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천야록에 실린 설화 한편입니다
임오군란으로 명성황후(민비)가 충주로 피란할 때
중궁(민비)이 경기 광주 땅을 지나다가 길가에서 쉬고 있는데,
어떤 촌 할머니가 와서 보고 피난 가는 부녀인 줄 알고
혀를 차며 말하기를,
중전이 음란하여 이런 난리를 빚어내어
아씨들을 여기까지 달아나게 하였군요 합니다.
중궁은 마음속으로 기억해 두었다가 환궁한 후에
그 마을을 온통 없애버렸다고하는 기록이 매천야록에 있습니다.
당한 일은 반드시 앙갚음하고야 마는
민비의 성품을 잘 드러내는 일화로 매천선생은
지적하였다합니다.
반면 피란길을 도운 두 명의 가마꾼에게는 큰 벼슬을 내렸는데
이들은 일자무식이었지만,
관직이 각각 전라병사와 낙안군수에까지 올랐다합니다.
대원군의 섭정이 끝나면서 시작된 고종의 친정체제는
민씨 세도정치의 다름이 아니었다합니다.
민비가 정치에 개입하면서
중앙 요직은 물론 지방 수령에 이르기까지
좋은 자리는 모두 민씨들이 차지하였음은 매천야록에 잘 나와있습니다.
황현 선생은 민씨의 세도에 대해
“명성후는 자신 집안 돌보기에 빠져,
성이 민씨라면 가깝고 멀고를 따지지 않고
한결같이 보았다”고 꼬집었다합니다.
나도 그때 사람이면
한자리 했을터인데
연이 있냐구유?
지 옆지기가 여흥민씨 30대 손이라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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