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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학]내가 고2때 썼던 낙태 관련 소설 공유해봐..!

작성자서울, 1964년 겨울|작성시간19.01.01|조회수4,735 목록 댓글 6

페미 입문 계기가 낙태였거든 고2때 처음 하고 피임 잘 한거 알면서도 생리 두달 안 하니까 애 가진 건 아닐까 너무너무 불안했어 그때 쓴 소설인데 학교 백일장에서 대상 받구 몇년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나서 올려 참고로 그냥 고딩 필력이라 짱못써 감안 부탁..

저 소설을 보면 애 가진 건 아닐까 두려워했을 때, 그때의 불안감이 너무 잘 느껴져 비혼의 욕구 500프로다.. 나한테 의미 있는 글이기도 하고 열허분도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서 !!결말이 낙태 안하는 결말이라 빡쳐서(페미입문전이었음) 중간에서 잘라 !!


유전자의 말로


검은 도화지의 중간을 동그랗게 오려낸 것 같았다. 폴라로이드를 연상케 하는 작고 네모난 사진의 중간에는 뿌옇고, 하얀 점 하나가 자리해 있다. 소이는 몸에 점이 많았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들고 있는 제 손가락 정중앙에도 고집스레 존재한 것이 검은 점이었다. 그뿐만이랴, 손등에도 두어 개, 팔에는 세 개나 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폴라로이드의 하얀 점은 소이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용납할 수 없는 종류의 점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점박이였던 자신조차도.

소이는 연신 눈을 깜빡이다가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매만진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어렴풋이 꿈이겠구나 했는데 엄지에 와닿는 이 매끈한 감각은 무어란 말인가. 제아무리 부정하려 한들 오감은 이미 소리치고 있었다. 꿈이 아니야. 꿈이 아니야. 고막에 쑤셔 박듯이 선명한 속삭임이다. 소이는 어느새 시야가 뿌옇게 흐려짐을 느꼈다. 언젠가의 심리학 강연에서 인간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놓였을 때 최후의 방어기제가 눈을 꽉 감는 것이라 하던데, 그때는 퍽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알 것도 같다. 눈을 감았을 때의 지독한 심연 아래로 영원을 침잠하고만 싶어. 구겨진 폴라로이드 사진의 정중앙에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소이는 자신의 눈물방울이 사진의 하얀 점에 망울지어 떨어진 그 순간부터 이 상황이 마냥 행복한 꿈이 아님을 알았다. 뺨에 닿는 가을바람도, 한참을 달려 욱신거리는 발목도 모든 것이 생경하다. 온통 까만 심해의 바다에서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듯 나는 눈을 부릅뜨고 결국에는 죽지 못했음에 통곡하고 만다. 숨을 들이키는 폐부 곳곳에 산소가 그라목손처럼 달라붙어 녹아내리고 있었다.
소이는 숨을 쉬는 행위가 제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제 목을 옥죄고 있다고 생각했다. 택시. 택시. 쥐어짜는 목소리가 비명 같아. 택시는 정지했고 소이는 달뜬 숨을 몰아쉬며 비로소 암흑으로 가득 찬 택시 시트에 몸을 올렸다. 제 폴라로이드 사진도 이 택시 시트처럼 검었다면 자신은 지금쯤 어떤 표정으로 택시 안에 있을까. 아마 지금 같은 표정은 아니겠지. 긴 타원형의 거울 사이로 보이는 자신의 눈은 진득한 자기혐오를 두 동공에 한껏 끌어담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가 주세요.”

택시기사는 말이 없었다. 택시기사 중 말이 없는 사람은 드무니 그를 분류한다면 특이한 사람 축에 속하지 않을까. 온통 검은 공간에 흰 점처럼 콕 박혀있는 그는 왠지 모를 심리적 불안감을 불러 일으켰다. 토할 것 같아. 뼈마디가 유독 도드라진 손을 들어 꾹 다문 입술을 진하게 내리누른다. 소이는 생각한다. 눈을 감으면 저 흰 점이 들이부어져 세상이 하얗게 점멸해 버리지 않을까, 하고. 문득 눈을 깜빡이기가 두려워졌다.

“여기에서 택시를 타는 여학생들의 부류는 딱 두 가지가 있는데.”
“ …네?”
“길을 잘못 들었거나, 아이를 뱄거나.”

숨이 멈췄다. 주먹 쥔 손안에 담긴 구겨진 폴라로이드. 그 안에 있는 사진을 보면 이 사람은 나를 혐오하게 될까. 눈을 꽉 감아버린 찰나, 그 0.5초의 세계에서의 나는 수많은 관중들을 바라보며 단두대에 몸을 맡긴 채였다. 인정하겠다. 발끝부터 올라오는 이 토기는 택시 안이 검어서, 택시 기사가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어서도 아니다. 택시 기사가 나에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해서도 아니다. 나는 나를 혐오했다. 내 배에서 살고 있는 이 악착같은 생명을 혐오한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건만 설익은 돼지고기에 사는 기생충처럼 수정하고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하얀 점이 미치도록 혐오스럽다.

엄마에게 주어진 어린 불행마저도 유전되는 것이라면 그 안에 담긴 유전자는 얼마나 끔찍한가. 나는 엄마를 닮았다. 그 불행의 종류마저도 똑 닮아 있다. 그렇다면 내 안의 까만 점도 나의 모든 불행을 계승받게 될까? 엄마가 으레 그러했듯이. 모든 유전자의 말로가 다 비슷한 형태를 띠듯이 말이다.

우읍. 온몸이 점을 토해내길 원하고 있었고 나는 그 부름에 응답하듯 택시의 문을 열고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우웨엑. 우웩. 토해내는 것들에는 채도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원한 토사물은 무채색의 그것이었음을,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듯 알아차렸다. 너는 어느 쪽이야? 무채색의 택시기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3


양수가 터지고 엄마의 다리 사이로 머리를 빼꼼 내밀게 되었을 때 나는 세상이 이토록 시릴 줄은 몰랐더랬다.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아가가 무엇을 알겠냐만은 그 누구보다도 생존욕이 뛰어났던 나는 저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서 지독한 시림을 느꼈다.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 손님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던 것이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더라도 엄마는 자신을 살렸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악독한 핏덩이를 오롯이 자신이 감당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기에 자신은 살아가야만 했다. 그것이 비록 제 자신조차 원하지 않는 삶이라도.

세상을 살다 보면 엄마의 다리 사이에서 머리부터 천천히 끌어올려지듯 언젠가는 현실을 마주하고 눈을 부릅떠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제아무리 원치 않았더라도 양수가 터지는 순간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한낱 설익은 돼지고기에 사는 기생충과 같지만 그래도 나는 매일 폐부로 숨을 들이킨다. 숨을 쉰다는 무의식적 행동의 의미는 살아있다는 의미이므로, 온통 침잠하여 있던 육신이 수면 밖으로 끌어올려진 순간 나는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바로 지금처럼.

“저는… 낙태에 대해 찬성합니다.”

반 친구들과 선생님의 이목이 화살촉처럼 몸 군데군데를 꿰뚫는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옛말의 의미가 이러했을까. 시선은 생동하는 온몸을 짓이기고 찰나에는 심장을 관통하겠지. 이런 생각이 들면 나는 언제나처럼 백기를 들고 마는 것이다. 장수가 궁지에 몰려 칼을 내려놓듯 흔들리는 시선을 요란하게 내리깐다. 화살촉이 심장께를 관통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어쩌면 침묵은 인간이 가진 무기 중 가장 강한 것일지도 모르지.

침묵은 자궁안의 그 따뜻함에서 태어났건만 겨울바람보다도 시렸다. 매만진 아랫배만 곧 태어날 아기의 발길질처럼 시끄럽게 느껴진다. 정적의 교실 안에서 나는 유일한 소리이건만 결코 달가워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선연한 감각이 미치도록 끔찍하다. 낙태에 대해 찬성합니다. 낙태에 대해 찬성합니다. 교실에 울리는 소리는 하나가 아닌 둘이 되고 나의 목소리는 이명처럼 메아리친다. 낙태에 대해 찬성합니다… 나는 마침내 최후의 방어기제로 두 눈을 꽉 감는다. 만약 지옥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나에게 지옥은 바로 이 조용한 교실 안이 아닐까.

낙태를 찬성하는 이유가 뭐죠? 적막의 교실 안에 울리는 목소리는 소름 끼치게도 선명했고 나는 대답을 피할 길이 없었다.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만이 머릿속에서 벌처럼 윙윙 공명하다가 까무룩 기절할 뿐이다.

선생님, 돼지고기 자주 드시죠. 설익은 돼지고기를 먹으면 몸에 기생충이 생길 수도 있대요. 그런데 돼지고기를 먹고 몸에 기생충이 생길 확률은 아주, 아주 적단 말이에요. 그럼 기생충이 생긴 사람은 나 참 운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구충약을 먹겠죠? 낙태는 구충약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저 운 없이 생겨서 제 피와, 살과, 인생을 모두 갉아먹는 그것을 생명체라는 이유만으로 살려줄 순 없으니까.

제가 그 기생충 같은 존재거든요. 엄마의 몸에 운 없이 기생해서 살아남은 끈질기고도 악독한 기생충. 엄마의 자궁 안에서 철없이 유영하기만 했던 그때의 제게 이성이 있었다면 저는 그 자리에서 덜 자란 혀를 깨물고 자살했을 거예요. 내가 엄마의 비상하는 두 날개를 꺾어버린 존재라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내가 엄마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장 혐오하는 존재가 될 줄 알았더라면 그러했을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구태여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머릿속을 부유하는 수많은 생각들 중 하나를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모래성을 지지하던 굳건한 진흙들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란 것을 알았기에.






미안 .. 엄청 애매하게 끝냈네 그냥 학생임신에 대한 불안감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
읽어줘서 고맙고.. 부끄러우니까 춘배 사진으로 애교 부릴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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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코멧 크루세이더 | 작성시간 19.01.01 와 진짜 잘읽힌다 술술읽었어,,,
  • 작성자크림파스타악개 | 작성시간 19.01.01 와 필력 짱이당....멋져-!
  • 작성자WAY_BACK_XIA- | 작성시간 19.01.01 잘 읽옸어ㅠㅠ
  • 작성자플초함 | 작성시간 19.02.07 헉.. 나 이거 원글러인데 이걸 공유해준 사람이 있다니 정말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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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서울, 1964년 겨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2.10 옛날에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스크랩해왔어 글 진솔하게 정말 잘썼다 좋은 글 올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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