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다...함양오씨에게...이런일이...생긴이유가...무엇인가?
오박사(태규)추천 0조회 026.06.15 19:2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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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 오주환 선생 에게서...이런 편지을...받았읍니다. 내 나이 96세라 현세에 있을 시간도 많지 않읍니다. 태규씨는 세월이 많이 남았으니 함오 가 그릇된 도리를 가지 않게 이끄러 주기를 바라겠읍니다. 갑오 6월 11일 대구 오 주 환 안타깝다...함양오씨 시조비석 개조 사건...이 생긴 이유는? 선배도 모르고...윗사람도 모르고...예의도 모르고... 공고하고...상의하고...전임자 선배 어른에게...문의해보는....예절을 전혀 지키지 않아서....생긴 일이다... 책임자 회장 들이...혼자 생각으로...무식한 지식으로...혼자 판단으로 너무도 큰 실수을 한것이다... 함양오씨의 역사을 근본적으로...모르는...무식이...역사의실수을 만들었다. ................................................................................................................................................................... 호소의 글 「無言의 감응과 다투지 않음의 길」 無言의 감응과 다투지 않음의 길 춘제를 앞두고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상의 묘 앞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한 집안 어른신의 강직함과 결연함이, 공동체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뜻이 틀리지 않았고, 진실만을 새겨야 한다는 그 뜻은 오히려 우리 집안의 정신 속에 면면히 흐르는 진실을 향한 강직함이라 자부심까지 느낍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방식이 옳았다고 말씀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묻게 됩니다. 진실은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가. 중용은 말합니다. “奏假無言이로되 時靡有爭이라.” 말이 없으되, 감응이 이르고, 때에 이르면 다툼이 없어진다. 이 말은 침묵하라는 뜻이 아니라. 말 이전의 상태, 곧 ‘정합 된 존재’가 먼저라는 뜻이라고 새깁니다. 진실은 외침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진실은, 그 자체로 서 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울립니다. 지금의 문제는 사실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문제이고,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객관적인 기록이 명확하지 않다면, 우리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정할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시조할아버지 할머니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고치려는 힘”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구조”입니다. 지우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덧붙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기존의 비석을 부정하는 대신, 그 옆에 하나의 설명을 더하는 것 등 상호 논의로 내는 결론 그것이야 말로 과거를 지우지 않으면서, 현재의 지혜를 더하는 길이라고 생각 합니다. 중용은 또 말합니다. “君子而時中.”이라고 군자는 고정된 답을 따르지 않습니다. 군자는 매 순간, 가장 적절한 자리를 찾아갑니다. 지금 이 문제에 필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 가 아니라, “어떤 방식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공동체를 살리느냐”입니다. 진실을 향한 의지는 귀합니다. 그러나 그 의지가 종원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 그 진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和而不流.”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타협이 아니라, 기준을 가진 화합입니다. 우리는 틀릴 수 있는 과거와 다투지 않으려는 현재 사이에서 하나의 길을 만들어야 할 시점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다투지 않아도 정리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중용이 말하는 길이며, 우리가 오늘 이 제사 앞에서 다시 세워야 할 마음입니다. 종원의 한 사람으로서 감히 한 말씀드립니다. “이 문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물론 후손들이 더 깊이 연구할 과제로 남기되, 우리는 오늘 조상을 기리는 마음을 먼저 바로 세운다.” 는 것, 우리 종원들의 화합과 숭조 정신이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한 시점 같습니다. 25세손 덕계공파 재봉 배상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제안을 드립니다. 이 문제는 사실 판단의 영역과 공동체 질서의 영역을 분리해서 다루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1) 사실 문제 → “열어 두되, 단정하지 않는다” 시조할머니의 성씨는 다른 의견들이 있으니, 좀 더 규명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여흥 민씨”라는 것은 전언(傳言)과 초기 족보에 명기되었으나, 객관적인 역사 기록은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중용 20장을 보면, “知仁勇三者 天下之達德也”라 했습니다. → 지(知): 사실을 따지되, → 인(仁):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 용(勇):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결단이 필요 합니다. (2) 비석 문제 → “고치기보다 사실을 파악하고, 규명하고, 오늘의 사는 분들의 최대 동의로 정의해 두어야 할 문제입니다.” 기존 비석 훼손 없이 유지하되, 대신 별도의 안내석(설명문) 설치하던가 아니면 규명된 자료들을 보아 정리해 두는 등도 논의해 볼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런 논의는 집안의 시조 할머니의 출처를 가지고 왈가불가 한다는 부끄러움일 수도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스스로 밝힌다는 강직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3) 절차 문제 → “공론화 구조 만들기” 선후가 바뀐 듯도 하지만 종친회 내에 ‘사실검증 소위원회’를 두고, 일정 기간 자료 수집 후, 보고서를 작성하고, 최종 판단은 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설명하는 비석을 세우던지, 아니면 오늘을 사는 종원을 중지를 모은 의견을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다행히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는 듯하니, 중지를 모으는 방안만 찾으면 잘 진행될 것 같습니다. (4) 갈등 문제 → “행위와 뜻을 분리” 훼손 행위 자체는 공동체 질서 차원에서 해명과 유감 표명 필요하다고 봅니다. 知者過之도 경계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한 진정성은 “존중받아야 마땅한다”고 봅니다. “和而不流” 화합하되, 옳고 그름의 기준은 잃지 않는다고 한 말을 새겨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문제가 제기되고, 사단이 생겼는데, 개인의 불완전한 문제 제기로 치부되거나, 대충 덮고 넘어 가면 또 다시 문제가 제기될 소지가 있습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해 두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가 25세손 덕계공파 재봉 배상 ............................................................................................................................................................................................ 시조묘비에 대하여 알아 둘 일, 2002년에 세워진 묘비는 수비위원회((수비위원:오주환(회장),(영남)환숙,무홍,상목 (호남)화수,병무, 인성))에서 진주 촉석루, 진양하씨 묘소등을 답사하고 정성을 드려 수비한 것이요. 찬자에게 참고자료를 주고 비문을 받은 다음에야 "삼중대광"이란 어구가 들어 있는 것을 알았으나 마침 찬자가 비제(전면)에 그것을 쓰지 않고 계(품계),사(부서),직(직위)을 정확히 썼으므로 그대로 묘비를 세웠던 것이요. 그런데 새로 묘비를 변개한 것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을 하였으니 그것을 원래대로 하지않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3곳이 개악한 것입니다. 1. "삼중대광"금자광록대부: 삼중대광이란 어귀는 시조공이 생존할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고려 최고의 품계로서 정1품에 주어졌는데, 설치된 것은 충렬왕34년(1308)년이요그러니 정2품인 좌복야에는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금자광록대부"(품계): 이것을 첫째줄에 써야 될 것인데 둘째줄 즉,"사, 직" 다음에 순서를 뒤바꿔 쓴 것이 잘못입니다. 원래의 묘비에 적은 순서가 정확합니다. 3. "여흥민씨 합부": 이것은 세속전설로서 근거가 없읍니다. 대종회장은 3군데를 인용하여 여흥민씨를 정경부인인 것처럼 말하였으나 우리선조는 여흥민씨란 말을 쓴 일이 결코 없는 하황된 말입니다. 목관이 나왔다는 것을 말하였으나 그것은 허관이고, 목관을 종보에 사진을 찍고 글을 쓴사람이 바로 본인입니다. 더구나 "합부"(합장)란 말은 허언인 것입니다. 신도비에도 정경부인의 "성관은 부전"이라 되어 있지 않습니까! 묘비에 3가지나 틀린 것을 어찌 "개악"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원래의 묘비가 하자가 없으니 복원허여야 합니다. 후손들에게 허위 사실을 전하는 부끄러운 종인이 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찬자(서수생: 경북대대학원장,대장경연구의 제1인자)에게 개악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도 원래대로의 묘비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2020. 2. 9. 오 주 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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