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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첫 줄이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다」 (2026.6.7.)

작성자Happy♡†OMH†♡Love|작성시간26.06.07|조회수14 목록 댓글 0

첫 줄이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다

 

세상 안쪽이 다 만져지는 시를 쓰고 싶다

 

가보지 않은 마을에도 금잔화는 피고

 

안 보이는 길 끝에도 어제까지 없던 집이 새로 지어진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람의 말이지 풀들의 말이 아니다

 

말 없이도 사랑하는 것이 세상에는 있다

 

미리 가난을 준비해 둔 풀잎이

 

저리도 행복해 보이는 것은

 

그들이 불행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열매 떨어지는 소리는

 

어떤 악기로도 흉내낼 수 없다

 

그 소리에 지구가 정숙해진다

 

계원필경집 첫 줄은 무슨 소리로 시작하는가

 

화엄경소 제 사십회향품 첫 줄자는 무슨 글자인가

 

생각의 강물이 출렁거리는 동안

 

정림사지 오층석탑에는 어제 없던 이끼가 하나 더 낀다

 

첫 줄이 아름다운 시를 써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봄은 한 해의 첫 행

 

아침은 하루의 첫 줄이라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고

 

난생 처음 시를 읽는 사람

 

이 세상에 시라는 것이 있음을 처음 안 사람

 

그 한 사람이 읽어도 좋을 시를

 

나는 생애에 꼭 한 편만이라도

 

첫 줄이 아름다운 말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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