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은우리나라 역사상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합니다.
그중에 첫째가
화성의 동쪽 큰 문인 창룡문(蒼龍門)
석벽에는 축조 당시 건설기술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즉 공사의 실명제인 셈이지요.
정조는
땅 없는 농민도 농사를 질수 있게 하고
기술 가진 이들도 대접받는 세상을 꿈꿨다합니다.
해서
화성은 정조가 생각한 개혁을 실험하는 모티브가 되었다합니다.
기술자들의 이름을 새기는 ‘공사 실명제’도
그런 의도중의 하나라합니다.
당시에는 겨울에 정3품 당상관 이상이나 쓰던
털모자를 기술자들에게도 나눠주기도 하고
화성을 돌다보면 군사들들을 지휘하는
동장대(東將臺) 앞에는
말을 타고 내릴때
딛는 디딤돌인 하마석(下馬石)이 있는데
이 역시
정조가 말을 타고 내릴 때에 쓴 디딤돌로서
정조의 애민 사상을 엿볼수 있는 징표입니다.
공부시절
화성 답사를 갔을때 그 디딤돌을 목격하고
참 많은 것을 생각케 했습니다.
당시에는 노비를 땅에 엎드리게 하고
노비의 등을 밟고 말에 오르곤 했는데
정조는 ‘나는 평생 미천한 마부에게라도
이놈 저놈 해본 적이 없다’했습니다.
해서 정조는 노비제도 자체를 없애려 합니다.
그 노비제를 혁파하기 위해
노론·소론 합의를 이끌어냈는데
시행하기 6개월전에 정조가 운명하고 맙니다.
참으로 애석하지 않은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검증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런 과감한 개혁 때문에
적이 많아서 적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도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가 아닌듯도합니다.
유례없이 일찍 찾아온
더위로 모두가 몸살아닌
몸살을 앓는 듯 합니다.
드시는 것은 다 좋은 데
딱 하나 더위만은 드시지 않길 기원드립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