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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타]엘리트가 평판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jpg

작성자JB|작성시간26.06.17|조회수195 목록 댓글 0

출처: https://www.fmkorea.com/9924995528

 

 

 

[ 미국 역사상 최초의 백만장자 가문: Astor ]

 

엘리트에게 평판은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권력의 일부임. 로웰, 캐봇 같은 보스턴 브라민부터 모건, 록펠러, 애스터 같은 미국 최고 가문까지, 이들이 평판을 중시한 이유도 단순 체면 때문이 아니었음.

 

권력이 작동하려면 사람들이 엘리트를 따라야 함. 그리고 그게 가능하려면 그들을 " 위에 있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 로 받아들여야 하고.

엘리트의 권위는 총과 돈만으로 유지되지 않음.  그래서 엘리트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단순히 돈을 잃는 게 아님. 자기 이름과 가문이 역사 속에서 악역으로 확정되는 것임.

 

 

 

1. 사후권력

 

[ 왕가와 교회의 도덕적 통치 ]

 

평판은 장식이 아님. 실제로 사람들이 복종하고, 협력하며, 신뢰하게 만드는 장치. 예컨대, 왕족, 귀족, 자본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믿어줘야 함.

 

" 저 사람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 " 

 

" 저 집안과 연결되면 이익이 있다. "

 

" 저 사람은 사회의 정점에 있는것이 당연하다 "

 

 

[ 록펠러 재단 ]

 

이 믿음이 쌓이면 명예가 됨. 명예는 감정적 허영이 아니라 사회적 신용이고, 그 자체가 권력의 일부임. 그래서 권력이 강할수록 단순히 생물학적으로만 살려고 하지 않음.

 

사회적 기억 속에서도 살아남으려 함. 군주는 자신을 한 개인이 아니라 왕조의 일부로 보고, 귀족은 자신을 가문의 이름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 넘기는 사람으로 봄.

 

자본가도 마찬가지임. 재단, 학교, 병원과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자기 이름을 남김. 그들에게 삶은 "내가 잘 먹고 잘 살았다"에서 끝나지 않음. 자기 이름이 후대에도 존중받아야 완성됨. 

 

 

 

[ 애스터 가문의 결혼식 ]

 

이름은 죽은 뒤에도 작동하는 사후 권력임. 재단이 그 이름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건물과 동상에서 그 이름이 반복되고, 역사책이 그 이름을 정당화함.

 

후손은 그 이름으로 혼인-인맥-사업 기회를 얻음. 그래서 권력자에게 큰 공포 중 하나는 단순히 죽는 게 아니라, 죽은 뒤 자기 이름이 저주가 되는 것임. 

 

 

[ 미국 수백년 명문가 휘트니 가문의 기부 ]

 

동상이 철거되고, 저택이 몰수되며, 교과서에서 " 건설자 " 에서 " 착취자 " 로 설명 되는 것. 후손이 자기 성씨를 자랑이 아니라 부담으로 느끼는 것. 이건 생물학적 죽음 이후 두 번째 죽음임. 육체가 죽고, 이름도 죽는것.

 

그래서 권력자는 단순 돈뿐 아니라 기억을 관리하려 함. 자신을 "단순 돈 많은 부자 또는 무력 통치 군벌" 이 아니라 " 문명적 통치자이자 사회의 후원자 " 라는 기억을 남기고 싶어한 이유.

 

 

 

2. 선망모델

 

[ 바텐베르크 가문 ]

 

미국 엘리트들이 어떤 국가들을 선망했는지 보면 이 구조가 더 잘보임. 미국은 왕 없는 젊은 공화국이었음. 오히려 그래서 역설적으로 오래된 혈통과 문화적 권위에 끌림. 

 

미국 부자들은 돈은 많았지만, 19세기 유럽 기준으로는 "신흥 졸부". 반면 유럽 왕족-귀족은 돈보다 오래된 것을 갖고 있었음. 수백년 된 작위, 고성, 역사 그리고 왕실-귀족 네트워크.

 

즉 "굳이 돈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상류층" 이라는 분위기. 미국 엘리트는 돈으로 많은걸 살 수 있었지만, " 시간은 살 수 없었음. "

 

[ 밴더빌트 가문등 미국 달러 프린세스와 유럽 귀족의 결합 ]

 

유럽 귀족은 바로 그 "오래됨" 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유럽 귀족은 그 정통성의 원천처럼 보였음. 미국 상속녀와 유럽 몰락 귀족의 결혼도 이 구조에서 나옴.

 

미국 쪽은 돈을 제공하고, 유럽 쪽은 작위, 가문, 위신 즉 상징 자본을 제공함. 미국 엘리트도 결국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우리는 단순히 돈만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도 역사, 문화, 품위를 가진 사람들이다."

 

[ 영국 롱릿 하우스 ]

 

다만 이 선망은 특정국가들에 쏠림. 미국 엘리트에게 영국은 단순 외국이 아니었음. 같은 영어권에다 귀족 작위, 사교 클럽, 컨트리하우스와 대영제국의 이미지가 있었음. 그래서 영국은 상류사회 운영 모델이었음.

 

어떻게 상류층답게 행동하고, 조용한 권위를 유지하는가. 이 질문의 해답이 영국이었음. 프랑스는 다른 역할이었음. 프랑스는 상류 취향의 모델. 

 

[ 프랑스 귀족 코스플레이한 뉴욕 최상류 사교계 인물들: 이들은 당시 뉴욕의 핵심 상류층 ( crème de la crème ) 으로 여겨졌음 ]

 

예술, 건축, 회화와 살롱등 상류 취향은 프랑스의 언어로 정의. 영국이 "누가 상류층인가" 를 보여줬다면, 프랑스는 "상류층은 무엇을 세련되게 여기는가"를 보여줬음.

 

독일은 사교 선망보다는 지적 권위였음. 대학, 과학, 철학 그리고 행정과 군사. 미국 엘리트가 "어떻게 강한 대학과 산업국가를 만들 것인가" 를 볼 때 독일을 참고했음. 

 

하지만 독일은 영국처럼 상류사회 모델도 아니었고, 프랑스처럼 취향의 중심도 아니었음. 다른 유럽 국가들의 비중이 낮았던 이유도 여기서 나옴.

[ 웅장미는 덜한 네덜란드 최고 부촌: Bloemendaal ]

 

다른 유럽국가들은 왜 크게 참조가 되지 않았냐? 하면 여기서 엘리트들이 어떤 권위를 중시하느냐를 알 수 있음.  이탈리아는 고전문화의 원천이었지만, 1900년 세계 상류 질서의 중심은 아님.

 

스위스는 휴양, 금융, 안전한 피난처로 중요했지만, "우리가 저런 귀족사회가 되고 싶다"는 선망의 중심은 아니었고. 오스트리아는 궁정, 음악, 합스부르크의 상징이 있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너무 쇠퇴한 제국 이미지가 강했음.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상업과 산업에서 중요했으나, 미국 올드머니 최상류 정통성 상상력에서는 영국-프랑스보다 약했음. 네덜란드는 너무 시민적 문화였고, 벨기에는 영프독 사이 중간국. 둘 다 체급이 작다는 문제.

 

19세기말 - 20세기 초 덴마크 코펜하겐 ]

 

스페인은 한때 거대한 제국이었지만, 19세기 말 미국 엘리트에게는 미서전쟁 이후 몰락한 구제국. 북유럽은 안정, 교육, 사회개혁 면에서 존중받았지만, 세계 제국, 금융 중심, 문화 수도의 이미지는 약했음.

 

그래서 존중은 받아도 선망의 중심은 아니었고. 결국 미국 엘리트가 선망한 것은 단순히 힘이 아니었음. 강대한 힘, 오래된 전통, 문화적 권위. 이 세 가지가 결합된 모델.

 

미국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아름답고, 자연스러우며, 오래되고 강대한것" 으로 보이게 해주는걸 선망했단 소리. 그래서 사회 모델은 영국, 문화 취향은 프랑스, 지적 모델은 독일이었음.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 ]

 

서유럽 엘리트는 미국과 달랐음. 미국이 유럽을 "닮아야 할 중심 문명" 으로 봤다면, 서유럽 상류층은 이미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봤음. 

 

다만 그 안에서도 기능별 기준은 있었음. 프랑스는 건축과 문화의 기준, 영국은 제국과 규범의 기준, 독일은 대학과 군사의 기준. 

 

러시아 귀족은 특히 프랑스를 강하게 선망했는데, 프랑스어와 파리 문화는 그들에게 "우리가 야만적 동방 귀족이 아니라 유럽 문명권의 일부다"라는 증명에 가까웠음.

 

 

 

3. 자연질서

 

이 모든 것은 엘리트 권위가 상징으로 작동하기 때문. 엘리트는 대중이 쉽게 만나지 못함. 대중은 그들을 직접 보기보다 신문, 재단, 초상화나 박물관 또는 역사책을 통해 봄. 그러면 그들은 한 개인이 아니라 상징으로 보임.

 

록펠러는 석유와 재단, 모건은 월가와 금융, 애스터는 뉴욕 올드머니와 부동산 귀족, 캐봇과 로웰은 보스턴 브라민과 하버드 문화귀족. 이런 이름은 단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질서처럼 작동함.

 

엘리트 권위는 조용함. 재단이 대학과 문화기관을 움직이고, 신문이 여론을 움직이며, 정치 후원이 정당을 움직여 정당이 제정하는 법을 통해 경찰이 질서를 유지함.

 

 

사람들은 직접 명령받지 않아도 "저쪽이 위다" 라고 느끼고 알아서 맞춰줌. 이게 기존 권위의 규칙임. 엘리트의 권위는 자연스러워 보일 때 가장 강력.

 

사람들이 이렇게 믿어야 함:

 

" 부자는 위에 있는 게 자연스럽다. "

 

" 명문가는 존경받는 게 자연스럽다. "

 

" 대학과 언론은 엘리트 언어로 움직이는 게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자연스러워 보이는 권위는 저항을 만들지 않기 때문. 권력이 매번 "내가 권력자니 복종해라" 고 외쳐야 한다면 이미 약한 상태임. 진짜 강한 권위는 사람들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따르게 만듦.

 

즉, 지배가 명령이 아니라 상식처럼 작동하는 것. 사람들이 "왜 저들이 위에 있지?" 라고 묻지 않게 만드는것. 의문이 생기지 않으면 저항도 약함.

 

 

[ 19세기 말, Astor 가문이 주도하던 뉴욕 사교계에서 핵심 상류층으로 인정받는 인원을 가리키던 표현: The Four Hundred ]

 

그래서 엘리트는 자신을 단순 부자로 보이게 하지 않음. 재단 운영, 대학 기부, 그리고 절제된 말투와 몸짓.

 

이 모든것이 합쳐져서 "저 사람은 위에 있을 만 하다" 는 느낌을 만듦. 이 때 권위는 폭력처럼 보이지 않고 질서, 품격, 상식처럼 보임. 

 

 

 

4. 서사반전

 

그래서 엘리트에게 가장 무서운 건 단순히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권위가 더 이상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 권위가 자연스러워 보이면 사람들은 복종을 복종이라고 느끼지 않음. 

 

그런데 그 자연스러움이 깨지면, 기존 질서는 갑자기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구조"로 보이기 시작. 예컨대,  대자본가와 올드머니는 보통 자기 자신을 이렇게 설명함. 

 

" 우리는 산업을 만들고 나라를 발전시켰다. " " 대학, 병원, 박물관을 후원했다 " 즉 " 국가의 번영을 만들었다. " 라고.  이 서사가 유지되면 엘리트는 단순 부자가 아니라 문명 건설자가 됨.

 

 

 

그러나 이 서사가 뒤집히면 완전히 다른 이름이 붙음.  " 산업 건설자였나, 독점 수혜자였나? " " 자선가인가, 착취자인가? " "문명 후원자였나, 악명 세탁자였나? " 이 질문들이 위험한 이유는, 엘리트가 위에 있을 자격 자체를 흔들기 때문.

 

권력은 정당성이라는 접착제로 오래 지속됨. 평판이 깨진다는 건 단순 이미지 손상이 아니라 통치 정당성을 공격받는 것임. 그래서 혁명이 무서운 것.

 

혁명은 엘리트의 서사를 뒤집음. "저 사람은 위에 있을 자격이 있는 게 아니라, 착취와 세습의 덕을 보았을 뿐이다." 로.  예전에는 성씨와 가문이 기회의 문을 열어줬음. 

 

 

[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프랑스 왕가 ]

 

그러나 혁명이나 체제 변경 이후에는 그 이름이 감시, 몰수, 처벌의 표식이 됨. 즉 엘리트를 보호하던 방패가 저주로 바뀌는 것임

.

엘리트 권위를 강력하며 정당하다고 여기는 대중의 해석권이 흔들리면, 돈, 법, 군대가 있어도 미래의 권력처럼 보이지 않게 됨. 혁명은 가능성의 증거를 만들기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 이 질서는 절대 안 바뀐다. " 또는  저항해도 소용없다. " 고 생각함. 그런데 엘리트가 약점을 보이면 생각이 바뀜. "무적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질서도 가능하다." 로. 바로 이 순간이 엘리트에게 가장 위험함.

 

 

상징적 패배는 "무엇이 가능하고 누가 미래인가" 라는 감각을 바꿈. 그래서 엘리트에게는 상징적 패배가 때로 군사적 패배보다 더 위험함. 

더 굴욕적인건, 엘리트가 천박하다고 경멸하던 혁명가 권위가 실제로 대중을 움직이는 그 자체. 엘리트는 권위가 자기들이 수백 년 동안 쌓은 재산, 예절, 제도에서 나온다고 믿음.

 

그런데 전혀 다른 방식의 권위가 사람들을 움직이면, "권위는 우리 방식으로만 만들어진다" 는 믿음이 깨짐. 그래서 혁명은 단순히 재산을 빼앗는 사건이 아님.

 

 

[ 짓밟히는 왕가의 상징 ]

 

이름을 바꾸고, 기억을 바꾸며, 권위의 원천을 바꾸는 사건임. 그래서 혁명은 단순히 재산을 빼앗는 사건이 아님.  자연질서처럼 보이게 만든 권위가, 역사 속에서 하나의 지배 장치로 재분류되는 순간.

 

기억과 평판이 훼손되면, 자기 가문이 "위에 있을 자격이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심판받아야 할 착취자"가 됨. 이러면, 단순 정권이 뺏긴것과 달리 후대 권력 복원이 힘듬. 그래서 역사적 오명을 두려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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