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곧 행복해질 것 같애
새벽 잠자리에서, 반쯤 깨어 뒤척이며
그런 생각을 해
베개를 밀고 요 호청에
얼굴을 묻고 엎드리며
반쯤은 넋이 나가고
반쯤은 가장 분명히 깨어
난 행복해질 것 같애 곧
/새벽, 양애경
눈 덮인 벌판에 아무것도 없는
그림을 보면, 거기가
꼭 내 심장인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마저 남겨둔 채
영원히 가고 또 가고
너를 전부 여행하고 나면
우린
멸망이니까
/애인, 이응준
캄캄한 방에 앉아 있었다
그 방엔 나밖에 없었다
구석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지만
나는 그를 모른 척했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나를 향해
그가 말했다
이만하면 됐잖냐고
그만하라고
나는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이제 울만큼 다 울었다
울고 싶은 건 하나도 없다고
굳이 꼽으라면
당신밖에는 당신밖에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이 흠뻑 젖은 그가 말했다
그만하자고
나를 그만 용서하라고
/어제, 류경무
그냥 변화구를 던져 줘, 라는 말보다
내게 커브를, 이란 말이
훨씬 매력적이란 걸
……
커, 커브라고,
내게 커브를 던져 줘, 라고 말할 때
네 혀끝에 걸려 있던 바람이
어느 순간 나를 향해 밀려오듯
그렇게 내게로 와 줘,
어디로 꺾일지 모르는
마음의 둥근 궤적을 따라
커브로, 커브처럼, 그렇게,
/커브처럼, 박완호
이제야 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울지는 않는다
이미 잊힌 사람도 있는데
울지는 못한다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윤후명
캐시, 창문을 건너온 햇빛에
그림자가 내 뒷모습을 붙잡곤 울고 있소
순간의 공간으로 도피하는, 외로운 경멸
당신이 아무도 모르게 아름다웠으면 좋겠소
한 가지 색의 무지개가
이 언덕의 백야를 적실 때,
기억은 당신의 머리카락처럼 흘러갈 거요
캐시, 나는 유언하고도 살아 있소
아무도 죽지 않아서 슬프오
우리는 사랑 때문에 계속 자살하고 있소
제발, 남몰래 아름답기를......
그림자의 목을 조르고 내내 눈물 흘리시오
서로의 이승과 저승을 번갈아 건너는
참담 속에서 기다리겠소
캐시, 캐시
/폭풍이 끝난 히스클리프, 이이체
나는 이제
한 문장에서 한 문장으로
건너가는 죽음처럼
오래 슬프구나
낱말과 낱말을 건너
비문처럼 자유로웠다면
난 당신과 다르고
나는 당신을 몰랐을 텐데
/번역, 여태천
요즘 넌 어떻게 지내, 네가 나를 잘 모르듯이 지내
그런 널 북쪽 밤하늘 어디쯤 걸어둬야 내 별처럼 흔들릴까
바람의 풍장에 가지 못할 정도로 바람부는 밤이다
/바람의 풍장, 김경후
사과가 반쯤 썩었다
아픈 쪽에서 단내가 난다
썩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는 법을 배웠다
죽음의 향기로 내일은 선명할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사랑이 크게 들린다
열면 환하고 닫으면 캄캄하다
다친 어깨로 자신의 어둠 쪽으로 돌아눕는 것이다
사랑도 그러하다
/냉장고의 어법, 서안나
병이라는 단어가 병을 의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이라는 단어도 천사라는 단어도
하루만, 오직 하루만, 한결같이 좋아했던 나의 단어가
전과 다른 의미로 존재하기를
존재라는 단어가 단어라는 단어가 먼저 다른
천사와 병들어 사랑하면
존재하겠다
/뜻 다른 아픔, 김승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