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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타][BGM] 너는 사라질 수도, 떠날 수도 없다

작성자담넘은냥이|작성시간17.01.07|조회수1,774 목록 댓글 2





이윤학, 오리



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 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 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 내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난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난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지
난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이이체, 실험실을 떠나며



나는 시제를 잃어버린 체온이 가엾다

지워진 이름 떄문에 선명한 혈통의 기억

당신이 어깨를 떨며 잠들 때마다 자유로워지는
생애 몇 번째의 졸음들
남몰래 혼혈아를 낳고 싶다

썩은 내를 풍기며 눈을 뒤척여야 할 시간

추운 주머니 속을 나는 부드럽게 헤맬 것이다

아주 먼 옛날 훔쳐 읽은 일기를
페인트칠이 벗겨진 바닥에 피로 필사하던

울지 않는 당신에게 나는 위험한 기계를 선물한다

충혈된 죄의 수면이 얕아서
다른 눈과 한곳에서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짐승들이 내 뒤에서 통곡한다

어떤 피를 거슬러 올라가야 차가운 여름이 있을까

잡초들이 이름도 없이 무성한 교외의
허물어져가는 작은 예배당

당신의 눈에 숨겨진 나의 눈을 되찾아가겠다

내 체온을 받아주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다







이운진, 도망가는 사랑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어떤 것도 상속받지 못해서

팔도 없이 껴안고 손도 없이 붙잡으려 했어


빛에서 어둠만을 도려낸 듯

검정보다 검은 네 얼굴을

나는 닫힌 눈꺼풀 안의 눈으로만 보았지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벼락이 사랑스러운 이유만큼 너를 보듬고 싶었는데


강물이 음악이 된 그때 그날

나의 눈물과 봄과 내일을 주고서라도

누군가의 두 팔을 빌려왔더라면

작은 가슴이라도 빌려왔더라면


메마른 네 그림자를 가질 수 있었을까


더 이상 다르게 올 수 없는 너를

우주처럼 슬프고 자정처럼 아름다운 너를


빗방울 지는 소리에 묻지 않아도 되었을까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아직 너에게

나를 잊을 권리를 주고 싶지 않은데








권영상, 하루살이와 나귀




해 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줄래?

하루살이가 나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안 돼

내일도 산책 있어

모레, 모레쯤이 어떠니?


그 말에 하루살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섭니다


넌 너무도 나를 모르는구나








김주대, 오랜 동거



눈이 너의 따스한 피부를 만진다
눈을 통해 너의 까슬까슬한 슬픔과
아득한 넓이를 감각한다
너를 본 감각들은 고스란히 몸에 쌓여
몸이 움직일 때마다 달그락거리기도 하고
출렁거리기도 한다
너를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길을 걸을 때
몸 안의 네가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는 것이다
너는 어쩔 수 없이 눈으로 들어와
갈 데 없이 내가 된 감각
습관화된 나다
이것은 집착이 아니라 몸이 이룩한 사실이다
너는 사라질 수도 떠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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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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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Pedro pascal | 작성시간 17.01.07 오리 너무 좋다... 글 고마워!
  • 작성자삐에로화이바 | 작성시간 17.01.08 오리 좋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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