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6일 일요일
전주 서남방 금구(金溝)에 있는 모악산을 올랐다.
등산로 입구에 흔히 있는 문화유적과 명승지 안내를 읽던 중
다음과 같은 문귀를 보았다.

사진: 안내판 중 전주 김씨 시조 묘 부분
그리고 고개를 돌려 왼쪽을 보니 전주 김씨 세덕비(世德碑)가 있지 않은가?

사진: 전주 김씨 세덕비
시조 묘는 세덕비에서 1km 정도 거리에 있는 듯 하나, 이날 산행은
모악산 등산과 금산사 배관(拜觀)인데 방향이 맞지 않아 지나쳤다.
서울에 돌아 와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다.

사진: 전주 김씨 시조묘 갈림길
전주 김씨
시조 김태서(台瑞, ?~1257, 시호 문장)는 신라 경순왕(敬順王) 넷째 아들
김은열(殷說)의 8세손이다. 김태서는 1254년(고려 고종 41) 몽고 침입 때
경주에서 분관하여 전주로 본관으로 했다. 그 후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완산군(현 전주)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전주로 하였다… 운운
그런데 세종실록 지리지 전주부 조에 나오는 토성(土姓)에
전주 김씨가 보이지 않는다. 이때-선 초기 고향 전주에는
그 세가 미미해 졌던 것이 아닐까?
통계청 자료를 보니 전주 김씨는 2000년 현재 57,979명으로 전국 122위다.
참고로 1위는 김해 김씨(金海)4,124,934, 2위 밀양 박씨(密陽)-3,031,478,
3위 전주 이씨(全州) 2,609,890 명, 4위 경주 김씨(慶州金氏)1,736,798
5위 경주 이씨(慶州) 1,424,866 명이다.
전주 김씨의 집성촌-세거지는 함북 명천군 아간면, 평북 후창군 후창면,
평남 평양시 일원, 함남 흥남시 일원, 평북 초산군 일원으로 나와 있으니
김일성은 전주 김씨 일 개연성은 충분하다 하겠다.
김정일이 시조묘에 가 보고 싶다고
2000년 언론사 사장단 방북 시(時) 김정일은 자기 시조묘
즉 전주 김씨 시조묘를 방문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하여
한 동안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또 유명한 풍수였던 고(故) 손석우 씨가 6.25 때 김일성이
자기 시조묘가 있는 전주를 폭격하지 말라고 하여 실제 전주에
폭격이 없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전주 김씨 시조 묘 발견 경위
전주 김씨 시조 묘는 오래 동안 실기(失基) 했다가
최근 그러니까 70년대 초반에서야 찾아 냈던 모양이다.
시조 묘를 찾기 위해 족보를 해독하던 중 '귀이(龜耳)의 안앙(安昻)에 있다'
는 구절이 있는데, 귀이는 지금 구이(九耳)의 옛이름이고, 안앙은 모악산
입구 일대라 그 부근을 뒤지다가 찾았다고 한다.
시조 김태서는 1257년에 사망했으므로 700 여 년 뒤에 찾은 셈이다.
따라서 그 진위여부에 대한 뒷말이 없을 수가 없는데
어쨌던 전주 김씨 문중에서는 시조 묘로 확신하는 듯하다.
족보에는 나오지 않음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본관이 ‘전주’고, 회고록에도
“우리 가문은 김계상 할아버지 대에 살 길을 찾아 전라북도 전주에서
북으로 들어왔다. 만경대에 뿌리를 내린 것은 증조할아버지(김응우)
대부터였다”라고 적었다.
따라서 김일성이 자기 아이덴티티를 전주 김씨로 인식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일성 집안은 전주 김씨 족보에 나오지 않는다.
김일성 집안은 전주 김씨 족보에 나오지 않는데 현재 전주 김씨 대동보가
없는데다가 파별로 만든 족보에도 김일성과 선대가 살았던 평남 대동군
일대가 누락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주 씨 종친회 쪽에서는 “1915년 한 차례 대동보가 만들어진 적이 있으나
6·25전쟁을 치르면서 모두 없어졌다”면서 “본인(김정일)이 전주 씨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확고한 근거, 이를 테면 제적등본이나 족보 등을 제시하면
종친으로 예우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