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5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마태 5,38-42)
♡나는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오늘 복음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 윤리적 특성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법은 기원전 1700년경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동태 복수법’(lex taleonis)이다. 이것이 역시 구약성경 윤리의 일부분이 되었다.
탈출 21,22-25에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 임신한 여자와 부딪쳤을 경우, 그 여자가 유산만 하고 다른 해가 없으면, 가해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요구하는 대로 벌금형을 받아야 한다. 그는 재판을 통해서 벌금을 치른다. 그러나 다른 해가 뒤따르게 되면,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라고 하고 있다.
이 율법은 인간이 자신의 지체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한, 상대방에게도 악한 행실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율법은 사악한 자들을 선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 율법 때문에 선한 이들을 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법은 재판관을 위한 것이지 개인이 복수하기 위한 법이 아니었다. 또 문자 그대로 실행되지도 않았다. 본 피해 이상을 벌을 주지 말라는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39절) 이 말씀은 단순히 인내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은 어떤 교회와 신앙을 비방하여 말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지닌 믿음에 대하여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된’(1베드 3,15 참조) 자세를 말한다. 그래서 올바른 교리를 알게 도와주면 그들은 비난을 그치고 신앙을 갖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런 손찌검에 당신 뺨을, 채찍에 당신 어깨를 내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맞서서 악을 이겨야 할 것 같은데 맞서지 말라고 하시니 고개가 갸웃거립니다. 그런데 악을 단순히 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방법으로 악에게 맞서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악에 맞설 때 똑같은 악으로 맞서려고 합니다. 돈으로 손해 보면 돈을 통해 복수하려고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자기가 받은 상처를 그대로 되돌려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맞서는 방법은 세상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방식은 사랑에 있습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이렇게 하면 괜히 ‘바보’ 소리를 들을 것만 같습니다. 나만 손해 보는 삶을 사는 것만 같습니다. 억울해집니다. 하지만 이 길이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며, 주님으로부터 큰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 안에서만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