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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타]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가정폭력의 폐해)

작성자꿀씨앗호떡|작성시간20.05.22|조회수7,062 목록 댓글 25











# 2000년 5월 고대생 이은석
존속살인과 사체유기로 구속



"화장실에 갔는데 거울에 비친 피범벅이 된 제모습을 봤어요. 그런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중산층가정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처음에 부모의 돈을 노린 패륜아 사건으로 비춰졌지만


"동생을 이해한다" 라는 형의 발언.


이 발언으로 형도 공범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 사건이 아동학대에서 기인한게 아니냐는 심리학자들의 추측이 나왔다.



이은석에게는 가정과 학교, 군대까지 그가 거쳐온 사회 대부분이 가해자였다.

그래서인지 동정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이훈구 교수가 쓴, 이은석의 방대한 일기와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 책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에서는 심지어 이은석의 '무죄'를 주장할 정도다.

미국 같은 경우였다면 정당방위로 판결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피고인 이은석의 집은 아버지, 어머니의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다.



당시에 보도되었던 사실에 기초해서 적자면 "이은석의 어머니가 해병대 장교인 이은석의 아버지와 결혼한 이유는,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나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처럼 영부인이 되어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라는 증언이 있었다.
당시에는 박정희나 전두환 등의 사례로 인해 군에서의 출세가 곧 민간에서의 출세로 이어지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것.


원래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만큼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지만, 시대 상황상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대신 영부인을 꿈꾸는 것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남편이 장군은커녕 대령도 못 달고 전역하는 바람에 남편에게는 기대를 끊어버렸고, 그것이 남편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난 채, 서로 틀어진 부부는 거의 남남이다시피 수 십 년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남편 대신 아들의 출세에 더욱 매달렸다고 한다.




이런 이유들과 성격차이로 인해, 부모는 이은석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각방을 쓰는 등
부부싸움을 하면 두세달은 서로 한 공간에 살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가정은 무거운 침묵으로 늘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이은석의 성격을 내성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부모는 이은석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기는 커녕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양쪽아들, 특히 차남 이은석에게 풀며 말도 안되는 잔소리와 폭언을 자주 퍼부었다.




이은석은 어릴 때 부터 신체적, 정신적 학대 양쪽을 모두 당했는데, 유치원생 시절에 신발끈을 제대로 못 묶는다고 체벌을 하거나,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집어던지고 (어찌나 세게 집어던졌는지 맞은 유리창에 금이 갈 정도였다고 한다) 만화를 그린다고 머리카락을 잡아뜯는 식의 폭력이었다.
그의 부모는 늘 아들을 남들과 비교했고, 성적과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광적일 정도의 히스테리와 폭력을 행사했다.
뭔가를 못하면 당연히 혼나고, 잘하더라도 결코 칭찬받지 못했다. 오히려 왜 더 잘하지 못하냐며 혼이 났다.
이은석이 어릴 때는 만약을 대비해 야구방망이까지 숨겨 놓았다고 할 정도로 부모, 특히 이은석의 어머니는 그를 매번 심하게 질책하고 구박하고 모욕을 주기만 했다. 그에 딸려오는 폭력은 덤.


그리고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였던 이은석의 어머니는 어떤 일이든 이렇게 심하게 때리고 혼을 낸 후에는 항상 이은석에게 회개 기도를 강요했다고 한다. 정말로 회개해야 할 사람은 본인이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는 내성적으로 변해가고 대인기피증이 생기게 되었으며, 학창 시절에는 이러한 성격에 작은 키(고3때 163cm정도였다하는데, 폭력에 시달려 받은 스트레스가 발육부진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만만하게 보인 나머지 호구 취급을 받으며 놀림받았고, 그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학생까지 있었다.


어찌나 그 학생을 증오했는지 사건 후에도 언젠가는 그 학생을 죽여 버릴 거라며 이름을 되뇌일 정도였다.
또 부모는 이은석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도시락도 싸 주지 않고 2000원을 주며 그냥 빵 사먹으라고 말을 했다고..



학교에서도 극심한 상처를 받은 판국에 집의 부모님마저 살갑지 않다 못해 지독하고 무시무시한 성격이니,
어디에서도 그 상처를 치료받지 못한 이은석의 분노가 결국 극단적인 방향으로 터져 버렸던 것이다.
괜히 책 제목이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인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은석은 법정에서 "부모님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다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남들은 하나도 견디기 힘든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동시에 지독할 정도로 겪었으니 성격 파탄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실제 이은석은 체포된 후 그 학창시절 괴롭혔던 동급생의 이름을 언급하며 '칼로 찔러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말을 계속 했다고 하는데 ..

그것만 봐도 그에 대한 분노지수가 얼마나 높았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신 이은석의 학업 성적은 탁월했고, 상기한 대로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사실 이은석의 성적은 서울대를 노려도 충분히 들어갈 정도였으나, 논술고사를 추가로 치르는 게 싫어서 응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서울대는 특차 제도가 없었기에 논술을 거쳐 정시로만 가야 했으며 고려대는 수능으로만 뽑는 특차 제도가 있었기에 그냥 고려대로 굳힌 것이다.
당연히 특차 합격의 평균 수능 점수는 정시보다 높았는데, 특차로 무난히 합격할 정도였다면 이은석의 수능 점수가 꽤 고득점이었다는 소리.


이는 그간 부모 때문에 원치도 않음에도 죽어라 해 온 공부를 더는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은석은 대학 입학 후 공부에 손을 놔 버렸고, 성적도 그가 정말 그 우등생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떨어졌다.


게다가 부모는 이은석이 서울대학교를 반드시 가기를 원하였고, 고려대 역시 대단한 명문대였음에도 자식을 단 한 번도 칭찬해 준 적 없는 사람들답게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한 자식이라며 "너처럼 멍청한 자식은 필요 없어. 나가 죽어."라는 폭언을 해댔다고 한다.


만약 이은석의 부모가 혼낼 땐 호되게 혼내더라도 일단 성적이 좋게 나오면 그때마다 칭찬해주고, 이은석이 고려대에 들어갔을 때도 칭찬해주었다면 이은석은 대학생이 된 뒤에도 계속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식이었으니, 이은석이 정말 서울대에 합격했더라도 부모가 칭찬한다거나 만족하는 등 행동이 바뀌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부모는 이런 아들의 고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버지는 장교라는 직업상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오면서 아들을 본 체 만 체 했고, 그런 아버지를 기피하면 "사내놈이 왜 그러냐", "굼벵이 같은 자식"이라고 쏘아붙였다.

해병 장교인 그의 입장에서 해병들이 유달리 편하다고 군기가 빠졌다며 무시하는 공군에 자신의 아들이 입대했다는 것도 이를 더했을 것이다.

그가 군대에 가 있는 3년 동안 부모는 면회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았고, 전역 후에도 부모의 인격적 모욕과 멸시는 끝없이 이어졌다.


이은석은 부모로부터 "네가 뭘 잘 하냐? 공부나 해라. 공부도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한다.", "너 같은 놈은 사회 생활 못한다.", "너 같은 자식 필요 없다."라는 식의 상처를 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살았다.



이은석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다. 형은 서울의 중위권 대학을 다녀 부모가 더 구박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형은 이은석과는 달리 꽤 과격하고 불 같은 성격이라, 부모의 막장 행동에 염증을 느끼고 사춘기에는 이은석과 달리 계속 반항하면서 부모와 충돌하곤 했다.
부모는 이은석의 형을 골칫거리로 여겼지만, 그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스트레스를 발산했기 때문에
동생 이은석에 비해 부모로부터 받은 정신적 데미지는 훨씬 적은 셈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고 제대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은석은 형에 비해 부모와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속으로 쌓인 것이 형보다 훨씬 컸다.
결국 형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집을 나가 버렸다.

어머니는 이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형에게 화해를 청하며, 독신자 아파트를 마련해 주고 나름대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아파트를 마련할 돈을 이은석의 명의로 대출받을 것을 요구했다. 이 일로 이은석은 안 그래도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인데 (그런데 이은석 본인이 이훈구 교수와의 감옥 면회에서 말하길, 자신의 명의로 대출받은 거에 대해서는 그리 섭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나 형의 이름으로 대출받으면 형이 직장에서 보조받는데 지장이 있을 수 있었다고.)


형의 아파트 이사를 도와주고 온 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머니가 (형의 아파트가 어땠는지 어머니한테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어물거렸다는 이유) 또 혼을 내자
결국 참았던 것들이 모두 폭발하면서 어머니와 무려 4시간에 걸친 말싸움을 했다.


이 때가 살해를 저지르기 열흘 전이며, 이은석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한 반항이었다.
말싸움을 하면서 그동안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을 (“왜 형하고 나를 이렇게 괴롭히냐?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냐?"라는 말) 모두 쏟아냈지만
어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면서 부모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냔 말이냐?", "정신병원에 갔다오라"며 오히려 이은석을 못된 자식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사건 일주일 전,


어머니로부터 그 사실을 모두 전해들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야단치기 시작하자 다시 한 번 그 동안의 분노를 울면서 모두 쏟아냈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그런 건 그때그때 이야기해야지 왜 이제 와서 꺼내느냐?" 라는 식으로 멸시하고 모욕을 줄 뿐이었고, 이은석은 그제서야 부모와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마지막 대화에서 단절을 느낀 이후 이은석은 무려 엿새 동안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식사 등은 부모의 외출 및 수면 시간을 이용해 해결했으며, 굶는 일도 예사였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와는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밖에 부모가 있어서 화장실 가기도 뭣 같았던 상황에서는, 소변 정도는 아로나민 골드 빈 상자를 요강 대용으로 썼다고 한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부모가 그런 이은석을 보고도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0년 5월 21일 이은석은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집에 있던 아버지가 아끼던 양주를 꺼내 마신 그는 새벽 5시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서
컴퓨터 책상 밑에 있던 망치를 꺼내들고 어머니방으로 갔고
그리고 4시간 후 다시 아버지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살해 후 사체를 토막낸 이은석은 부피를 줄이기 위해 심장과 간을 오븐에 굽고
20여 개의 사체 토막은 서울 시내, 지하철역 등 곳곳에 유기했다.

하지만 시체처리 3일 후에 청소부에 의해 발견되었고, 지문을 토대로 검거된 이은석은 경찰진술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라며 울먹였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이은석의 형이 했던 말인데,
부모를 죽인 동생을 원망하기는커녕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동생을 이해한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사건 발생후 한동안 형을 만나기를 거부했던 이은석은
형을 본 후에야 비로소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 후회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형도 "동생이 사형만 면한다면 평생 뒷바라지를 하겠다, 친구를 하겠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심지어 사건 이후 동생의 감형에 힘쓰기 위해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었을 정도라고 한다


이은석의 고등학교 동창들 역시 그를 두둔했는데,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 은석이의 몸을 보면 언제나 피멍 투성이었다." 라고 말하며 가정폭력을 증언했다.


그런데 이은석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혹한 학대를 자행한 이유는, 이들도 가정폭력과 아동 학대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장 환경을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발견되는데, 우선 어머니의 경우 자신의 성깔을 아득히 능가하는 홀어머니(즉, 이은석의 외할머니)로부터 더 심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소설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맞았을 정도였으니..


그리고 아버지는 어린 시절 형(이은석의 큰아버지)만 편애하고 자신은 본체만체하는 아버지(이은석의 할아버지)밑에서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다고 한다.
큰아들은 사업하다가 실패해 집안을 말아먹을 지경이 되어도 절대 혼내지 않고 감싸주기만 하는데, 다른 자식에게는 그런 애정을 보이지 않고 무조건 '자식 된 도리로서 부모를 부양해야 할 것 아니냐'며 의무만을 강요했다고 할 정도니..
이은석의 아버지는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와 형을 증오했으며, 성격이 놀랄 만큼 이은석과 유사했다.


이런 뒷배경 때문에 이은석의 집에는 단 한 번도 친척들이 방문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자신은 가족들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으면서도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기를 강요한 이유도 바로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보상받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후 재판에 회부된 이은석에게 법원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내렸지만 2심은 그 동안 당해온 가정폭력을 참작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형량이 확정되어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 살인자는 말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은석사건 재구성한거야










출처: 쭉빵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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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워터멜론슈가하이 | 작성시간 20.05.22 지금도 이런 사람 많겠지... 정말 안타깝다
  • 작성자The moon breaker | 작성시간 20.05.23 난 통채로 오븐에 넣어도 그런갑다 할거같음 딱히 제 3자의 이해가 필요할거같지도 않고 너무 괴로웠을거같음 저게 부모냐?
  • 작성자九尾狐 | 작성시간 20.05.23 형 보고나서 처음으로 후회한다한게 너무 슬프다
  • 작성자그만와 | 작성시간 20.05.23 안타깝다
  • 답댓글 작성자그만와 | 작성시간 20.05.23 겪어본 사람들은 알지 ... 형보고 후회한다고 말하는것도 마음아프다...
    하지만 그래도 살인은 안되는 짓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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