 뱀이 기어 들어왔다. 공주는 놀라서 질겁을 하였으나 속수무책이었다. 뱀은 공주의 몸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칭칭 감아 올라갔다. 그리고는 영영 공주를 풀어주지 않았다. 뱀은 대가리를 바로 공주의 얼굴 앞에 대고 쏘아보며 혓바닥을 날름날름 놀렸다. 공주가 음식을 먹으려 하면 뱀이 먼저 빼앗아 먹기도 하였다.
공주는 그 뱀이 바로 자기를 사랑했던 총각의 화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금에게 죽임을 당한 미천한 총각이 죽어서 뱀이 된 것이다. 뱀은 끝끝내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공주는 날로 여위어 갔다. 임금은 나라안에서 유명한 점장이나 의원들을 불러 보았으나 허사였다. 온갖 방법이 다 허사로 돌아가자 임금은 공주에게 시키기를 중국의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부처님께 빌라고 하였다. 중국의 명산대찰은 효험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공주는 고려의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부처님께 빌기로 하였다. 고려 땅에 들어와서 공주는 지금의 강원도 춘천에 있는 청평사가 유명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청평사 입구에 이르러 공주는 뱀에게 말하였다. “절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고 올 테니 잠깐만 나를 풀어다오.”
중국에서는 전혀 말을 듣지 않던 뱀이 이번에는 이상하게 말을 잘 들었다. 공주는 절에 들어가 가사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절 입구에서 공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뱀은 아무리 기다려도 공주가 나오지 않으므로 절로 기어 들어갔다. 뱀이 회전문에 이르자 갑자기 뇌성벽력이 울리며 폭우가 쏟아졌다. 뱀은 회전문 앞에서 회전하여 물에 쓸려나갔고 공주는 비로소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 회전문이 지금도 남아 있고 청평사 계곡의 구성폭포는 그때 뱀이 쓸려간 폭포이다.................
이런 전설이다. 난 전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있으니까 그냥 올려본다. 전설은 항상 Believe it or Not! 이니 그저 웃으면서 들을 뿐이다.
춘천 최고의 막국수 집인 유포리막국수. 전국 8대 막국수에도 드는 유명한 집이다. 오봉산 근처에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랴? 어림 없지. 한 그릇 먹고 귀향해야지.
막국수란 메밀국수를 김칫국물에 말아 먹는 강원도 향토음식으로 춘천이 원래 유명하다.
막국수는 메밀막국수라고도 한다. 메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하여 국수틀에 눌러 빼내어 끓는 물에 삶아서 냉수에 3∼4번 헹구어 사리를 만든다. 그리고 김치는 큰 것이면 대강 썰고 오이는 반으로 갈라서 얄팍하고 어슷어슷하게 썰어 소금에 잠시 절였다가 꼭 짠다. 이제 사리를 대접에 담고 김칫국물을 부은 다음, 그 위에 썬 김치와 절인 오이를 얹고 깨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린다. 김치는 동치미, 나박김치, ·배추김치 등을 쓰는데, 젓갈과 고춧가루가 많지 않은 맑은 김치가 좋다. 국물은 김칫국물과 차게 식힌 육수를 반씩 섞으면 더욱 좋지만 이 국수는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어야 하기 때문에 고기류나 파 ·마늘 등의 양념은 막국수 본래의 맛을 해치기에 넣지 않는다.
유포리 막국수가 자랑하는 맛 있는 편육. 특히 막국수와 섞어 씹으면 그 맛이 더욱 좋다.
춘천 유포리막국수집의 맛의 비결은 바로 이 동치미국물...................일반 그 동치미국물과는 다르다.
그럼 이집의 막국수는 어떨까? 먹어 보니..............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막국수 중 최고의 막국수였다. 김치국물은 동치미를 쓰고 있는데 젓갈류를 전혀 넣지 않고 시원하고 맑게 만들었는데, 무슨 노하우가 있는지 그 국물이 감칠 맛이었다. 그 동치미로 국수를 말고 깨소금, 간단한 소스, 그리고 설탕이 약간 집어 넣었는데....................최고의 막국수였다. 내 입맛에는 설탕이 조금 들어가야 제 맛이 나는 듯 했다.
우선 메밀국수의 면발이 아주 찰졌다. 그러니 씹으니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고 특별한 소스로 친 국물은 최고였다. 량이 너무 많아 배가 불렀지만 국물에는 계속 손이 갔다. 특히 편육을 중간중간에 곁들이면 그 맛이 배가 된다. 단미도 지난 번에는 량이 많아 남겼지만 이번에는 한 그릇을 해치운다. 그녀 왈, "전국 최고의 막국수다!"..............
점잖게 먹고 있는 김경배, 문성호, 김형철(좌로 부터)이다. 시끄러운 친구가 왠일로 조용히 맛을 음미하고 있다.
막국수를 다 먹은 뒤에 경주팀과 서울팀은 이별한다. 한달 뒤 황매산에서 만나기를 기약하면서..............시간도 시간인지라 나는 춘천에서 경북 군위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 내려왔다. 뭔가 경북지역에 들어와야 마음이 놓이는 것 있지? 고향은 좋은 곳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