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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생정

[후기]힘센 팔만 있다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달고나 커피 만들다 빡친 후기

작성자맥심 화이트 골드|작성시간20.03.03|조회수113,958 목록 댓글 132

(미방)


막생 처음이라 떨리네!
요즘 핫하다는 달고나 커피 만드는 방법을 가져왔어.
달달하게 맛있더라고. 글이 기니까 시간 없는 게녀들은 4장만 읽어줘.


제목 : 인간의 분노는 어디서 오는가


[목차]

1. 작가의 말

2. 본문
제 1장 분노의 서막
제 2장 에디슨의 고충
제 3장 불편한 진실은 보기 좋은 포장 속에 감춰져 있다
제 4장 돼자뷰

3. 글을 마치며



———————————-

1. 작가의 말



“사람은 거북이처럼 철저하게
자기 자신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어야 해.”

-데미안 / 헤르만 헤세-



거북이처럼 철저히 이불 속으로 파고들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날따라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하루종일 내면의 소리, 내면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어두운 강물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러자 아무런 의미 없이 섭리대로 흘러가던 강물의 조각이 나에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

아, 그때의 나는 왜 그 말을 흘려보내지 않았을까.

모든 위대한 발명은 엉뚱함에서 온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모든 위대한 발명은 “무료함”에서 온다. 할 짓이 없으니 뭐라도 해보다 우연치않게 얻어걸리는 것이었다. 달고나 커피도 그런 것이었다.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으니 커피를 400번씩 휘젓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애초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각설하고, 뭐가 되었든 달고나 커피의 외관은 꽤 훌륭했으며 그 후기들 또한 나쁘지 않았다. 집에만 있을 바엔 뭐라도 하자 싶었던 나는 2020년 3월 3일 pm 18:30, 카누 두 봉지를 뜯게 된다.




/



제 1장 [분노의 서막]


준비물 (1인분 기준)

: 카누 2봉지 / 설탕 (사진은 마스코바도 설탕)


난 카누 두 봉지와 설탕, 그리고 뜨거운 물을 준비했다. 1인분의 적당량은 카누 두봉지 + 설탕 네 큰술 + 뜨거운 물 1.5스푼이다. (물을 많이 넣으면 묽어져서 커피를 더 넣어야 하는데 그럼 매우 쓴 맛을 내니 주의하라.)

후기를 읽어보니 만들다 실패했다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하지만 ‘고작 커피 두 봉지인데 실패하면 버려도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해선 안 된다. 각각 0.9g으로 총합 1.8g에 달하는 무게이다. 누군가 생각하기엔 가냘프고 하찮은 무게이지만 우린 누구나 1.8g인 시절이 있었다. 커피 함부로 버리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모든 재료를 넣고 총 50번 쯤 저어준 모습이다. 달고나는 커녕 커피죽이 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녕 내 가녀린 팔뚝으로 400번을 저어야 하는 것인가?’

정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40만년 전, 도구를 처음 만든 ‘손재주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인류인 [호모 하빌리스].
호모 하빌리스가 다이소 미니 전동 거품기를 만들었을리는 없지만 대충 그 후손이 만든거니 일맥상통이다. 난 설레는 마음으로 건전지를 넣어주고 거품기를 켰다.


효과는 굉장했다. 넣기만 해도 벌써 저렇게 거품으로 색이 연해진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2000원으로 내 팔뚝 보호와 달고나 커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


제 2장 [에디슨의 고충]




1)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은 끈기가 약하다는 것이다.”
- 토마스 에디슨-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의 명언이다. 무슨 일이든 끈기있게 끝까지 밀고 나가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아주 좋은 말이다. 하지만 가끔 ‘전 끝까지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왜 이래요?’ 라는 사람들이 나온다. 끈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당신이 설정한 목표이다. 애초에 목표가 후지게 설정되었으니 결과물이 좋을리 만무하다. 그런 사람들은 목표를 다 이루고 나서야 그 목표가 후지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게 나라는 걸 이때까진 깨닫지 못했다.


거품기를 개시한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스프링이 풀려버렸다. 여러번 고쳤지만 전원을 켜는 순간 다시 저런 상태가 되어버렸다. 역시 싼 건 이유가 있다 시⃫발⃫.

나는 생각했다. 여기서 포기하고 커피 1.8g을 날리느냐, 아님 끝까지 밀고 나가서 토마스 에디슨이 되느냐.
내 선택은 후자였다.


숟가락으로 100번 정도 저어 준 뒤의 모습이다. 말이 백번이지 150번은 저은 것 같다. 모양은 점점 잡혀갔지만 내 승모근은 그렇지 않았다. 오른팔이 점점 아파왔다. 하지만 에디슨의 위대한 발명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았다.



300번 정도 저어 준 후의 모습이다. 조명 때문인지 150번과 별반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 그건 조명 탓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도 별반 차이가 없다.

‘이거 되는거 맞나.’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에디슨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과정을 견뎌냈기에 발명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아자아자 힘내자. 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때 옆에서 날 한심하게 바라보던 엄마가 머랭치는 것 처럼 쳐보라는 조언을 해줬다. 이때까지 그렇게 했지만 엄마 말을 들으면 왠지 더 잘 될 것 같아 알겠다고 대답했다. 온전히 달고나 만들기에만 집중하면 빡칠 것 같아 유튜브 영상 하나를 틀어놓고 작업했다

450번 정도 쳐 준 후의 모습이다. 드디어 꾸덕꾸덕해지면서 뭉쳐있던 설탕이 풀려 시럽 속으로 녹아들었다. 팁을 하나 주자면 저렇게 좃만한 컵에다 숟가락으로 하지 마라. 수동 거품기로 큰 볼에서 쳐주는게 훨씬 더 거품이 잘 난다. 그리고 한쪽 방향으로 저어 주는게 좋다. 내 승모근이 아까보다 2배 쯤 솟아 오르고 팔뚝이 조금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드디어 달고나 커피를 먹을 수 있구나! 역시 모든 건 포기하면 안 돼!


그리고 500번. 드디어 달고나 시럽이 완성되었다. 나도 에디슨이 되었다는 생각에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내가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토마스 에디슨은 달고나 라떼 같은걸 만들지 않았다.



/



제 3장 [불편한 진실은 보기 좋은 포장 속에 감추어져 있다.]

드디어 시럽이 완성이 되었다. 이때부턴 기뻐서 필터로 찍었다. 이건 단순한 시럽이 아니다. 내 20분 간의 의지와 끈기와 고통이 들어간 인생 요약 축약본과도 같은 것이었다.

예전에서 선물받은 빈티지 유리잔을 꺼냈다.
예쁘다.

♡゚・。♥。・゚♡゚・。♥。・゚♡゚・。♡゚・。♥。・゚♡゚・。♥。・゚♡゚・。 ♡゚・。♥。・゚♡゚・。♥。・゚♡゚・。♡゚・。♥。・゚♡゚・。♥。・゚♡゚・。
하트가 귀엽다.

우유를 부어준다. 있어보여서 움짤로 만들었다.

그리고 내 인생 20분 축약본을 넣었다. 시럽이 무거워서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둥둥 떠올랐다.

꽤 그럴싸하다. 컵 빨인진 모르겠지만 예쁘다.

위에서 봐도 예쁘다. 인스타처럼 퐁신퐁신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쁜 잔에 예쁜 색감에 좋은 향기까지. 보기만 해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난 떨리는 마음으로 시럽을 우유와 섞은 뒤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모든 불편한 진실은 보기 좋은 포장을 방패로 숨겨져 있다고.



/




제 4장 [돼자뷰]


달고나 커피가 맛이 없나?
확실히 말해두겠지만 맛이 없는건 전혀 아니었다.
달달하고 부드러웠으며 내 입맛대로 달기를 조절 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하지만 이 커피가 내 혀 끝에 닿았을 때, 기억 저 편에 숨겨져 있던 돼지의 파편이 2)통렬히 외치는 소리를 난 듣고야 말았다.


- 이건 맥심 화이트 골드야...!


그랬다. 이건 맥심 화이트 골드였다. 화이트 골드와 다른 점을 찾자면 달고나 커피가 좀 더 달콤했고 텁텁하지 않으며 만드는 데 시간이 열배쯤 더 걸리며 분노와 고통도 함께 수반된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난 깨달았다.

‘내가 후진 목표를 설정했구나...’


오해할까 말하지만 달고나 커피가 후지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난 그저 내 20분의 고통이 슬펐을 뿐이다.

포기는 좋은 정신상태의 어머니다. 이걸 맨손으로 만들어 먹으려면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거품기가 있다면 그대 당장 주방으로 달려가 달고나 커피를 해먹어라.



/



3. 글을 마치며



맥심 화이트 골드 홍보 아님.




-끝-



/


1) 토마스 에디슨의 명언. 끈기가 없는 사람들을 향해 매서운 칼을 던진다. 하지만 끈기가 없기에 인간인게 아닐까. 필라멘트도 끈기 없게 타다가 끊어지잖아요;

2) 통렬히 : 몹시 날카롭고 매섭다


문제시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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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멋쟁이 토마토! 작성시간 20.03.0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당신 천재야,,, 필력 천재,,,
  • 작성자샤브샤브부대찌개 작성시간 20.03.10 필력미쳤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작성자찹쌀도나스믹스 작성시간 20.03.10 ㅋㅋㅋㅋㅋ아 글개웃기넼ㅋㅋㅋㅋㅋ지니어스야
  • 작성자잠들어 버릴 거예요 난 너무 졸려서, 작성시간 20.03.10 아 진짜 개웃겨 미친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𐌅
  • 작성자치킨은 사랑입니다12 작성시간 20.03.12 필력최고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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