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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독(제32회 / 이명자)

작성자편집진|작성시간17.04.14|조회수41 목록 댓글 0



중독

(제32회 / 이명자)



나는 숨을 좀 고르기로 작정했다. 거친 숨을 내뿜어봐야 내게도 어머니에게도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어머니 매달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타서 쓰는 어머니 친구도 없는 어머니 아버지와 나만을 위해 존재해 있는 것만 같던 어머니 그랬는데 어머니는 모텔에서 거래를 했고 나를 만나기 위해 오일동안이나 꼭두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터미널을 지켰다지 않는가. 나는 뭔가, 나는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는가. 아니 나는 풀잎을 찾아 헤매었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정직한 말을 하는군. 그래 나도 이제는 정직해지자. 정직하게 어머니를 좀 위로하자.

어머니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얼마나 걱정스러웠는데요. 아버지는 보름동안을 먹지도 못하시고 어 머니를 찾아 헤맸어요. 가게는 일주일씩이나 문을 닫았고 아버지는 몹시 수척해지셨어요. 어머니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저에게 말해 주세요. 저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어요.”

재민아 네가 어떻게 나를 이해할 수 있겠니.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번 저에게 기회를 줘 보세요. 저도 이제 다 컸잖아요.”

내가 다 컸다. 말을 뱉아내고 보니 정말 내가 다 커버린 느낌이었다. 다 컸지. 키도 크고 몸도 크고 손도 발도 크고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컸다. 그런데 하나 크지 못하고 오히려 작아져버린 것이 있었다. 마음이었다. 바다처럼 넓디넓게 커져야 할 마음이 도랑처럼 좁아져 가고 있었다. 실토할 기회가 없었지만 마약이 내 몸속 곳곳에 숨어 나를 말라비틀어지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야 실토하는 저의가 뭐냐고? 어머니를 만나서 기쁜 나머지 실토했다 왜?
어머니가 말했다.

재민아 너는 기억하지 못하지 나에 대해 하나도. 아버지가 내게 어떤 대우를 하는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지? 나는 너의 아버지의 아내가 아니었다. 가정부였고 아니야 가정부 취급도 받지 못했다. 네 아버지 발아래서 쥐죽은 듯 살아야했어.”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느라 말을 중단했다. 나는 어머니의 말에 긍정은커녕 도무지 무슨 말을 어머니가 하는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어머니를 위로할까.

어머니 이혼만은 안돼요.”

내 딴에는 어머니를 위해 말했다. 어머니는 지니고 있을 돈도 이미 바닥이 났을 것이고 직장도 없고 학생인 나도 여간 돈이 필요한 것인데 어머니는 내가 보기에 인생으로서의 최소한 기본적인 아무것도 갖추지 않고 있는데 말이지. 나는 어머니가 우리들을 위하여 매일매일 훌륭한 음식을 만들고 아버지를 위하여 다소곳하고 아들인 나를 위하여 동화책을 읽어주고 어머니란, 그러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와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었을까.

이미 끝난 일이란다. 내가 너를 기다린 것은 너에게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였어.”

오해라니요?”

나는 놀라 물었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무슨 오해?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아버지는 끄떡하면너를 위해서라고 으름장을 놓아서 아버지를 향한 내 마음이 어쩐지 지은 죄 하나 없이 불편했고 오금이 떨렸고 내가 오금을 펴지 못 하도록 만들었고, 나에게 으름장 한번 놓지 않은 어머니는 내가 놀라서 묻자 어머니도 놀라워했다.

어머니의 미간에 잔뜩 주름이 잡혀졌다. 이 사태를 따따부따하지 말자 어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한다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신을 아내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니 나는 어느 편에 가담해야할지 아리송하기 끝이 없잖아. 그런데 우연히 말이지.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저 때문이라면 제발 집으로 들어가세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지도 않게 두 손을 맞잡고 내 입에서 나온 내 고운 말이 어머니를 그리고 나까지 감동시켰다. 생각해보시라. 이미 자랄 데로 자라 턱밑에 나기 시작한 턱수염이 제법 거무스레해져가고 있는 덩치 큰 아들이 간곡하게 비는데 감동받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말이지. 어머니의 입가에 아주 살짝 행복한 미소가 서리는 걸 나는 보았다.

이제 되었다. 나는 이제 되었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고 그로인해 나의 근심걱정은 사라져 주었고 나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남겨 놓고 헤랄드로 돌아가도 될 성싶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딴 말을 했다.

네 잘못이라니 그건 절대 아니야. 정해진 일이었다. 너에게 부담을 주려고 너를 만나고자  한 게 아니야.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 하드라도 이제는 상관없다. 너를 위하는 일이라면 난 아무래도 좋으니까. 너는 너만을 생각하면 돼.”

이렇게 중차대한 일에 왜 마지막에 가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나 오로지 나만을 위하는 것 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만 잘 되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는 뜻인가. 내게는 풀리지 않는 의구심만 잔뜩 심어 주고서 말이지. 이쪽 편에 있으면 이쪽편이 옳은 것 같고 저쪽 편에 있으면 저쪽편이 옳은 것 같은 눈먼 이 현실의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일어난 이 고약스런 현실은 내 탓인가, 기분 나쁜 의구심을 갖게 만드니 말이지.

내 탓이다 내 탓이다; 두 분이 잘 알아서 하시도록 나는 멀리 서서 바라다보지도 말고 참견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내 탓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지. 그런데 어디 그런 가. 내 탓도 아닌데(절대 아니야. 나는 우긴다. 아니고말고.) 보고 있자니 우선 심기가 매우 불편하잖아. 아버지의 바싹 마른 몰골이 어머니의 추레해진 꼴이, 나는 울뚝불뚝 일어나는 심사대로 퉁명스런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모든 걸 안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그럼 절더러 어쩌란 말씀이에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아 헤매느라 해골 같은 몰골이고 어머니는 어머니를 변호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저를 기다렸고 저는 저대로 저 때문인가하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집안은 풍지 박산 되어가고 있는데 감정놀음을 하고 있을 땐가   ? 두 분이 조금씩 감정 손해를 보면 안 되나요? 좋은 날이 더 많았지 않나요? 저도 힘들어   . 아버지 앞에만 서면 저는 죄도 없이 오금이 저리는 걸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제가 사라져   드릴까요? 그게 아버지 어머니의 뜻인가요? 사라져 드리죠, 사라져 드린다고요.“

기똥차게 열변을 토했군, 재민. 나는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의 열변에 어떻게 반응할지, 미안한감이 삐죽삐죽 입언저리로 올라왔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지금까지의 나의 의식도 함께 고개를 숙여버렸다. 내가 할 일이 더 이상 없다는 뜻이었다. 이상한 건 어머니였다. 내가 사라져 준다는 말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것이었군. 어머니의 이 이상한 행동은 다 나 때문이었어..... 내 머릿속에 박혔다. 어머니와 나는 필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서로를 더 이상 마음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인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내 가방을 들고 일어섰고 어머니는 나를 배웅하기 위해 모텔 문을 열고 밖에서 잠갔다. 이번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멀리 갔다. 지루한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지루할 줄이야, -성우처럼 동화책을 읽어주던 어머니가 변해버렸다. 어머니의 어디가 변해 버렸는지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자세히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나는 제멋대로 판단해 버렸다. 아마 위기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열변을 토하는 나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 이렇다 저렇다 한 마디 말하지 않았고 나로 인해 장소를 옮겨버릴지..... 늦기 전에 빨리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소재를 알려야만 한다는 위기의식이었다. ‘얼굴이라도 마주쳐야.....’ 아버지의 고뇌가 담긴 말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가 떠나기 전.

잘 가라 재민아. 나는 걱정 말거라. 수시로 연락하마.”

어머니 전화 드릴게요. 그만 들어가세요.”

우환이 가득한 집안의 어머니와 아들의 이별장면이었다. 티를 낼 필요는 없지만 말이지. 이토록 자연스런 이별을 하면서 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어머니를 이별하고 어머니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내가 어머니의 소재를 알리자 아버지는 희망의 종소리라도 들은 양..... 목소리가 댕 댕 댕 종처럼 울렸다. 기가 막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시려면 어머니의 가슴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 간간이라도 좀 들여다보실 것이지
아버지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이명자

캐나다한인문인협회 회원

미주 한국일보 문예 공모전 소설 부문 입상

소설집: 장편(혼란스러운 순간)

대표작: 단편(폴과 제이슨, 형, 미완성, 그해 그 겨울), 장편(혼란스러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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