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학생민주의거 :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
2·28민주운동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었다. (1960.02.28)
-대구는 대한제국 시절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함.
*국채 보상 운동 : 1907년 일어난 최초의 국민모금운동.
일본은 우리나라 경제에 간섭하면서 점점 많은 돈을 일본으로부터 빌리게 함. 그 결과 우리나라의 빚은 1,300만 원이 되었고, 지금의 돈으로 환산한다면 대략 3,300억 원 정도. 대구에 만들어진 작은 출판사, 광문사의 서상돈 부사장은 문회의 이름을 대동광문회로 바꾸는 특별회의에서 나라의 빚이 1,300만 원이 넘으니 다 함께 금연하여 돈을 아껴서 나라의 빚을 갚자고 제안하여 1907년 2월 21일, 대동광문회(광문사) 사장 김광제와 부사장 서상돈은 국채보상운동을 알리기 위해 쓴 취지서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고 이 취지서는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등 신문에 실리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됨.
www.gukchae.com/kor/gukchae/sub01.asp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Archives of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은 2017년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 imf로 인한 “1997년 금모으기 운동”의 발상지 또한 대구.
www.gukchae-archive.org/gp/page/story04
1997년 외환위기 사태로 국가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자 국민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쳤다. 대구에서는 민관협력 시민운동 네트워크인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를 중심으로 ‘제2국채보상운동’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대구시와 시민회의가 협의하여 1997년 12월 28일 금 모으기 운동을 추진해 당일 금 8kg(약 1억 5천만 원 상당)을 모았다. 1998년 1월에는 160여 명의 기관·단체장이 함께하는 ‘장롱 속 금 모으기 운동’ 간담회를 열었다.
외환위기 여파로 늘어나는 어려운 이웃을 지원하기 위해 대구시청 민원실에서는 전국 최초로 ‘이웃사랑창구’를 개설하였다.
‘이웃사랑창구’는 갑작스러운 실직 등으로 생계가 어려운 가정에 소정의 생계비와 무료치료, 쌀 무상공급, 취업알선 등의 서비스를 지원했다. 외환위기로 파산한 업체의 재고 물품이나 가정·직장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품 등을 물물교환하거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토요알뜰장터도 열어 다양한 재활용 축제를 열었다.
대구시와 대구상공회의소, 지역대학교에서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의 목적으로 기념사업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을 조성하면서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했다.
https://youtu.be/8SFqwFpI3rg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대구 금 모으기 운동은 약 10만 3천 명이 참여하면서 12톤 452kg의 금을 모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