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이 본 게시판 글번호 2번 (2006-6-08 일자) 에
'제' 와 '재' 에 대하여 글 한편 올린바 있습니다.
그러나 별 관심을 끌지 못했는 지....
최근 받은 이 카페 전체메일에 우제 로 쓴 것을 보고 이 글을 쓰는 바이지만,
사실 대부분이... 심지어 우재공파 후손 들 조차 우제 로 쓰고 있습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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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발음상 재와 제가 거의 구별이 가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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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도 같은 글자를 용례에 따라 '제 '로도 , '재'로도 읽었으며한자의 한글 표기이니 어느쪽이던 사실 큰 문제는아니나
그러나 '우재' 공은 고유명사 인데 자꾸 우제 라 하니 답답할 뿐더러,
우재공파 후손들 경우 민망하기도 하니,이 글 읽고 난 뒤에는
'우재' 로 쓰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파의 경우도 호(號)에 재(齋)짜가 들어가는 조상님이 많을 터인데
호에 들어 갈 경우 재(齋)로 읽는 것이 맞습니다.
아... 기왕 이야기 나왔으니 한 마디 더 붙이면
얼마전 우재(愚齋)공 호에 왜 하필 어리석을 우(愚)를 붙였느냐
하는 가벼운 질문이 꼬리글에 붙었다가 사라진 적 있습니다.
그거 읽다가.... 1987년 노태우 선거 생각이 나더군요.
당시 야당 선전문구중 하나에 태우(太愚)-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
대통령 되서야 되겠느냐는 네가티브 공세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87년 선거당시 )
야.. 우리가 얼마나 우리 전통-고전과 멀어졌나 ?
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뭐.. 소생이 우(愚) 가 어떤 의미 인지 ?
자세히 설명할 동양철학 실력은 없습니다만,
간단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기가 어리석다고 느끼는 것이 학문의 출발이고
세상을 겸허히 보는 태도의 표현 아닙니까 ?
따라서 옛날 분들 당호(堂號)에는 어리석을 우(愚)가
들어 가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자기 아이를 남에게 부를 때 돈아(豚兒- 돼지새끼) 라고도 한 바,
이걸 겸손의 표현으로 봐야지 왜 자기자식을 돼지로 보았느냐 ?
따지면 갑갑해 지는 것 아닙니까 ?
노태우 (太愚)!
전 당시 찍지도 않았고...
지금도 대통령으로서 별루로 평가하지만
이름- 태우 (太愚) 만은 조상이 깊이 생각해서 지어 준
좋은 이름입니다.
자 각설하고...
다음은 게시판 글 번호 2번에 올렸던 글 반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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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齊) 와 재(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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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쓰는 한자이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고 있다.
조상님들 호(號) 에 재(齋)가 들어 가는 경우가 많은 데
'제' 로 읽는 경우를 흔히 볼수 있으니 잘못이다.
두 글자가 생김새가 거의 같고 제(齊)의 경우 '재' 로도 발음하니
그때의 뜻은 재(齋) 와 완전히 같다.
조상님들 호의 경우는 한자로 齊 로 쓰든 齋 로 쓰든
우리 음은 '재' 로 읽어야 한다.

1. 제 (齊)
발음 세 가지 : 제, 재, 자
제 :
가지런할 제, 바를 제 ,삼갈 제, 엄숙할 제,
재빠를 제, 오를 제, 가운데 제
재 :
재계할 재 (이때의 음은 2항 재와 같고 뜻도 같다)
자 : 상복
2. 재 (齋)재계 재
집 재 - 서재 (書齋)
식사 재
상복 자
재칠 (齋七) :
죽은 후 49일간 이레마다 행하는 재 (齋)
3. 자
齊 를 쓰고 (齋를 쓰기도 한다)
음은 '자' 로 ( 재로 읽기도 한다) 읽으니
곧 상복 끝단 을 가르킨다.
그 주요 용법은 자최 (齋衰) 가 있다
('재최' 로 읽기도 한다.)
자최 (齋衰) 란 ?
(쇠(衰)는 이경우 '최' 로 읽는다.)
옛날 어머니 / 아버지 상 모두 모두 3년상을 치르나 服은 달리 입었다.
부친喪의 경우엔 斬衰(참최)라고 해서
거친 베옷으로 상복을 만들어 입고,
아래 단을바느질하지 않고 그대로 입었다.
모친喪의 경우는 齋衰(자최 ,재최)라고 해서
보기에 약간 좋은 촘촘한 베옷으로 만든 상복을 입거나
아래 부분 (바로 상복아랫단 자 (齊) (=재) 을 바느질한 옷을 입었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후에 어머니 상을 입을 경우는
참최 를 입는다.
서울 종로구의 齋洞 은 재동 이요,
일제시대 조선총독 齋藤實 (=사이토 마코토) 도 '재등'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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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오대댁손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01.24 으음...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하도 여러 사람들이 자꾸 착각을 하는 데...여기가 종인(宗人)들 모이는 카페니 조상 호에 대하여 이런 것은 알고나 지나가자는 뜻에서 몇 줄 쓴 것 뿐으로 ... 누굴 원망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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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박사 작성시간 07.01.24 몇년전인가. 우리종친의 대종회보을 보던중에. 영양의종친이. 취수당 집을 번역하여 출판하였다는 글이 있어서. 보고싶어. 전화번호을 알으켜 달라하여. 얼굴도. 모르는 취수당공파의 저자. 오원술 씨에게 영양으로 전화하여. 책을 우편으로.부쳐와서. 읽어보니. 취수공의 일생기. 이며. 병자호란의 참전기(남한산성전투) 등 많은 시가 있는데.시중에. 한강의 별장(한강의 이별)이란시 는 감명을 주는글이더라구요.. 조사해보니..경기도.광주시의 남한산성옆. 쌍령고개에서. 있었던 전투에 참가하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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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박사 작성시간 07.01.24 이전투는 경상도 민병 4만명이 전멸한 전투였는데. 이전투에서 포위망을 탈출하는과정에서. 취수공이. 적장 둘을죽였다는 무용담을 노래하는 글 이더라구요. 취수공은 무인으로. 전술 병법에 능했다 라고쓰였고. 나라가 항복하고. 망한것을 탄식하며. 양양의 산골에서. 친구와 벗하며. 시을읖으며. 술과 잠으로. 세월을 보넸다하여. 취수공이라. 호을 지었다고 기록되었더라구요.. 이렇게 호의뜻을알게되었답니다. 이런관계로. 영양의 오원술님과 수많은 전화을하였고.. 친하게되어.작년에는 년하장까지 보내왔고. 3남이 일산에서 공무원인데. 한번맞나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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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박사 작성시간 07.01.24 위와같은 이야기외에도.수많은 이야기들이 수십배 있으나. 다 뎃글로써 표현할수가 없네요. 훗날 누군가 이이야기을 재미있게 읽을지 모르기에 글로서 올려놓았읍니다.. 우리종친 함양오씨들의 교류이야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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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재천 작성시간 07.01.28 잘못에 대한 지적은 당연하게 하여야 하고 실수는 교육을 위한 투자로 봐야 겠죠 모르는것 많이배우고 있습니다 사실 1년전과 지금은 알게 모르게 많은것을 배우고 알게 되어 만일 아이들이 이제 품안에서 자란다 하면 골고루 잘 가르칠거 같은 생각이 드는데 벌써 품을 떠나 독립을 하고 있으니 참 아쉬움이 많고 나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젊은 종친님들이 많이 방문하여 또다시 틀리는 일이 없으면 좋겠네요 감사드림니다 그리고 더많은 공부를 하여 조상에 대한 업적에 감사드리고 뿌리있는 우리 함양오씨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길이 빛내야할거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