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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룡] 절대쌍교(絶代雙嬌)4권 63

작성자고향설470|작성시간26.06.15|조회수44 목록 댓글 1


연남천의 출현(出現) 
 
 
 화무결의 마차가 지나가자 이층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자리로
돌아 갔으나 소어아만은 여전히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서서 중얼거
렸다.
 "내가 이렇게 피하는 것도 언제까지 일까? 그렇다면 나는 한평
생 피해야만 한단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을 하던 그는 갑자기 일어서서 밖으로 달려 나갔
다.
 그는 무슨 일을 생각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부모를 닮은 점이었다.
 강풍과 화월노가 이런 성미가 아니었다면 어찌 위험을 무릅쓰고
이화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랴. 강씨 집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은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해야하고, 한 사람을 좋아하면 죽을 때
까지 좋아하는 성미다. 강풍은 비록 겉으로는 다정하고 연약했으
나 실은 강철보다 더욱 강경한 사람이었다.
 이 점이 바로 소어아가 아버지를 닮은 점이다.
 따뜻한 햇빛 속에서 행인들은 모두 노곤한 졸음을 느끼고 있었
다. 이때 거리에서 뛰어 가는 사람을 보자 이상함을 금치 못했다.
 소어아는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도 상관하지 않고 빨리
달려가기만 할 뿐이었다. 잠시 후 화무결의 마차를 따라 잡았다.
 마차는 이 때에 성을 막 나갈려고 하고 있었다. 화무결이 말하
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종일 들어 앉아 있었으니 밖으로 나가 보는 것도 좋겠
소......."
 이 때 한 사람이 큰소리로 불렀다.
 "화무결, 잠깐만!"
 화무결은 약간 이맛살을 찡그리며 말고삐를 잡자 철심난이 창문
사이로 고개를 약간 내밀었다. 소어아는 이미 앞으로 달려가고 있
 었다.
 소어아가 갑자기 나타나자 화무결은 크게 놀랐다. 화무결도 믿
지 못할 정도였는데 철심난이 놀란 것은 더욱 당연했다.
 소어아는 참으면서 철심난을 보지 않으려 했다. 다만 계속 화무
결을 노려보면서 한바탕 웃고는 말을 했다.
 "내가 너를 찾아올 줄은 몰랐었겠지. 그렇지?"
 "정말 뜻밖의 일인데."
 그는 그저 웃고 싶었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너는 내가 자살하러 온줄 알겠지?"
 "그렇다."
 그의 말은 간단 명료했다.
 소어아는 크게 웃었다.
 "너는 정말 성실하군. 그러나 이것은 항상 그 누구도 너를 두려
워 하지 않기 때문에 남을 속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화무결의 눈에서 빛이 번쩍했다.
 "그렇다!"
 다시 그의 말은 짧막했다. 화무결을 바라보면서 소어아도 웃음
이 나오지 않았는지 큰소리로 대신했다.
 "네가 정 그렇게 나를 죽이고 싶다면 나를 찾지 않고 내가 너를
찾기를 기다렸지?"
 "나는 본래 너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으니 너를 찾을 필요는 없
었지. 그러나 너를 본 이상 너를 죽여야 해."
 철심난이 그때서야 정신을 가다듬고 돌연 마차 문을 열며 달려
나왔다. 소어아의 앞을 막은 그녀는 곧 큰소리로 원망하듯 말했
다.
 "이번에는 그가 스스로 당신을 찾아왔으니 죽일 수는 없어요."
 소어아는 한 손을 들어 그녀를 밀어버렸다.
 화무결의 안색이 금시 변하면서 드디어는 입도 열지 못했다.
 철심난은 소어아를 바라보면서 떨리는 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 당신은 왜 저를 이토록 험악하게 대하죠?"
 소어아는 그녀에게 아는 체도 하지 않고 화무결을 노려볼 뿐이
었다.
 "이 난(蘭)이 너의 미혼처라고 들었는데 왜 나의 일에 간섭하는
거지? 나는 그녀를 알지도 못하는데!"
 철심난은 입술을 힘차게 깨물었다. 피가 흐르고 눈에는 눈물 방
울이 맺혔다.
 소어아가 어떻게 그녀를 대하든 간에 그녀가 소어아를 본 이상
소어아는 채찍으로도 그녀를 쫓아버리지 못할 것이다.
 화무결은 가슴이 아팠다. 그는 그녀에게서 눈을 돌렸다.
 "이번에는 네가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겠지?"
 소어아는 하늘을 향해 크게 웃었다.
 "내가 남의 구원이 필요하면 어찌 너를 찾아 오겠느냐?"
 그는 돌연 웃음을 끝내고 큰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는 마음 속으로 알고 있겠지. 나 같은 사람은 절대로 죽기
위해서 너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 내가 왜 왔
는가 궁금해 할 거야."
 "바로 그 점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너는 나를 죽이려 해도 나를 죽이지는 못 해. 나 자신도 너 때
문에 애태우고 있어. 더군다나 너는 나를 죽이려 하지만 내가 너
를 죽이려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야."
 "네가 나를 죽이지는 못할 걸."
 "너는 내가 너를 죽이지 못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도 네가 나
를 죽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끌고 나간다면 이백 년
이전에는 네 말이 맞는 것인지 내 말이 맞는 것인지 모를 거야.
내 마음 속으로도 애태우고 있을 뿐이지. 너는 나보다 더욱 애타
고 있을 거야. 그래서 오늘 온 것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이
다."
 화무결의 눈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강렬한
빛이었다.
 "어떻게 해결 할 생각인가?"
 "네가 한 곳을 정해라. 삼 개월 후에 내가 반드시 그곳에 가서
너와 사생 결단을 할 테다. 생사를 판가름 내기 전에는 그 누구도
달아나지는 못할 거야."
 화무결이 담담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절대로 달아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겠지?"
 "네가 약속하는 건가?"
 "그렇다."
 소어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말했다.
 "그러나 삼 개월의 약속 날짜가 되기 전에는 네가 나를 보아도
못 본 척 해야 하며 나와 싸울 수도 없어!"
 화무결은 침울하게 생각해볼 뿐 말을 하지 않았다.
 소어아가 재차 큰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너를 찾지 않으면 삼 개월 동안 너는 나를 찾지 못할 거
야. 이 조건은 손해가 아닌데 왜 대답을 안 하지?"
 화무결이 서서히 대꾸했다.
 "네가 말한 조건에는 필시 무슨 함정이 있을 것이다."
 소어아는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너는 그럼 약속하지 않겠다는 거냐?"
 화무결은 돌연 말고삐를 고쳐 잡았다.
 "삼 개월 후에는 내가 무한(武漢) 일대에 있을 테니까 나를 찾
으면 돼."
 "좋아. 네가 그토록 나를 믿으니 너에게 실망을 주지는 않을 것
이다."
 그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철심난은 그가 자기를 바라보기를 기다렸으나 그러나 그는 시종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철심
난은 여전히 넋을 읽고 서 있었다.
 화무결은 조용히 말 위에 앉아 있을 뿐 그녀를 재촉하지도 않았
다.
 마차 옆으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 마차가
왜 떠나지 않는가 하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그 누가 그들의 육체는 비록 거기에 있어도 그들의 마음
은 벌써 먼 곳으로 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랴!
 얼마가 지났는지 몰라도 한참 후에야 철심난은 몸을 움직여 마
차의 문을 열었다. 화무결이 여전히 마차에서 기다리는 것을 보자
마음 속으로부터 뜻모를 감정이 우러나왔다.
 마차를 몰던 사람은 이 한쌍의 남녀가 다투는 것도 모르고 그녀
가 마차에 오르자 즉각 소리를 내어 마차를 성 밖으로 몰았다.
 화무결은 철심난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 데리고 나왔는데, 지
금 성을 나온 후 서로 마음을 풀기가 어려워졌다.
 철심난은 계속 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림 같은 정경도 그녀
의 눈에는 황무지처럼 보였다.
 마차를 몰던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른 척 웃으면서 물었다.
 "공자와 아가씨께선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화무결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손짓으로 앞을 가리킬 뿐이었다.
 울창한 나무숲에는 꽃이 만발해 있었고 조그만 개울이 숲을 지
나면서 초가을의 햇빛을 받아 은빛을 띠우고 있었다.
 멀리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개울 옆에서 햇빛을 쬐고 있었고,
마차 곁에는 꽃향기와 새소리가 가득했고 땅은 진흙으로 덮여 담
요를 펴놓은 것 같았다.
 화무결은 말에서 내려 나무에 기대선 채 평화로운 풍경에 도취
해 있었다. 그의 흰옷이 바람에 휘날릴 뿐 그 모습은 목석 같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철심난은 가볍게 마차 문을 열고 연약한 걸음으로 화무결의 곁
으로 다가가 넋을 잃고 풍경에 취해있는 화무결에게 조용히 물었
다.
 "당신은 분명히 그 속에 어떤 함정이 있는 것을 알면서 왜 대답
을 했지요?"
 화무결은 길게 한숨을 내쉴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철심난은 재차 물었다.
 "나 때문인가요?"
 화무결은 고개를 저었다.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 결국 하지 못하
는 했다.
 철심난은 그의 옆을 지나면서 꽃을 꺾었다. 그녀는 이 무명의
꽃을 들고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왜 말을 하지 않지요?"
 화무결은 담담히 웃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침묵이 때로는 말하는 것보다 좋을 때가 있지."
  철심난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당신의 가슴 속에는 많은 할 말이 있을 것으로 믿고 있
는데요. 말해 보세요. 나는 언짢아 하지는 않으니까요."
 "내마음 속의 말들은 그대가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오?"
 "이 이 년 동안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을 보살폈고 당신이 없었다
면 나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나는 과거에 당신 같이 다정한 사람
을 보지 못했어요."
 화무결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볍게 탄식을 했다.
 "나의 일생 중에 그처럼 나를 나쁘게 대해주는 사람도 처음이에
요. 그러나 나...... 나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를 보면 아무 생
각도 없어져요."
 화무결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런 말은 나에게 할 필요가 없었어!"
 철심난의 어깨가 떨었다.
 "나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자세히 말을 하지
않으면 더욱 괴로워요. 더욱 미안한 느낌이 들거든요."
 화무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어찌 그대의 책임인가? 나에게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당신...... 왜 나를 원망 않죠? 왜 나를 이토록 좋게 대하는
거죠? 당신...... 당신......."
 그녀는 나무에 기대며 울기 시작했다.
 화무결은 결국 눈을 뜨고 다정히 그녀의 머리를 매만져 주려 했
다.
 그러나 손을 내밀다가 곧 거두면서 하늘을 향해 가볍게 탄식을
했다.
 "날이 저물었으니 이제 어서 돌아갑시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그 남루한 차림의 사나이가 길게 허리를
편 후 중얼거렸다.
 "젊은 나이에 그런 작은 일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면 어리석다.
너희들이 크면 세상에는 더욱 많은 고통스러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
 화무결은 그에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으나 그가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그의 귀에 모두 들렸다.
 철심난은 울음을 그치면서 고개를 들어 그 사나이에게 눈길을
던졌다.
 그 남루한 차림의 사나이는 허리를 편후 돌연 일어선다.
 그가 일어서지 않았을 때는 몰랐으나 그가 일어서니 화무결과
철심난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방금 앉아있을 때에는 고양이
같았으나 막상 일어서고 보니 마치 맹호와 같았고, 한쌍의 눈에서
는 번개 같은 광채가 뻗쳐 나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매말랐으나 짙은 눈썹과 수염, 그리고 생기가 도는
눈동자, 이런 것들로 보아선 그의 나이를 측정할 수가 없었다.
 화무결은 많은 천하 영웅들을 보았지만 그의 눈에 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남루한 차림의 사나이는 형용할
수 없는, 즉 사람을 놀라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
다가 그 누구도 그의 앞에서는 몸을 움추려야 하는 위엄 또한 도
사리고 있었다.
 한쌍의 움직이는 눈동자가 더욱 사람을 무섭게 꿰뚫어 보고 있
었다.
 그 남루한 차림의 사나이는 화무결을 바라보면서 약간 놀란 듯
이 중얼거렸다.
 "그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닮을 리 없는데. 남의 일
은 상관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의 일...... 그의 일에는 내가 도와
줘야지."
 화무결과 철심난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듣지 못했다. 그
런데 이 사나이는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매우 느린 걸음 걸
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화무결 앞에까지 걸어와 있었다.
 이때 화무결은 그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의 몸에는 부옇게 퇴색돼 가는 검은 옷이 걸쳐 있었고 다 떨
어진 짚신에 한쌍의 큰 손은 무릎을 덮을 만큼 길었으며 허리에는
녹이 슨 철검이 달려 있었다.
  이 사나이는 아래 위로 화무결을 몇 번 훑어본 뒤 돌연 웃으면
서 입을 열었다.
 "너는 마음 속으로 이 아가씨를 좋아하는가?"
 화무결은 꿈에도 그가 이렇게 물을 줄은 몰랐기에 약간 당황했
다.
 "그건......."
 그 사나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좋으면 좋다 하고 싫으면 싫은 거야. 사나이 대장부가 그런 말
도 하지를 못한단 말이야!"
 화무결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뭐가 침묵이 말을 하는 것보다 더욱 좋다는 거야? 전부 개소리
다. 네가 말을 하지 않으면 남이 어찌 네가 그녀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느냐 말이다."
 화무결은 얼굴이 더욱 붉어지면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처럼 말을 했다면 그는 필시 속되다고 했을 것이지
만 웬지 이 사나이의 말은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
다.
 철심난은 얼굴이 비록 빨갛게 변하긴 했지만 용기를 내서 말했
다.
 "어떤 말들은 그가 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어요."
 그 사나이의 눈에서는 즉각 빛이 뻗어나와 그녀를 쏘아 보았다.
 "좋아, 매우 좋았어. 너는 그보다 통쾌하구나. 이런 여자 아이
라면 그뿐 아니라 내가 봐도 좋아할 거야."
 만약에 다른 사람이 철심난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그녀의 성
질로 미루어 보아 필경 그에게 따귀를 갈겼을 것이다.
 그러나 철심난은 다만 고개를 숙일 뿐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
다.
 "하하, 정 그렇다면 그가 너를 좋아하는 것을 알겠군."
 철심난은 다시 용기를 냈다.
 "알아요."
 "너도 그 사람을 좋아하나?"
 "나는......."
 그녀는 고개를 들어 화무결을 한 번 보고는 다시 숙였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그 사나이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크게 웃었다.
 "싫어하지 않는 것이 아니면 좋아하는 것이겠군. 너희 두 사람
이 서로 좋아한다면 내가 중매할 테니 여기서 식을 올리지!"
 이 말이 나오자 화무결과 철심난은 모두 놀랐다.
 "귀하께서 농담하시는 것이 아니오?"
 그 사나이는 화무결의 말에 눈을 뜨며 큰소리를 쳤다.
 "이것이 어찌 농담이야. 이 땅과 새울음 소리와 꽃의 향기, 그
리고 좋은 날씨에 너희 두 사람이 여기서 식을 올리면 얼마나 좋
으냐."
 그는 말을 할수록 의기양양해 하며 그저 만면에 희색이 돌았다.
 "촛불이 어찌 햇빛과 비하겠느냐? 세상의 모든 담요는 이 흙의
향기와 비할 바가 아니야. 너희 두 사람은 빨리 이런 좋은 날씨에
서로 예식을 올리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나 자신도 통쾌
하다고 느끼고 있는데!"
 화무결은 그의 말을 듣고 화를 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를 몰랐
다. 철심난은 그 자리에 선채 넋을 잃고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
다.
 그녀는 이때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화무결의 마음을 아
프게 할 수는 없었다.
 화무결은 그녀의 눈치를 살핀 뒤 돌연 입을 열었다.
 "귀하께선 비록 좋은 뜻이지만 나는 말을 들을 수가 없소."
 그 사나이는 웃음을 멈추었다.
 "응답하지 않는 건가?"
 화무결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네."
 그 사나이는 화를 벌컥 냈다.
 "네가 그녀를 좋아한다면 왜 혼인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제가...... 다만......."
 "알겠어, 네가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싫어할까봐 그러는구
나. 그러나 그녀는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거지?"
 화무결은 생각을 거듭한 후 천천히 말했다.
 "어떤 말들은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좋을 때가 있소."
 그 사나이는 탄식을 했다.
 "넌 분명히 그녀를 미치도록 좋아하는데 그러나 그녀를 위해서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과연 네 애비의 아들답구나."
 화무결은 그의 말뜻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그 사나이는 벌써 철
심난을 보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남자에게 시집가지 않으면 어떤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느
냐?"
 철심난은 고개를 숙였다.
 "나...... 난 아니...... 그러나......."
 그 사나이는 노하여 소리를 쳤다.
 "너희들 둘이 젊은 나이에 어찌 말을 할 줄도 모르는가? 나를
화나게 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빨
리 꿇어앉아서 식을 올려라. 누가 싫다고 한다면 나는 몽땅 죽여
버릴테다."
 화무결도 그가 자기를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화를 내며 싸늘하게 웃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결혼을 강요하는 사람은 처
음이오."
 "네가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내가 너를 못 죽일줄 알아 그러는
모양이로구나!"
 그러면서 허리의 칼을 빼 옆의 나무쪽으로 휘둘러댔다. 보기엔
녹이 슬어서 못 쓸 것 같았으나 단칼에 거대한 나무가 소리없이
두 동강이 되어버렸다.
 철심난과 화무결은 벌써부터 이 사람의 무술이 뛰어날 것으로
생각은 했으나 그의 검력이 이토록 불가사의 한 줄은 몰랐다.
 "이 검은 비록 녹슬었어도 말을 듣지 않는 어린애를 죽이는 것
은 손쉬운 일이야. 너희들 어떻게 하겠는가?"
 철심난은 화무결이 그 사람을 노하게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이
사람의 무술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화무결도 그의 상대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철심난은 마음이 약했다. 비록 화무결이 소어아를 못 다치게는
하였으나 또 한편으로는 남이 화무결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는 좋아요."
 사나이는 그제야 크게 웃었다.
 "그래야 도리이지. 너희들은 천생배필이야. 지금은 어려워해도
결혼만 하면 나에게 감사할 것이야."
 화무결이 돌연 그의 말을 받았다.
 "난 절대로 안 되오."
 그의 말은 단호했다. 끝까지 버틸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녀도 좋다고 했는데 너는 왜 싫다하는 것이냐?"
 화무결은 철심난이 진심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
었다. 그래서 그는 철심난을 죽도록 사랑하지만 절대로 강요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그는 노골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겉으로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피는 끓고 있었지만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것은 그가 비록 세상에서 가장 정열적인 사
람의 후예이지만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냉정한 사람 곁에서 자라
왔기 때문이었다.
 화무결은 싸늘하게 말했다.
 "나는 대답 못하오. 당신이 죽이고 싶다면 죽이시오."
 "당신...... 당신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단 말예요?"
 철심난의 다급해진 목소리였다.
 화무결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는 비록 소어아와 조금도
같은 점이 없어도 성질 만큼은 똑같았다.
 "너는 평생에 고통을 겪는 한이 있더라도 대답을 못하겠는가?"
 "절대로 대답 못하오!"
 "좋아! 네가 평생 동안 통곡을 하게 하는 것보다 지금 죽이는
게 좋겠다."
 그는 검빛을 빛내면서 화무결을 향해 찔러갔다.
 그의 검은 온몸의 힘을 쓰지 않았으나 매우 빠르고 절묘해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보였다.
 철심난은 멀리서도 이 검기에 숨이 막히는데 바로 앞에선 화무
결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파'는 소리가 나면서 화무결이 비록 검을 피하기는 했으나 옥
관이 끊겨서 머리가 흐트러졌다.
 검의 위력이 이렇게 큰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철심난은 급히 소리쳤다.
 "선배님, 멈추시오. 그가 대답을 못하는 것은 나 때문이에요.
제가 진심으로 대답을 하지 않았으니 나를 죽여 주시오!"
 그녀가 놀란 나머지 속마음의 얘기를 폭로하니 화무결은 가슴이
아파왔다. 온 힘을 다해 세 번을 공격한 뒤 죽음도 상관 없다는
듯이 검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사나이는 오히려 검을 거두면서 웃었다.
 "강씨, 과연 소 같은 성질이군. 그러나 너의 아버지보다는 약간
병신이야. 그녀가 정말 싫고 대답도 하기 싫으면 어찌 너를 위해
죽겠는가!"
 화무결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강씨란 말이오?"
 사나이는 놀랐다.
 "네가 강씨가 아닌가?"
 철심난도 따라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정말 강씨가 아니에요. 그는 화무결이에요."
 사나이는 자기의 머리를 만져보면서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
거렸다.
 "네가 강씨가 아냐? 일이 이상한데. 너는 강씨와 똑같이 생겼단
말이다."
 화무결도 손을 쓰는 것을 멈추고 이 사람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사나이는 탄식을 한 후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강씨가 아니면 결혼을 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으니
가고 싶으면 가거라."
 그는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면서 돌아섰
다.
 화무결과 철심난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다.
어리둥절 하는 사이 사나이는 걸어가면서 혼자 계속 중얼거릴 뿐
이었다.
 "이 소년이 강소어가 아니라고? 이상한데......."
 철심난은 이 소리를 듣자 놀랍고도 기뻐서 급히 물었다.
 "선배님은 혹시 그이가 강소어인줄 알고 결혼하라는 것이 아니
었어요?"
 사나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난 비록 너희들이 정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으나
그러나 강소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참견을 하지
않았을 거야."
 철심난은 생각을 참지 못하고 '호호'하고 웃어 버렸다.
 "당신은 아시는군요. 제가 강소어 때문에 그와 결혼을 할 수 없
다는 것을."
 그러나 화무결을 바라본 후 말을 더 계속하지 못했다.
 화무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지 우뚝 서있기만 했다.
 사나이는 철심난을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화무결을 바
라 보았다.
 "이제야 알겠다, 알겠어. 알고 보니 네가 말한 나쁜 사람이 바
로 강소어로구나. 너희들은 결혼을 할 수 있는데 강소어 때문에
못하는 것이지?"
 사나이는 손으로 머리를 두드리고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난 좋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렸으니......."
 그는 평생 동안 검법만을 잘 사용하고 강호에서 고생만 했기 때
문에 이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천하를 종횡무진으로 섭
렵하였기에 그 어느 무서운 무술도 그의 앞에서는 간단하게 변하
면서 그가 한 눈으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은 무술보
다 더욱 어렵고 더욱 복잡하여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화무결은 이런 웃음을 듣고 분노를 이기기 어려웠으나 억지로
참으면서 돌연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가고 싶으시오?"
 "내가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어?"
  화무결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해갔다.
 "당신의 무공 실력을 보고 싶소."
 사나이는 웃었다.
 "나는 너의 가슴이 따끔했을 줄 알고 있으니 어디 한번 네가 때
려 봐라."
 화무결도 역시 싸늘하게 웃었다.
 "당신의 무술이 지극히 강하더라도 나의 일장을 당하지는 못할
터이니 막지 않으면 자살 행위요!"
 말을 하면서 일장을 가했다.
 이 한 손이 연약한 것 같으면서도 매우 악독하여 피하기가 어려
운 수법이었다.
 사나이의 눈길이 빨라지면서 다급히 말했다.
 "좋은 장력이군!"
 그는 천성이 싸우기를 좋아했으므로 이때 이런 소년 고수의 무
술이 어떤가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왼손으로 응전했다.
 그러나 화무결의 장력이 돌연 오른 쪽으로 뻗히면서 교묘하게
변하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화궁 독보로 세상에서 말하는 '이화접옥'이었다.
화무결이 사용을 하면 상대방이 공격을 한다는 것이 스스로를 때
리고 마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사나이는 급히 돌아서 천하에 그 누구도 막아내지 못하
는 이화접옥을 피해 버렸다.
 화무결은 그제서야 크게 놀랐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사나이가 다시 그를 마주할 때에는 안색이 변했고 무서운 소리
를 질렀다.
 "너는 이화궁의 제자냐?"
 "그렇소!"
 사나이는 하늘을 향해 한바탕 호탕하게 웃어제꼈다.
 "나는 평생 이화궁의 무술을 시험 못한 것을 한으로 생각했는데
오늘 여기서 이화궁의 제자를 만나다니......."
 맑은 웃음소리에도 나무 잎이 흔들려 떨어졌다.
 철심난이 한걸음 나섰다.
 "선배님은 이화궁과 무슨 원한이라도......."
 사나이는 웃음을 그치고 다시 소리를 쳤다.
 "내가 바로 이화궁과 큰 원수가 있는 사람이지. 내가 십 년 동
안 검을 손질해 온 것을 이화궁의 제자들을 모두 죽이자는 것이었
어......."
 철심난은 놀란 나머지 온 몸에 소름이 끼쳐옴을 느꼈다.
 화무결이 돌연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연남천! 당신은 연남천이지요!"
 이화궁의 가장 큰 적이 바로 연남천이다. 이 하늘 아래서 연남
천 외에는 또 어느 누가 이화궁과 맞서고 이화궁의 사람을 모조리
죽인다고 하랴!
 화무결이 이 점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철심난도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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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올포유 | 작성시간 26.06.15 즐감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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