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장, 민희는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집안일을 해 나간다. 여러 날을 비운 집이라서 먼지가 쌓여있다. 구석구석을 털고 닦아내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개운진다. 마침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보낸 택배가 도착한다. 배추김치, 백김치, 알타리 김치와 동치미를 포함해서 보낸 네 덩어리의 짐이 도착한 것이다.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서 각각의 김치 통에 담아 보관을 해 놓는다. 다른 형제들보다는 반도 되지 않는 양이지만 그래도 김치냉장고가 꽉 차고 나니 마음이 부자가 된 것처럼 뿌듯해져온다. 또 다시 점심을 준비한다. 김형우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피곤이 몰려 깊은 잠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하면서 준비하는 점심이다. 민희는 문득 자신이 그 누군가를 위해서 이렇게 밥을 하는 것이 언제였던가를 생각한다. 참으로 아득하고 오래전의 일이다. 특별히 한 사람만을 위한 식사준비를 하는 것이다. 아침에 진한 사골 국을 먹었으니 점심에는 뭔가 개운하고 입맛이 도는 음식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냉장고를 열고 재료를 챙겨본다. 별로 마땅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슈퍼를 다녀올까 생각하다 마침 눈에 뜨이는 냉이를 섞어서 양념을 해 둔 된장이 보인다. 냉이 철이 되면 시간을 내어 나가서 냉이를 캐다 된장에 양념을 해서 놓으면 아무 때라도 국이나 찌개를 끓이면 향긋한 냉이 향이 살아서 입맛을 돋우어 준다. 얼려 놓은 바지락도 보인다. 된장찌개는 두부가 없어서 국으로 준비를 한다. 가자미를 꺼내어 찜을 한다. 굽거나 튀기기보다는 온갖 양념을 해서 찜을 해 놓으면 맛이 더 살아난다. 시간은 벌써 오후 한시가 넘어가고 있다. 식탁이 거의 준비가 되어 갈 때 쯤에서야 김형우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무슨 냄새가 이렇게 좋습니까?” “더 주무실 것을 깨셨어요?” “아닙니다. 잠결에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를 맡고 나니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옵니다. 집안에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냄새를 맡고 잠에서 깨어 보는 것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점심을 준비하셨습니까?“ ”네! 별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일어나시면 시장하실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어서 앉으세요.“ ”와! 반찬이 아주 진수성찬입니다.“ “별것 없습니다. 냉이된장국에 가자미 있는 것하고 조금 전에 도착한 김치뿐이에요.“ “집에서 손수 담근 김치를 먹어보는 것이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인 것 같습니다. 늘 주문해서 김치를 먹곤 하니까요.“ ”요즘 사람들 힘들게 집에서 김치를 하지 않지요. 특히 젊은 여자들 김치를 담글 줄 모르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큰일입니다. 우리 집만 하더라도 며느리들이 전혀 김치를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김형우는 맛있게 밥을 먹는다. 참으로 밥다운 밥을 먹으면서 행복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집은 있지만 이미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늘 허기지고 외로운 생각으로 살아오던 김형우로서는 민희의 정성스러운 식탁에서 행복함을 맛보고 있다. “민희씨! 오늘은 내가 그야말로 아주 호강을 하는 날입니다. 집에서 이렇게 손수 해 주시는 밥을 먹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늘 밖에 나가 사먹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려서 집의 밥맛이 이렇게 꿀맛이고 행복함을 주는 것이라고는 잊고 살아오는 것 같습니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요?“ ”살고 있는 것이야 함께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미 가족이라는 개념은 없어져 버린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삶에 개입을 하게 되면 불편한 내색을 하곤 하지요.“ ”그래도 부모인데 식사를 함께 하지 않으시나요?“ ”요즘 사람들 아침에 빵을 먹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되어 있지요. 헌데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어디 그 입맛을 따라갈 수가 있나요? 차라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와서 사 먹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편하고 좋지요.“ ”세태가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아침도 사서 드신다니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민희씨! 우리 나가서 바람이라도 쏘이고 옵시다. 오늘 이렇게 민희씨에게 맛있는 밥도 두 끼씩이나 얻어먹었으니 좋은 곳에 가서 바람도 쏘이고 기분 전환도 합시다.“ ”하루 종일 좁은 집안에서만 계시니 답답하시죠?" 민희는 외출준비를 한다. 김형우는 운전을 하면서 민희의 손을 꼭 잡는다. 별 다른 말이 없어도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이해하고 알게 된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마주보며 웃음을 짓고 잡은 손에 힘을 가한다. “참으로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곁에 누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형우씨만 생각을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곤 해요.“ ”민희! 우리 이렇게 자주 만나서 좋은 곳도 가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함께 시간을 즐깁시다.“ ”형우씨! 시간이 나면 그렇게 하고 싶지요. 그렇지만 저는 이제 일을 찾아야 합니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제 생활을 이해를 해 주셨으면 해요.“ ”..........................“ 김형우는 물론 민희의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의지할 곳도 없이 홀로 살아가는 여인의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세상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곳이다. 김형우는 자신의 생각이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 자신만을 위한 생각이다.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들은 드라이브를 하고 나서 저녁을 먹는다. 민희의 요청대로 간단하게 칼국수로 저녁을 대신한다. 그리고 민희는 집으로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저녁을 외박을 하고 돌아오는 김형우지만 누구 한 사람 내다보는 사람도 없다. 들어오든 말든 별 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아들부부다. 김형우는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 그러나 잠이 오질 않는다. 참으로 따뜻하고 정성을 다해 놓은 밥상을 받아 지금도 뱃속이 그득한 행복감을 준다. 자신만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해서 준비해준 식탁이 다시 눈앞에 어른거린다. 몸도 마음도 든든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민희를 도와주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김형우는 재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잠시 민희와의 재혼을 생각해 본다. 재혼! 단어만으로도 참으로 생소해진다. 자신과는 무관한 단어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삶이다. 그러나 이제 마치 소년의 마음처럼 그녀의 생각만으로도 행복함이 넘친다. 재혼? 과연 자신이 재혼을 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없다. 남성으로서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이나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남성으로 기능을 사용해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에 없다. 잊고 살아온 세월이다. 철저하게 잊고 살아온 오랜 세월인 것이다.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과연 기능이 살아서 제 구실을 해 줄 것인지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김형우다. 김형우는 머리를 흔든다. 재혼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깊은 생각에 빠진다. 재혼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김형우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지만 곁이 허전하다. 누군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나 앉아서 민희의 모습을 떠올린다. 김형우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민희의 번호를 찾아 누른다. “형우씨!”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운 것이 아니오?” “아니에요. 지금 잠시 책을 보고 있던 중이었어요.“ ”오늘 나 때문에 피곤하지 않았소? 두 끼씩이나 밥을 해 주느라고 고생이 참 많았소.“ ”형우씨! 그런 일들은 여자들에게는 힘든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하고 식탁을 꾸미는 순간은 참으로 행복해집니다.“ ”그런 민희씨 마음이 참으로 곱고 착합니다. 민희! 헤어진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또 보고 싶소.“ “............고맙습니다. 실은..........저도 형우씨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내일도 민희씨 집에 가도 되겠소?“ “네!” “점심 때 쯤 해서 가도 되겠소?”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이만 푹 자요.” “네! 형우씨! 편안하게 주무세요.“ 그들은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오래도록 서로 생각을 하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다음날 김형우는 서예학원에 가서 강의를 듣고 백화점으로 향한다. 어제는 하루 종일 얻어먹기만 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과일과 육류 그리고 생선과 싱싱한 야채들과 고급스러운 와인을 구입한다. 또한 간식으로 떡과 견과류를 구입한다. 차에 가득 물건을 싣는다. 민희는 두 어 번에 걸쳐서 물건을 들여오는 것을 보며 놀란다. “세상에! 이것들이 다 뭐예요?“ ”내가 시장을 좀 봐 왔어요. 얻어먹으려면 시장이라도 봐 오는 것이 미움을 받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이 사오는 것이 어디 있어요?” 민희는 박스에 담겨진 물건들을 꺼내면서 연신 감탄을 한다.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물건들을 골고루 사 온 것이다. “여기서 잔치를 하시려고요?” “그럼요! 매일같이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 잔치를 벌입시다.“ 두 사람은 마주보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물건들을 모두 정리를 하고 이미 준비된 식탁에 앉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흐뭇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식사를 한다. 주방을 치우고 나서 차와 과일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김형우는 민희의 손을 잡는다. “민희! 나를 믿어 줄 수 있소?“ ”네!“ “그럼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줄 수 있겠소?” 민희는 고개를 끄덕인다. 김형우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민희의 손에 쥐어준다.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받아주길 바라오. 나에게 남는 것은 나누고자 하는 것이오.“ “이건...........돈인가요?” “그렇소! 매달 연금이 나오는 것이 있소. 그 중에서 반을 가져온 것이오. 민희씨와 함께 나누어 쓰고 싶은 마음이외에는 다른 생각은 없는 것이오. 오해를 하지 말고 받아주었으면 하오.“ “이래도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남의 도움으로 살아오지 않았던 삶입니다.“ “민희! 내 마음을 받아주시오. 추운 날씨인데 어디 일을 하러 다닐 생각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소. 이것을 도움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친구로서 당당하게 받아주었으면 하오.“ “형우씨 마음만 받으면 안 될까요?” “민희! 내가 마음 놓고 이렇게 와서 먹고 놀고 할 수 있게 해 줄 수 없겠소? 그리고 내겐 쌓여만 가는 돈이오. 친구를 위해서 이 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서운할 것 같소.“ ”......................“ 민희는 잠시 생각을 한다. 되돌린다고 해서 다시 집어넣을 사람이 아니다. 민희는 김형우의 진심을 본다. 그리고 흔쾌하게 받아드리기로 마음을 정한다. “네! 주시는 것이니 받겠습니다.“ ”고맙소! 정말 마음을 받아주어서 너무 기쁘오.“ 김형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민희를 자신의 품안으로 가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을 그런 상태로 서로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듣는다. 글: 일향 이봉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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