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정/서양/17/최선진
제1절 서양요리역사
1. 개 요
일반적으로 양식요리라 함은 세계를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하였을 때 구미를 비롯하여 유
럽을 포함하는 나라들의 요리를 말하며, 서양요리라고 통칭한다. 물론 구미와 유럽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이모든 나라들의 요리가 우리 나라에서 서양요리로서 알려진 것은 아니다.
요리라고 하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를 포함하고 있고 그 지역 국가들의 국력이나, 지리적인
여건, 풍습, 민족의 분포도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하여 번성 발전되기도 하고 때로는 퇴색되기
도 한다.
따라서 서양요리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발전이 비교적 빨랐던 그리스, 이태리, 블란서
를 중심으로 발전된 요리를 일컬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후 급속한 경제력과 군사대국인 미국
의 세력에 의하여 전세계에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으며 미국의 상업주의적인 문화가 가미되
어 변형된 부분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동양요리가 농경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서양요리는 목축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농경문화에 바탕을 둔 요리는 가공단계가 단순하고 요리의 성격이 섬세하다. 흔
히들 젓가락 문화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서양요리는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니나 동양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목축 즉 육류에 기반을 둔 요리가 많
다.
이렇게 목축에서 생성된 요리는 가공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부패를 가져오기 때문에 여러
공정에 걸쳐 가공함으로써 다양한 부산물이 생겨나고 이것들이 다시 새로운 요리에 재료로
제공되기도 한다.
서양요리와 동양요리가 어느 쪽이 더 과학적이냐는 질문은 별로 의미가 없다 .이두분야는
서로 개성을 가지고 있고 우위를 가릴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문화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요리의 발전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설명될 수 있지만 다음
과 같은 몇 가지 공통된 요인에 의하여 발전되어 왔다.
(1) 불의 발견
불의 발견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무한대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조리에
있어서는 날것으로 먹던 것이 익혀서 먹는 기술확장을 가져 왔다. 불의 발견을 조리에 혁명
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요리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2)잉여생산
신석기 시대의 농업기술발달은 인간생계를 위한 농업생산을 앞지르게 되었다. 특히 나일 삼
각주를 중심으로 한 비옥한 토지는 부의 축척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때 인간들은 잉여농산
물을 화폐가치로 이용하기도 하고 배를 불리는 음식의 차원을 떠나서 즐기기 위한 요리의
차원으로 만들어 나간다.
(3)자연극복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에 대한 극복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종족의 보존, 새로운 세계대한 도전에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혹독한 겨울과 전쟁, 경조사 등을 대비하여 음식을 저장하게되는데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마리네이드(절임법), 스모크(훈연법), 드라이(말림방법)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현대
에 와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4)부와 권력의 상징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고 무리들 중에서는 언제나 그 무리에서 질서가
요구된다. 질서는 곧 권력을 낳게 되면서 권력은 다시 부의 상징으로 발전되어 왔다. 권력과
부에 의하여 요리가 발전된 것은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서 프랑스로 이어진 요리에 역사이기
도 하다.
2. 서양요리의 역사
서양요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나 유럽전역에 존재하고 있는 동굴벽화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되고 있는 요리
에 대한 흔적은 고대 이전에 인간들은 이미 대단히 발전된 요리를 즐기고 있었던 것으로 추
정된다.
이집트 피라미드에서는 와인의 생성과정이나 빵을 만드는 과정이 현대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기술들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다.
(1)고대그리스
그리스인들은 하루에 네끼의 식사를 하며 이들이 즐겨먹은 것은 돼지고기와 양고기에 오래
거노와 큐민 같은 향이 독특한 허브를 곁들어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주위에서
생산되는 올리브 오일과, 꿀, 산양의 젓, 호두와 같은 넛을 가미한 케익이 이미 이 당시에
식탁에 올려졌다.
그리스는 건조한 기후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도 잘자라는 양배추나 렌틸과 같은 야채를 식이
요법으로 사용하였고, 해안가 주변에서 자생하는 휀넬이나 마쉬맬로우를 병을 퇴치하는 치
료요법과 생활요법을 병행하여 이용했다.
그리스 역시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관계로 참치와 가자미, 문어, 도미 등 풍부한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많고 이것들을 저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금에 절이는 염장법을 흔히 사용하
고 있었다.
육류로는 사육되는 돼지나 양 외에도 야생에 서식하는 여우, 사슴, 토끼, 심지어는 고양이
까지도 식용으로 사용하였다. 고대그리스인들이 즐겨 마신 음료로는 "하이드로멜
"(Hydromel)이라는 발효되지 않은 벌꿀을 가미한 물로서 언제어디서나 마실 수 있도록 물
통에 넣어 다니곤 하였다. 그렇지만B.C 2000경서부터는 이것이 와인으로 대체되었다. 이 당
시에 와인은 대단히 강한 것으로 항상 물을 희석하여 마시고 때에 따라서는 바닷물도 사용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가 이처럼 요리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지형적으로 온화한 기후와 귀족사회에 바
탕을 둔 노예제도가 성립되어 있었으므로 요리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분업이 이루어질 수 있
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로마시대
로마시대야말로 서양요리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로마의 거대한 국력에 권력을 바탕으로
하는 부의 발전은 상류층의 요리에 대한 관심을 극적으로 불러일으켰다. 로마시대에는 요리
에서 필수적 3요소인 미식가와 요리사, 풍부한 재료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 결과 현대에 와
서도 로마시대의 요리법이 전수되어 이태리는 물론이고 프랑스 등 유럽곳곳에서 로마시대
래스피를 바탕으로 하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남아 성업을 이루고 있다.
특히 로마시대에 요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은 그리스의 풍부한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로마인들의 식습관에 덧붙여 중국의 실크로드를 통한 아시아인들의 왕래로 새로운 요리의
기술과 방법, 재료가 가미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로마시대 만찬장을 묘사한 그림에서 중국
식 광뚱지방 요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미 어느 정도 중국식 요리가 미식가들에 의해서
즐겨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당시 연회행사 그림에는 요리와 소스 등 모든 음식들이
먹기 위함보다는 사치스럽고 낭비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로마의 초기 정복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듭되는 연화행사를 치
렀었고 당시에 풍부했던 낙타나 산돼지 등을 통째 구어 많은 사람들이 즐기었다.
초기로마제국의 요리는 육류 외에도 보리와 콩가루를 이용한 죽 종류가 유행하였고, 요리에
예술적인 면을 강조하는 제빵 기술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다만 이 당시에
구하기 힘들었던 재료로서는 과일을 꼽을 수 있는데 사과는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로
마로 넘어 왔지만 살구와 복숭아는 아르메니와와 페르시아에서 수입하는 관계로 가격이 매
우 비싸서 일반인
들은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부유층들의 부에 대한 표현은 자신들의 땅에 체리나무
를 심어서 과시하기도 했다. 다만 무화과와 대추는 아프리카에서 들어와 제법 많은 양이 생
산되고 있었다.
점차 로마의 국력이 강해지고 국가로서의 기반이 견고해지면서 아시아와 주위 여러 나라 정
복에 나섰던 군인들의 귀환으로 더욱 새롭고 다양한 요리들이 로마에 소개 된다. 이때에 옥
수수가 이집트로부터 들어오고, 올리브 오일은 스페인, 햄은 고을(Gaul:고대 프랑스사람들),
향신료는 아시아로부터 들어와 진정으로 요리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부유한 로마사람들은 말 그대로 대식가들이었다. 이들은 계속적으로 요리를 즐기기 위해서
더 많은 요리재료와 시설들, 요리사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거대한 연회행사를 치르기 위해서
는 요리에 대한 기본지식과 준비방법, 요리시간들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표시해야하고 요리
사들 사이에서도 정보가 원활하게 교환이 이루어져야 했다. 따라서 요리에 대한 래스피가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되었다.
로마시대 요리의 특징은 소스에 많은 양에 향신료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후추와
고추,민트,잣,건포도,당근,꿀,오일,식초,와인,머스크를 사용하여 시고 달콤한 양념을 주로 하였
다. 다만 설탕은 사용하지 않고 꿀과 과일시럽으로 하여금 단맛을 내는 것이 특이하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치즈와 와인들이 만들어 졌는데 대표적으로 발포성 와인인
passum(straw wine),단맛이 강한 mulsum(honeyed wine),물에 식초를 희석한
posca(vinegar diluted with water)기 있다. 이외에도 장미, 과일향을 곁들이 다양한 와인들
이 이 당시에 만들어 졌다.
로마시대는 예술이나 문학의 암흑시대라고들 한다. 그러나 요리에 있어서는 최고의 황금
기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요리수요자인 귀족, 정치인, 군인 등 상류층이 두터웠고,
이들 요구에 부응하는 요리장의 급증과 거대한 국력에 의한 광범위한 지역에서의 다양한 재
료공급 등 모든 요소가 충족될 수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 프랑스
프랑스 요리의 역사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빵의 역사라고 한다. 이 말이 표현하는 만큼 프랑
스는 그들의 식탁에서 빵이 빠지지 않았다.
고대 프랑스인(Gaul)들은 그들의 지역에서 밀과 보리, 수수농사를 지으며 이것들을 이용하
여 빵 만드는 것을 근본으로 살아 왔다. 물론 가을이면 조류와 사슴류, 산돼지 등을 사냥하
여 겨울양식을 준비하였다.
고대 프랑스인들의 겨우살이 준비는 빵과 함께 숲에서 잡히는 멧돼지와 가금류를 소금에 절
이고 훈연을 하는데서 요리의 기본을 다졌고 이렇게 생산된 요리 재료는 로마인들에게 수출
하는 판로도 마련하였다.
고대 프랑스 마르쉘지역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이탈이아에서 와인 만드는 비법이 전해지기도
하였지만 그들 고유의 "cervoise"즉 보리로 만든 맥주(barley beer)가 그들 사이에서 즐겨
마셨다.
고대 프랑스인들도 로마인들의 식습관에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요리방법에서 나타나게되는
데 빈스와 구운 달팽이, 호두로 속 채운 다람쥐요리 등은 중세기까지 로마에서 유행하던 것
이고 이러한 요리들을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흔히 식탁에 올렸다.
프랑스요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아탈리아로부터의 와인 전래이다. 현대에도 프랑스
와인산지로 유명한 Bordeaux(보르도)지역에 와인이 전해지면서 급속도로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7∼8세기경 지중해를 중심으로 상업이 번성하고 번성된 상업은 많은 양에 화폐가 유통되게
되었다. 이렇게 화폐가 유통되면서 부를 갖춘 중산층(Bourgois)이 하나의 계층으로 등장하
게 되었다. 이러한 중산층들은 서로간에 상업을 목적으로 또는 많은 돈을 관리하기 위한 안
전을 목적으로 여러 단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러한 단체는 서로간에 우의를 다지기 위한
연회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게 되었다. 이때 이들이 가져온 여러 가지 진귀한 물건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교환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연회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당시 대추야자와 무화과, 피스타치오, 쌀 등의 거래가 성행하였고, 이러한 재료들이 지중
해 요리를 만드는 대표적인 재료로 자리 매김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특이할 만한
것은 계피와 생강, 아니스, 클로브와 같은 향신료들이 상인들에 의해서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얼마 되지 않아 사용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머스타드(Mustard)가 발견되면서 로마인들
이 사용하던 요리 래스피에 변화가 일어나고 계속적으로 요리 래스피(Recipe)에 첨가하게
되었다. 이때가 12세기로 디존(Dijon)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요리문화에 지대
한 영향을 미치게된 중산층 과 더불어 도시에서 요리를 하는 조리사와 제빵사들의 권위가
점차 확대되고 그들의 단체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지금
도 지중해 연안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4) 루이시절
루이시절의 프랑스요리는 황금기라는 말을 자주사용 하게 된다. 이 당시에 프랑스요리는
질적으로는 물론이고 양적으로도 매우 성장하는 그야말로 요리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루
이는 자신과 귀족들을 대상으로 대단히 많은 연회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을 즐겼고 요리 중
에서도 장식을 중시하는 "요리예술(Culinary Art)"를 끝임 없이 추구 하였다. 이러한 요구를
부응하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훌륭한 요리장을 선발하고 그들로 하여금 요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육즙을 만들어내는 스톡(Stock)이 개발되고 구
워진 고기의 육즙으로 만들어내는 소스가 개발되었다. 이 때에 연회사진들에 나타나는 요리
들을 보면 마요네즈소스와 거위간으로 만든 파테(Pate'), 육즙을 데글레이징하여 만든 소비
에스 소스 등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요리들이 즐비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당시 루이14세의 통치하에서 매우 아름답게 꾸며진 요리를 선택해서 먹는 왕과 신
하들을 일컽는 "petits soupers"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타나게 되었다.
루이16세 통치 원년 요리 방법은 좀더 세분화하게 된다. 그는 연회행사의 메뉴까지도 특정
한 규칙을 정하고 좀더 자극적이 아름다움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 때에 요리를 제공하기
위한 전용식당을 만들어 12가지의 스프(Soups)와 24가지 오들볼(Hors d' oeuvres)과 20가지
의 쇠고기 요리,20가지의 양고기요리,30가지의 엽수(Games)류, 송아지(Veal), 24가지 생선과
50가지에 달하는 디져트와 장식요리를 포함하여 400여 가지에 달하는 요리를 만들도록 하였
다. 루이16세는 이것 외에도 요리와 관련된 경영과 농학에도 관심을 가져 여기에 관한 집필
을 관여하고 지원하기도 하였다.
(5) 프랑스 혁명시절
프랑스 혁명은 화려하게 발달된 프랑스 요리문화를 조금씩 조금씩 쇠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당시 어린 제과사였던 캬렘(Care'me)은 이미 그의 천부적인
소질로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이 당시에 요리는 새로운 창조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해왔던 요리기법들을 다시 재창출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과 분야만큼은 발전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특히 설탕을 이용하는 기술이 급격하게 개발되어 있었다. 프랑스 혁명시기에 특이할 만한
것은 쇠고기보다는 말고기가 유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말고기가 쇠고기보다 값이 싼
면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지만 대부분에 레스토랑들이 앞을 다투어 말고기 요리를 고객에
게 선보이고 말고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식육점이 파리를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나갔다.
이때에 드디어 요리의 코오스와 양이 줄기 시작하면서 5코오스(Five Course)로 스프
(Soup), 샐러드(Salad), 앙트레(Entree), 로스트(Roast), 후식류(Desserts) 등으로 그 수가 줄
어들게 되었고, 파테( Pate')와 단요리(Sweets)가 앙트레로 제공 되었다. 어쨋든 혁명이 가
져온 귀족들의 위축된 일면이 요리에서도 절실하게 들어 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카렘과 에스코피에시절
20세기 접어들면서 프랑스 요리는 바야흐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것은 요리
장들이 왕궁이나 귀족들의 궁전에서 제한된 역할을 하던 것을 그 영역을 확대하여 국제적인
호텔로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다. 더구나 산업혁명으로 인한 교통의 발달로 도시
는 국제화 물결이 일기 시작하였고, 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호텔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
어 실력이 있는 요리장들을 초빙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에스코피에(Escoffier), 위르뱅드
와이스(Urbain Dubois)등으로 이들은 나름대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요리관련 서적을 집필하
였다.
프랑스요리가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데는 무엇보다도 호텔체인의 발달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나고 전시 중 발달된 항공기술은 민간 차원의 관광으로 전환되면서 관
광 붐이 일어나고 그 결과 승전국인 미국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하는 체인호텔이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에스코피와 같은 유명한 요리장으로부터 요리
를 전수 받은 요리장들이 호텔 체인망을 통하여 전세계적으로 퍼져가게 되었고 아직도 세계
여러 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7) 뉴뀌지 시대
20세기 서양요리의 대표전인 변화는 "New-Cuisine"이라고 할 수 있다. 뉴-퀴진은 고전의
복잡하고 기름진 요리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방식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 이유
는 이전까지의 기름지고 단백질이 많은 요리가 성인병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사실이 밝혀지고, 조리방법이 복잡하여 경제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등 불합리성이 많았기 때
문이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여 뉴-뀌진은 자연스러운 요리의 패턴으로 변화하였고 특성으
로는 신선한 식재료를 선택하고 조리방법을 단순화하게 되었다. 뉴-뀌진 시대의 두드러진
특성은 소스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고전적인 소스는 동물성 육즙을 포함하여 유지나 버터,
치즈 등의 풍부한 영양분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고단백, 고지방의 소스는
현대인의 체질에 좋지 않는 영향을 주게되면서 새로운 소스를 만드는 방법이 요구되었다.
뉴-뀌진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소스는 과일이나 야채를 갈아서 그대로 사용하는 쿨리의 유
행과 함께 동물성 육즙을 사용하는 소스라 할지라도 보다 가볍고 단백한 맛으로 변화되었
다.
(8) 퓨전 시대
퓨전이란 의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해오던 뜻으로서 서로 다른 것이 융합되는 것을 의
미한다. 이러한 의미가 요리에 적용되면서 퓨전요리란 식 재료나 조리방법이 융합되어 새로
운 요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근대까지만 하여도 그 지역이나 국가적 요리방법을 그
대로 따르는 것이 조리법의 대원칙이었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신선한 식재료
의 이동이 보다 쉬워지고 조리방법도 매우 빠른 속도로 전달되었다. 이 결과 서로의 장점을
살린 요리가 개발되고 아울러 재료의 융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퓨전요리란 단순하게 식재료만 섞어서 엉뚱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경제적인 면을 살려 새로운 맛을 개발해 내는 것이 퓨전요리의 기본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
겠다.
(9) 밀레니엄 시대
퓨전시대를 이어서 21세기는 건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인식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요리
에있어서도 건강을 바탕으로 하는 요리가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건강은 질병이 발생한 뒤
에 치료를 하는 것보다 예방을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치료법이다. 조리의 궁극적인 목적
이 건강한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므로 밀레니엄시대의 요리는 건강과 장수에 대한 요리로 발
전해야 한다. 21세기 요리는 새로운 치료식이 대체의학으로 발전될 것으로 보인다. 요리에
대한 변화는 포만감을 느끼는 것에서 즐기는 것으로 , 만족하는 것으로, 치료의 것으로 발전
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밀레니엄시대에 요리는 처방과 조리기술의 접합을 기대해본다.
3.한국에서의 서양요리
우리 나라에 서양요리가 언제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개화기 정도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요리전래 관점으로 볼 때 어느 특정인 한 두 사람이 요리를 시식하
였다하여 전래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요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다수에게 요리를 제공
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요리가 전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양요리가 대중에게 선 본인 것은 한말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손탁"이 손탁 호텔을 경영하면서 서양식으로 꾸며진 레스토랑을 개
점하여 한말 상류사회 각계인사들에게 서양요리를 제공한 것으로 문헌에 남아 있다.
그러나 서양요리의 보급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던 것으로, 조선호텔 지배인이었던 데라
자와(寺澤)씨가 쓴 1921년 5월16일자 독립신문 기사에서 일반인들은 서양요리를 먹는 것이
매우 서툴고 어색해 하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이 실려 있어 일반인들에 대한 보급은 다소 늦
어진 것을 이 글로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최초로 서양요리 책이 발간된 것을 1930년 9월 18일 京城婦人會編으로 "션영대
죠 서양료리법(The Seuol Women's Cuub Cook Book)"이다. 판형은 국판 분량은 313페이
지며 영문과 국문의 對譯版이다. 이 책의 머리말은 1930년 4월15일자로 연희전문학교의 백
남석씨가 썼으며, 목차는 24개 항목으로 22종의 요리분류와 오븐을 사용하는법, 용어해설 등
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후 우리 나라의 서양요리는 우리 나라에 영향을 주는 열강의 힘
에 균형에 따라 그 나라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일본의 침략에 따라 일본인들의 유형에 맞는
일본식의 서양요리가 보급이 되었고 다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패망과 함께 미군의
진주로 미국식에 서양요리가 한국에 소개되었다. 한국전쟁이후 주둔미군에 의한 서양요리전
파는 더욱더 가속화되었다. 또한 당시 주한 미군으로부터 습득한 한국인요리사들이 생겨나
면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으로 경양식레스토랑이 붐을 이루게 된다. 우리가 서양요리하면
쉽게 경양식 레스토랑을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나라에서 서양요리의 발전은 경제성장의 속도처럼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서
양요리가 도입단계서부터 발전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완만하게 전개되었으나 성장기에 들면서
급속하게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여러 방면에서 설명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양대 행사를 중심으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대형호텔이 건립되었고 수요에 대한 공급의
일환으로 전문대학에 조리관련학과가 생겨나기 시작하여 현재 전국적으로 60여 개의 전문대
학과 14개의 정규대학에서 양질의 조리사를 양성하고 있다.
한편 외식업체에서는 계속적으로 요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기술과 서양요리에
전통을 갖고 있는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 미국 등에 국내 요리사들을 파견하여 기술을 습
득하게 하였다. 그 결과 국내서양요리는 질적인 면은 물론이고 양적인 면에서도 그 규모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제2절 조리사와 직업관
1. 개요
우리는 흔히 "요리는 예술이다." 또는 요리사는 "의사 중에 의사다."라고 한다. 서양요리에
서 요리를 하는 사람은 "professionals"로 간주하고 수 백년 동안 그렇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요리사가 진정 예술가이고 최고에 의사이며,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손에서
나오는 요리자체가 예술품이고 사람을 살리는 명약이고 장인정신이 깃들여져 있을 때 비로
소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훌륭한 요리장에게는 인격과 기술, 창조성, 미적
감각이 요구된다. 아무리 자신이 훌륭한 요리사라고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이나 창조적 발전
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오늘날 조리장으로서 자격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은
요리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조건들을 제시하였다.
(1)요리에 대한지식
현대에 와서 요리는 종합과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요리에 대한 안전과 보관, 이동기법은
고객과 요리사사이에 상관관계는 여러 가지 형태로 노출되어 있다.
요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의 생산단계서부터 구매, 조리, 고객에게 제공되어 끝날 때까지 그
요리에 대한 확고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 단계를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객관적
이고 합리적인 요리생산방식에 기준을 두고 직접적으로 업무를 실행하는 요리사들에게 전달
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 요리가 지니고 있는 매력과 영양, 제조원가를 관련된 사람들
에게 구체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2)조리기술
모든 요리 행위는 수많은 경험에 의해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처음에 요리사는 선
배들로부터 단순한 작업을 계속적으로 반복할 것을 강요받게되는데 이것은 기초적인 기술을
습득하여 반사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직업인으로 성장하는 훈련을 쌓게 하기 위함이다. 이렇
게 연마된 기술은 사람의 개성에 따라서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7-10년의 경력이
면 더 이상의 발전보다는 정체되거나 계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퇴보하게된다.
요리를 만들어 가는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방법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
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냐는 것이다.
오늘날 시대가 요구하는 훌륭한 요리장은 자신의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연구하여 새로
운 방식을 적용하고 객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끝임 없이 변화되는 현대의
조리기술과 지식을 시대에 걸맞도록 접목시켜야 한다.
(3)맛의 조화
우리는 흔히 소문난 식당을 찾아간다. 좋게 알려진 식당은 곧 요리의 맛이 좋다는 것을 의
미한다. 역으로 말한다면 요리에 맛이 없는 식당은 고객이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한번 온 고객이라 할 지라도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요리장은 고객에 대한 맛에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것은 고객에의 신분이나 지위 사회적인 명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이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이 관련되어 있다. 즉 후각, 촉각, 미각, 청각이 요
리를 음미할 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 와서 "요리는 예술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
게되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된다. 따라서 요리장은 고객의 모든 감각을 고려하여 요
리를 개발해야 하면 조리과정에서 고객에게 제공될 시점뿐만 아니라 요리를 먹은 후에도 고
객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창조하여야 한다.
(4)예측과 판단.
요리장의 역할은 경영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레스토랑의 형태와 주요 고객의 기호
도 재료의 구입방법에서 메뉴의 선택에까지 요리장의 결정은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한번 내린 결정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요구하게됨으로 요리장은 신중하고도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러한 판단력은 풍부한 경험과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이 계절적인 요인이 뚜렷하고 연중 비수기와 성수기의 기폭이 극심하
여 시장 변수가 다양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5)자부심
상행위를 천시하고 기술에 대한 인식이 매우 희박했던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
의 가업으로 대를 이어가기를 거부한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기술이나 돈벌이만 가지고는
생성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또한 사회적인 인식에만 의존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현장에서
일을 하는 요리사들의 태도와 행동, 개성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조리를 할 때 요리사의 단정
한 유니폼과 깨끗한 모습, 하얀 단추, 안전한 신발, 목을 감싸는 스카프, 짧은 손톱, 곱게 씌
여진 모자 등 모든 자세 하나 하나가 사람들로 하여금 요리사의 자질을 평가하도록 한다.
요리장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요소 중에는 높고 하얀 모자를 꼽을 수 있다. 이 모자의 유래
는 6세기경 수도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높이가 없고 납작한 모자를 사용했지만
19세기말에 와서 오늘날과 같이 20cm-40cm에 이르는 높은 조리모가 등장하였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직위가 낮은 요리사는 낮은 모자를 조리장은 높은 모자를 착용하였다. 오
늘날도 모자의 높이로 초보자와 요리장의 차이를 두는 곳이 많다.
이렇게 요리를 하는 사람은 모자 하나에도 자부심을 갖고 직업에 임해야 한다. 그것은 요
리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그 요리사의 성격과 인격, 자질이 담겨지게 되고 ,따라서 완성된
요리는 요리사를 보는 거울이 됨을 인식하여야 한다.
제3절 조리공간
1. 개 요
주방이 분리되어 운영된 것은 기원전5세기경으로 당시에는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는 장소로
서 활용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집의 수호신을 숭배하는 행동에서 신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
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시대 주방은 더욱더 발전된 단계로서 그 기능이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주방 내
에서 사용한 물탱크와 향신료, 씽크대, 요리준비를 위한 테이블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중세 성안에서 주방의 역할은 없어서는 안될 장소로 인식되었다. 이 당시에 중산층사람들
은 고객을 초대할 때 주방에서 주문을 받는 형식을 취하였고, 때로는 이미 조리된 음식을
여기에서 먹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방발전에 전성기를 이룬 것은 프랑스 루이시
절이다. 귀족사회에 빈번한 연회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많은 수에 요리사를 필요로 하고
넓은 공간에 조리시설이 요구되었던 까닭이다. 더구나 부에 대한 표현으로 먹기 위한 음식
보다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주방시설 역시 매우 호화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 요리특징이 데코레이션에 치중하는 면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19세기 접어들면서 주방에는 새로운 유행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바로 주방 기구의 혁신이
다. 산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주방기구에도 스테린레스, 알루미늄 등 신소재의 기구들이 등장
하게 되고 주방과 영업장의 분리가 뚜fut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특히 렌지와 오븐
(Rainge & Oven)을 중심으로 저울, 여러 가지 기능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세트(Set)형식
소스팬(Saucepan), 양념류 등이 주방에 배치된다. 이러한 기류는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을
위시하여 독일 스위스로 이어져 현대 와서도 세계대부분의 조리기구시장을 이러한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세기가 되면서 주방은 말 그대로 현대화로 접어드는데 주방기구
에 컴퓨터시스템의 부착으로 대량생산과 시간의 단축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눈
부신 발전한 분야는 화력부분과 냉장, 냉동기술의 발달이다. 따라서 식재료 생산시기와 장소
의 한계를 극복하고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표준화된 요리를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주방구조에 인테리어(Interior)기법의 도입으로 보다 쾌적하고 효
율적인 공간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주방의 개념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바꾸
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 주방의 분류
1.기능적 주방(Funtion Kitchen)
주방을 구분하는데는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는가에 따라서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 기능적
주방은 뜻 그대로 주방 기능을 최대화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분리 독립시킨 주방
을 말한다. 이러한 주방의 기능을 크게 구분하여보면 다음과 같다.
(1)더운요리주방(Hot Food Kitchen)
각 주방에서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소스와 더운 요리를 생산하여 공급하게 되는데 흔히 프
로덕션(Production)이라고도 한다. 많은 양의 소스를 한꺼번에 생산하여 각 주방으로 분배하
는 이유는 각 주방에서 개별적인 생산보다는 시간과 공간, 재료의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일
정한 맛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일정한 규모를 갖춘 레스토랑이면 대부분 이러한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2)찬요리주방(Cold Food Kitchen or Garde-manger)
찬요리와 더운 요리주방을 구분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요리에 품질을 유지하기 위함이
다. 기본적으로 더운 요리는 뜨겁게 찬요리는 차갑게 제공하여야 하는데 더운요리 주방의
경우 많은 열기구의 사용으로 같은 공간을 사용할 경우 서로간에 적정온도를 유지하는데 어
려움이 따르고 찬요리는 쉬 부패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 이외에도 찬요리 주방에서는 샐러
드(Salad)나 샌드위치(Sandwiches), 쇼피스(Showpiece) 등을 생산한다.
(3)제과 제빵주방(Bakery & Pastry Kitchen)
레스토랑에서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빵과 쿠키, 디져트를 생산하는 곳으로 쵸코랫
(Chocolate), 과일절임등의 후식과 관련 된 요리를 이곳에서 담당하고 있다. 특히 제빵주방
은 매일 신선한 빵을 고객에게 공급하기 위하여 24시간 계속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며
다음날 판매할 빵 생산은 야간근무자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4)연회주방(Banquet Kitchen)
연회행사를 중심적으로 하는 주방이다. 따라서 많은 고객을 짧은 시간 내에 소화해 내야하
는 특성상 조리방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
온기(Warmmer)나 증기찜기(Steamer), 로스팅오븐(Roasting Oven)등 기계류를 다량 보유해
야한다. 또한 대량 서비스를 하기 위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연회주방의 특성중 하
나이다.
(5)육가공 주방(Butcher Kitchen)
육가공 주방 역시 다른 업장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각업장에서 필요로 하는 육류
및 생선을 크기별로 준비하여 준다. 여러단위업장에서 필요로 하는 육류 및 생선을 생산하
다보면 부분별로 사용이 적당하지 않은 것은 따로 모아 소새지(Sausage)나 특별한 모양을
요구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게 되는데 이런 육류에 부산물들이 근래에 와서는 새롭게 각광받
는 요리로 탄생하기도하였다.
육가공 주방은 전문적으로 분리되기 이전에는 가드망저와 같이 차가운 요리를 담당하고 육
류를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하였으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기능분화와 함께 새로운 하나의 주
방으로 발전되어 왔다.
(6)기물세척주방(Steward)
현대에 와서 기물관리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요리에 필요한 기물이 그만
큼 다양해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주방을
제외하고 대부분 조리분야와 구분 없이 기물관리가 운영되고 있으나 시설이 현대화되고 조
직이 비대해지면 기능을 분리하여 운영하는 것이 보다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다.
어쨋든 기물세척 주방의 기능은 각 단위 주방은 물론이고 모든 주방의 기구 및 기물의 세
척과 공급 품질유지를 담당하고 있다.
2.영업주방(Restaurant, Short-order Kitchen)
영업주방은 주로 고유요리의 이름이 들어 간 한식, 중식, 일식, 카페 등의 영업장과 연결되
어 곧바로 고객의 요구에 의해 요리가 생산되는 주방을 말한다.
대부분의 영업주방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고 있으므로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요리보다는
단시간 내에 조리 가능한 메뉴를 주로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요리들이 품격이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나 유럽에서는 예약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어 예약당시 고객이 원하는 메뉴까지도 요
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을 조금은 극복할 수 있으나 아직 예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우리 나라의 경우 철저한 사전준비(Misse en place)로 고객에게 제공되는 시간의 낭비를 줄
일 수 있다. 품격이 있는 레스토랑일수록 고객이 요리에 풍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시간
을 배려하여 제공되는 메뉴의 시간간격을 적당하게 두는 것이 서비스의 기술이다.
제1절 서양요리역사
1. 개 요
일반적으로 양식요리라 함은 세계를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하였을 때 구미를 비롯하여 유
럽을 포함하는 나라들의 요리를 말하며, 서양요리라고 통칭한다. 물론 구미와 유럽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이모든 나라들의 요리가 우리 나라에서 서양요리로서 알려진 것은 아니다.
요리라고 하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를 포함하고 있고 그 지역 국가들의 국력이나, 지리적인
여건, 풍습, 민족의 분포도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하여 번성 발전되기도 하고 때로는 퇴색되기
도 한다.
따라서 서양요리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발전이 비교적 빨랐던 그리스, 이태리, 블란서
를 중심으로 발전된 요리를 일컬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후 급속한 경제력과 군사대국인 미국
의 세력에 의하여 전세계에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으며 미국의 상업주의적인 문화가 가미되
어 변형된 부분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동양요리가 농경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서양요리는 목축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농경문화에 바탕을 둔 요리는 가공단계가 단순하고 요리의 성격이 섬세하다. 흔
히들 젓가락 문화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서양요리는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니나 동양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목축 즉 육류에 기반을 둔 요리가 많
다.
이렇게 목축에서 생성된 요리는 가공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부패를 가져오기 때문에 여러
공정에 걸쳐 가공함으로써 다양한 부산물이 생겨나고 이것들이 다시 새로운 요리에 재료로
제공되기도 한다.
서양요리와 동양요리가 어느 쪽이 더 과학적이냐는 질문은 별로 의미가 없다 .이두분야는
서로 개성을 가지고 있고 우위를 가릴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문화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요리의 발전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설명될 수 있지만 다음
과 같은 몇 가지 공통된 요인에 의하여 발전되어 왔다.
(1) 불의 발견
불의 발견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무한대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조리에
있어서는 날것으로 먹던 것이 익혀서 먹는 기술확장을 가져 왔다. 불의 발견을 조리에 혁명
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요리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2)잉여생산
신석기 시대의 농업기술발달은 인간생계를 위한 농업생산을 앞지르게 되었다. 특히 나일 삼
각주를 중심으로 한 비옥한 토지는 부의 축척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때 인간들은 잉여농산
물을 화폐가치로 이용하기도 하고 배를 불리는 음식의 차원을 떠나서 즐기기 위한 요리의
차원으로 만들어 나간다.
(3)자연극복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에 대한 극복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종족의 보존, 새로운 세계대한 도전에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혹독한 겨울과 전쟁, 경조사 등을 대비하여 음식을 저장하게되는데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마리네이드(절임법), 스모크(훈연법), 드라이(말림방법)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현대
에 와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4)부와 권력의 상징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고 무리들 중에서는 언제나 그 무리에서 질서가
요구된다. 질서는 곧 권력을 낳게 되면서 권력은 다시 부의 상징으로 발전되어 왔다. 권력과
부에 의하여 요리가 발전된 것은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서 프랑스로 이어진 요리에 역사이기
도 하다.
2. 서양요리의 역사
서양요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나 유럽전역에 존재하고 있는 동굴벽화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되고 있는 요리
에 대한 흔적은 고대 이전에 인간들은 이미 대단히 발전된 요리를 즐기고 있었던 것으로 추
정된다.
이집트 피라미드에서는 와인의 생성과정이나 빵을 만드는 과정이 현대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기술들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다.
(1)고대그리스
그리스인들은 하루에 네끼의 식사를 하며 이들이 즐겨먹은 것은 돼지고기와 양고기에 오래
거노와 큐민 같은 향이 독특한 허브를 곁들어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주위에서
생산되는 올리브 오일과, 꿀, 산양의 젓, 호두와 같은 넛을 가미한 케익이 이미 이 당시에
식탁에 올려졌다.
그리스는 건조한 기후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도 잘자라는 양배추나 렌틸과 같은 야채를 식이
요법으로 사용하였고, 해안가 주변에서 자생하는 휀넬이나 마쉬맬로우를 병을 퇴치하는 치
료요법과 생활요법을 병행하여 이용했다.
그리스 역시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관계로 참치와 가자미, 문어, 도미 등 풍부한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많고 이것들을 저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금에 절이는 염장법을 흔히 사용하
고 있었다.
육류로는 사육되는 돼지나 양 외에도 야생에 서식하는 여우, 사슴, 토끼, 심지어는 고양이
까지도 식용으로 사용하였다. 고대그리스인들이 즐겨 마신 음료로는 "하이드로멜
"(Hydromel)이라는 발효되지 않은 벌꿀을 가미한 물로서 언제어디서나 마실 수 있도록 물
통에 넣어 다니곤 하였다. 그렇지만B.C 2000경서부터는 이것이 와인으로 대체되었다. 이 당
시에 와인은 대단히 강한 것으로 항상 물을 희석하여 마시고 때에 따라서는 바닷물도 사용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가 이처럼 요리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지형적으로 온화한 기후와 귀족사회에 바
탕을 둔 노예제도가 성립되어 있었으므로 요리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분업이 이루어질 수 있
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로마시대
로마시대야말로 서양요리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로마의 거대한 국력에 권력을 바탕으로
하는 부의 발전은 상류층의 요리에 대한 관심을 극적으로 불러일으켰다. 로마시대에는 요리
에서 필수적 3요소인 미식가와 요리사, 풍부한 재료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 결과 현대에 와
서도 로마시대의 요리법이 전수되어 이태리는 물론이고 프랑스 등 유럽곳곳에서 로마시대
래스피를 바탕으로 하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남아 성업을 이루고 있다.
특히 로마시대에 요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은 그리스의 풍부한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로마인들의 식습관에 덧붙여 중국의 실크로드를 통한 아시아인들의 왕래로 새로운 요리의
기술과 방법, 재료가 가미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로마시대 만찬장을 묘사한 그림에서 중국
식 광뚱지방 요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미 어느 정도 중국식 요리가 미식가들에 의해서
즐겨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당시 연회행사 그림에는 요리와 소스 등 모든 음식들이
먹기 위함보다는 사치스럽고 낭비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로마의 초기 정복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듭되는 연화행사를 치
렀었고 당시에 풍부했던 낙타나 산돼지 등을 통째 구어 많은 사람들이 즐기었다.
초기로마제국의 요리는 육류 외에도 보리와 콩가루를 이용한 죽 종류가 유행하였고, 요리에
예술적인 면을 강조하는 제빵 기술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다만 이 당시에
구하기 힘들었던 재료로서는 과일을 꼽을 수 있는데 사과는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로
마로 넘어 왔지만 살구와 복숭아는 아르메니와와 페르시아에서 수입하는 관계로 가격이 매
우 비싸서 일반인
들은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부유층들의 부에 대한 표현은 자신들의 땅에 체리나무
를 심어서 과시하기도 했다. 다만 무화과와 대추는 아프리카에서 들어와 제법 많은 양이 생
산되고 있었다.
점차 로마의 국력이 강해지고 국가로서의 기반이 견고해지면서 아시아와 주위 여러 나라 정
복에 나섰던 군인들의 귀환으로 더욱 새롭고 다양한 요리들이 로마에 소개 된다. 이때에 옥
수수가 이집트로부터 들어오고, 올리브 오일은 스페인, 햄은 고을(Gaul:고대 프랑스사람들),
향신료는 아시아로부터 들어와 진정으로 요리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부유한 로마사람들은 말 그대로 대식가들이었다. 이들은 계속적으로 요리를 즐기기 위해서
더 많은 요리재료와 시설들, 요리사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거대한 연회행사를 치르기 위해서
는 요리에 대한 기본지식과 준비방법, 요리시간들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표시해야하고 요리
사들 사이에서도 정보가 원활하게 교환이 이루어져야 했다. 따라서 요리에 대한 래스피가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되었다.
로마시대 요리의 특징은 소스에 많은 양에 향신료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후추와
고추,민트,잣,건포도,당근,꿀,오일,식초,와인,머스크를 사용하여 시고 달콤한 양념을 주로 하였
다. 다만 설탕은 사용하지 않고 꿀과 과일시럽으로 하여금 단맛을 내는 것이 특이하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치즈와 와인들이 만들어 졌는데 대표적으로 발포성 와인인
passum(straw wine),단맛이 강한 mulsum(honeyed wine),물에 식초를 희석한
posca(vinegar diluted with water)기 있다. 이외에도 장미, 과일향을 곁들이 다양한 와인들
이 이 당시에 만들어 졌다.
로마시대는 예술이나 문학의 암흑시대라고들 한다. 그러나 요리에 있어서는 최고의 황금
기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요리수요자인 귀족, 정치인, 군인 등 상류층이 두터웠고,
이들 요구에 부응하는 요리장의 급증과 거대한 국력에 의한 광범위한 지역에서의 다양한 재
료공급 등 모든 요소가 충족될 수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 프랑스
프랑스 요리의 역사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빵의 역사라고 한다. 이 말이 표현하는 만큼 프랑
스는 그들의 식탁에서 빵이 빠지지 않았다.
고대 프랑스인(Gaul)들은 그들의 지역에서 밀과 보리, 수수농사를 지으며 이것들을 이용하
여 빵 만드는 것을 근본으로 살아 왔다. 물론 가을이면 조류와 사슴류, 산돼지 등을 사냥하
여 겨울양식을 준비하였다.
고대 프랑스인들의 겨우살이 준비는 빵과 함께 숲에서 잡히는 멧돼지와 가금류를 소금에 절
이고 훈연을 하는데서 요리의 기본을 다졌고 이렇게 생산된 요리 재료는 로마인들에게 수출
하는 판로도 마련하였다.
고대 프랑스 마르쉘지역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이탈이아에서 와인 만드는 비법이 전해지기도
하였지만 그들 고유의 "cervoise"즉 보리로 만든 맥주(barley beer)가 그들 사이에서 즐겨
마셨다.
고대 프랑스인들도 로마인들의 식습관에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요리방법에서 나타나게되는
데 빈스와 구운 달팽이, 호두로 속 채운 다람쥐요리 등은 중세기까지 로마에서 유행하던 것
이고 이러한 요리들을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흔히 식탁에 올렸다.
프랑스요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아탈리아로부터의 와인 전래이다. 현대에도 프랑스
와인산지로 유명한 Bordeaux(보르도)지역에 와인이 전해지면서 급속도로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7∼8세기경 지중해를 중심으로 상업이 번성하고 번성된 상업은 많은 양에 화폐가 유통되게
되었다. 이렇게 화폐가 유통되면서 부를 갖춘 중산층(Bourgois)이 하나의 계층으로 등장하
게 되었다. 이러한 중산층들은 서로간에 상업을 목적으로 또는 많은 돈을 관리하기 위한 안
전을 목적으로 여러 단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러한 단체는 서로간에 우의를 다지기 위한
연회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게 되었다. 이때 이들이 가져온 여러 가지 진귀한 물건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교환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연회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당시 대추야자와 무화과, 피스타치오, 쌀 등의 거래가 성행하였고, 이러한 재료들이 지중
해 요리를 만드는 대표적인 재료로 자리 매김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특이할 만한
것은 계피와 생강, 아니스, 클로브와 같은 향신료들이 상인들에 의해서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얼마 되지 않아 사용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머스타드(Mustard)가 발견되면서 로마인들
이 사용하던 요리 래스피에 변화가 일어나고 계속적으로 요리 래스피(Recipe)에 첨가하게
되었다. 이때가 12세기로 디존(Dijon)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요리문화에 지대
한 영향을 미치게된 중산층 과 더불어 도시에서 요리를 하는 조리사와 제빵사들의 권위가
점차 확대되고 그들의 단체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지금
도 지중해 연안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4) 루이시절
루이시절의 프랑스요리는 황금기라는 말을 자주사용 하게 된다. 이 당시에 프랑스요리는
질적으로는 물론이고 양적으로도 매우 성장하는 그야말로 요리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루
이는 자신과 귀족들을 대상으로 대단히 많은 연회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을 즐겼고 요리 중
에서도 장식을 중시하는 "요리예술(Culinary Art)"를 끝임 없이 추구 하였다. 이러한 요구를
부응하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훌륭한 요리장을 선발하고 그들로 하여금 요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육즙을 만들어내는 스톡(Stock)이 개발되고 구
워진 고기의 육즙으로 만들어내는 소스가 개발되었다. 이 때에 연회사진들에 나타나는 요리
들을 보면 마요네즈소스와 거위간으로 만든 파테(Pate'), 육즙을 데글레이징하여 만든 소비
에스 소스 등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요리들이 즐비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당시 루이14세의 통치하에서 매우 아름답게 꾸며진 요리를 선택해서 먹는 왕과 신
하들을 일컽는 "petits soupers"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타나게 되었다.
루이16세 통치 원년 요리 방법은 좀더 세분화하게 된다. 그는 연회행사의 메뉴까지도 특정
한 규칙을 정하고 좀더 자극적이 아름다움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 때에 요리를 제공하기
위한 전용식당을 만들어 12가지의 스프(Soups)와 24가지 오들볼(Hors d' oeuvres)과 20가지
의 쇠고기 요리,20가지의 양고기요리,30가지의 엽수(Games)류, 송아지(Veal), 24가지 생선과
50가지에 달하는 디져트와 장식요리를 포함하여 400여 가지에 달하는 요리를 만들도록 하였
다. 루이16세는 이것 외에도 요리와 관련된 경영과 농학에도 관심을 가져 여기에 관한 집필
을 관여하고 지원하기도 하였다.
(5) 프랑스 혁명시절
프랑스 혁명은 화려하게 발달된 프랑스 요리문화를 조금씩 조금씩 쇠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당시 어린 제과사였던 캬렘(Care'me)은 이미 그의 천부적인
소질로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이 당시에 요리는 새로운 창조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해왔던 요리기법들을 다시 재창출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과 분야만큼은 발전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특히 설탕을 이용하는 기술이 급격하게 개발되어 있었다. 프랑스 혁명시기에 특이할 만한
것은 쇠고기보다는 말고기가 유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말고기가 쇠고기보다 값이 싼
면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지만 대부분에 레스토랑들이 앞을 다투어 말고기 요리를 고객에
게 선보이고 말고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식육점이 파리를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나갔다.
이때에 드디어 요리의 코오스와 양이 줄기 시작하면서 5코오스(Five Course)로 스프
(Soup), 샐러드(Salad), 앙트레(Entree), 로스트(Roast), 후식류(Desserts) 등으로 그 수가 줄
어들게 되었고, 파테( Pate')와 단요리(Sweets)가 앙트레로 제공 되었다. 어쨋든 혁명이 가
져온 귀족들의 위축된 일면이 요리에서도 절실하게 들어 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카렘과 에스코피에시절
20세기 접어들면서 프랑스 요리는 바야흐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것은 요리
장들이 왕궁이나 귀족들의 궁전에서 제한된 역할을 하던 것을 그 영역을 확대하여 국제적인
호텔로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다. 더구나 산업혁명으로 인한 교통의 발달로 도시
는 국제화 물결이 일기 시작하였고, 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호텔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
어 실력이 있는 요리장들을 초빙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에스코피에(Escoffier), 위르뱅드
와이스(Urbain Dubois)등으로 이들은 나름대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요리관련 서적을 집필하
였다.
프랑스요리가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데는 무엇보다도 호텔체인의 발달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나고 전시 중 발달된 항공기술은 민간 차원의 관광으로 전환되면서 관
광 붐이 일어나고 그 결과 승전국인 미국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하는 체인호텔이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에스코피와 같은 유명한 요리장으로부터 요리
를 전수 받은 요리장들이 호텔 체인망을 통하여 전세계적으로 퍼져가게 되었고 아직도 세계
여러 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7) 뉴뀌지 시대
20세기 서양요리의 대표전인 변화는 "New-Cuisine"이라고 할 수 있다. 뉴-퀴진은 고전의
복잡하고 기름진 요리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방식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 이유
는 이전까지의 기름지고 단백질이 많은 요리가 성인병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사실이 밝혀지고, 조리방법이 복잡하여 경제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등 불합리성이 많았기 때
문이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여 뉴-뀌진은 자연스러운 요리의 패턴으로 변화하였고 특성으
로는 신선한 식재료를 선택하고 조리방법을 단순화하게 되었다. 뉴-뀌진 시대의 두드러진
특성은 소스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고전적인 소스는 동물성 육즙을 포함하여 유지나 버터,
치즈 등의 풍부한 영양분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고단백, 고지방의 소스는
현대인의 체질에 좋지 않는 영향을 주게되면서 새로운 소스를 만드는 방법이 요구되었다.
뉴-뀌진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소스는 과일이나 야채를 갈아서 그대로 사용하는 쿨리의 유
행과 함께 동물성 육즙을 사용하는 소스라 할지라도 보다 가볍고 단백한 맛으로 변화되었
다.
(8) 퓨전 시대
퓨전이란 의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해오던 뜻으로서 서로 다른 것이 융합되는 것을 의
미한다. 이러한 의미가 요리에 적용되면서 퓨전요리란 식 재료나 조리방법이 융합되어 새로
운 요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근대까지만 하여도 그 지역이나 국가적 요리방법을 그
대로 따르는 것이 조리법의 대원칙이었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신선한 식재료
의 이동이 보다 쉬워지고 조리방법도 매우 빠른 속도로 전달되었다. 이 결과 서로의 장점을
살린 요리가 개발되고 아울러 재료의 융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퓨전요리란 단순하게 식재료만 섞어서 엉뚱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경제적인 면을 살려 새로운 맛을 개발해 내는 것이 퓨전요리의 기본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
겠다.
(9) 밀레니엄 시대
퓨전시대를 이어서 21세기는 건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인식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요리
에있어서도 건강을 바탕으로 하는 요리가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건강은 질병이 발생한 뒤
에 치료를 하는 것보다 예방을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치료법이다. 조리의 궁극적인 목적
이 건강한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므로 밀레니엄시대의 요리는 건강과 장수에 대한 요리로 발
전해야 한다. 21세기 요리는 새로운 치료식이 대체의학으로 발전될 것으로 보인다. 요리에
대한 변화는 포만감을 느끼는 것에서 즐기는 것으로 , 만족하는 것으로, 치료의 것으로 발전
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밀레니엄시대에 요리는 처방과 조리기술의 접합을 기대해본다.
3.한국에서의 서양요리
우리 나라에 서양요리가 언제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개화기 정도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요리전래 관점으로 볼 때 어느 특정인 한 두 사람이 요리를 시식하
였다하여 전래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요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다수에게 요리를 제공
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요리가 전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양요리가 대중에게 선 본인 것은 한말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손탁"이 손탁 호텔을 경영하면서 서양식으로 꾸며진 레스토랑을 개
점하여 한말 상류사회 각계인사들에게 서양요리를 제공한 것으로 문헌에 남아 있다.
그러나 서양요리의 보급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던 것으로, 조선호텔 지배인이었던 데라
자와(寺澤)씨가 쓴 1921년 5월16일자 독립신문 기사에서 일반인들은 서양요리를 먹는 것이
매우 서툴고 어색해 하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이 실려 있어 일반인들에 대한 보급은 다소 늦
어진 것을 이 글로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최초로 서양요리 책이 발간된 것을 1930년 9월 18일 京城婦人會編으로 "션영대
죠 서양료리법(The Seuol Women's Cuub Cook Book)"이다. 판형은 국판 분량은 313페이
지며 영문과 국문의 對譯版이다. 이 책의 머리말은 1930년 4월15일자로 연희전문학교의 백
남석씨가 썼으며, 목차는 24개 항목으로 22종의 요리분류와 오븐을 사용하는법, 용어해설 등
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후 우리 나라의 서양요리는 우리 나라에 영향을 주는 열강의 힘
에 균형에 따라 그 나라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일본의 침략에 따라 일본인들의 유형에 맞는
일본식의 서양요리가 보급이 되었고 다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패망과 함께 미군의
진주로 미국식에 서양요리가 한국에 소개되었다. 한국전쟁이후 주둔미군에 의한 서양요리전
파는 더욱더 가속화되었다. 또한 당시 주한 미군으로부터 습득한 한국인요리사들이 생겨나
면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으로 경양식레스토랑이 붐을 이루게 된다. 우리가 서양요리하면
쉽게 경양식 레스토랑을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나라에서 서양요리의 발전은 경제성장의 속도처럼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서
양요리가 도입단계서부터 발전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완만하게 전개되었으나 성장기에 들면서
급속하게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여러 방면에서 설명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양대 행사를 중심으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대형호텔이 건립되었고 수요에 대한 공급의
일환으로 전문대학에 조리관련학과가 생겨나기 시작하여 현재 전국적으로 60여 개의 전문대
학과 14개의 정규대학에서 양질의 조리사를 양성하고 있다.
한편 외식업체에서는 계속적으로 요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기술과 서양요리에
전통을 갖고 있는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 미국 등에 국내 요리사들을 파견하여 기술을 습
득하게 하였다. 그 결과 국내서양요리는 질적인 면은 물론이고 양적인 면에서도 그 규모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제2절 조리사와 직업관
1. 개요
우리는 흔히 "요리는 예술이다." 또는 요리사는 "의사 중에 의사다."라고 한다. 서양요리에
서 요리를 하는 사람은 "professionals"로 간주하고 수 백년 동안 그렇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요리사가 진정 예술가이고 최고에 의사이며,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손에서
나오는 요리자체가 예술품이고 사람을 살리는 명약이고 장인정신이 깃들여져 있을 때 비로
소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훌륭한 요리장에게는 인격과 기술, 창조성, 미적
감각이 요구된다. 아무리 자신이 훌륭한 요리사라고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이나 창조적 발전
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오늘날 조리장으로서 자격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은
요리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조건들을 제시하였다.
(1)요리에 대한지식
현대에 와서 요리는 종합과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요리에 대한 안전과 보관, 이동기법은
고객과 요리사사이에 상관관계는 여러 가지 형태로 노출되어 있다.
요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의 생산단계서부터 구매, 조리, 고객에게 제공되어 끝날 때까지 그
요리에 대한 확고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 단계를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객관적
이고 합리적인 요리생산방식에 기준을 두고 직접적으로 업무를 실행하는 요리사들에게 전달
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 요리가 지니고 있는 매력과 영양, 제조원가를 관련된 사람들
에게 구체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2)조리기술
모든 요리 행위는 수많은 경험에 의해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처음에 요리사는 선
배들로부터 단순한 작업을 계속적으로 반복할 것을 강요받게되는데 이것은 기초적인 기술을
습득하여 반사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직업인으로 성장하는 훈련을 쌓게 하기 위함이다. 이렇
게 연마된 기술은 사람의 개성에 따라서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7-10년의 경력이
면 더 이상의 발전보다는 정체되거나 계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퇴보하게된다.
요리를 만들어 가는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방법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
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냐는 것이다.
오늘날 시대가 요구하는 훌륭한 요리장은 자신의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연구하여 새로
운 방식을 적용하고 객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끝임 없이 변화되는 현대의
조리기술과 지식을 시대에 걸맞도록 접목시켜야 한다.
(3)맛의 조화
우리는 흔히 소문난 식당을 찾아간다. 좋게 알려진 식당은 곧 요리의 맛이 좋다는 것을 의
미한다. 역으로 말한다면 요리에 맛이 없는 식당은 고객이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한번 온 고객이라 할 지라도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요리장은 고객에 대한 맛에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것은 고객에의 신분이나 지위 사회적인 명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이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이 관련되어 있다. 즉 후각, 촉각, 미각, 청각이 요
리를 음미할 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 와서 "요리는 예술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
게되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된다. 따라서 요리장은 고객의 모든 감각을 고려하여 요
리를 개발해야 하면 조리과정에서 고객에게 제공될 시점뿐만 아니라 요리를 먹은 후에도 고
객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창조하여야 한다.
(4)예측과 판단.
요리장의 역할은 경영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레스토랑의 형태와 주요 고객의 기호
도 재료의 구입방법에서 메뉴의 선택에까지 요리장의 결정은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한번 내린 결정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요구하게됨으로 요리장은 신중하고도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러한 판단력은 풍부한 경험과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이 계절적인 요인이 뚜렷하고 연중 비수기와 성수기의 기폭이 극심하
여 시장 변수가 다양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5)자부심
상행위를 천시하고 기술에 대한 인식이 매우 희박했던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
의 가업으로 대를 이어가기를 거부한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기술이나 돈벌이만 가지고는
생성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또한 사회적인 인식에만 의존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현장에서
일을 하는 요리사들의 태도와 행동, 개성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조리를 할 때 요리사의 단정
한 유니폼과 깨끗한 모습, 하얀 단추, 안전한 신발, 목을 감싸는 스카프, 짧은 손톱, 곱게 씌
여진 모자 등 모든 자세 하나 하나가 사람들로 하여금 요리사의 자질을 평가하도록 한다.
요리장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요소 중에는 높고 하얀 모자를 꼽을 수 있다. 이 모자의 유래
는 6세기경 수도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높이가 없고 납작한 모자를 사용했지만
19세기말에 와서 오늘날과 같이 20cm-40cm에 이르는 높은 조리모가 등장하였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직위가 낮은 요리사는 낮은 모자를 조리장은 높은 모자를 착용하였다. 오
늘날도 모자의 높이로 초보자와 요리장의 차이를 두는 곳이 많다.
이렇게 요리를 하는 사람은 모자 하나에도 자부심을 갖고 직업에 임해야 한다. 그것은 요
리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그 요리사의 성격과 인격, 자질이 담겨지게 되고 ,따라서 완성된
요리는 요리사를 보는 거울이 됨을 인식하여야 한다.
제3절 조리공간
1. 개 요
주방이 분리되어 운영된 것은 기원전5세기경으로 당시에는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는 장소로
서 활용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집의 수호신을 숭배하는 행동에서 신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
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시대 주방은 더욱더 발전된 단계로서 그 기능이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주방 내
에서 사용한 물탱크와 향신료, 씽크대, 요리준비를 위한 테이블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중세 성안에서 주방의 역할은 없어서는 안될 장소로 인식되었다. 이 당시에 중산층사람들
은 고객을 초대할 때 주방에서 주문을 받는 형식을 취하였고, 때로는 이미 조리된 음식을
여기에서 먹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방발전에 전성기를 이룬 것은 프랑스 루이시
절이다. 귀족사회에 빈번한 연회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많은 수에 요리사를 필요로 하고
넓은 공간에 조리시설이 요구되었던 까닭이다. 더구나 부에 대한 표현으로 먹기 위한 음식
보다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주방시설 역시 매우 호화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 요리특징이 데코레이션에 치중하는 면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19세기 접어들면서 주방에는 새로운 유행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바로 주방 기구의 혁신이
다. 산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주방기구에도 스테린레스, 알루미늄 등 신소재의 기구들이 등장
하게 되고 주방과 영업장의 분리가 뚜fut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특히 렌지와 오븐
(Rainge & Oven)을 중심으로 저울, 여러 가지 기능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세트(Set)형식
소스팬(Saucepan), 양념류 등이 주방에 배치된다. 이러한 기류는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을
위시하여 독일 스위스로 이어져 현대 와서도 세계대부분의 조리기구시장을 이러한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세기가 되면서 주방은 말 그대로 현대화로 접어드는데 주방기구
에 컴퓨터시스템의 부착으로 대량생산과 시간의 단축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눈
부신 발전한 분야는 화력부분과 냉장, 냉동기술의 발달이다. 따라서 식재료 생산시기와 장소
의 한계를 극복하고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표준화된 요리를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주방구조에 인테리어(Interior)기법의 도입으로 보다 쾌적하고 효
율적인 공간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주방의 개념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바꾸
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 주방의 분류
1.기능적 주방(Funtion Kitchen)
주방을 구분하는데는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는가에 따라서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 기능적
주방은 뜻 그대로 주방 기능을 최대화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분리 독립시킨 주방
을 말한다. 이러한 주방의 기능을 크게 구분하여보면 다음과 같다.
(1)더운요리주방(Hot Food Kitchen)
각 주방에서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소스와 더운 요리를 생산하여 공급하게 되는데 흔히 프
로덕션(Production)이라고도 한다. 많은 양의 소스를 한꺼번에 생산하여 각 주방으로 분배하
는 이유는 각 주방에서 개별적인 생산보다는 시간과 공간, 재료의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일
정한 맛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일정한 규모를 갖춘 레스토랑이면 대부분 이러한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2)찬요리주방(Cold Food Kitchen or Garde-manger)
찬요리와 더운 요리주방을 구분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요리에 품질을 유지하기 위함이
다. 기본적으로 더운 요리는 뜨겁게 찬요리는 차갑게 제공하여야 하는데 더운요리 주방의
경우 많은 열기구의 사용으로 같은 공간을 사용할 경우 서로간에 적정온도를 유지하는데 어
려움이 따르고 찬요리는 쉬 부패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 이외에도 찬요리 주방에서는 샐러
드(Salad)나 샌드위치(Sandwiches), 쇼피스(Showpiece) 등을 생산한다.
(3)제과 제빵주방(Bakery & Pastry Kitchen)
레스토랑에서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빵과 쿠키, 디져트를 생산하는 곳으로 쵸코랫
(Chocolate), 과일절임등의 후식과 관련 된 요리를 이곳에서 담당하고 있다. 특히 제빵주방
은 매일 신선한 빵을 고객에게 공급하기 위하여 24시간 계속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며
다음날 판매할 빵 생산은 야간근무자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4)연회주방(Banquet Kitchen)
연회행사를 중심적으로 하는 주방이다. 따라서 많은 고객을 짧은 시간 내에 소화해 내야하
는 특성상 조리방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
온기(Warmmer)나 증기찜기(Steamer), 로스팅오븐(Roasting Oven)등 기계류를 다량 보유해
야한다. 또한 대량 서비스를 하기 위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연회주방의 특성중 하
나이다.
(5)육가공 주방(Butcher Kitchen)
육가공 주방 역시 다른 업장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각업장에서 필요로 하는 육류
및 생선을 크기별로 준비하여 준다. 여러단위업장에서 필요로 하는 육류 및 생선을 생산하
다보면 부분별로 사용이 적당하지 않은 것은 따로 모아 소새지(Sausage)나 특별한 모양을
요구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게 되는데 이런 육류에 부산물들이 근래에 와서는 새롭게 각광받
는 요리로 탄생하기도하였다.
육가공 주방은 전문적으로 분리되기 이전에는 가드망저와 같이 차가운 요리를 담당하고 육
류를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하였으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기능분화와 함께 새로운 하나의 주
방으로 발전되어 왔다.
(6)기물세척주방(Steward)
현대에 와서 기물관리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요리에 필요한 기물이 그만
큼 다양해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주방을
제외하고 대부분 조리분야와 구분 없이 기물관리가 운영되고 있으나 시설이 현대화되고 조
직이 비대해지면 기능을 분리하여 운영하는 것이 보다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다.
어쨋든 기물세척 주방의 기능은 각 단위 주방은 물론이고 모든 주방의 기구 및 기물의 세
척과 공급 품질유지를 담당하고 있다.
2.영업주방(Restaurant, Short-order Kitchen)
영업주방은 주로 고유요리의 이름이 들어 간 한식, 중식, 일식, 카페 등의 영업장과 연결되
어 곧바로 고객의 요구에 의해 요리가 생산되는 주방을 말한다.
대부분의 영업주방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고 있으므로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요리보다는
단시간 내에 조리 가능한 메뉴를 주로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요리들이 품격이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나 유럽에서는 예약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어 예약당시 고객이 원하는 메뉴까지도 요
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을 조금은 극복할 수 있으나 아직 예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우리 나라의 경우 철저한 사전준비(Misse en place)로 고객에게 제공되는 시간의 낭비를 줄
일 수 있다. 품격이 있는 레스토랑일수록 고객이 요리에 풍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시간
을 배려하여 제공되는 메뉴의 시간간격을 적당하게 두는 것이 서비스의 기술이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