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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화백 (Lee sang won 1935- , 대한민국)
동해인 (The East sea people) - 연작 (連作)
시간과 공간 - 연작 (連作)
마대의 얼굴 - 연작 (連作)
군화 (Military boots) - 연작 (連作)
영원의 초상 (The Portrait of Eternity) - 연작 (連作)
향 鄕 Home
향 鄕 Home
연 連 Relation
연 連 Relation
풍년 Fruitful year
鄕 Fragrant
해변의 풍경 Scape of Beach
해변 Beach
향 鄕 Home Nothing But Love, Judyesther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화악지암길 99 이상원 미술관
이상원 화백은 1935년 강원 춘천 신북읍 유포리에서 태어났다. 소양강댐 근처 오지 마을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농사 외에는 다른 생업을 꿈꿀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그는 화가의 꿈을 키웠다.
고교를 다니던 중 6·25전쟁이 발발해 그는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막노동을 시작했는데, 그가 갖고 있는 재능은 그곳에서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었다.
그는 2년 정도 영화 간판을 그렸는데, 정점은 영화 ‘벤허’ 그림이었다. 당시 대한극장에서 ‘벤허’를 개봉하면서 다른 극장 소속인 그에게 간판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등장인물이 많고 웅장한 장면을 제대로 그리려면 많은 노력과 재능이 필요했다.
1970년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이상원 화백이 그린 영정이 전시됐다. 그의 그림 실력은 미8군에 초상화·성화(聖畵)를 납품하는 양모 씨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특히 성화 작업이 큰돈이 된다며 설득하는 통에 그는 2년 만에 간판화가 생활을 그만뒀다.
이후 그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 외국 국가원수급 인사들의 초상화 등을 제작하면서 상업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당시 알게 된 노산 선생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어느 날 노산은 그에게 ‘厚岩藝術世界(후암예술세계)’라는 휘호를 써주면서 순수 미술을 해보라고 권했다.
이후 이 화백은 독학으로 전통 수묵화를 연마했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갔다. 1975년 나이 마흔에 그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시간과 공간 속으로’라는 작품을 출품해 입선했다. 이 작품은 대상 부여 여부를 두고 심사위원 간에 큰 논쟁거리가 됐다. 1978년엔 제1회 동아미술제에서 동아미술상을, 중앙미술대전에선 특선을 거머쥐었다.
이 화백은 수묵을 기본으로 하고 유화물감을 함께 사용하면서 자신만의 극사실주의 기법을 만들어갔다. 최초의 개인전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86년 서울갤러리에서 열렸다. 이때 그의 대표작이 된 ‘시간과 공간’ 연작, ‘마대의 얼굴’ 연작을 작업하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초상화가로서의 그의 재능이 그대로 반영된 ‘동해인’이라는 인물 연작을 내놓았다. 이런 화풍은 이후 인도 바라나시 여행에서 길어 올린 ‘영원의 초상’ 인물화 연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국내 화단보다 해외 화단에서 더 반응이 좋았다. 1998년 연해주 주립미술관 초대전을 시작으로 프랑스 세인트 살페트리에 성당 전시회(1999년), 국립러시아미술관 전시회(1999년), 2001년 중국 상하이미술관 초대전 등이 한국 언론에 소개되면서 ‘입지전적 독학 화가’로 다시 조명받았다.
"국립 러시아 미술관에서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나라를 위해 뭔가 큰일을 하는 태몽을 꾸었다고 했어요.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그곳에서 생존 작가로는 처음으로 제 작품을 전시했으니 국가 외교에 도움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미술관은 저의 자동차 바퀴 그림을 구입했어요."
이 화백은 그동안 줄곧 사람들의 시선에서 소외된 쇠락하고 버려진 대상을 그림 소재로 삼아왔다.
글 자료, 신동아 2019년 6월호, 요약
이상원 화백은 자신만의 한국적 사실주의 화풍을 이룩한 화가이다. 1935년에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한 이상원화백은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을 선택하여 순수회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상원화백은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근대화를 경험하였다. 그가 걸어온 삶의 행로는 다수의 민중이 밟아온 20세기 한국사의 굴곡 그대로이다. 이상원화백의 작품은 산업화와 자본화의 화려함 이면에 놓인 삶의 진실을 밝히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빛바랜 노동자의 작업복을 닮은 작품은 빛나는 땀과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상원화백은 상업미술가-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뒤로 한 채 1970년대 초기에 순수미술을 시작하였다. 작업의 시작은 수묵산수화였으나 곧 자신만의 소재와 주제를 찾아 나선다. 재료에 있어서는 천위에 유화물감과 먹을 사용하다가 이후 장지위에 유화물감과 먹을 사용하는 것으로 변화한다. <시간과 공간>, <마대의 얼굴>, <해변의 풍경> 등은 초기 극사실적인 화풍으로 그려진 연작이다. 이상원화백은 대한민국 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을 통하여 미술계에 알려졌다. 늦깎이 무명 독학화가로서 공모전의 굵직한 상을 수상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순수회화를 시작한 지 10여년이 지나고 50세가 넘은 나이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1986년). 이후 이상원화백은 활발하게 전시회를 개최하게 된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연작은 인물화이다. 1990년대 초반에 제작하기 시작한 <동해인>연작은 한국 민중의 험난한 삶과 불굴의 의지를 드러낸 작품이다. 1990년도 후반부터 2000년 초반에는 국립러시안뮤지움, 북경미술관, 상하이미술관 등 해외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개최한다. 종이위에 그린 수묵화이면서 극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은 해외의 전문가와 관람객으로부터 신선하면서도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1953년 십대의 나이에 화가의 꿈을 안고 상경하였던 화백은 2000년에 춘천으로 다시 귀향한다. 북산에 작업실을 마련한 이후 <영원의 초상> <향> <연> <동해> <대자연>등의 연작을 제작하였다. 삶의 치열함과 고단한 여정을 거침없이 표현하였던 이상원화백은 고향으로 돌아온 뒤 점차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세계에 대한 기쁨과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글 자료, 이상원 미술관 작가 소개에서 작품 자료, 이상원 미술관
2023, 5, 11, Cream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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