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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룡] 절대쌍교(絶代雙嬌)4권 58

작성자고향설470|작성시간26.06.11|조회수41 목록 댓글 1


의외(意外) 속의 의외(意外) 
 
 
 소어아는 그 흑의인의 번개 같은 일장이 덮쳐오자 다시금 놀랐
다. 그러나 당황함 속에서도 재빨리 일장을 뿜어내어 막으며 큰소
리로 소리쳤다.
 "네 놈이야 말로 강별학이 변장한 놈인데 감히 누구를 속이려드
느냐?"
 그 흑의인도 그와 똑같은 말로 외쳤다.
 "네 놈이야 말로 정말 강별학이 변장한 놈인데 누구를 속이려는
것이냐?"
 그러자 소어아는 대노하여 더욱 큰소리로 외쳤다.
 "네 놈이 강별학이 아니면 누구냐?"
 역시 흑의인도 똑같이 받았다.
  "네 놈이 강별학이 아니면 누구냐?"
 소어아는 눈을 굴리며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고는 급히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강별학! 이 악당 같은 놈아! 개만도 못하게 자기의 조상을 모
독하다니. 너는 정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다."
 그는 강별학이 이름있는 사람이기에 필시 자신을 욕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일부러 이렇게 욕설을 뿜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흑의인도 똑같은 욕설을 퍼부었다.
 "강별학! 이 악당 같은 놈아, 개만도 못하게 자신의 조상을 모
독하다니. 너는 정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다."
 소어아는 이 말을 듣자 껄껄 웃었다. 자기의 계획대로 들어맞아
가기 때문이다.
 "내가 설사 네 놈의 본색을 드러나게 할 수는 없을 망정 네 놈
스스로가 네 자신을 욕하는 것을 들으니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
려가는 것처럼 시원하구나! 하하하하...... 참으로 웃기는구나.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을 욕하는 추잡한 인간도 있으니 말이다."
 그 흑의인도 그와 같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설사......."
 그 역시 소어아가 한 말을 한 마디도 빠짐없이 되풀이했다.
 이렇게 서로 욕설을 퍼붓는 그들은 보기엔 둘다다 강별학이 아
닌 것 같았지만 분명히 그들 중 한 명은 강별학일 거라는 확신을
남궁유 등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누가 진
짜 강별학인지 그들로서는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이때 모용산이 입을 열었다.
 "강별학의 무공은 강남 무예계의 제일인자라 하는데 틀림없는
말이겠죠?"
 모용쌍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렇다! 이들 중 무공이 더 뛰어난 자가 필시 강별학일 것이
다."
 그녀들은 다시금 입씨름이 한창인 흑의인과 소어아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매우 유심히 그들이 행하는 무공을 바라보았다.
권과 발을 휘날리고 있는 그들은 비단 공력이 매우 깊었을 뿐만
아니라 초식 또한 극히 괴이하고 치밀했으며 변화 또한 엄청났다.
모두 절정의 고수들이었던 것이다.
 소어아는 그녀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실력을 감추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그러다가 상대방에게 당할까봐 실행할 수도 없었다. 흑
의인도 당연히 그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한동안 격투만 할 뿐 여전히 승부의 판가름을 내지는 못
했다.
 그저 한 차례의 '와지끈, 우지직......' 하는 소리가 연거퍼 들
려왔을 뿐이었다. 무슨 물건이든지 그저 그들의 권풍에 스치기만
하면 즉시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그들의 권풍을 이겨낼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들은 계속 싸움을 하면서 사당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점차
적으로 사당에서 멀어져갔다.
 그들은 둘 다 남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
에 당연히 남궁유 등 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고 점
점 멀어져가는 것은 그들이 암묵(暗默)적으로 합의한 사항이었다.
 그들의 초식은 여전히 거센 것이었지만 사실은 둘 다 더 이상
결투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자 둘은 약속이라도 한듯
제각기 뒤로 곤두박질하며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더니 즉시 몸들을
감추었다.
 그 흑의인은 도망하면서도 자신의 체면을 차리려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강별학! 오늘은 비록 너를 놓아주겠지만, 훗날에 다시 내 손에
걸리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소어아도 도망가는 한편 큰소리로 말했다.
 "강별학! 그것은 바로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이다."
 두 사람의 달아나는 신법은 모두 번개를 방불할 만큼 신속했다.
모용쌍 등 사람들이 쫓아왔을 때 그들은 이미 십여 장 달려나가
있었고 또 그들이 양쪽으로 갈라서 도망치기 때문에 더욱이 누구
를 쫓아야 할지 몰랐다.
 바로 이때 수풀 속에서 갑자기 한 인영이 달려나와 소어아의 길
 을 막았다. 그는 소어아를 가리키며 괴상한 웃음을 지었다.
 "이 놈이 바로 강별학이다. 이 놈이 진짜 강별학이란 말이다."
 그의 얼굴을 본 소어아는 놀라는 한편 대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놈이 미쳤느냐?"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손인불이기'이란 칭호를 받고 있는 백개
심이었던 것이다.
 백개심은 그의 앞을 막아 서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미치기는 누가 미쳤다는 것이냐? 네 놈 강별학이 정말 미친 모
양이구나."
 "네 녀석은 살고 싶지 않느냐? 네 놈은 해독약도 필요없단 말이
지?"
 "흥! 누가 누구의 생명을 살린단 말이지? 네 놈이 나에게 골탕
을 먹였으니 당연히 나도 너에게 골탕을 먹여주어야 이치에 맞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한 그는 갑자기 뒤로 곤두박질을 하면서 다시금 수풀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어느덧 모용자매 일행이 사방을 포위하며 소어아를 에워쌌다.
 이때 모용쌍이 대노한 음성으로 외쳤다.
 "강별학! 만약 이번에 또다시 너를 놓친다면 내 성을 갈겠다."
 소어아는 발을 구르며 안타까와 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누가 강별학이란 말이오? 공연히 생사람 잡지 마시오. 만약 내
가 강별학이라면 즉시 날벼락을 맞고 죽겠소."
 모용산이 눈썹을 치켜 세우며 으르렁댔다.
 "당신이 강별학이 아니라면 왜 달아나는 것이죠?"
 이 말을 들은 소어아는 멈칫했다. 이 말은 그를 더 이상 변명하
지 못하게 했다. 모용쌍은 그가 응답하지 않자 즉시 소리쳤다.
 "그렇다! 네 놈이 만약 강별학이 아니라면 왜 우리에게 얼굴을
내밀어 보이지 않는다는 거냐?"
 그녀들은 흑의인에게 당한 경험이 있기에 입으로는 말하고 있었
지만 손에 쥐고 있던 장검으로 연거퍼 공격을 뿜어냈다. 그녀들의
공격은 대우 악독하고도 거셌다.
 소어아가 빈정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도 당당한 사내 대장부인데 어찌 너희 여자들에게 얼굴을 함
부로 만지게 한단 말이냐? 옛말에 남자의 얼굴 위에 황금이 있고
여자의 손에는 똥물이 있다는데, 내 얼굴에 어찌 똥물을 묻힐 수
있단 말이냐?"
 그는 다급한 나머지 나오는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그가 이
렇게 말한 목적은 다만 그녀들의 부화를 돋구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래야지만 자신에게 도망갈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
이다.
 과연 모용쌍이 대노하며 노여움이 가득찬 표정으로 응수했다.
 "닥쳐라! 네 놈이 감히 누구 손에 똥물이 있다는 것이냐? 아마
네 놈의 얼굴에는 똥벌레가 기어다니는 모양이구나!"
 소선녀도 이런 욕설을 퍼붓는데는 빠지지 않았다.
 "네 놈이 그저 내 손에 걸리기만 해라. 당장 변소 안으로 집어
넣어 줄 테니까."
 그러나 소어아의 얼굴엔 다시 장난끼가 가득찬 웃음기가 어렸
다.
 "설사 변소 안으로 빠져들어갈 망정 너희 여자들에게 얼굴을 만
지게 할 수는 없어."
 이때서야 그들은 그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그녀들은 더 이상 그
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고인옥만은 매우 순진한 사람이었
기에 여전히 그의 목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참다 못해 입을 열었
다.
 "나는 여자가 아니니 나에게 조사를 받지 않겠습니까?"
 "원래 당신은 여자가 아니었군요. 난 또 당신이 저 여인들의 여
동생인줄 알고 착각했잖아요?"
 소어아도 이렇게 말은 했으나 자기 말이 우스웠던지 웃음을 터
뜨렸다. 그의 입가에 웃음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쫙'하는 소리
가 들려왔고 그의 상의 앞가슴 쪽이 찢어져 나갔다. 만약 그의 무
공이 많이 진보되지 않았었다면 아마 그는 창자가 튀어 나왔을 것
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태연하게 계속 지껄였다. 상대방을 미칠 지
경으로 화나게 해야지만 자기가 살아나갈 희망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는 이미 목숨을 걸었기에 추호도 두려움이 없었다. 일이 이렇
게 된 마당에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호랑이 굴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말이 있지 않
은가!)
 이때 그는 진검과 남궁유가 격투 속으로 끼어들지 않고 그저 옆
에서 자기가 도망 못하게 지켜보고만 있는 것을 알고는 다시금 웃
음띤 얼굴로 말했다.
 "무예계의 인물들은 모두 모용가문의 사위를 부러워하고 여복이
많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곰보나 코찡찡이에게 장가가
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 생각하오."
 모용쌍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 말을 듣자 참지
못하여 냉소를 터뜨렸다.
 "우리 모용자매가 곰보나 코찡찡이보다 못생겼단 말이냐?"
 "모용집안 아가씨들의 아름다움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인데 내
가 어찌 감히 못생겼다고 말하겠소! 하지만 모용집안의 사위는 뭡
니까? 여편네가 암탉 같이 울고 불고 하며 남과 싸움을 하고 있는
데 옆에서 보고만 있으면서도 감히 한마디도 못하니 말입니다. 그
토록 여편네를 무서워한다면 무슨 재미로 이 세상을 살아간단 말
이오? 만약 내가 모용집안의 사위였다면 벌써 자살을 했어도 몇
번은 했을 것이오."
 그가 이렇게 매우 재미있다는 듯 약을 올리는 동안, 그의 어깨
에 또다시 일검이 가해졌다. 비록 그 일검이 뼈를 상하게 할 정도
는 아니었지만 검날이 스쳐 지나가자 역시 긴 상처가 나타났고 붉
은 피가 어깨를 완전히 적셨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진검이 냉소를 터뜨렸다.
 "난 처음부터 너에게 협공하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네가
정 그토록 원한다면 소원을 들어주지."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재빠르게 삼 검을 뿜어냈다. 그의 그 삼
검은 매우 거세고도 맹렬했다. 그것은 바로 모용자매의 부족한 점
을 보충한 것이었다.
 소어아가 약을 올리고자 했던 계책은 상대방을 화나게 하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또다른 한 명의 강적을 자기에게 공격하
도록 만들었으니 참으로 그의 실책은 컸다.
 그는 처음부터 이들을 당해내기는 어렵겠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막상 이들이 합세하여 공격하자 더욱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
다.
 그는 속으로만 발을 동동 굴렸을 뿐이지 입은 쉬지 않고 부화를
돋구는 말을 지껄여 댔다.
 "남궁유! 너는 왜 한몫을 끼지 않느냐? 혹시 너의 무공이 너무
나도 저속하여 내놓을만한 것이 못 되어서 그러냐? 너는 오직 네
여편네의 힘을 믿고 무예계를 돌아다니는 모양이지?"
 이 말을 들은 남궁유의 얼굴색은 자연 크게 변했고, 노여움으로
음성조차 떨려왔다.
 "복결, 부사...... 시풍, 대중...... 환조......."
 그가 혈도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세 자
루의 검이 그가 부른 위치를 향하여 덮쳐왔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소어아는 '환조혈'에 또다시 일검을 맞았다. 검붉은 피가 그
의 상처에서 흘러나왔다.
 남궁유는 비록 몸이 허약해 남과 격투할 수는 없었지만, 무예계
에서 역사가 가장 깊은 '남궁세가'의 어린애라도 남보다 뛰어난
견식을 지니고 있는데 하물며 역대독자인 남궁유였으니 실력은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더욱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불러낸 혈도들은
자연히 소어아가 피하기 힘든 곳들이었다.
 소어아는 크게 당황했다.
 심지어 약을 올리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이때 남궁유가 혈도 이름을 다시 불렀다.
 "영문, 중부...... 음시, 양구...... 승부!"
 "쉭! 쉭!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삼 검이 뻗쳐나갔다. 또다시
소어아의 '성부혈'이 일 검을 맞았다.
 (흥, 네가 부르는 대로 내가 미리 방어하면 되지 않겠나?)
 소어아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남궁유가 부르는 위
 치를 분명히 들었는데도 이상하게 피하지 못했다.
 옛말에 당사자보다 방관자가 더욱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장기나 바둑을 둘 때 훈수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흔
히 제 삼자의 훈수도 승부에 판가름이 나곤 하는 까닭이었다.
 장기나 바둑을 둘 때도 그러는데 하물며 피비린내 나는 혈전이
었으니 말해 무엇하리.
 남궁유는 남과 격투할 수는 없었지만 견식과 보는 눈은 그 어떤
절정고수 못지 않게 정확했다.
 그는 소어아가 뿜어내고자 하는 초식을 환히 알 수 있었으니 그
가 불러낸 위치는 당연히 소어아의 허점이었다.
 이때 남궁유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유문, 통곡...... 부사, 귀래, 용천!"
 그 '용천혈'은 발바닥 밑에 위치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이
러한 부름을 들은 소어아는 멈칫했다.
 (네 놈들의 검이 설마 내 발 밑을 적중할 수 있단 말이냐?)
 이때 모용산의 검이 그의 '부사' '귀래'의 양혈을 향해 지쳐 들
어왔다.
 본시에 그는 그 검을 피할 수 있었지만 다른 검들이 그의 피할
길을 막았다. 그는 다급한 나머지 정확하게 판단해 보지도 않고
재빨리 검을 쥔 모용산의 손목을 걷어찼다.
 이리하여 그는 모용산의 공세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틈을 이용하여 모용쌍의 검이 덮쳐왔고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그의 '용천혈'에 적중했다.
 소어아는 두터운 가죽신발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 검은 그
에게 별로 큰 상처를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전신이 오싹함
을 느꼈고 또한 어느 결에 식은 땀이 흘러 나왔는지 목욕이라도
한듯 온 몸이 축축했다.
 남궁유는 여전히 차분한 음성으로 계속 혈도의 이름을 불러갔
다.
 "신당, 심유...... 위중, 음곡...... 결선!"
 소어아는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 '결선혈'을 방비했다. 그렇건
만 등이 서늘해지면서 '회양혈'에 또다시 일검을 맞았다.
 그는 비록 협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어떠한 고수가 그를
협공한 것보다 더욱 더 무서운 위력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쯤 되자 소어아는 한숨을 내쉬며 거의 체념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이제 끝장인가 보구나.......)
 그가 살려는 생각을 막 포기하려는 순간 갑자기 먼 곳에서 모용
구매의 비명소리와 외침소리가 아울러 들려왔다.
 "사람 살려...... 강별학! 네 이 악당 같은 놈아...... 셋째 언
니...... 둘째 언니...... 나 좀 살려주어요......."
 외침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모용산산은 그 음성을 듣자 즉시 당황한 빛이 얼굴에 확연히 드
러났다.
 "큰일났다! 우리가 구매를 홀로 사당에 놓아 두었군요."
 모용쌍도 발을 구르며 안타까와 했다.
 "구매가 왜 따라오지 않았단 말이냐?"
 소선녀도 놀라움이 가득찬 음성으로 말했다.
 "강별학이 그쪽에 있나 보군요."
 고인옥도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정말 강별학이 아니군요!"
 제각기 한마디씩 던진 그들은 곧 모용구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나는 듯이 달려갔다. 단지 남궁유만이 남았다. 그는 갑작
스레 소어아에게 읍을 하며 공손히 한마디 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소어아의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번졌다.
 "천하의 공처가 중에서 당신이 아마 일일자일 것이오. 당신 같
은 사람은 정말 어떤 여자와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궁유는 조금도 화나지 않은 듯 엷은 미소까지 지어가
며 말을 받았다.
 "귀하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무공을 지니고 있군요. 마치 각문각
파의 장점을 모아 새로운 자신의 무학을 창작한 것 같이 말입니
다. 다만 초식을 뿜어낼 때 아직까지 미숙한 점이 있어서 가끔 허
점이 생깁니다. 그것은 아마도 귀하께서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느라
고 무학방면에는 정신을 기울이지 못한 탓 같습니다. 후일 그 점
 만 고친다면 설사 내가 옆에서 공격한다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오."
 소어아는 그의 겸손한 교훈을 듣자 갑자기 멈칫하며 의아한 생
각이 들었다.
 "당신은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오?"
 남궁유는 여전히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귀하께서 강별학이 아닌 까닭이오. 강별학이 초식을 뿜
어낼 땐 절대로 귀하 같이 서툴지는 않을 터이니 말입니다!"
 소어아는 대노했다.
 "당신이 벌써 그 점을 알아차렸으면 왜 일찍 말하지 않았소?"
 "불초는 이미 그 점을 알고 있었소. 그러나 귀하의 정체를 알고
싶은 욕망에서 말하지 않았던 것이오. 지금 구매가 또다시 강별학
에게 납치 당했으니 당연히 그 욕망을 희생할 수밖에 없죠."
 그는 다시금 읍을 한 후 신법을 펼치더니 나는 듯이 모용쌍 등
의 사람들을 쫓아갔다.
 남궁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소어아는 여전히 그가
한 말을 되풀이 생각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고 느껴졌다.
 (......아마도 귀하께선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느라고 무학방면에
는 정신을 기울이지 못 한 듯.......)
 소어아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이 말은 정확히 내 단점을 지적했구나. 보아하니 무림세
가의 후예라 과연 남보다 뛰어난 안력을 지니고 있다. 너무 그들
을 얕봐선 안 되겠다."
 한동안 넋을 잃은 사람처럼 남궁유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보고
있던 그는 천천히 앞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빨리 손인불이기
백개심을 찾아서 복수하려는 생각이 꿀떡 같이 일어났다.
 이렇게 걷는 동안 그는 갑자기 백개심의 행동이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는 데 머물렀다.
 이개심은 어째서 갑자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 심지어 해
독약도 필요없다고 하니 말이다!...... 또 모용구매는 어떻게 된
것일까? 왜 갑작스레 내 편을 들어 주었을까? 그녀는 정말 강별학
에게 납치당했을까?)
 이렇게 생각하던 그는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고 도대체 어
떻게 된 노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찾지 못 했는데 그녀는 어째서 나타났을까.
매우 이상스럽게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어째서
내편을 들어주었단 말이냐? 그녀가 만약 제정신을 차렸다면 나를
죽이기도 바빴을 텐데 어째서 나를 도와주었단 말이냐?)
 소어아는 생각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
리하여 그는 모든 잡념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때 그는 온 몸
에 입은 상처가 욱신욱신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는 숲속으로 가서
한 그루의 큰 나무를 찾아 그 아래서 휴식을 좀 취하기로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약물로 자라왔기에 몸은 실로 물샘과도 같았
다. 때문에 이 정도 상처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상처에서
비록 질식할 정도의 통증이 느껴와도 별로 걱정은 안 되었다.
 별들은 점점 사라져갔고 동쪽 하늘이 차츰 밝아왔다. 숲속에서
는 새들의 노래소리가 즐겁게 들려왔고, 대지에는 한가닥의 형용
하기조차 어려운 평화스러움과 조용함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
었다.
 소어아는 두 눈을 감으며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정말 남의 일에 너무 많이 참견했나 보구나! 하지만 밥만
먹고 아무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는가? 더군다나 그 일들은
모두 나에게 찾아온 것이니 설사 피하려고 한들 피할 길이 없지
않는가 말이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있었지만 사실 태어날 때부터 얌전하
게 살 수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저 삼사 일 동안만 할 일
없이 지낸다면 즉시 못 견딜 정도로 전신이 쑤시곤 했다.
 조용하고도 평화스러운 이 숲속에서 그는 차츰 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오랫만에 포근히 잠을 자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휴식을 취할 운명이 아닌지 갑자기 한 사람의 외침
소리가 그를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소어아...... 소어아......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소어아는 재빨리 땅바닥에서 일어났고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혼
 잣말을 했다.
 "또 나에게 무슨 일이 찾아 왔구나...... 그런데 이 사람은 누
굴까? 내가 숲속에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때 그 사람의 외침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소어아! 나는 당신이 이 숲속에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어서
나오셔요. 당신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해드려야 해요...... 왜 아
직도 나오지 않는 거지요?"
 이 음성의 주인공은 모용구매 같았다.
 소어아는 크게 기뻤다. 그는 만면에 희색이 가득찼다.
 (만약 정말 모용구매라면 참으로 잘 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를 찾으러 갈 참이었잖은가!)
 그는 기댔던 나무 위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이때 산발한 채 아침 안개를 받으며 구름을 타고 내려온 여신
같이 살며시 찾아온 여인은 틀림 없는 모용구매였다.
 소어아는 나무 위에서 내려와 그녀 앞으로 뛰쳐 나왔다.
 "이봐!"
 모용구매는 두 손으로 가슴을 쓰다듬으며 매우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이 또 나를 놀라게 하여 기절시키려는 모양이지요?"
 소어아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웃음띤 얼굴로 입을 열었
다.
 "잠시 동안 보지 못 했더니 소저는 더욱 아름다워진 것 같소."
 모용구매는 더욱 애교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동안 못 보았더니 당신도 역시 더욱 준수해진 것 같아
요."
 "하하! 모용구매도 그런 말을 할 줄 알고 또한 애교를 부릴 줄
알다니 참으로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군요."
 "여인이라면 모두 애교를 부릴 줄 압니다. 다만 여자들은 상대
를 봐서 애교를 부릴 뿐이지요."
 "소저는 이제 나를 죽이고 싶지 않습니까?"
 "여자의 마음은 갈대 같다는 말을 못들었어요?"
 소어아의 입에서는 이름 모를 한숨이 새어나왔다.
 "옳은 말씀이오. 여자에겐 사랑도 쉽게 변하는 것인데 하물며
원한은 더욱 쉽게 잊을 수 있겠죠."
 모용구매는 큰 눈을 깜박거리더니 다시 웃음띤 얼굴을 했다.
 "여자를 사랑해 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여인의 마음을 깊이
알 수 없는 거예요. 당신도 혹시 사랑의 상처라도 입은 적이 있나
요?"
 "그렇습니다. 내가 바로 여자들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입은 피
해자 중의 한 사람이지요."
 모용구매는 여전히 웃었다.
 "누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나요? 혹시...... 혹시 그 철 소저
가 아닙니까?"
 '철 소저'란 세 글자를 들은 소아아의 가슴은 칼로 비벼파듯 아
픔을 느꼈다.
 그는 큰소리로 그녀의 말에 부정이라도 해야 시원할 것 같았다.
 "아니오!"
 "그렇다면 누구죠?"
 소어아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바로 모용구매요."
 갑자기 모용구매는 미친 사람처럼 깔깔 웃었다.
 "내가 언제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나요?"
 소어아의 눈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그는 입을 쫑긋하며 또박또
박 말했다.
 "당신은 모용구매가 아니오!"
 모용구매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모용구매가 아니라면 누구요? 당신은 혹시 미친 것이 아
니오? 나마저 몰라보니 말예요."
 소어아는 여전히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한참이나 뜯어보더니
드디어 껄껄 호탕스러운 웃음을 웃었다.
 "나는 절대로 당신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틀림없는
당신입니다."
 "도대체 내가 누구라는 말씀이지요?"
 소어아는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아 쥐며 기쁨이 가득찬 목소리
 로 목메인 듯 외쳤다.
 "도교교...... 도 고모이죠! 그렇죠?"
 그 '모용구매'란 여인은 두 눈을 부릅뜨고 한참이나 그를 바라
보더니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은 참으로 총명하구나. 너에게 들키고 말았으니 말이
다. 이 천하에서 내 변장술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너밖에
없을 것이다."
 "저도 알아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속으로 '이 모용구매는
진짜 모용구매가 아닌데, 그러면 누가 이토록 똑같이 변장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나라고 짐작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 고모가 정말 이곳에 왔다고
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 고모가 악인곡에서 나올 줄이야 저
는 꿈 속에서도 생각지 못했으니까요!"
 이 소리를 들은 도교교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러더니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하에 미처 생각지 못하는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소어아는 두 눈을 부릅뜨고 놀라움이 가득찬 음성으로 물었다.
 "도 고모도 한숨 쉴 때가 있다니...... 정말 미처 생각지 못했
습니다. 고모는 무엇 때문에 악인곡에서 나왔으며 또한 어떻게 저
의 일을 알고 모용구매로 변장하여 저를 구했습니까?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그 영문을 모르겠군요."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도 많아 단숨에 모두 물어보았
다.
 도교교는 표정을 달리하며 말했다.
 "네가 연거퍼 나에게 이토록 많이 물어보니 나보고 어떻게 대답
하라는 것이냐?"
 소어아는 차분히 물었다.
 "고모는 악인곡을 떠난 지 얼마나 되셨어요?"
 "아마...... 아마 반 년은 넘었을 것이다."
 "근 이 년 동안 저의 행방을 아는 자는 거의 없다고 할 수도 있
는데, 고모님은 어떻게 저의 일을 알고 또한 어째서 모용구매로
변장하셨지요?"
 "악인곡에서 나온 후 너의 걸작을 몇 가지 들었지만 확실한 너
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지. 수소문도 해봤지만 여전히 너의 행
방을 알 길이 막연했었어."
 소어아는 매우 의기양양한 듯 눈을 깜박거렸다.
 "물론 알 까닭이 없겠죠. 제가 만약 숨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이 세상에서 저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너를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써봤지만 결국에는 못 찾았지. 그
런데 며칠 전 우연히 너를 만났지."
 "저와 만났다고요? 왜 저는 모르고 있었죠?"
 "비단 너와 만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너와 얘기도 나누어 보
았는데!"
 소어아는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의아심이 가득찬 음성으로 물었
다.
 "참으로 이상하군요...... 저와 말까지 했다니......."
 도교교는 깔깔거렸다.
 "너는 무척이나 흉악해졌더군. 두 눈을 부릅뜨고 마치 나를 잡
아먹을 듯 했지. 나는 정말 너의 그 흉악한 눈초리가 무서워서 너
를 가까이 하지 못하고 멀리 도망갔단다."
 그녀의 이야기 속엔 다분히 과장된 말도 있었다. 그러나 소어아
는 여전히 놀란 표정이다. 그러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알았어요! 도 고모가 바로 그...... 그......."
 "내가 바로 나구 형제 집에서 일하는 그 멍청한 시녀였단다."
 "참으로 탄복했습니다. 그토록 똑같이 변장할 수 있었으니 말입
니다. 저는 정말 그 멍청한 시녀가 고모인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
어요."
 도교교는 소어아가 하는 것처럼 눈을 깜박거리더니 그의 음성을
흉내내며 말했다.
 "당연히 미처 생각하지 못했겠지. 내가 만약 숨으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찾아낼 수 있단 말이냐!"
 소어아는 박수를 치며 크게 웃었다.
  "훌륭합니다. 다행히 고모가 저로 변장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저로 변장했다면 아마 저도 누가 진짜 강소어인지 분간하지 못했
을 거예요."
 그는 한참이나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
고 정색을 했다.
 "하지만 그날까지 고모는 저를 만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
 "고모가 점이라도 치신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은 이상 제가
나구의 집에 갈 것이라 미리 알 수 없었잖아요. 안 그래요?"
 "나는 신이 아닌데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겠니?"
 "그러면 고모가 어째서 그 멍청한 시녀로 변장하고 그곳에서 저
를 기다렸습니까?"
 "나는 너를 기다리기 위해서 그곳에 숨어있었던 것이 아니야."
 "저를 기다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왜 그곳에 숨어있었단 말입
니까?"
 도교교의 눈 속에서 갑자기 한가닥의 흉악한 빛이 솟구쳐 나왔
다.
 "나구 형제 때문에 내가 그곳에 숨은 것이다."
 소어아는 그제서야 깨달은 듯 흥미가 가득찬 음성으로 물었다.
 "이제 알았어요. 고모는 그들 형제와 원한이 있죠?"
 "그 속의 비밀을 너는 알지 못한다!"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단 말입니까?"
 "내가 이번에 악인곡에서 나온 것은 한편으로는 너를 찾기 위해
서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른 두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
어."
 "그들이 바로 고모님이 찾고자 하는 사람들입니까?"
 도교교는 그의 말에 응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이십 년 전 십대악인 중 다섯 명이 악인곡으로 쫓겨들어왔지.
그때 상황은 매우 위급하고 다급했기에 그들은 많은 중요한 물건
들을 휴대할 겨를이 없었어!"
 소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고모와 숙부 두 백부 몇 분들은 오랫동안 강
호를 휩쓸고 다녔기 때문에 당연히 얻은 물건도 많았겠지요. 또한
고모와 아저씨들이 갖고 있는 물건들은 당연히 매우 진귀한 것들
이었겠구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그 물건들을 버리기가 매우 아
까웠지.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휴대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악인곡까지 운반해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누구에게 그 부탁을 했습니까?"
 "너도 알다시피 우리들은 강호에서 친구라고는 전혀 없었다. 다
만 십대악인에 속하는 사람들만이 겨우 조금 통하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도교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오직 남은 다섯 사람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
지. 그러나 그 광사 철전은 화가 나면 심지어 자기의 생명도 생각
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부탁할 수가 없었지. 그리고
손인불이기 백개심은 비단 믿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대취와
뼈에 사무친 원한을 지니고 있으니 더욱 그에게 부탁할 수 없었
어."
 "만약 악도귀 헌원삼광에게 부탁하면 그는 도박하여 완전히 잃
을까봐 더욱 안 되었겠군요!"
 도교교는 참다 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 그 악도귀는 비록 평생 동안 도박으로 지내왔고 자신
이 누구보다도 도박에 명수라고 자부했지만 여전히 자주 바지까지
잃곤 했단다."
 "옛말에 도박을 취미로 삼아 자주하면 신선이라도 잃는다 했는
데 하물며 그는 도귀에 불과했으니 말입니다."
 "그 당시 우리는 그 물건들을 '미사인불배명' 소미미에게 운반
을 부탁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우리
가 그녀를 찾아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지만 끝내는 헛수고로 돌아
가고 말았던 것이야."
 소어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땅바닥 속에 숨어 들어갔는데 당연히 찾지 못했겠
 지.)
 그는 이 말을 해야 좋을지 안 해야 좋을지 망설이다가 끝내는
하지 않았다.
 이때 도교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거듭한 우리들은 결국 구양 형제에게 부
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그 구양 형제가 바로 '병명전편이'와 '영사불흘휴'란 칭호가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렇다. 그들은 매우 구두쇠인 까닭에 그 물건들을 그들에게
부탁하면 절대로 잃어버릴 우려는 없었지."
 "제가 보기엔 다른 사람들보다 그들이 더욱 믿을 수 없는 존재
라 생각합니다. 그들 형제는 죽어도 이득을 얻겠다는 칭호까지 갖
고 있으니, 고모와 아저씨들이 그 물건을 그들에게 부탁한 것이
양을 호랑이 입에 갖다 준 격밖에 되지 않았겠는 걸요?"
 "그 당시 우리도 그점을 생각 못한 건 아니었지만 구양 형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이득을 상관하지 않고 살인을 일삼는 혈
수(血手) 두살인 까닭에 절대로 감히 그 물건들을 삼키지 못할 거
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그들 형제는 혈수 두살이 이미 악인곡으로
쫓겨 들어갔으니 감히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두려움
없이 정말 그 물건들을 삼켰던 것이야."
 "그들 형제는 창자가 터져 나올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단 말이
오? 감히 고모나 아저씨들의 물건을 삼켰으니 말입니다."
 도교교의 말 속엔 원한이 가득히 서려 있었다.
 "악인곡에서 이십 년 동안을 기다렸지만 그들은 여전히 물건을
보내오지 않았어. 그래서 우리는 죽지 않는 한 언제든 복수해야겠
다고 맹세했지."
 "그러기 때문에 고모가 악인곡에서 나오자 마자 그들을 찾으려
고 했던 것이군요?"
 "그렇다."
 "그 구양 형제가 혹시 나구 형제와 무슨 관련이라도 있습니까?"
 도교교는 또박또박 끊어가며 힘주어 말했다.
 "나구 형제가 바로 구양 형제야!"
 소어아는 이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어쩐지 그들의 수단이 악독하다 했죠! 저는 벌써부터 그들의
정체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그들의 생김새
가 구양 형제와는 조금도 닮지를 않았는데 어떻게 된 것이죠?"
 "이십 년 동안 그들은 일부러 자신들을 부운 듯이 뚱뚱하게 키
웠단다. 그들은 원래 젓가락 만큼이나 말랐었어. 그러나 지금은
뚱뚱하게 키운 까닭에 심지어 얼굴의 생김새마저 달라졌지. 전혀
알아보지 못하게 말이다. 그들 형제는 정말 누구보다도 영악하며
가장 훌륭한 변장술을 생각해낸 것이다."
 "옳은 말씀입니다! 자연적으로 불어난 살로 변장한 것은 어떤
변장술보다 더욱 훌륭할 거예요. 그들이 그러한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으니 과히 천재라 아니 할 수 없군요."
 "나는 구양 형제를 찾다 못찾아서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나구
형제가 근래에 와서 해낸 일들을 듣게 됐어. 나는 곧 그들을 의심
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곳을 찾아왔지. 첫눈에 그들을 알아본 나머
지 그들이 옛날 피골이 상접했던 구양 형제라고는 도저히 믿어지
지 않았단다."
 "고모는 그래도 의심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더욱 확실하게 조
사하기 위하여......."
 도교교가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중간에서 가로챘다.
 "그 시녀를 단칼에 죽여버리고 그 시녀로 변장했지."
 "고모 같은 총명한 사람이 멍청한 시녀로 변장하니 당연히 알아
차릴 수 있는 사람이 없겠죠."
 "그 동안 나는 그들이 바로 구양 형제란 것을 알아냈어. 다만
즉시 그들의 정체를 파헤치면 그들이 달아날까봐 경거망동을 못한
것이야. 더군다나 설사 그들을 잡을 수 있다해도 그 물건들을 숨
긴 장소를 말하지 않을까봐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야."
 "그래서 고모는 그 물건들이 숨긴 장소를 알 때까지 복수에 불
타는 마음을 억지로 참는단 말씀이에요?"
 "만약 내가 인내력이 강하지 않고 줄곧 지금까지 참아오지 않았
다면, 지금쯤 너는 이미 지옥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다른 점은 제쳐놓고라도 고모
 가 그 멍청한 시녀로 변장하지 않았던들 어떻게 모용구매와 접촉
할 수 있었으며, 또한 어떻게 그토록 흡사하게 변장할 수 있었겠
어요!"
 소어아는 쓰디쓴 미소를 띠웠다.
 "처음엔 그 정신착란을 일으킨 소녀가 모용구매라는 것을 알지
못했어. 그러나 의아심은 있었지. 그래서 할 일 없을 때마다 심심
풀이로 그녀의 인피가면을 만들었단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금 같
은 짧은 시간 안에 변장도구도 지니지 않은 내가 어떻게 그녀로
변장할 수 있었겠느냐!"
 소어아는 눈알을 굴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냉소
를 터뜨렸다.
 "고모가 이 가면을 만든 것은 심심풀이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뭣 때문에 이 인피가면을 만들었다는 말이냐?"
 "고모는 필요할 때가 되면 그녀를 없애고 그녀의 모습으로 변장
하려고 하였죠. 그렇게 되면 그 나구 형제가 더욱 고모를 의심하
지 않는 한편 고모가 조사하고자 하는 일이 더욱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과연 네 녀석의 머리는 비상하구나. 내 마음 속의 일들을 완전
히 파헤치고 말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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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올포유 | 작성시간 26.06.11 즐감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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