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장, 다음날 새벽 김형우는 다시 약수터로 향한다. 약수터에서 간단하게 운동을 하고 순두부백반으로 아침을 먹고 나서 서예학원에 등록을 하고 새롭게 붓을 들고 서예를 배운다. 뭔가를 배운다는 것이 삶의 활력을 준다는 생각을 하며 정신을 집중한다. 점심때까지 그렇게 정신을 집중하며 서예를 배운다. 자장면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빌딩으로 간다. 행여 뭔가 새롭게 장사라도 해 볼 것이 없을까 하고 자신의 빌딩을 살펴보지만 장사에는 자신이 없고 경험도 없을 뿐 아니라 이제 혼자 살면서 더 이상의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별로 바람직한 일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 휴대폰이 울린다. 큰아들의 번호다. “나다.” “아버지! 지금 어디 계세요?“ ”왜 그러냐?“ ”오늘 저녁에 모두 모이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래!“ ”어디서 모일까 하고요.“ ”그것을 지금 나한테 묻는 것이냐? 집에서는 번거롭다고 하던?“ ”......................“ “조용한 식당으로 예약을 하고 전화를 하렴!” 큰며느리의 성품에 모두 집으로 오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집안이 어질러지는 것도 싫겠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음식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자신이 왜 맡아서 해야 하느냐고 반발을 할 것이다. 돈의 욕심은 많지만 일을 한다는 것을 싫어하는 성품이다. 더구나 부엌일을 하기 싫어하는 큰며느리의 성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 예약한 식당과 시간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아직은 서너 시간 이후다. 김형우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 차림으로는 갈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고 나오면 시간이 맞을 것 같다. 김형우는 샤워를 하고 나서 속옷과 양말 그리고 수건을 손수 빨아 넌다. 다른 옷이야 도우미 아주머니가 모두 손질을 해 놓지만 속옷과 양말까지 맡길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김형우는 샤워를 하고 깨끗하게 손빨래를 해서 옷걸이에 걸어 한쪽에 널어 놓고 마르면 걷어서 입는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안일을 하고 있다. “수고하시네요.” “사장님 들어오시네요. 식구들 아무도 없는데요.“ ”네! 알고 있습니다. 제게 신경을 쓰지 마시고 일을 하십시오.“ 이미 이층은 모두 청소를 마치고 난 뒤였기에 깨끗하게 모든 것이 정리가 되어 있다. 서두르지 않고 샤워를 한다. 양복으로 말쑥하게 갈아입고 다시 집을 나선다. 천천히 가도 되는 시간이기에 서둘지 않는다. 거의 시간에 맞추어 아들이 알려준 식당에 도착한다. 꽤나 유명하고 음식 값이 비싼 곳이다. 오늘 음식 값도 김형우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늘 자식들과 만나는 자리는 자신이 모든 것을 충당한다.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를 믿고 비싸고 좋은 식당을 예약하곤 한다. 식당으로 들어서면서 김형우는 혼자 피식하는 웃음을 짓는다. 이렇게라도 자식들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안내를 해 주는 룸으로 들어선다. “아버지 오시네!” 막내인 성철이가 먼저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색을 한다. “내가 제일 늦었구나?” “많이 바쁘세요?” 성환이가 묻는다. “퇴직을 한 사람이 바쁠 것이 뭐가 있냐? 그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살아가는 것이지.“ 모두들 인사를 한다. “뭘 시킬까요?” 맏이인 성일이가 묻는다.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시키면 되지 않겠니?” 그것은 오늘 물주는 아버지가 되니까 물어보는 것이다. 요리가 들어오고 다들 기분 좋게 음식을 먹는다. 김형우는 자식들이 모두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분위기를 맞춘다. “성철이는 하는 일은 잘 되어가니?”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인 막내아들이다. “요즘 너 나 없이 모두 힘듭니다. 저희라고 다른 것이 있나요?“ “그래? 그러나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니?“ ”네!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사업을 한다고 뛰고 있는 막내아들이다. “요즘 같으면 월급생활을 하시는 형님들이 부럽습니다.” 막내며느리 조은숙의 말이다. “좋을 결과가 있을 것이다. 참고 열심히 내조를 하다보면 성공을 하지 않겠니?“ ”아버님! 그것도 자금이 풍부해야 희망이 있지요. 늘 사업자금에 허덕이다 보니 힘이 들어요.“ 막내며느리의 하소연이다. “막내동서! 오늘 이 자리는 자네의 하소연을 들으려고 마련한 자리가 아닐세!“ 유혜영이 따끔하게 못을 박는다. 둘째 며느리 성민주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듯 재빨리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아버님! 갑자기 모이라고 하신 이유가 알고 싶습니다.“ 둘째 성민주는 그중 제일 여유가 있어 보인다. 두 부부가 함께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친정어머니가 맡아서 키워주고 계시기에 별 다른 근심과 걱정이 없는 부부다. 가끔 시아버지를 찾아와 식사를 대접하고는 하는 붙임성이 있는 며느리다. 자신이 돈을 쓰면 다음에는 그 몇 배를 빼앗기고는 하지만 그래도 김형우는 둘째 아들과 며느리를 제일 사랑하고 있는 편이다. “내가 오늘 너희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모이라고 했다.” 모두들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본다. 더구나 유혜영은 시아버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 잠시 당황스럽다. “이제 삼일만 있으면 할머님 기일이다. 또 아무도 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니?“ ”아버님! 저희는 참석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전날 저이가 미국으로 비행을 나가고 저는 내일부터 세미나가 있습니다.“ 둘째며느리의 대답이다. 충분히 이유가 성립이 되고 이해가 되는 상황인 것이다. “너희들은?” 첫째와 막내 네를 본다. “아버지! 시간이 참으로 곤란합니다. 더구나 요즘 회사 사정으로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이 사람 또한 요즘 많은 신경을 써서 그런지 몸이 좋지 않아서....“ 막내아들의 말이다. “그럼 맏이인 너희는 어쩌겠냐?” “아버님! 아이들 학원이 그 시간이면 한창 수업을 할 때입니다. 도저히 아이들 때문에..........“ “큰애 너는?” “........................” 성일이는 묵묵부답이다. “물론 너희들도 바쁘겠지?“ “아버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곳까지 내려갔다 돌아오면 그 이튿날 수업에 지장을 받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강의가 제대로 되질 않고 있습니다. 바로 오전 첫 시간에 강의를 들어가야 하거든요.“ ”알았다.“ 김형우는 더 이상 자식들하고 입씨름을 하기 싫다. 안주머니에서 미리 준비를 해 가지고 간 봉투 세 개를 꺼내어 각자에게 준다. “이것을 받아라! 그리고 명심할 것은 더 이상은 그 어떤 명목으로든 나에게 손을 내밀 생각을 하지 말아라. 이제 더 이상 줄 것도 없고 주어야 할 의무도 없다.“ 그리고는 그대로 룸에서 나가 계산을 한다. 더 많은 말을 해 봤자 이미 참석할 마음이 없는 자식들이다. 김형우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혼자서 드라이브를 한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일이 풀리지 않는 것이 있으면 혼자만의 드라이브를 하는 김형우만의 유일한 사치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다스린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일은 자신이 혼자 간다고 해도 아내의 기일에는 자식들이 아무도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허나 자식들을 상대로 해서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제 죽은 아내에 대해서 희미한 기억조차 남아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아들이 셋씩이나 되니 잊어버릴 수도 없는 사람이다. 김형우가 그렇게 마음을 삭이려고 드라이브를 하고 있을 때 유혜령은 화가 잔뜩 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세상에 죽을 쑤어서 개 좋은 일 시킨다더니만 내가 바로 그 짝이었어! 어쩜 아버님은 내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다른 형제들과 당신을 똑같이 취급을 하시는지 생각만으로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또한 가만히 있는 아랫동서들은 자신 때문에 받은 돈이 횡재를 한 꼴이 된 것이다. 그것도 금액이 모두 똑같다. 제일 좋아하는 둘째 네의 모습이 배가 아파온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고 친정어머니가 모든 것을 다 봐주기 때문에 둘이 벌어드리는 것과 매달 임대료를 받는 것이 몽땅 저축을 하는 집이다. 그런 집에 자신과 같은 액수의 공돈이 굴러들어갔으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모습이 배가 아프고 샘이 난다. “이제 그만해!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성일이는 아내의 행동이 못마땅스럽다. “우리 대체 뭐야? 장남이면 장남 대우를 해 주셔야 할 것이 아니냐고? 왜 동생들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느냔 말이야? 정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잖아? 제사라도 제대로 모시고 나서 할 말을 해야지.“ ”산 사람이 우선이지 죽은 사람 제사지내는 것이 뭐가 그리 큰일인데? 참석은 하지 못해도 꼬박 제수비용을 보내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아버님이 참석을 하시면 되는 것이지 일일이 모든 가족들이 다 참석을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제사는 정성으로 지내야 하는 거지 당신처럼 그런 마음으로 무슨 제사를 지내? 그런 당신 마음을 아버지가 아시고 하시는 것이지.“ 성일은 아내의 불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더 이상 마주치면 싸움이 될까 싶어 자리를 피한다. 유혜령은 일억이 들어 있는 봉투를 열어본다. 모두들 똑같이 나누어 주신 일억이다. 두 아이들 방학 때마다 어학연수를 데리고 다니려면 몇 번이나 갈 수가 있을 것인가? 또한 아이들을 유학을 보내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시아버님의 도움이 없이는 유학을 보낼 수 있는 형편이 되질 않는다. 더구나 한 아이도 아니고 둘 다 보내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유혜령으로서는 시아버님의 처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손을 벌리지 말라고 못을 박으셨으니 아무리 떼를 쓴다고 해도 나오지 않을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대학교수라고는 하지만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다. 더구나 고지식한 남편의 성품으로는 월급 이외의 돈을 챙길 줄도 모른다. 남들은 뒷돈을 잘도 챙긴다는 소문이 자자하지만 남편은 그런 일에 대해서는 완벽하리만치 결벽증이 심한 사람이다. 유혜령은 방법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 김치를 주문하고 아침준비를 할 재료들을 구입한다. 여전히 늦게 귀가를 하시는 시아버님이시다. “아버님! 저녁은 드셨습니까?“ 밤 열시가 넘어서 들어오는 김형우는 며느리의 그런 물음에 잠시 주춤한다. 지금까지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먹었다.” “내일 아침부터는 밥을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며느리를 바라본다. “애미야! 그럴 것 없다. 공연히 이 늙은것 때문에 네 시간을 허비하지 말거라! 나가서도 얼마든지 사 먹을 곳이 많다.“ 김형우는 며느리의 말을 잘라 버리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그런 시아버님의 뒤를 멍하니 바라보는 유혜령이다. 글: 일향 이봉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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