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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룡] 절대쌍교(絶代雙嬌)4권 55

작성자고향설470|작성시간26.06.07|조회수43 목록 댓글 1


여인(女人)의 마음 
 
 
 소어아는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를 잡으려는 놈들이 왔으니 빨리 도망갈 준비를 하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창문 밖에서는 달빛을 받은 칼날
빛이 번쩍거리며 한 사람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이씨란 놈과 백씨란 놈은 들어라! 너희들은 하늘이 용서할 수
없는 많은 죄를 지었으니 도망갈 생각을 버리고 어서 나와서 죽음
을 받아라!"
 어둠에 잠긴 밤하늘 속에서 많은 인영(人影)이 번쩍거리는 것으
로 보아 사향관 식당은 물샐 틈없이 완전히 포위된 것이 틀림없었
다.
 이때 또다른 사람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대취! 듣자니 당신은 이미 자신의 죄를 깨닫고 선한 사람이
되고자 무척이나 노력했다 하더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
서 나와 자수를 하시오. 나는 내 명망으로 절대로 당신의 생명을
해치지 않을 것을 보증하겠소."
 백개심은 의아심이 가득찬 음성으로 말했다.
 "이상하다! 이 놈들이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
지?"
 소어아는 속삭이듯 작은 음성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지금 그 인자하고도 어진 것처럼 말하는 자는 필시 강별학일
것이다."
 "그런 것 같다!"
 "그가 위치한 쪽으로 뚫고 나가자!"
 백개심은 또다시 놀랐다.
 "무공이 가장 뛰어난 그가 있는 쪽으로 뚫고 나가자고? 너 혹시
미친 것은 아니겠지?"
 "나도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니 걱정 말고 따라 오너라?"
 이때 밖에서 또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이 정히 우리의 충고를 듣지 않겠다면 우리가 들어가겠
다."
 사실 밖에 있는 이들은 십대악인에 대하여 매우 두려워하고 있
었기 때문에 함부로 집안으로 달려 들어오지는 못했다.
 이때 소어아가 불쑥 몸을 일으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대취가 나갈 터이니 기다려라!"
 그는 의자를 들어 동쪽에 있는 창 밖으로 던지는 한편 몸은 서
쪽에 있는 창문을 향하여 솟구쳐나갔다.
 의자가 날아가자 동쪽 문 밖에서는 한차례의 소란이 일어나며
몇 자루의 칼이 빛을 뿜어냈다. 그들의 칼은 일제히 의자에 적중
했다.
 한편 창문 밖으로 뚫고 나간 소어아에게도 두 자루의 칼이 격해
왔다.
 소어아는 크게 기압을 지르면서 발을 날려 왼쪽에서 날아오는
한 자루의 칼을 가볍게 걷어차는 동시에 오른쪽에 있는 사람의 머
리 위로 날아가며 그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 사람은 비명 소
리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가 행한 이 일 초의 원앙 쌍비각은 원래 그리 뛰어난 무공의
초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초식을 약간 변화시킨 것으로도
두 명의 고수를 가볍게 물리친 것이었다.
 그가 지하궁궐에서 얻은 무공비급은 천하 각문 각파 무공의 정
밀함을 모두 갖춘 것이었다. 그것을 연마한 자는 어느 문파의 초
식을 막론하고 모두 그것을 신기할 정도로 응용할 수 있었다. 또
한 상대방은 그가 뿜어 낸 초식이 어느 문파의 무공인지를 알 수
가 없었다.
 한 사람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씨란 놈은 과연 보통이 아니니 여러분들은 각별히 조심하
십시오."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퍽'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뒤따라 한 차례의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말을 하던 자가 백개심에게 일격을 맞은 모양이었다.
 소어아는 북파의 원앙 쌍비각으로 두 사람을 쓰러뜨린 다음 즉
시 남파의 충천포란 일 초를 뿜어내 한 명의 대한을 허공에 날려
버렸다.
 이때 갑자기 눈앞에 날카로운 검빛이 번쩍거리더니 신속하고도
악독한 일검이 그에게 덮쳐왔다.
 "이대취! 너의 무공이 비록 매우 깊고 웅후하지만 오늘은 이곳
에서 살아 나갈 생각을 하지 말아라!"
 말을 하는 순간 그는 이미 전광석화와 같이 여덟 검을 뿜어냈
다. 더욱이 그 검식은 매초마다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소어아는 바라보지 않고도 이 자가 강별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
었다.
 소어아는 공격해 들어오는 여덟 검을 피할 뿐 반격하지는 않고
다만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너의 아들과 표은의 행방을 알고 싶지 않느냐?"
 순간 강별학은 검세를 늦추며 놀라움이 가득찬 음성으로 물어왔
다.
  "너 지금 뭐라고 했느냐?"
 소어아는 편지를 강별학의 검끝에다 끼워주며 한마디를 던졌다.
 "이 편지나 보고 말해라."
 강별학은 어찌해야 좋을지 잠시 갈림길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
가 잠시 정신이 흐트러진 사이에 소어아는 이미 그의 옆을 빠져
달려나갔다.
 백개심도 기압소리를 지르며 그를 따라갔다.
 강별학은 두 눈을 빤히 뜨고도 그들이 도망가게끔 놓아 둔 셈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달려 왔을 땐 소어아와 백개심은 이미 사
라지고 종적을 감춘 후였다.
 
 소어아와 백개심은 무성한 수풀 속으로 달려 들어가서야 발을
멈추었다.
 백개심은 소어아를 노려보며 차디찬 웃음을 띠운 얼굴로 물었
다.
 "그 놈들이 어떻게 우리의 행방을 알았을까?"
 "당연히 밀고한 자가 있겠지!"
 "밀고한 자는 아마 네 자신일 것이다."
 "만약 밀고한 자가 나라면 내가 무엇하러 너를 도망 나오게끔
도와 주었겠느냐?"
 백개심은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너 말고 또 누가 우리가 만나는 장소를 알고 있지?"
 "다른 사람들도 장님은 아닐 텐데 내가 붙인 종이 위에 그토록
큰 글자를 보지 못한단 말이냐?"
 백개심은 여전히 냉소를 터뜨렸다.
 "네가 쓴 그 말들을 누가 해독할 수 있단 말이냐?"
 "당연히 해독할 사람이 있지!"
 백개심의 얼굴색이 크게 변했다.
 "그것이 누구냐? 혹시 우리의 옛친구들 중에 이 성 안에 당도한
사람이 있단 말이냐?"
 소어아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드디어 입술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주지. 성안에 나구와 나심이란 두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를 못살게 굴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네. 그들은
우리의 일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지."
 "그 놈들은 어떻게 생겼는데?"
 "뚱뚱하고 키가 크며, 똑같이 생긴 쌍둥이야!"
 "삐쩍 마른 쌍둥이는 알지만 뚱뚱한  쌍둥이는  모르겠는
데......."
 "넌 그들을 모르지만 그들은 너를 알고 있지."
 "그들이 밀고할 것을 알면서도 너는 왜 그 종이를 부쳤지?"
 백개심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대취로 변장한 소어아
는 여전히 태연했다.
 "내가 그렇게 한 목적은 바로 그들로 하여금 밀고하게 하려는
것이였지. 그래야지만 그 편지를 강별학에게 전해 줄 수 있거든.
만약 다른 방법으로 편지를 전해 준다면 그는 그 편지를 중요시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이대취가 친히 그에게 전해 준 것
이니 그 무게가 당연히 다르겠지!"
 "어떻게 강별학이 꼭 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지?"
 "그는 대협객 흉내를 내고 있어. 그런데 십대악인이 성 안에 있
다는 것을 듣고도 어찌 상관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하지만 그가
오게 되더라도 필시 우리를 놓아줄 것임을 나는 아울러 자신할 수
있었지."
 백개심은 한참이나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결국 한숨을 길게 쉬
며 입을 열었다.
 "네가 모든 것을 그렇게 치밀하게 계산했으니 아마 진짜 이대취
도 너보다는 못 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소어아는 멈칫함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즉
시 껄껄 웃었다.
 "무슨 놈이 진짜 이대취란 말이냐? 그렇다면 내가 가짜란 말인
가?"
 "하하! 이대취의 모습과 태도를 똑같이 흉내내서 심지어 나마저
탄복하게 만드는구나. 네가 내 앞에서 죽는 것을 보고 싶진 않지
만, 애석하게도 너는 이미 내 앞에서 죽어야 할 몸이야!"
  "어째서 내가 네 앞에서 죽어야 한단 말이냐?"
 백개심은 괴상한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마신 술은 이미 나의 독문(獨門)인 수정단장산(水晶斷腸
散)을 넣은 것이다. 원래 너는 반 시간 정도를 더 살 수 있었는데
조금전 한바탕 날뛰었으니 아마 이젠 죽을 때가 됐을 걸!"
 소어아는 대노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네 놈은 참으로 지독한 악당이로구나! 네 놈은 그 목숨을 부지
할 것으로 아느냐?"
 그는 백개심에게 덮쳐 가려 했으나 몸을 솟구치자마자 '쿵' 하
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얼굴색이 점점 창백해졌으며 배 속을
칼로 도려내는 듯 하여 배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난...... 난...... 난 이제 죽겠구나......."
 백개심은 좋아 죽겠다는 듯 손발을 흔들며 껄껄 웃었다.
 "이젠 십대악인이 결코 상대하기 쉬운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
겠지."
 "그러나...... 그러나...... 너는 어떻게 내가...... 내가 이대
취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 나의 변장술에 뭐 잘못된 점이 있다
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좋아, 내가 솔직히 말해 주지. 네가 영문도 모르고 죽은 귀신
이 되지 않게 말이다."
 소어아는 신음을 발했다.
 "제발 부탁이니 어서 말해 봐라."
 "넌 이대취의 일거일동을 그토록 똑같이 흉내내는 것을 보니 필
시 너는 그를 알겠구나. 그렇지?"
 소어아는 아픔을 참지 못하여 온몸을 벌벌 떨며 대답했다.
 "그...... 그래......."
 "너는 그에게 나에 관한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없...... 없어."
 "그것은 나와 그가 깊은 원한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내
이름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거야. 그런 그가 어찌 나를 친구로
생각하여 한 상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단 말이냐?"
 그는 껄껄 웃으며 잠시 동안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너는 십대악인이 모두 악인이기 때문에 서로 통하는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친구라 했겠지만 십대악인 중에서도 서로 깊은
원한을 지니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겠지. 바로 그 한
가지 실책이 너의 생명을 잃는 치명적인 타격이 된 거야!"
 "너는 애초부터 내가 이대취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구나. 그
런데 너는 왜......."
 "흠, 어르신네가 줄곧 모르는 척한 것은 다만 너의 목적을 알고
싶었던 것이야. 또 너와 장난을 치고 싶기도 했지. 이제 그 장난
에 어르신네가 지쳤으니 너를 죽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
 "비록 오늘 네 손에서 목숨을 잃지만 너도 한 가지의 일
을......."
 그는 음성이 점점 작아졌고 거의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백개심은 그의 마지막 하는 말에 관심을 느낀 듯 다그쳐 물었
다.
 "무슨 일이냐? 어서 말해 보아라!"
 소어아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방울방울 솟아났다.
 "너...... 너......."
 그는 있는 힘을 다했지만 음성이 여전히 모기 울음소리 같았다.
 백개심은 참다 못하여 그에게 다가서 고개를 숙이며 크게 소리
쳤다.
 "크게 말해라! 어르신네께서 듣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자 소어아는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네가 밥통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번개같이 신속한 속도로 백개심의 몸에 있는 십여 곳
의 혈도를 점했다. 백개심은 외침소리에 놀라 멈칫하는 순간 이미
땅바닥에 쓰러졌다.
 소어아는 재빨리 땅바닥에서 일어나 호탕스러운 웃음을 터뜨렸
다.
 "네가 비록 여우 같이 교활하고 영악하지만 나에게 걸린 이상
피할 수는 없지. 이제 어르신네가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았겠지?"
 쓰러진 백개심은 두 눈을 부릅뜨고 소어아를 노려보았다. 그는
 실로 이 세상에 십대악인보다 더욱 영악하고 교활한 사람이 있으
리라고는 이제껏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소어아는 웃는 얼굴로 다가섰다.
 "비록 그 술 속에 독이 있는지의 여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십대악인을 상대할 때는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지.
그래서 그 술을 삼키지는 않고 혓바닥 밑에 감추고 있다가 고기를
뱉을 때 함께 뱉았던 것이야!"
 백개심은 놀라움이 가득찬 표정으로 말했다.
 "내...... 내가 왜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흥, 사람을 속이는 실력은 어르신네가 다섯 살 때부터 터득했
어. 비단 작은 한 잔의 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큰 오리알을 입에
다 감춘다해도 너는 발견할 수 없어!"
 백개심은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 넋이 빠진 표정을 했다.
 "너...... 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하하, 너도 이젠 어르신네를 무서워하는 모양이구나. 사실 어
르신네는 누가 봐도 무서워하는 존재이지. 네가 만약 어르신네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다면 얌전하게 나를 위하여 일을 끝내라. 그러
면 혹시 너에게 말해 줄지도 모르니까."
 백개심은 이 귀신보다 더욱 무서운 자가 자기를 죽일 마음이 없
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크게 기쁜 나머지 금새 굽신거렸다.
 "네 네, 소인은 즉시 편지를 쓰도록 하죠."
 "이제야 '어르신네'에서 '소인'으로 변했구나. 하하하...... 그
러나 난 좀 조치를 취해놔야 되겠다."
 그는 조금 전부터 한 뭉치의 진흙을 쥐고 있었다. 그는 백개심
의 입을 벌려 힘껏 그 진흙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백개심은 한 덩이의 진득하고 축축하며 구린내도 곁들어 있는
물체가 목구멍을 통해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놀라
움을 금치 못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떠듬떠듬 물었다.
 "이것은...... 이것은 무엇이오?"
 "너에게 너의 독문인 수정단장산이 있는 것처럼 나도 내 독문인
'흑살최명환'이 있다."
 순간 백개심의 얼굴색이 크게 변했다.
 "흑살최명환이라고요? 난...... 나는 한번도 그런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당연히 들은 적이 없겠지. 그것은 내가 심혈을 기울여 오랫동
안 연구한 끝에 요즘에 와서 완성한 약이야. 그 독을 고칠 수 있
는 약초는 없어. 복용 일곱 시간 후엔 온몸이 검게 변하고 또 반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썩기 시작하다가 끝내는 검고 구린내가 나
는 물로 변하여 죽고 마는 것이지."
 그가 아무렇게나 줏어대는 말들은 마치 정말인 것 같았다.
 이 말을 들은 백개심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뚝뚝 떨어졌다.
 "물론 나만은 그 독문의 해독약을 지니고 있지!"
 "당신과 나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제발 부탁하겠소. 그 해독
약을......."
 소어아는 두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그의 말을 가로채며 나무
라듯 말했다.
 "일곱 시간내로 내가 말한 대로 일을 하고는 이곳에 와서 기다
려라. 내가 너를 다시 살리러 올 테니까."
 그는 백개심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그러나 백개심은 여전히 힘없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마치
일어날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여전히 두려워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 당신이 약속을 잊지는 않겠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가서 편지를 써라! 시간이 모
자랄지도 모른다."
 백개심은 그의 말이 떨어지자 재빠른 동작으로 땅바닥에서 일어
나 꼬리에 불이 붙은 짐승처럼 나는 듯 사라졌다.
 멀리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어아는 껄껄 웃었
다.
 "모든 사람이 무서워하는 십대악인도 쉽게 속임수에 넘어가는구
나."
 
 자정이 되기 바로 직전에 소어아는 다시 그 다락방으로 갔다.
  그러나 나구와 나삼은 그의 예측대로 그곳에 있지 않았다.
 모용구매는 양탄자 위에 앉아 있었는데, 흙으로 만든 장난감 아
이를 안은 채 낮은 음성으로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귀여운 아기야, 어서 잠을 자라. 창 밖엔 날이 이미 어두워졌
고 작은 새들도 벌써 집으로 돌아갔다. 까마귀도 휴식을 취한단
다......."
 소어아는 웃음띤 얼굴로 그녀의 노래를 이었다.
 "날이 밝고 태양이 나오면 또다른 꽃이 향기롭고, 새가 울 날
이......."
 모용구매는 노랫소리를 그치고 한참이나 망연히 소어아를 바라
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소어아는 웃음띤 얼굴로 부드럽게 말했다.
 "벌써 잊었나요...... 내가 바로 어젯밤 당신에게 어떻게 악마
를 제거할 수 있나를 가르쳐 준 사람이오."
 "아, 당신이로군요. 그런데 왜 당신 모습이 달라졌죠?"
 소어아는 일부러 살며시 말했다.
 "나는 당신 몸 속에 있는 악마가 나를 알아차릴까봐 일부러 이
렇게 변장한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남에게 나를 보았다고 말하
지 마십시오."
 모용구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 악마는 매우 매우 무서운 존재이니 절대로 들켜
서는 안 되죠. 안 되고 말고요."
 "당신은 알 것입니다. 당신은 총명한 소녀이니까 말입니다."
 모용구매는 흰 이를 드러내며 방긋이 웃었다.
 "내가 정말 총명합니까?"
 애수에 잠긴 듯한 그녀의 얼굴에 갑자기 이러한 미소가 나타나
자 마치 음산한 날씨에 햇빛이 갑작스레 비치는 것 같았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소어아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더 이상
그녀를 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나는 당신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고 싶소. 그곳에서 아
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만날 것이오. 그 분은 당신 몸 속에 있
는 악마를 내쫓아 줄 것이오."
 무슨 영문인지 모용구매는 그의 말을 매우 잘 들었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밖으로 걸어 나가려 했다. 두세 발자국을
걸어가던 그녀는 눈을 깜빡거리며 갑자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되죠?"
 "훗날 당신은 아마도 나를 만나기가 매우 힘들 것이오."
 모용구매는 이 말을 듣자 즉각 걸음을 멈추었다.
 "만약 훗날 당신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나는 그곳으로 떠나가
지 않겠어요."
 그녀의 말을 듣자 소어아는 당황해서 이맛살을 찌푸리며 조급히
말했다.
 "만약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악마가 사라진다면 당신 자신도
나를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오.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
곁에서 다정하게 당신을 보살펴 줄 것입니다."
 모용구매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악마가 내 몸 속에 있게 하겠어요."
 소어아는 그녀의 이같은 말을 듣게 되자 알 수 없는 울고 싶은
충동이 울컥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즉시 머리를 세
차게 흔들며 그런 감상을 털어버리려고 하며 모용구매를 타일렀
다.
 "바보 같이 무슨 말을 하고 있소. 당신은 평생 동안 이렇게 살
고 싶단 말이오?"
 모용구매는 찬찬히 그를 뜯어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이대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더군다나 당신이
매일처럼 내곁에 있어 준다면 당신도 역시 내 마음 속에 있는 악
마를 쫓아낼 수 있죠? 그렇죠?"
 "당신이 이렇게 말을 듣지 않고서야 내가 어찌 매일같이 당신을
찾아오겠소?"
 모용구매는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가는 것을 꼭 원한다면 당신의 말에 따르겠어요. 하지만
당신은......."
  소어아는 끝내 참지 못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당신이 내가 오늘밤 한 말들을 기억한다면, 훗날 나는 다
시 당신을 찾아가겠소......."
 
 소어아와 모용구매가 단합비의 장원 뒷문에 도착했을 땐 삼소저
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밤은 매우 추웠다. 그러나 그녀는 얇고 부드러운 분홍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는 허리를 졸라매며 밥을 굶
을 수도 있는데 추위 정도야 견딜 수 없겠는가!
 그녀는 자꾸 가슴이 울렁거리며 떨려옴을 느꼈다. 비록 날씨가
추워 몸은 벌벌 떨고 있었지만 가슴 저 깊은 곳에서는 따뜻하고
포근한 것이 올라와 삼소저를 감싸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난생
처음으로 남자와 가진 약속이었다.
 멀리서부터 소어아를 발견한 그녀는 기쁨이 가득찬 마음을 안고
소어아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소어아 앞에 가까이 당도한 그녀는
소어아 뒤에 또 한 사람이 따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너무나 기쁜 나머지 터져버릴 것 같던 마음은 차츰차츰
사라져갔다. 그녀는 입술을 힘껏 깨물며 입을 열었다.
 "당신...... 당신은 혼자 오는 것이 아니었군요?"
 소어아는 정말 그녀의 마음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낄낄거리며 삼소저를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혼자 온다고 했었소?"
 삼소저는 그제서야 비로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놀
라움이 가득찬 음성으로 외쳤다.
 "당신...... 당신은 누구요?"
 "방금 나를 알아봤는데 지금은 왜 나를 몰라 본단 말이오?"
 삼소저는 그의 음성을 듣고 조금 마음이 놓였지만 여전히 의심
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조금 전에 나는 다만 느낌으로...... 느낌으로 당신이 왔다고
생각했지만, 당신의 얼굴은......."
 소어아는 음성을 낮추었다.
 "나는 한 가지 일을 비밀리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변
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소. 그러니 당신은 절대로 남에게 이 비밀
을 탄로시켜서는 안 되오. 이 비밀은 오직 당신 혼자 만이 알고
있으니 말이오."
 그는 비밀리에 처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소
녀들은 사랑하는 남자의 비밀을 캐물어 보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삼소저의 얼굴에는 다시 화색이 돌았다.
 (이이는 나를 진심으로 대해 주는 것이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나에게만 가르쳐 준단 말인가!)
 그녀도 음성을 낮추고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마세요. 절대로 남에겐 비밀을 알리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 일은 아직도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조금 필요하오."
 삼소저는 다그쳐 물었다.
 "제가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없겠어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까 하기도 했었는데...... 만약 당신이
협조해 준다면 다른 사람보다 몇십 배 몇백 배나 좋지요."
 "내가 벌써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일이라면 어떠한 것을
막론하고 모두 들어준다고 말입니다."
 소어아는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그 일은 별로 힘든 것은 아니오. 다만 이 사람을 당신이
데리고 있다가 삼경이 될 무렵 그를 강별학의 방으로 살며시 데려
다가 은밀한 곳에 숨겨 놓으면 됩니다."
 삼소저는 조금도 망서리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그런 일은 제가 능히 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걱정은 추
호도 하실 필요 없어요."
 그러나 소어아는 여전히 정색을 하고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두 가지의 일을 꼭 기억해야 하오. 첫째는 절대로 남에
게 들켜서는 안 되고, 둘째는 꼭 삼경이 될 때 이 사람을 숨겨 놓
아야 합니다. 너무 일러서도 아니 되고 더욱이 늦어서도 안 됩니
다."
 "걱정마세요. 절대로 당신의 일을 망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요."
  그녀는 그제야 비로소 소어아의 뒤에 서 있는 모용구매를 주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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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올포유 | 작성시간 26.06.07 즐감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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