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선생과 두 형제 소어아는 거기까지 듣고서야 강별학도 그 신비스러운 사람의 내 력을 모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강별학은 고개를 숙인 채 걸어나와 사방을 세심히 살펴보더니 자신을 본 사람이 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모습을 날려 사라 졌다. 소어아는 방 속에 있는 사람의 무공을 알고 극히 조심스럽게 몇 채의 지붕을 기어 지난 뒤에야 안심하고 뜰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가 주전자를 들고 불이 켜져 있는 그 방으로 다가갔다. 소어아는 문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손님 물이 필요치 않습니까?" 그는 그 신비스러운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심어서 위험을 무릅쓰 고 여관 종업원으로 가장한 것이다. 그러나 방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소어아는 다시 한 번 크게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방 안에서는 아무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소어아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벌써 나갔단 말인가? 그는 마음을 크게 먹고 문을 살짝 밀어보았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소어아는 문간에 서서 안을 찬찬히 둘 러보았다. 방 안 탁자 위 화로에는 불이 타고 있었고 옆으로 주전 자와 네 개의 잔이 놓여 있었는데 전혀 건드린 것 같지가 않았다. 침대의 이불도 사람이 누웠던 흔적은 없었다. 그 신비스러운 사람은 방 안의 물건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 것으 로 보아 다만 그 방만 빌려서 강별학과 밀담을 나누려는 속셈이었 던 것 같다. 그는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 안에서는 기이한 향기가 코 속을 후비고 들어왔다. 그 향기 는 기분을 상쾌하게 했고 온 몸이 훨훨 날을 것만 같았다. 이 기이한 향기 외에 소어아는 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 했다. 다만 방이 너무 깨끗이 치워져 있다는 것이 이상스럽다면 약간 이상스러운 점이었다. 그 방은 먼지 하나없이 침대 밑과 구석구석의 물건 하나하나들 까지도 아주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바닥은 맑은 물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듯 깨끗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잠깐 이야기만 할 장소로 이와 같은 방을 빌렸을까! 보아하니 투숙할 마음은 전혀 없었던 듯한데 왜 이토록 깨끗하게 치우고 신비스러운 향수까지 뿌렸을 까? 이사람은 혹시 괴팍하게 깨끗한 것만을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 자가 아닐까?) 소어아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깨끗한 사람도 보기가 드물지........" 이때 한 사람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누구냐? 이 방에 무엇하러 왔지?" 그 목소리는 바로 소어아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소어아는 크게 놀랐다. 그러나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 다. "저는 마실 물이 있는지 보러 왔어요." "너는 이곳의 종업원이냐?" "네." "낮에 왔던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그 사람은 낮에 일을 하고 소인 왕삼은 밤에 일을 합니다." 그 사람은 돌연 싸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과연 강소어답군. 하지만 나는 네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너를 알고 있었으니 시치미를 뗄 필요가 없다." 소어아는 크게 놀랐다. "당신은......." 그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소어아는 몸을 돌렸다. 그러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방 문이 바람에 덜그럭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은 가버렸단 말인가.) 소어아가 의문에 휩싸여 고개를 갸웃뚱거리며 한숨을 내쉴 때였 다. "너는 날 볼 수 없을 거야." 그 사람은 어느새 그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소어아가 급히 대여섯 번을 몸을 돌려 그 사람을 보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마치 거머리처럼 소어아의 등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도 저히 그 몸을 볼 수가 없었다. 소어아는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 사람의 경공이 이 정도이니 무공은 상상할 수조차 없겠구 나. 감히 싸울 엄두도 나지 않을 뿐더러 도망가지도 못 하겠다.) 비로소 동작을 멈춘 소어아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나에게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나도 굳이 보려고 하지 않겠소." "너는 과연 영리하구나." "나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면 왜 이곳에 왔소? 날 죽이려 하는 것 같지도 않는데." "왜 내가 너를 죽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 "만약 당신이 나를 죽이려 한다면 굳이 얼굴을 숨기려 하겠소?" 그 사람은 한참 동안을 잠자코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나의 마음을 아는구나." "나는 전부터 천하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고 자처해 왔소.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었지만." 소어아는 이 사람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자 담력이 커졌다. 소어아는 말을 하며 옷장쪽으로 돌아섰다. 깨끗이 닦인 옷장에 의해 등 뒤의 사람이 어렴풋이 비춰졌다. 그 사람은 긴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깨에 덮일 정도였고 하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에 무서운 청동가면을 쓰고 있었다. 소어아는 크게 놀라면서 소리쳤다. "당신이 바로 동 선생이오?" 그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소어아는 그의 한쌍의 눈이 뚫어지게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한쌍의 눈빛이 옷장에 반사되어서 번쩍거렸다. 두살, 음구유, 흑 지주, 모용구매..... 이 사람들의 눈도 날카 로왔지만 그래도 그들의 눈에는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동 선생의 눈은 마치 얼음으로 만든 조각품인 양 차 갑게 느껴졌고 살기가 돌았다. 한참 후에야 동 선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흑거미가 너에게 말했나?" 소어아는 쓰게 웃었다. "난 흑 지주가 얘기하는 당신의 무공을 믿지 않았소. 그러나 오 늘 이렇게 만나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소." 동 선생은 싸늘하게 웃었다. "염려할 필요는 없다. 나는 너를 결코 죽이지 않을 테니까." "정말이오?" "음." "나는 처음에 이렇게 방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향수가 뿌려져 있어서 당신이 여자인줄 알았소. 다행히도 당신은 여자가 아니군. 만약 여자였다면 나를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믿지 못 했을 거요." "여자를 믿지 못 한다는 말인가?" "여자의 말은 절대로 믿을 수가 없소. 여자의 말을 믿으면 큰 일이 나니까." "무엇 때문에?" 소어아는 장탄식을 길게 뿜어냈다. "남자 중에서도 악한 자가 있지만 절대로 여자처럼 악독하지는 않소. 그렇게 의리 없지도 않지,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남자라도 여 자보다는 나을 거요." 동 선생은 돌연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애미는 여자가 아닌줄 아느냐?" "천하에 어느 여자를 나의 어머니와 비교하겠소? 그녀는 세상에 유일한 따뜻하고 아름다운 분이오." 그는 한 번도 어머니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고 마치 꿈을 꾸듯 말을 이었다. "세상 다른 여자들처럼 변덕스럽고 잔인한......" 이때 동 선생은 돌연 소어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소어아는 감히 대항할 생각을 못 했다. 동 선생의 눈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올랐고 차가운 손으로 소어 아의 목을 점점 더 강하게 조여왔다. 소어아는 몸부림을 치면서 소리쳤다. "당신...... 당신은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소!" "원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틀려!" "왜..... 무엇 때문에?" "네가 함부로 거짓말을 지껄여서 기분이 상했다."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소?" "네가 네 애미를 언제 봤느냐? 한 번도 본 적이 었는 놈이 지껄 여대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란 말이냐?" "당신...... 당신이 어떻게 내가 어머니를 뵙지 못 했는지를 아 시오?"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느냐?" "보았소?" "그...... 그럼 당신은 나의 어머니를 보았소?" "흥!" 소어아는 반가왔다. "나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오?" "네 에미는 절름발이에다 낙타 등이며 곰보고 대머리지. 세상에 서 가장 추악한 여자야. 세상의 어느 여자도 그녀보다는 미인이 지." 소어아는 크게 노했다. "거짓말, 개소리, 당신의 이야기야말로 거짓말이오." 소어아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 앞에서 번쩍이는 별들을 보 았다. 동 선생이 따귀를 후려친 것이다. 소어아의 뺨은 금시에 부어올랐고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소어아는 여전히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비록 어머니를 본 적은 없었지만 어머님 얘기를 하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애틋한 정감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어머니를 생각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 에 대한 생각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포근한 느낌과 아련 한 그리움이 밀려왔던 것이다. 만약 동 선생이 다른 이유로 자신을 모욕했다면 소어아는 절대 로 맞서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맞서봤자 이기지 못 할 것이 뻔한 이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욕하자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동 선생은 연이어 그의 얼굴을 가격했고 그도 계속 욕설을 퍼부 었다. 동 선생은 이를 악물었다. "더 욕설을 지껄여대면 너를 아주 죽여버릴 테다." 소어아는 입가에 계속 피를 흘리며 소리쳤다. "당신이 우리 어머니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말 한다면 나도 욕을 하지 않겠오." "너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여인이라고 말하면 나도 너를 봐 주겠다!" "당신의 어머니야말로 발을 절고 낙타등이며 곰보고 대머리 요......" 동 선생은 손으로 그의 턱을 잡고 말했다. "진정 죽고 싶으냐?" 소어아는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잡아 먹을 듯이 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네가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이면 잘못했다는 뜻으로 알고 살려 주겠지만 고개를 가로 저으면 죽여버릴 테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어아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동 선생이 재차 물었다. "너...... 너는 죽어도 너의 어머니가 가장 추악한 여인이라고 말할 수 없단 말이지?" 소어아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너..... 너는 차라리 죽고 싶단 말이냐?" 동 선생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차 있었으나 말소리는 점차 떨리 고 있었다. 소어아는 그가 곧 손을 쓸 것으로 알았으나 그의 두 손은 맥이 빠진 듯 놓아버렸고 소어아는 그의 손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 다. 동 선생은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서있었다. 소어아는 경거망동할 수가 없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 었다. "우리 어머니와 당신과는 무슨 원한이 있기에 그토록 그녀를 욕 하는 것이오?" 동 선생은 전혀 그의 말을 듣지 못 한 것처럼 그저 멍하니 서있 기만 할 뿐이었다. 소어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방문을 열고 달아나기 시작했 다. 한참을 달리다가 고개를 돌려보았으나 동 선생은 쫓아오지 않 았다. 소어아는 마음 속이 혼란했으나 오래 생각할 틈이 없었다. 즉시 몸을 돌려 전개신법으로 목숨을 걸고 몸을 날려 눈 깜짝할 사이에 몇십 장을 날았다. 그때 돌연 등 뒤에서 한 사람의 냉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아직 말을 못 하겠느냐?" "재주가 있다면 나를 죽여 보시오." 순간 소어아는 충격을 느끼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화무결은 평상시에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강별학의 주연에서 얼큰하게 취하기까지 했다. 그는 침 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창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한 사람의 인영이 화 무결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돌연 칼을 뽑아들더니 화무결의 손 목을 내려쳤다. 화무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려고 몸부림을 쳐 봤지만 무엇인가가 가슴을 내리누르고 있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 할 지경이었다. 이때 갑자기 창 밖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무결, 일어나라." 그 소리는 비록 나지막 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이 화무결 의 귀에 들려왔다. 화무결은 벌떡 일어났다. 악몽을 꾼 것이다. 그의 옷은 온통 땀 에 젖어 축축했다. 창 밖에서 또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무결, 이리로 나와라." 화무결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창문을 열었다. 하나의 그림자가 대여섯 자 밖에 서있었다. 담담한 별빛 아래 그 사람의 얼굴은 파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는 무서운 가면을 쓰고 있었다. 화무결은 크게 놀랐다. "동..... 동 선생이 아니오?" "나와라!" 화무결이 창 밖으로 나왔을 때 동 선생은 이미 지붕 위를 나르 고 있었다. 화무결은 뒤따라서 지붕을 날아 조용한 거리를 가로질렀다. 동 선생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갑자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 다. "이화궁의 제자가 어찌 잠을 그렇게 자는가!" 화무결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후배가 가슴이 답답해서........" "이화궁의 제자도 가슴이 답답한가?" 화무결은 그의 비웃음에 고개를 숙일 뿐 아무말도 하지 못 했 다. 동 선생은 신속히 달리면서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조금도 움직이 는 것 같지가 않았다. 화무결은 이런 경공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누구인 줄은 알겠지?" "후배가 이화궁을 떠날 때 스승님은 선생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명령을 들으라 했습니다." "그밖에는 없느냐?" 화무결은 마지 못해 무거운 소리로 대답했다. "또 저에게 강소어라는 사람을 죽이라고 분부하였습니다." 동 선생은 기쁜 듯 한껏 웃었다. "좋아." 그는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길은 점점 험악해졌고 어느덧 나무가 울창한 성 밖에 다달았다. 동 선생은 돌연 방향을 바꾸어 몸을 날리면서 말했다. "넌 거기에 있거라!" 그의 몸은 이미 나무 위로 솟구치고 있었으며 순식간에 사라지 고 말았다. 화무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동 선생 이 한 사람을 어깨에 메고 다시 나무 꼭대기에 나타났다. "똑바로 받아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어깨에 메고 있던 사람을 나무 위에서 내던졌다. 그 나무는 십여 장의 높이는 족히 되었다. 화무결은 그가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할 겨를도 없이 몸 을 솟구쳤다. 두 개의 그림자가 아래 위로 마주치는 순간 화무결은 재빠르게 손을 뻗쳐 그 사람의 옷을 잡았다. 그러나 '찍'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의 옷은 찢어지고 말았고 화무결도 그 사람의 떨어지는 힘 에 밀려 밑으로 처지고 말았다. 그러나 화무결은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틀어 다시 그 사람을 공 중으로 던져 올렸다. 그리고 땅에 사뿐히 내려서 이번에는 양팔로 가볍게 그 사람을 받을 수 있었다. 별빛이 그 사람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 닌 바로 강소어였다. 화무결은 놀라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동 선생은 나무에 서서 싸늘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가 강소어인가?" "그렇습니다." "좋아, 그를 죽여라." 화무결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소어아를 바라보면 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반항할 수 없는 사람을 죽이고 짚지 않다면 우선 그의 혈도를 풀어 주어라!" 화무결은 소어아를 눕혀 놓고는 손을 내밀어 소어아의 혈도를 풀었다. 소어아는 깊은 숨을 몰아 쉬며 눈을 떴다. 화무결을 쳐다 보는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당신이 나를 구했소?" 화무결은 혼이 빠진 사람처럼 서있을 뿐 아무말도 하지 못 했 다. 소어아는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나를 구하러 올줄 알았소. 우리는 친구이니까!" 화무결은 웬지 가슴이 아팠다. 그는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소어아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때 한 사람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무결, 너는 왜 손을 쓰지 않는 것이냐?" 소어아는 그제서야 나무 위의 동 선생을 발견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벌떡 일어나 두 눈을 크게 뜨고 화무결을 다시 쳐다보았 다. "알고 보니 그가 당신에게 나를 죽이라고 하였군요?" 화무결은 계속해서 길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소어아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결국 쓴웃음을 짓고 말았 다. "나는 당신이 그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소. 자 손을 쓰시오." 침묵을 지키던 화무결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당신을 죽일 수 없소!" 소어아는 기뻤다. 그러나 동 선생은 부화가 치밀어올랐는지 목 소리가 높아졌다. "뭐라고?" 화무결은 결심이 선듯 큰소리로 대꾸했다. "저는 지금 그를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너는 네 스승의 말을 잊었느냐?"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잊지 않았다면 왜 죽이지 못 하겠다는 게지?" 화무결은 길게 한숨을 내쉬어가며 대답했다. "나는 그와 삼개월의 약속을 했습니다. 삼개월이 되기 전에는 그를 결코 죽일 수 없습니다." "너의 스승이 이 일을 알면 어떻게 하지?" 화무결은 이제까지 숙였던 고개를 들어서 동 선생을 향했다. "스승의 명령은 물론 따르겠지만 약속도 지켜야 합니다. 지금 스승님이 여기에 계신다- 해도 저에게 배신자가 되라고는 하지 않 을 것입니다." 소어아도 큰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는 나를 꼭 죽일 것이니 오직 시간 문제일 뿐이오. 스승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아니오." 동 선생은 다시 화를 냈다. "화무결, 잊지 마라. 나의 말은 곧 너의 스승의 말과도 같은데 나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건가?" "선생님의 분부라면 무슨 일이라도 다 듣겠지만 그러나 이 일만 은 절대로 하지 못 하겠습니다." "스승의 명령 때문에 하는 일이니 너를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게야." "선생, 용서하십시오. 나는........" 동 선생이 돌연 큰소리로 그의 말을 막았다. "네가 그를 죽이지 못 하는 것은 약속 때문이 아니라 다른 원인 이 있는 것은 아니냐?" 화무결은 놀랐다. 사실 그가 소어아를 그의 품속에 안고 있을 때부터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는 소어아가 자기의 원수로 느껴 지지 않았고 오랫동안 교제해온 친구 같이 느껴졌다. 비록 만난 지 이 년도 채 못 되었지만 마치 집안의 혈육들이 주는 그런 편안 하고 친숙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소어아를 땅에 내려놓은 후에도 이런 느낌은 여전히 그의 가슴 에 남아 있었다. 지금 소어아의 믿음직한 웃음을 바라보면서 그가 어찌 손을 쓸 수 있으랴! 동 선생이 계속해서 무서운 소리로 화무결을 꾸짖었다. "화무결, 저 녀석이 너의 가장 큰 원수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네가 만약 그와 친구가 된다면 너의 스승은 결코 너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화무결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소어아가 진정 자기의 가 장 큰 원수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누가 그것을 증명해 준 적 이 있는가! 그는 조금도 소어아와 원한이 있는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신도 언제부터 그런 느낌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한 느낌은 마치 오래 전부터 그의 가슴에 숨어 있다가 소어 아와 피부를 부딪치게 되자 새삼 드러나게 된 것만 같았다. 그는 소어아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강소어, 너는 마음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가? 나와 생각이 같 겠지?) 소어아도 그를 주시하면서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동 선생은 나무에서 이렇게 마주하고 서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 자 싸늘한 눈이 불덩이처럼 빛을 내기 시작했다. "화무결, 석달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지금 손을 써라!" 소어아는 하늘을 향해 크게 웃었다."왜 석 달을 못 기다리오? 석 달 후에도 그가 손을 못 쓸 것으로 아시오77 "내가 무엇을 두려워 하랴마는 너희들은 원래가 원수야. 꼭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손에 죽어야 돼!" "좋소. 그렇다고 해도 왜 꼭 지금 그렇게 강요를 하는 거요? 나 를 죽이고 싶다면 당신이 죽이시오..... 왜 죽이지 못 하오?" 이때 돌연 동 선생은 갑자기 칼에라도 맞은 듯 소리를 지르며 뛰어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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