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장, 김형우는 마음이 참으로 푸근해진다.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이 되고 푸근해지는 것이다. “민희씨! 일찍 들어가지 않아도 되겠죠?“ ”왜요?“ “기왕에 이렇게 만났으니 어디 근사한 곳에 가서 시간이라도 보내고 모셔다 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야 상관없지만 형우씨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아들 며느리는 제가 언제 집에 들어가고 나가는 줄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혼자 사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요.“ “그렇지 않지요. 자식들이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게 왜 신경을 쓰지 않겠습니까?“ ”자식이란 그저 울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있다는 것만 마음이 든든할 뿐이지요.“ ”저는 자식을 가져보지 못해서 그런 마음을 잘 모르겠지만 부모님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두 분이 다 생존해 계신가요?“ ”네! 이제 거의 구십이 다 되어 가시는데 두 분이서만 살고 계시지요.“ ”장수하시는 집안인 모양입니다.“ ”글쎄요? 두 분 모두 형제분들은 생존해 계신 분들이 없으신데 우리 부모님만 아직도 건강하신 것을 보면 아마 저희남매들이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양쪽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시기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외아들로 살아왔지요. 어머님마저 벌써 십 여 년 전에 고인이 되시고........“ “그러셨군요. 그러고 보면 저희 오남매는 복을 타고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제분들도 적지 않으시네요.” “네! 제 위로 언니 한사람과 남동생 둘, 그리고 막내로 여동생이 있습니다. 모두들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저만 늘 죄인처럼 제대로 사람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지요.“ ”민희씨가 어때서요? 제가 보기엔 좋아 보입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사람이 보기 좋지는 않지요. 또한 그나마 있던 전 재산이던 집마저 날려버리고 말았으니 부모님 뵙기도 죄스럽고 형제들 보기에도 민망스럽습니다.“ 민희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간다. 김형우는 그런 민희의 말을 들으면서 안쓰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어느 사이에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해 나가고 있다. 김형우 자신 또한 아들과 며느리들에 대한 섭섭함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속을 털어 놓으며 급하지 않게 운전을 해 나간다.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는 것인가 서로 편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형우는 차를 동해안쪽으로 몰아간다. “우리 밤바다를 봅시다.” “네!” “배가 고프신가요?” “아니요!” “그럼 동해안으로 가서 싱싱한 회를 먹읍시다. 생선회 먹을 줄 알지요?“ ”네! 아주 좋아합니다.“ “잘 되었습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강릉에 가서 회를 먹고 다시 돌아온다면 그다지 늦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민희씨! 누가 사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아무래도 민희씨보다는 제가 경제적인 것이 조금은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 드리고 싶은 마음이고요.“ “번번이 그러시면 미안해서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지요.”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시고 우리 이렇게 종종 만나서 서로의 가슴에 쌓여 있는 말들을 나누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가고 싶은 곳도 가면서 좋은 친구로 지냅시다.” “참 좋으신 말씀입니다. 허나, 제가 그런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살아가려면 무엇인가를 해서 돈을 벌어야지요.“ “그야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서두르지 말고 방법을 연구해 봅시다. 내가 도와 줄 일이 있으면 도와드리고 싶고요.“ “말씀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오지 않았기에 아마 도움을 받기가 무척이나 어려울 듯싶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여린 듯 하면서도 강한 면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착한 성품이기도 하고요.“ “착하지 못합니다.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욕심쟁이지요.“ ”그런 것이 없으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지요. 누구나 다 그런 욕망들이 있기에 살아가는 것에 희망을 걸곤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린 대화가 잘 통하네요.“ 김형우는 문득 자신이 평소보다 상당히 많은 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말을 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상대가 여자인 것이다. 죽은 아내하고도 별 말을 나누지 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없이 만나서 결혼을 했으니 살아가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랑한다는 감정보다는 의무감으로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자식을 낳고 미운 정 고운정이 들기도 전에 떠나버린 아내였다. 아내가 떠나고 난 이후에도 보고 싶다는 그립다는 감정도 가져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삶이 그저 그런 것인가 보다 하면서 살아온 평생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강릉 경포바닷가의 횟집에 마주 앉는다. 이미 날은 어두워진 후였으나 의외로 생각보다 손님들이 있는 곳이다. “술을 한 잔하시지요?” “운전을 해야 하는데 술을 마실 수 없지요.” “운전은 제가 해도 되니까 술을 드세요.” “아, 운전을 하실 줄 아십니까?” “네! 차를 없앤 것이 일 년 정도 됩니다.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담이 있고 또 그다지 필요하다는 생각도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차가 없으면 어디를 가시더라도 상당히 불편하지요. 친정에 가시더라도 차를 몇 번을 바꾸어 타셔야 하는 것인데 힘들지요.“ ”네!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은 자기의 수준에 맞추어서 살아야지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상당히 경제적이니까요.“ 김형우는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소주를 마실 줄 모르는 민희는 위해서 맥주 한 병도 주문하지만 민희는 한 잔만 마시고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자신이 운전을 한다는 생각을 하고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 성품이기도 하다. 김형우는 반병을 마신다. 그리고 어두운 바닷가를 거닌다. 깊은 가을이라 조금을 한기가 도는 듯 춥다. 김형우는 자신의 잠바를 벗어 민희의 어깨에 걸쳐준다. “춥지 않아요. 공연히 그러시다 감기들면 어떻게 해요?“ 민희는 옷을 김형우에게 건네준다. “아닙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전혀 춥지 않아요. 괜히 며칠 고생을 하고 오신 민희씨가 감기라도 들면 어쩝니까? 찾아가서 병수발을 들 수도 없고 오히려 내 마음만 더 애가 탑니다.“ 김형우는 다시 자신의 옷을 민희의 어깨에 걸쳐준다. 그리고 그들은 어두운 백사장을 손을 잡고 거닐어 본다. 참 편안한 마음이다. 세상의 근심걱정이 모두 날아가 버린 듯 마음이 가볍다. “민희씨! 이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이듭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가는 세월 잡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민희씨를 만나면 만날수록 참으로 곱고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린 듯 보이면서도 강한 면이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착한 성품이 돋보입니다.“ “그렇게 좋게만 봐주시니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겠는데 왠지 두렵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저에 대한 모든 것이 실망으로 이어질까 두려워요.“ “아마 그런 일 없을 것입니다. 한 기업을 이끌어 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다루어 보고 만나곤 했지요. 사람 보는 눈은 거의 정확하리만큼 들어맞곤 합니다. 지금 제가 보는 민희씨도 거의 맞을 것입니다.“ “착한 것이 아니고 참으로 바보지요. 지금까지 바보처럼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남에게 모진 소리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남과 다투는 일도 겁나서 해 보지 못하고....“ ”그것이 성품이 온순하고 착해서 그런 것입니다. 악착스러운 사람보다 얼마나 부드럽고 좋습니까?“ “........................” 김형우는 민희의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면서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느낌이 든다. “이제 그만 돌아가지요.” 민희는 김형우가 행여 감기라도 들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재촉한다. “그럽시다. 그리고 술도 다 깼으니 운전은 제가 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으니 제가 조금 하고 갈게요. 제 운전 실력을 믿으셔도 됩니다.“ ”네, 그럼 그럽시다.“ 김형우는 자동차 열쇠를 넘겨준다. 참으로 승차감이 좋은 승용차다. 자신이 몰고 다니던 소형승용차하고는 다른 푹신하고 안정감을 주는 느낌이다. 민희는 시동을 걸고 서서히 출발을 해 나간다. “바쁠 것 없으니 천천히 갑시다.” “네! 그러겠습니다.“ 서울을 향해서 출발을 한다. 이슥한 밤이라 그런지 별로 많은 차량들이 달리고 있지 않지만 간혹 차량들이 지나가는 것을 볼 때 전 속력으로 달리고 있어 아찔한 현기증이 일곤 한다. 민희는 속도를 맞추면서 안정감 있게 운전을 해 나간다. “운전 솜씨가 아주 좋습니다. 안정감이 있고 아주 편안하게 운전을 하시는 것을 보니 역시 성품도 아주 차분하고 여성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급할 것이 없으니까요. 운전하는 것이 성품하고 관계가 있는 것인가요?“ ”그럼요! 성격이 불같은 여자분들 운전하시는 것을 보면 때론 아주 난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직원들 중에 간혹 그런 여자들이 있지요.“ “아, 그렇군요. 저는 제 차에 누굴 태우고 다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소형차였고 누굴 태우고 다닐 정도로 친숙한 사람도 없고........... 아주 소극적인 성품이기도 하죠.“ ”차분하고 조용한 성품이라서 그런 것입니다. 늘 그런 사람이 좋다고 생각을 해 왔거든요. 제가 생각하던 그런 성품이 바로 민희씨 같아서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거의 반 정도를 와서는 다시 김형우가 핸들을 잡는다. 그리고 서울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니지요?” “네! 집에 들어가 잠만 자면 되니까요.“ 민희의 집이 있는 불광동에 도착한 것은 거의 새벽 한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마음 편안히 푹 주무세요.” “조심해서 가시길 바랍니다.” 김형우는 민희를 내려주고 돌아간다. 김형우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서 있던 민희는 집으로 들어온다. 참으로 기분 좋은 시간들이었다. 간단한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입고 나서 빨래 통에 빨래를 넣으려던 민희는 그제야 동생 민우가 준 봉투가 생각이 난다. 입던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봉투를 꺼내고 다시 아버지가 가방에 넣으셨다는 봉투를 꺼내어 속에 들어있는 돈을 꺼내 본다. 오만 원짜리 여섯 장이다. 자식들이 주고 간 돈을 모아서 주신 것이다. “아버지!” 민희는 그 돈을 가슴에 꼭 끌어 안아본다. 따뜻한 아버지의 체온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만 같다. 늘 인자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리고 동생 민우가 준 봉투를 열고 안에 들어있는 것을 꺼낸다. 수표 한 장이다. 액수를 들여다 본 민희의 눈은 커진다. 생각보다 너무 큰 액수의 수표인 것이다. 일천 만원! 너무 큰 거액이고 생각하지도 못한 액수에 민희는 놀란다. 잠시 수표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글: 일향 이봉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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