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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룡] 절대쌍교(絶代雙嬌)4권 59

작성자고향설470|작성시간26.06.11|조회수48 목록 댓글 1


괴인(怪人) 동 선생의 출현 
 
 
 "고모의 그 계획이 비록 치밀했지만 뜻밖에 제가 모용구매를 데
려가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고, 그 가면 또한 고모에
게 여전히 가치를 잃었죠. 그러므로 고모는 폐물 이용격으로 심심
풀이로 저를 살려준 것에 불과하죠!"
 "네 녀석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내가 성의껏 너를 구해준
것이 오직 폐물 이용이며 심심풀이로 밖에 생각 되지 않느냐?"
 소어아는 웃음띤 얼굴을 할 뿐 그녀의 말에 응답하지 않았다.
 도교교는 그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자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너를 발견할 때부터 너에게 온갖 정신을 다 기울였어. 그
원인은 네가 구양 형제와 함께 있는 것이 필시 무슨 꿍꿍이속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까닭이지. 어제 새벽, 너와 흑 지주가 모
용구매에게 편지를 쓰라는 말도 나는 엿들었단다."
 그녀는 애교가 가득찬 웃음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밖에서 지켜주지 않았다면 아마 너희들은 벌써 구양 형제
에게 들켰을 것이다."
 소어아는 깜짝 놀랐으나 겉으로는 여전히 태연한 체하며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설사 그들에게 들켰다 해도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습니
다."
 "내가 공연히 도와줬나 보구나!"
 "고모는 그 편지에 관한 내용을 들었기에 제가 사당에 갈 것이
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도교교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리고 나는 백개심을 만난 적이 있단다."
 그 말에 소어아는 다시 놀랐다.
 "백개심! 고모는 언제 어디서 그와 만났어요?"
 "네가 진흙으로 무슨 놈의 '흑살최명단'인가 하는 것을 만들었
 을 때 나는 이미 그곳에 있다."
 소어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다. 고모가 그 근처에 숨어있는데 제가 왜 고모를 발견
하지 못했을까요?"
 "너의 지금 실력으로는 나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지. 그러나
그 당시 나는 백개심과 마주보고 있었던 까닭에 손짓으로 그보고
외치고 떠들라고 했지! 너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그 당시 너는 자신의 실력에 도취되어 있었으니 어찌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있었겠나!"
 "어떠한 상황아래서도 주의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나 보군
요."
 소어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불현듯 무엇이 생겨난 듯 중얼
거렸다.
 "어쩐지 방금 백개심이 저보고 해독약을 달라지 않는다 했지요.
그는 벌써부터 고모에게 그것이 진흙에 불과하다는 것을 들었군
요. 제가 그에게 진흙을 독약이라고 먹였으니 그는 당연히 저에게
골탕을 먹이려 했겠죠. 화풀이를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만약 이 우연한 일들이 이토록 정확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늘
이 너의 제삿날이 되었을 것이다."
 소어아는 정색을 했다.
 "그 일들이 보기엔 매우 우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가 인과
응보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더없이 합리적이지요."
 "오직 골탕을 먹은 자는 강별학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골탕을 먹이려면 당연히 그와 같은 사람을 골탕먹
이는 것이 가장 재미있죠. 만약 성실한 사람을 골탕먹일 것이면
차라리 집에서 발닦고 낮잠이나 자는 편이 낫습니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있던 도교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야. 나쁜 사람에게 골탕을 먹이는 것은 정히 좋
은 사람에게 골탕먹이는 것보다 재미있겠지! 더군다나 그런 자들
에게 골탕을 먹인다 해도 그는 자신이 재수없다고 생각할 뿐이지
절대로 떠들며 다니지는 못할 테니까. 누군가 설혹 네가 그에게
골탕을 먹여 주었다는 말을 듣는다 해도 오히려 너에게 탄복할 뿐
이지 결코 복수할 사람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소어아의 입가엔 기쁜 웃음꽃이 활짝 핀듯 했다.
 "그러므로 고모도 저와 같이 그저 나쁜 사람에게만 골탕을 먹여
주고 좋은 사람에게는 그냥 놓아 두세요. 비단 남에게 골탕을 먹
이는 것은 흥겨움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복수를 당
할까봐 숨어 살 필요도 없으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입니까?"
 이 한마디는 도교교를 추켜주는 말이기도 했지만 따끔한 충고이
기도 했다. 소어아는 계면쩍은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고모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악인곡에서 나왔습니까? 저
는 여전히 알 수가 없군요."
 도교교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에 미처 생각지 못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이 똑같은 말을 그녀는 두 번이나 계속 했고, 또한 할 때마다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듯 했다.
 소어아는 문득 뭔가 생각난 듯 급히 물었다.
 "혹시 '악인곡' 무슨 예측할 수 없는 큰 사고가 발생한 게 아녜
요?"
 "누가 아니래!"
 그녀의 말은 거의 체념에 가까웠다. 소어아의 얼굴색이 크게 변
하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 사고가 고모로 하여금 악인곡에서 나오게 했으니 필시 매우
엄청난 것이겠군요?"
 "정말 매우 엄청난 사고였지."
 소어아는 조급한 마음에 견딜 수 없어 다그쳐 물었다.
 "도대체 무슨 사고예요? 빨리 말씀해 주십시오."
 도교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그......."
 이때 갑자기 쉭' 하는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고 따라서 한 인영
이 나무가지 위에서 뛰어 내려오며 큰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이 이곳에 있는 줄도 모르고 내가 얼마나 찾았다
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흑 지주였다.
  소어아는 놀라운 표정이었으나 웃으며 말했다.
 "너로구나. 왜 이제야 왔느냐? 조금 전에 참으로 많은 재미있는
일들이 발생했었는데 너는 하나라도 구경했니?"
 "하마터면 영영 너희들과 만나지 못할 뻔했다."
 소어아는 그제서야 비로소 그의 반짝거리던 비단옷이 진흙으로
범벅이 되고 머리도 헝크러진 것을 보았다.
 "너는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느냐?"
 흑 지주는 원망스러운 음성으로 말을 받았다.
 "네가 나보고 전하라는 그 놈의 편지가 아니었으면 무엇 때문에
이 꼴이 되었겠느냐?"
 "그 편지가 어떻게 되기라도 했느냐?"
 "내가 편지를 가지고 남궁유의 집에 막 도착했을 때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나는 살며시 집 안으로 들어가 편지를 책
상 위에다 놓았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어아는 벌써 안타까움이 가득찬 표
정으로 발을 굴렸다.
 "너는 무엇 때문에 집 안까지 들어갔느냐? 그저 편지만 집 안에
던져 놓으면 되지 않았겠니? 그들이 데리고 다니던 시녀가 이미
남에게 잡아 먹혔는데 자신의 거처를 아무나 드나들도록 소홀히
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어?"
 흑 지주의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번져 나왔다.
 "내가 너무 경솔한 탓으로 그 점을 미리 깨닫지 못했다. 내가
편지를 책상 위에다 놓자마자 갑자기 한가닥의 긴 채찍이 나에게
휘날려 왔고 내 손에 쥐어 있던 편지를 빼앗아 갔다네! 그래서 나
는 나의 경솔함을 깨닫고 급히 도망가려고 작정했지. 그러나 벌써
창문과 대문앞은 사람들로 가로 막혀 있었지."
 "그들이 집을 비워 놓은 것은 바로 너로 하여금 방 안으로 들어
가라는 것이다. 생각해 봐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남궁유와 모
용쌍이 사는 방을 남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놔 둔단 말이
냐?"
 흑 지주는 소어아의 탓하는 소리에 크게 노했다.
 "나는 평생동안 떳떳이 살아왔는데 그런 교활한 계책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이냐?"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다. 너는 성인군자라서 그런 속임수를
알 까닭이 없지."
 흑 지주는 그제야 비로소 화가 가라앉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당시 나는 크게 당황한 나머지 그냥 뚫고 나가려 했지. 그
러나 사방의 창문과 대문을 가로막은 자들은 모두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었어. 특히 암기를 퍼붓는 수법은 더욱 절묘해서 비단
뚫고나갈 수 없음은 물론 심지어 그들 손에 잡히기 일보직전이 되
었다네."
 "그들이 그 편지를 본 이상 당연히 너를 놓아줄 리 만무하지!
그런데 그들은 너의 정체를 알고 싶은 까닭에 너에게 중상을 입히
지는 않았겠지."
 "나도 그들이 그저 내 정체를 알려고 할 뿐이지 나를 죽일 생각
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어. 그들의 암기는 나의 치명적인 위치에
가해 지지는 않았어.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그들 손아귀에
들어갔을 거야."
 "모용가문의 암기는 정말 소문대로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
나 보구나....... 그런데 너는 그들의 포위망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으니 그들보다 실력이 더욱 더 뛰어났다고 할 수 있지 않
겠는가?"
 그러나 흑 지주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만일 나 혼자의 힘이었더라면 도망 나온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
다."
 "그렇다면 누가 너를 도와 주기라도 했단 말이냐?"
 "내가 그들에게 잡히기 바로 일보 직전에 갑자기 한 사람이 날
듯이 집안으로 들어왔지. 고인옥의 가전(家傳) 신권(神拳)도 무예
계에서는 매우 알려진 것이고 나 자신의 무공 또한 뛰어 났는데,
그 사람이 그저 옷소매를 가볍게 흔들했을 뿐인데 고인옥은 벌써
나가 자빠졌지."
 이 말을 들은 소어아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군데 그토록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단
말이냐?"
  "그처럼 뛰어난 무공을 난 평생 본 적이 없어. 심지어 꿈에서도
그토록 무서운 무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
어."
 "네가 그토록 탄복하는 걸 보니 정말 무서운 무공을 지니고 있
나보구나!"
 "그 사람은 그저 옷소매를 가볍게 몇 번 흔들거렸지. 그러자 암
기들이 도리어 뿜어낸 사람들을 향하여 덮쳐 갔어. 그들이 뿜어낼
때보다 더욱 거센 힘을 지니고 말이다. 그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자기들의 암기를 피하기에 바빴지. 바로 그때 그 사람은 나를 겨
드랑이 밑에다 끼고 밖으로 나는 듯이 솟구쳐 갔어."
 그렇게 말한 그는 부끄러웠던지 쓰디쓴 미소를 짓다가 말을 이
었다.
 "그의 겨드랑 밑에서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지. 그때 그는 가
볍게 몸을 솟구쳤는데 벌써 칠팔장 밖으로 날아갔다네. 구름을 타
고 하늘을 나는 것 같았어."
 "너는 점점 더 신기하게 얘기를 해 나가는구나. 이 세상에서 그
토록 뛰어난 경신술을 지닌 자가 어디 있단 말이야?"
 흑 지주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지금의 너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할 테지만 심지어 친히 목격한
나까지도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어. 너 자세히 생각해 보아라. 만
약 그 사람이 놀라울 정도의 뛰어난 무공을 지니지 못했다면 어찌
나를 겨드랑이 밑에다 낄 수 있단 말인가?"
 "옳은 말이야! 너를 겨드랑이 밑에 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에 정히 없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그는 분명히 그렇게 했는 걸."
 "지금 너는 그래도 그가 누군지를 모른다고 하겠니?"
 듣고 있던 도교교가 갑갑한 듯 드디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지요?"
 흑 지주가 응답했다.
 "그 사람의 몸집은 별로 크지 않았지만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
었어. 나는 그에게 차 한 잔 식을 시간 밖에 끼어다니지 않았는데
온 몸이 마비된 듯 꼼짝도 할 수 없었어."
 도교교는 그 사람의 몸집이 별로 크지 않다는 말을 듣고서야 숨
을 돌릴 수 있었다.
 소어아가 계속 다그쳐 물었다.
 "그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나?"
 "그의 얼굴에는 흉칙한 청색의 구리가면이 가려 있었고, 두 눈
은 형용하기 조차 어려운 음산한 빛이 도사리고 있었어. 심지어
배짱이 두둑하다고 자부한 나도 그의 얼굴을 단 한 번 바라보고는
더이상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어. 등뼈가 오싹해지고 소름이 꽉
끼쳐 두 손은 식은 땀으로 축축해졌지."
 소어아는 그의 눈빛 속에서 아직도 놀라움과 공포에 질려있다는
걸 발견하였다. 자신도 등줄기가 오싹함을 느꼈고, 심지어 간담이
서늘해져옴을 느꼈다.
 도교교가 다시금 참다 못하여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는 당신을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나를 껴안은 채 동산 위로 달려 올라가 한 그루의 매우
큰 나무 위로 몸을 올리더니 그제서야 나를 벌어진 나무가지에 놓
았지. 그때 나의 온몸은 완전히 마비된 듯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또한 감히 움직이지도 못 했어. 그저 조금만 움직이면 떨어질까봐
말이다."
 소어아가 물었다.
 "그는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
 "그 자신도 나무가지에 앉아 차디찬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
었지. 한마디 말도 없고 말이다. 그가 앉은 가지는 매우 연약한
것이라 간난 아기가 그 위에 앉는다 해도 부러질 정도였는데 그는
매우 편안한 것 같이 보였어."
 "그는 정말 괴상한 사람이구나...... 무공이 너무 뛰어난 사람
은 모두 괴상한 성격에다 괴상한 버릇을 지니고 있나보지!"
 도교교가 그의 말에 찬성하지 않는지 불쑥 끼어들었다.
 "아마 그는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
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당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으니 말입니
다."
 "그 당시에는 나도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남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없어서 정말 고맙다는
말이 나오지 않더군."
 도교교가 다시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또 고생을 했겠는데요."
 "그래요. 그는 한동안 기다리더니 내가 아무말도 할 기미가 없
자 갑자기 나의 두 곳의 혈도를 점한 후 나를 나무 위에 놓아 둔
채 어디론가 사라졌지요."
 이렇게 말한 그는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도교교를 바라보았다.
 "모용소저께서는 정신이 회복됐습니까?"
 도교교는 깔깔댔다.
 "정신이 회복됐냐고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이 한마디를 던진 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려 날듯이 달아났다.
 이러한 광경을 본 흑 지주는 깜짝 놀랐다.
 "모용소저! 잠깐만 기다리시오. 가지 말아요."
 그러나 도교교는 멈추지 않았고 벌써 멀리로 사라져갔다.
 흑 지주는 달아나는 도교교를 뒤쫓아 가려했다. 그러나 소어아
가 재빨리 그를 잡으며 웃음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게 놓아 주어라."
 흑 지주는 의아한 눈동자로 소어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어째서...... 어째서......."
 "그녀를 걱정하지 말고 우선 네가 당한 일이나 계속 이야기해
보아라."
 흑 지주의 머리 속에는 의아한 생각이 가득찼다.
 한참이나 넋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더니 결국 다시 이야기를 계
속했다.
 "그때 바람은 점점 세게 불어 몸은 좌우로 흔들거리고 나무가지
도 마치 끊어지려는 듯 흔들렸지. 하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 꼼짝
할 수 없었으니 간은 정말 콩알만하게 되었다네."
 "그는 너의 생명을 구했는데 왜 다시금 너를 괴롭히려고 했을
까?"
 "차라리 그가 나를 구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때 같이 비참하게
되지는 않았을 게야. 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나는 놀랍고 당황한
한편 분노도 느꼈지. 심지어 그의 살결을 씹어 먹고 싶은 충동까
지 느껴졌어. 그러나 그의 그 귀신도 놀랄 무공을 생각하니 평생
이 다가도 아마 복수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
 "그런데 너는 어떻게 나무 위에서 내려왔지?"
 흑 지주는 그 당시를 생각하는지 쓰디쓴 고소가 입가에 잠깐 번
졌다.
 "내가 어떻게 복수를 할까 생각하고 있는 동안 그는 다시 내 앞
에 나타나 내 마음을 환히 본듯 갑자기 나에게 물어왔어. '너는
복수하고 싶은가?' 하고."
 '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환히 볼 수 있다. 비록 네
가 입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눈으로 이미 모든 것을 완전히
털어 놓았으니 말이다.'
 "그가 나의 마음을 알았으니 나는 더욱 더 악독한 눈초리로 그
를 노려 보았지. 그리고 속으로 설사 네가 나를 나무 아래로 밀어
버린다 해도 이렇게 나무 위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하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는 밀기는 커녕 도리어 '나는 너의 생명을 구
해주었는데 너는 어떻게 은혜를 갚을까 생각하지는 않고 미리 복
수할 궁리만 하느냐' 하는 것이었어."
 "참으로 묘한 사람이구나!"
 "그 당시 나는 그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지. 원한은 비록 갚아야
했었지만 은혜도 아니 갚을 수는 없었지. 나 흑 지주가 어찌 은혜
를 잊고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이냐? 오직 그의
무공이 그토록 뛰어났으니 비단 복수를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은혜를 갚으려 해도 어떻게 갚아야할지 막연했어. 어떤 때
는 은혜를 갚는 것이 원한을 갚는 것 보다 더욱 어려웠으니 말이
다."
 "너의 그러한 생각이 아마 또 그 사람에게 들켰을 것이다."
 "과연 그는 또 다시 내마음 속을 훤히 읽는 듯이 내가 말을 꺼
내기도 전에 그가 먼저 '너는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좋을지 걱정
하고 있느냐?' 하고 물었어. 나는 그저 콧방귀를 뀌며 아무말도
대답하지 않았지. 그때 그는 또 다시 입을 열었어. '너는 다른 사
람을 위하여 편지를 전해줄 수 있는데 나를 위해서도 편지를 전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결국 참다 못해 그에게 물었지. '그저 내
가 당신을 대신하여 편지를 전해 주기만 하면 은혜를 갚는 것이
오?' 그는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편지를 한 장 꺼내어
나보고...... '누구에게 전해 주라는 것인지 네가 어디 한 번 맞
혀 보아라.'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지. 그러자 그는 나보고 그
편지를 화무결에게 전하라고 하더군."
 소어아는 눈에서 빛이 번쩍거리며 웃음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이 점점 재미있게 벌어져 나가는데? 그와 화무결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지? 왜 너보고 편지를 전하라는 것이지. 그가 분명
히 직접 화무결에게 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혹시 그는 화무결과 만나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지."
 "설사 그가 화무결과 만나고 싶지 않다해도 그의 그렇게 뛰어난
경신술로 아무도 모르게 화무결의 침대 위에 편지를 갖다 놓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흑 지주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소어아를 바라보며 웃음
을 터뜨렸다.
 "분명히 매우 간단한 일이라도 그저 네가 생각하기만 하면 즉시
복잡하게 변해 버리는구나. 원래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는데 너의
해설을 듣고 도리어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다."
 "그 일의 내막은 절대로 간단하지 않을 것이네......."
 흑 지주는 문득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그의 말을 가로챘다.
 "혹시 그는 내가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일부러 나
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준 것이 아닌가?......."
 소어아도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와 같은 괴상한 사람은 확실히 그런 괴
상한 생각을 해낼지도 모르지. 너는 비록 남에게 은혜를 빚지고
싶지 않겠지만 그 역시 남에게 은혜를 빚놓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
르니 말이다......."
 "바로 그럴 것이다. 나는 남에게 빚지고 싶지 않고 또한 남에게
빚을 놓고 싶지도 않아. 서로 빚지는 것이 없어야지만 꺼리낌 없
이 마음대로 살 수 있으니 말이야. 만약 누가 나에게 은혜를 갚으
려고 무척 노력한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나 역시 무척이나 괴로움
을 느낄 테니까."
 "그렇다면 너희들은 똑같은 이상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나 보다.
어쩐지 그가 너를 구했다 했지....... 그런데 그 편지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너는 보았느냐?"
 갑자기 흑 지주는 노여움이 가득찬 음성으로 외쳤다.
 "너는 나 흑 지주를 남의 편지나 함부로 엿보는 사람으로 봤단
말이냐? 그가 나의 혈도를 풀어 준 후 나는 즉시 그 편지를 화무
결에게 갖다 주었지. 심지어 편지 봉투 위에 무어라고 적혀 있는
지도 보지 않고 말이다."
 소어아는 웃음띤 얼굴로 장난하듯 말을 받았다.
 "너든 과연 군자답구나. 그러나 화무결이 그 편지를 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내가 이렇게 조급히 너를 찾으려는 원인은 바로 화무결이 그
편지를 본 후 매우 이상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흑 지주의 말이 매우 진지해졌다.
 소어아는 즉시 다그쳐 물었다.
 "그가 무어라고 말했느냐?"
 "그는 '내가 강별학과 사귄 지는 비록 얼마 안 됐지만 이미 서
로 매우 깊게 아는데 어찌 소문을 듣고 그를 악인이라고 취급하겠
습니까? 그 선배님은 너무나도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하고 말했
어."
 "뭐? 그렇다면 그 괴인이 전한 편지가 강별학과 관련이 있단 말
이지? 듣자 하니 화무결로 하여금 강별학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
라는 것 같구나."
 "바로 그거야!"
 소어아는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그 괴인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왜 강별학을 도와 주려는 것
이지?"
 "화무결이 그러한 말을 하자 나는 즉시 '그 선배님은 누구입니
까?' 하고 물어 보려 했어. 하지만 화무결은 이미 먼저 나에게 물
었지. '댁은 그 선배님을 친히 봤으니 참으로 영광이라 할 수 있
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르겠군. 그 분은 얼
 굴에 혹시 청동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화무결도 그를 만난 적이 없었나 보구나."
 "그런 모양이야."
 "화무결은 그를 만난 적도 없는데 어찌 그의 말을 믿을 수 있단
말이지?"
 "본시엔 나도 매우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나중에야 비로소 화무
결이 강호에 발을 들여 놓기 전에 이화궁주가 그에게 당부하기를,
훗날에 만약 동 선생이란 사람을 만나면 절대로 그의 말을 어겨서
는 안 된다고 또한 그 동 선생이란 분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모
두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더군."
 "그 괴인은 동 선생이란 이름을 지니고 있구나. 참으로 그의 사
람됨과 똑같은 괴상한 이름이로구나!"
 "이화궁주가 또 말하기를, 그 동 선생이란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기인(奇人)이라 하고 무공은 더욱 천하 제일이라 했
다는군. 심지어 이화궁주 자신마저 자기가 그 동 선생에 비하면
아득히 떨어져 있다고 했단 말이야."
 소어아의 얼굴색이 또 크게 변하며 놀라운 음성으로 물었다.
 "이화궁주 같이 오만불순한 사람도 그런 말을 할 줄 안단 말인
가? 만약 이화궁주마저 그에게 탄복했다면 그 동 선생이란 작자의
무공은 확실히 무서울 정도로 뛰어나겠군."
 흑 지주는 한숨을 쉬어가며 말했다.
 "그러므로 그 동 선생이란 작자가 강별학을 도와주고 있는 이
상, 네가 강별학을 이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
지."
 소어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얼굴을 달리 하며 자기의 추리를 내세웠다.
 "내가 보기엔 그 동 선생이란 작자가 필시 강별학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만약 그가 친히 도울 생각이 있었다면
절대로 화무결에게 그러한 편지를 띄우지는 않았을 터이고, 더욱
너보고 갖다 주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화무결은 그 동 선생의 말을 완전히 들었으니 필시 끝
까지 강별학을 도와줄지도 몰라. 그와 같은 인물이 강별학을 도와
주고 있는 이상 너는 골치를 꽤나 썩힐 것이다."
 그렇건만 소어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리 대수롭지도 않아."
 흑 지주는 두 눈을 부릅뜨고 한참이나 소어아를 바라보더니 갑
자기 한마디를 던졌다.
 "잘 있거라."
 그의 이러한 말을 들은 소어아는 급히 놀라며 물었다.
 "어디로 갈 작정이냐?"
 "비록 은혜는 갚았지만 원한은 아직 갚지 않았다."
 이 말이 떨어지자 소어아는 더욱 놀라서 물었다.
 "너는 그 동 선생을 찾아서 복수할 셈이냐?"
 "왜? 그러면 안 되나?"
 "하지만...... 하지만 그의 무공이......."
 "그의 무공이 나보다 뛰어나기에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여 복수
도 못한단 말이지? 흑 지주가 약한 자에게만 강하고 강한 자에게
는 약한 사람인줄 알았는가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는 분명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잖느냐?"
 흑 지주는 큰소리로 외쳤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기껏해야 목숨 하
나 잃을 뿐이지! 누구도 나 흑 지주를 함부로 나무 위에 매달 수
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를 편안히 지내게 하지는 않겠어!"
 하고 외치면서 그의 몸은 이미 먼 곳으로 사라져갔다.
 소어아는 쓰디쓴 미소를 그의 등 뒤에 쏘아 보냈다.
 "이 녀석의 성질이 정말 개똥보다 더럽고 바위보다 더욱 단단한
고집불통이구나...... 하지만 그 녀석의 귀여운 점이 바로 그런
점 아닌가?"
 지금 소어아에겐 또 다른 세 가지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
다.
 첫째, 진짜 모용구매는 어디 갔단 말이냐?"
 둘째, 악인곡에서 도대체 무슨 엄청난 일이 발생했단 말인가?
 셋째, 동 선생이란 작자는 누구이며, 강별학과 무슨 관련이 있
고, 또한 왜 강별학을 착한 사람이라고 말했을까?
  이때 날은 이미 완전히 밝아 있었다. 소어아는 얼굴에 쓴 가면
을 벗었다. 대낮에 그는 이대취의 얼굴로 남과 만나고 싶지 않았
던 것이다.
 그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풀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 문제들은
정말 그를 골치 아프게 했다. 그는 천하 제일의 총명한 사람이 되
는 것이 실로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쓰디쓴 미소가 번진 얼굴로 중얼거렸
다.
 "누가 만약 천하 제일의 총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아마 그는
바로 천하 제일의 멍청한 놈일 것이다."
 큰 길에는 행인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런데 십중팔구는 모두 동
쪽으로 가고 있었다. 또한 그들 모두가 무예계의 인물들인 것 같
았으며, 어떤 사람은 심지어 팔목에다 검은 헝겊을 메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흥분한 빛들이 가득차 있었고 입으로는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소어아는 그들이 바로 어제 천향당에 가서 상을 치룬 사람들이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팔목에 검은 헝겊을 메고 있는
것은 철무쌍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에서인 것 같았다.
 (저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왜 모두 얼굴에 기쁨
이 가득차 있을까? 저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바로 이때 갑자기 기이하고도 장식이 화려한 포장마차 한 대가
나는 듯이 달려와, 별안간 소어아의 옆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마차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조
급함이 가득찬 음성으로 외쳤다.
 "빨리 올라타!"
 햇볕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녀의 용모는 매우 밝고 아름다웠지만 피부는 보기에 극히 거
칠었다. 그녀는 바로 모용구매로 변장한 도교교였다.
 제아무리 뛰어난 변장술이라도 변장한 후의 피부는 여전히 거칠
게 보였다. 다만 웬만큼 주의해서는 발견할 수 없었을 뿐이다.
 소어아는 재빨리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마차 안의 장식은 더욱 화려했고, 방석은 두텁고 부드러웠으며
컸다.
 소어아는 참지 못하여 말을 꺼냈다.
 "고모는 정말 방법도 많군요. 어디서 이 마차를 얻었죠?"
 도교교는 그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도리어 반문했다.
 "내가 한참이나 너를 기다렸는데 왜 이제야 왔느냐? 그 흑 지주
란 녀석과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했느냐?"
 "우리는 동 선생이란 자에 관해서 토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모는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도교교는 놀라움이 가득찬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뭐라고? 그 녀석을 구한 자가 바로 동 선생이란 말이냐?"
 "고모도 그를 알고 있습니까?"
 도교교는 멈칫했다. 하지만 그녀는 즉시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런 사람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그런 이름을
들었다."
 소어아는 그녀가 필시 무슨 사연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
릴 수 있었다. 다만 도교교가 하기 싫은 얘기는 그 누구도 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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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올포유 | 작성시간 26.06.11 즐감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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