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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아는 신앙인이?

작성자군종후원회장3217|작성시간26.06.23|조회수14 목록 댓글 0


6월23일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마태 7,6.12-14)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6절) 여기서 ‘거룩한 것’이란 우리가 함부로 쓰거나 망가뜨리면 불경한 짓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범하려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경의 죄를 지은 것이다.

‘진주’는 소중히 여겨야 하는 모든 영적인 것들이다. 거룩한 것이나 진주는 감추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개 안에 담겨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드러내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이 명백하게 중요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은 오로지 미움과 하찮게 여기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개로 배를 불리고 어떤 이들은 돼지로 배를 불린다. 나는 어떠한 것으로 불리고 있는가?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12절) 예수님께서는 이 한 마디로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을 요약하신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바란다면,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동료가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도 네 이웃에게 해주라고 하셨다. 이보다 짐스럽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공평한 것이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이제 다시는 몰랐다고 핑계 대며 피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렇게도 평범한 것을 실천하면서 사는 모습은 아니다.


복음을 아는 신앙인의 모습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자신이 그만큼 성숙하는 그러한 사랑이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13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하셨고 산상설교에서 겸손하고 온유한 이들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이 편안한 멍에와 이 가벼운 짐을 마다하는 사람이 많아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은 힘들고 문은 좁게 느껴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 우리는 하느님께서 남이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그 짐은 은총이기 때문에 가볍고 기분 좋은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좁고 비좁은 길을 편하다고 하는 것이냐? 그것은 그것이 문이면서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하셨다.


이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이끄는 문이라고 하십니다. 이 문은 너무나 좁고, 이 문으로 가는 길은 비좁아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좁고 비좁아도 이 길을 걸어가서 좁은 문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들처럼’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자신의 사랑 실천 그 자체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면서 많은 사람이 가는 넓은 문으로 또 널찍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길을 예수님께서는 ‘멸망으로 이끄는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길로 또 어떤 문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보통의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나’처럼 살아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말이지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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