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1일 연중 제12주일 (마태 10,26-33)
♡너희는 육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복음도 ‘박해’가 주제이다. 그 박해는 사도들의 선교 사명에 따르는 박해임을 말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 박해는 사도들과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띤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고 세 번씩이나 격려하신다(26.28.31절).
두려워한다는 것은 온 힘을 다하여 고백하여야 할 자신의 신앙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세 번씩이나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신앙 때문에 자신의 생활 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 내지 ‘박해’를 당할 수 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와 예언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반대 받는 표적’이 되기도 한다.
예레미야도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위협을 받는 절망감을 제1독서는 표현하고 있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거센 반감이 있지만, 하느님께 대한 충만한 신뢰를 잊지 않고 있다. 고통을 당하고 두려움에 싸이면서도 자신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리라는 확신이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예레미야는 무한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상징적 형상’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말씀으로 주님께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즉,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심판 날에 우리 의지의 숨겨진 양심이 드러날 것이고, 지금은 흐리게 보이는 것들이 모두에게 드러나게 된다고 하시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의 위협이나 모략 또는 그 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육신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영혼을 죽일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영혼이 없으면 죽고, 영혼은 하느님이 없으면 죽는다.’라는 성 아오스딩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육신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죄를 슬퍼해야 합니다. 죄로 인해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귀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단순히 주님을 안다고 말로만 고백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섭리해 주시며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에 합당한 삶이 되도록 도와주심을 믿으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구원을 전한다는 것은 바로 구원받은 자의 체험적인 삶을 전할 수 있을 때 올바로 복음을,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과거의 주님을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하느님 나라 초대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