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룡] 절대쌍교(絶代雙嬌)5권 67

작성자고향설470|작성시간26.06.19|조회수48 목록 댓글 1


변화하는 화무결 
 
 
 화무결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팔시 동 선생이 소어아에게
손을 쓸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동 선생은 소리를 지르면서 나무
숲으로 뛰어 들어가 연달아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름드리 굵은 나무들이 일격에 꺽여 버리거나 낵리채 뽑혀 날
아가기 시작했다.
 소어아는 그 무서운 장력을 보자 입이 다물리지 않을 정도로 놀
랐다.
 동 선생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면 세상에 그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동 선생이 자기를 극도로 미워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 선생은 왜 직접 손을 쓰지 않고 이 나무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일까?
 이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 동 선생은 이미 화무결의 앞에 가까
이 와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너는 석 달 후에야 그를 죽이겠단 말이지?"
 화무결은 길게 한숨을 몰아 쉬었다.
 "네 !"
 "내가 지금 그를 죽인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는가?"
 화무결의 안색이 납 같이 변했다. 그는 소어아를 한 번 바라보
더니 무섭게 업을 열었다.
 "선생께서 만약에 그를 죽인다면 저는..... 저는......."
 "네가 나를 가로 막겠단 말인가?"
 "이건...... 제자가......"
 동 선생은 갑자기 손을 멈추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화무결을 바
라보며 크게 웃었다.
 "네가 그런 의리가 있다면 선배인 나로서 어찌 너를 괴롭히겠는
가? 네가 석 달을 기다리겠다면 석 달을 기다려도 무방하다."
 이 변화는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화무결은 놀랍고도 기뻤다.
 "선생, 감사합니다......"
 동 선생이 웃음을 멈추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너는 가거라1?
 화무결은 소어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그는......."
 화무결은 다시 놀랐다.
 "선생께서는........"
 "내가 직접 죽이려고 했다면 굳이 지금까지 기다렸겠느냐?"
 화무결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윽고 고개를 숙이며 말
했다.
 "그를 죽이지 않겠다면 왜 놓아 주지 않는 겁니까? 그도 신의가
있는 인물이니 석 달의 약속 기한 중에 결코 도망가지는 않을 것
입니다."
 동 선생은 싸늘하게 웃었다.
 "그가 신용을 지키든 또는 어기든 간에 난 이 석 달 동안 그를
보호해야겠다. 그를 조금이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난 석달
 후에 완전하게 그를 너에게 넘겨주겠다."
 소어아는 이 말을 듣자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그리고 나를 완전히 죽인다는 말이지요?"
 "그렇다!"
 "나를 보호하려면 고생을 좀 할 텐데."
 "너 같은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야."
 "나를 쉽게 보호하려는 것은 틀린 생각이오. 나에게 다른 병은
없지만 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무척 좋아하오. 강호에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만은 아니오."
 "하지만 화무결 외엔 어느 누구도 너를 죽일 수 없지."
 "정말이오?"
 "나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지만 앞으로 석 달 안에 내가 다치게라도
된다면 체면이 깍일 텐데."
 "이 석 달 안에 네가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그것은 나의 책임이
다."
 "화형 이 말을 잘 들었소?"
 소어아는 웃으며 화무결을 바라보았다. 화무결도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들었소."
 "기억할 수 있겠소?"
 "물론 기억할 것이오."
 소어아는 다시 크게 웃었다.
 "그럼 난 안심이오. 이 석 달 동안엔 무슨 짓을 해도 나를 다칠
사람이 없을 테니까."
 이때 동 선생이 싸늘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받았다.
 "안심해도 좋다. 이 석 달 동안 너는 아무일도 하지 못 할 테니
까."
 소어아는 큰 눈을 몇 번 깜박깜박 하면서 웃었다.
 "정말 그럴까?"
  화무결은 소어아가 영리하고 교묘한 수단을 쓰기 때문에 동 선
생이 비록 무술이 뛰어나도 그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어려울 것이
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자 화무결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넌 아직도 가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화무결은 웃음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
 "그럼 석 달 후에......"
 소어아가 잘라서 말했다.
 "안심하고 가시오. 석 달 후에 내가 그 곳에서 당신을 찾을 것
이오."
 그는 동 선생을 쳐다보고 나서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이 사람과 조용히 이야기하고 심은 것이 있는데 꺼
림칙하지 않소?"
 동 선생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천하에 내가 마음을 놓지 못 할 일이 있는 줄로 아느냐?"
 소어아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당신 재주는 좋지만 너무 큰소리를 치지는 마시오."
 "네 녀석은 너무 무례하구나!"
 "내가 무엇이 두렵겠소? 이 석 달 동안은 그 누구도 나를 다치
게 하지 못 할 텐데."
 동 선생은 매우 화가 치밀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소어아는
살며시 화무결 앞에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안타깝게도 가면을 써서 그렇지 만약 가면만 없었다면 정말 이
쁠텐데?"
 비록 작은 소리로 말을 했지만 이 소리는 동 선생도 들었을 것
같았다. 화무결은 참을 수 없어서 웃으면서 기침소리를 냈다.
 "무엇을 말하고 싶소?"
 "내일 오후 연남천 대협께서 화림에 와 나를 기다릴 것이오. 내
가 가지 못 할 것이라고 전해주시오."
 그는 이번에는 정말 작은 소리로 말을 했다.
 화무결이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연남천?"
 "그 분과 약간 언짢은 일이 있다는 것은 아오. 그러니 당신이
대답을 않는다 해도 원망은 않겠소."
 "하하, 이 석 달 동안 나와 당신은 친구요."
 "물론이오."
 "친구의 부탁인데 내가 안 들어 줄 수 있겠소?"
 "좋소, 당신 같은 친구가 있는 것은 정말 영광이오."
 화무결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다만 석 달이오."
 그는 일부러 냉담한 표정을 했다. 그러나 얼굴에 나타나는 섭섭
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소어아는 웃어보였다.
 "석 달이면 구심 일이니 그리 짧지도 않소."
 "그러나 우리는 친구로서 만나보지는 못 할 것 같구려. 다시 만
날 때는 이미 원수가 되어 있을 테니 말이오."
 "천하에는 많은 뜻밖의 일이 있고 그런 일들은 매일 발생하고
있소. 어쩌면 며칠 후에 다시 만날지도 모르오."
 화무결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나는 기적을 그리 믿지 않는 성격이오."
 "사람은 항상 기적이 있을 것으로 믿고 일어나길 기다리는 거
요. 그렇지 않으면 매일의 나날을 무슨 재미로 이어 가겠소?"
 "당신은 기적을 그렇게도 믿고 있소?"
 "내가 만약에 기적을 믿지 않는다면 지금 웃음이 나을 것 같
소?"
 돌연 동 선생이 두 사람의 대화 속으로 끼어들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화무결, 빨리 가지 않고 무얼
하느냐?"
 소어아는 화무결이 떠나는 것을 보자 저절로 탄식이 새어나왔
다.
 "좋은 사람이 잘못 태어났군."
 동 선생이 곁에서 싸늘하게 웃었다.
 "잘못 태어난 것은 너야! 그의 손에 의해 죽어야 하니까."
 소어아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꼭 죽어야 한다면 그의 손에 죽는 것이 남의 손에 죽는 것보다
는 낫겠소."
 "그를 원망하지 않느냐?"
 "내가 왜 그를 원망 하겠소?"
 "그의 스승이 너의 부모를 죽였는데도?"
 "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는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오! 그의 스승이 한 일은 그와 상관이 없소.
 잠시 침묵을 지키던 동 선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애인을 빼앗아 갔는데도 그를 원망하지 않느냐?"
 소어아는 쓴웃음을 띠웠다.
 "여자가 마음이 변했다면 무슨 힘으로 그것을 되돌릴 수 있겠
소. 나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소. 더구나 그녀의 마음이 그를 위해
변했다면 남을 위해 변한 것보다는 낫지 않소?"
 동 선생은 넋잃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하고 서있다가 갑자기 소리
쳤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 사랑을 빼앗은 원한을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다니 너도 사람이냐?"
 소어아는 그를 주시하면서 생각에 잠기듯 하다가 조용히 웃고
말았다.
 "내가 그를 미워하든 말든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토록
참견을 하는 것이오?"
 동 선생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꼭 나와 그를 싸우게 하기 위해 나를 지키겠다고 하고,
또 이 석 달 안에 우리가 좋은 우정을 갖게 될까봐 우리를 갈라
놓으려는 것이 아니오?"
 "좋을 대로 생각해라."
 "그가 나를 죽이려고 하면서도 원인을 말하지 못 하는 것이 이
상했었는데 이제 더 이상해지는군요."
 "넌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해도 그는 너를 원망할 거야. 그래서
너를 죽이려는 것인데 무엇이 이상하지?"
 "당신은 정말로 그가 나를 원망하는지 아시오?"
 동 선생의 몸이 일순간 떨렸다.
 "반드시 너를 원망할 걸."
 "이상하군. 당신과 그의 스승은 나를 직접 죽이는 것이 훨씬 용
이할 텐데 왜 직접 손을 쓰지 않고 화무결........."
 "누구 손에 죽든 네가 죽는 것은 어차피 마찬가진데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느냐?"
 "차이가 있소. 다만 내가 지금 그것을 모를 뿐이오."
 동 선생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싸늘하게 웃었다.
 "그 차이의 원인이 있긴 하지만 너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아? 그래요?"
 "그 비밀은 온 천하에 단 두 사람만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
은 결코 너에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소어아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이화궁주는 자연히 알 것이고......."
 "물론이지."
 소어아는 큰소리로 외쳤다.
 "이화궁주 자매 두 사람만이 알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알고
있소?"
 동 선생은 깜짝 놀랐다.
 "너는 말이 너무 많으니 이제 입을 다물어라."
 그는 돌연 손을 들어 소어아의 혈도를 점했고 소어아는 다만 흰
빛이 번쩍하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이 신비스러운 동 선생은 그의 얼굴 뿐만 아니라 자기의 손조차
보지 못 하게 한 것이다.
 화무결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호소할 상대도 없었거니와 남에게 말하기도 싫어하
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밤새 혼자 술을 마시다가 날이 밝아질 무
렵에야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돌연 뜰에서 소란
을 피우는 소리가 그의 잠을 깨웠다.
 그가 옷을 입고 방 문을 나서자 강별학이 나무 밑에 서있다가
그를 보고 웃으면서 걸어왔다.
 "어제 밤에 누구와 약속이 있어 나갔다 돌아와 보니 화 공자는
이미 술에 만취되어 자고 있더군."
  그는 어제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마치 얘기할 가치도 없다
는 듯 일언반구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화무결은 그저 웃으며 대꾸했다.
 "이제야 병(病) 중에서 술병이 가장 치료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겠소."
 이렇게 말을 하며 사방을 둘러보니 사람마다 황급한 표정으로
출입을 빈번히 하고 있었다.
 화무결이 물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강별학이 가볍게 탄식을 하면서 대답했다.
 "단씨가의 삼소저가 자살을 기도했소."
 화무결은 크게 놀랐다.
 "그렇게 호쾌한 사람이 자살을 했단 말이오?"
 "잊지 마시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여자요. 태반의 여자들은
모두 자살로서 일을 해결하는 것이 최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
소."
 "왜 자살을 하려 했소?"
 "원인은 누구도 모르오. 다만 그녀는 혼수상태에서 계속 외쳤
소.'나는 그이에게 잘못을 했어요.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겠대
요.'라고."
 "그이라니? 그는 또 누구요?"
 "소녀의 마음 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그 누가 알겠소?"
 강별학이 미소를 띠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살도 어렵지. 내가 알
기로는 여자가 자살을 기도해 성공한 예는 그리 많지 않소."
 화무결은 웃었다.
 "남자가 자살해서 성공한 예는 많은가요?"
 강별학도 따라서 크게 웃었다.
 "당신은 과연 천하 여인들의 벗이오. 그녀들을 위해 거들어 주
는 것을 잊지 않고 있으니 말이오."
 화무결은 눈길을 돌렸다.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됐지요?"
 "이미 정오가 지났소."
 "아, 내가 어찌 이토록 오랜 시간을 잤을까?......."
 그는 방으로 돌아가 세면을 했다.
 강별학이 따라 들어와 은근히 입을 열었다.
 "해장술을 마시면 오히려 술이 좀 쨀 것이오. 나와 두어 잔의
황혼주를 마시지 않겠소?"
 화무결이 얼굴을 닦으면서 웃었다.
 "제발 술을 마시자는 말 만은 하지 마시오. '술(酒)'자만 들어
도 머리가 아프오."
 "그렇다면 나가서 상쾌한 바람이나 씌지 않겠소? 내가 동행을
하겠소."
 화무결이 웃으면서 흔쾌하게 거절했다.
 "이미 여기서 오랜 시간을 머물렀는데 강형은 제가 길을 잃어버
릴까 걱정이오?"
 강별학이 문에서 한참 서있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정 그렇다면 난 단 아가씨의 상황을 둘러 보러 가봐야겠소."
 강별학은 화무결이 은밀한 일이 있어 동행을 거절한다고 눈치챘
다. 그는 뜰에 들어서 두 사람을 불러 무엇인가를 분부했다.
 강별학은 자신의 명을 받은 자들이 재빨리 사라지는 것을 바라
보며 입가에 잔인한 웃음을 띠운 채 중얼거렸다.
 "화무결, 너에게 좋게 대하려고 했지만 나를 섭섭하게 하는구
나. 너도 내가 무정하다고 하지는 말아라!"
 그는 남들에게도 말 못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 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든 그에게 비밀이 있으면 자기에게 흑심을 품은
것으로 생각해버렸다. 자고로 영웅은 보통 사람들보다 의심병이
많 았고 그것이 그들에게 치명상을 줄 때가 흔히 있었다.
 
 성내에는 큰길에서 작은 골목길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가나 강별
학이 보낸 사람들이 망을 보고 있었다.
 화무결은 그저 장터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새를 파는 가게에 들어가 한참 구경을 하더니 다시 한 찻
집으로 들어갔다.
  몇몇의 사람들이 계속 강별학에게 와서 보고를 했다.
 강별학은 침울하게 물었다.
 "혼자 차를 마셔? 누구와 만난 것은 아니던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
 한참 후 다시 한 사나이가 달려와서 인사를 하며 말했다.
 "화 공자가 찻집에서 나왔습니다."
 얼마 후 또다른 한 사나이가 보고를 올렸다.
 "화 공자는 길거리에서 왕철비가 요술 부리는 것을 보고 있습니
다."
 강별학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요술을 보고 있단 말이지? 그와 이야기 나누는 사람은 없
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누가 그를 살피고 있지?"
 "지금은 송삼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삼이 황급히 달려들어 오더니 땅에 엎
드려 말했다.
 "화 공자가 돌연 보이질 않습니다."
 강별학은 벌떡 일어서며 상을 내리쳤다.
 "너는 장님이냐? 대낮에 사람이 많은 큰길에서는 절대로 경공을
사용하지 않았을 텐데 왜 돌연 보이질 않는다는 거냐?"
 송삼이 떨리는 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때는 왕철비의 딸인 유성추도 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었습니
다. 그러나 돌연 그 유성추의 줄이 끊어졌고 사람들이 다칠까봐
우왕좌왕 하는 바람에 장내가 금방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지요."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소인...... 소인은 멀리 서있다가 황급히 화 공자가 있던 자리
로 가보았지만 화 공자는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성추의 줄이 어떻게 끊어졌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강별학은 다시 꾸짖었다.
 "왕철비의 딸에게만 정신을 쏟고 있었지?"
 송삼은 고개를 숙인 채 떨고 있었다.
 "제..... 제가 감히?"
 강별학이 무서운 소리로 그를 힐책했다.
 "너의 눈은 그렇게도 쓸모가 없는데 남겨서 무얼 하겠느냐?"
 강별학의 말이 떨어지자 두 명의 사나이가 와서 송삼을 끌고 갔
다. 송삼의 얼굴은 마치 죽은 시체와도 같았다. 그는 용서해 달라
는 말조차 하지 못 했다.
 얼마 후 처참한 소리가 들려왔다.
 강별학은 마치 아무소리도 듣지 못 한 듯 혼자 중얼거렸다.
 "화무결이 어디로 갔지? 왜 나를 피하는 것일까? 그가 흑 소어
아와 작당을 하고 동시에 나를 상대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의 말소리는 매우 가벼웠으나 그의 눈에는 차가운 빛과 살기
가 감돌고 있었다.
 "내가 천하의 사람들을 모두 배반한다 해도 누구든 나를 배반해
서는 안 돼. 강별학아, 이 말을 꼭 명심해라!"
 
 화무결은 성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만약 누가 그에게 '유성추가 어떻게 끊어졌지요?' 하고
물어본다면 그는 필시 더욱 크게 웃었을 것이다. 그는 조그만 돌
멩이 하나로 강철줄을 끊어 버렸던 것이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길을 재촉했다.
 (며칠 동안 나는 임기응변이란 것을 배웠지. 그리고 세정(世情)
의 험악함도 알았어.)
 화림에 가까와지자 어제의 검기에 의해 무참히 떨어진 꽃잎들이
시든 채 사방에 널려 있었고 구름이 하늘을 덮어 더욱 더 음산한
느낌을 주었다.
 화무결은 연남천을 만날 것을 생각하자 살며시 떠올랐던 미소마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쓰러져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해도
그는 꼭 소어아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땅 위의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휩쓸렸다.
 화무결은 꽃을 밟으며 화림에 들어섰다. 그러나 연남천은 그 자
리에 없었고 흰옷을 입은 여인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나무에 기댄
 채 땅 위의 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등을 화무결 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무결은 그녀
의 가날픈 몸매와 허리까지 늘어져 내린 머리카락만을 볼 수 있었
다.
 화무결은 비록 얼굴을 보지는 못 했어도 첫눈에 그녀가 누구인
지 알 수 있었다.
 꽃들이 바람에 휘날렸다. 화무결은 가만히 선채로 움직일줄을
몰랐다.
 그는 여기서 철심난을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어쩔지도 감이 서지를 않았다.
 철심난 역시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고 사람이 온 줄도 몰랐다. 바람
이 그녀의 귀밑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한참 후 그녀는 탄식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꽃은 피고 지며 한줌 흙으로 변한다. 사람도 또한 이것과 다를
것이 없는데......."
 화무결은 그녀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돌아서려고 했
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터뜨리고 말았다.
 철심난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그녀는 단 한마디 밖에 하지 못 했다.
 그녀는 서있는 사람이 화무결이라는 것을 알고는 기쁨에 넋을
잃고 말았다.
 화무결의 가슴에는 할 이야기가 많았으나 얼굴 표정은 담담하기
만 했다.
 그는 정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셨던 화무결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 가까이 다가
섰다.
 "내가 올 줄은 몰랐지요?"
 "당신이 다치지 않은 것을 보니 정말 기뻐요."
 그녀의 말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화무
결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웬지 모를 감정이 가슴을 저며왔
다.
 "감사하오."
 철심난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제...... 저 혼자 달아났는데 저를 원망하지 않았어요?"
 "내가 왜 당신을 원망하겠소?"
 그는 자기의 웃음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사
실은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잠시 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철심난은 다시 탄식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할 말이 많았는데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대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소."
 철심난이 다시 말문을 열었지만 말이 잘 이어지지를 않았다.
 "당신...... 당신이 안다고요?"
 화무결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게 들렸다.
 "사람을 잊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오. 때때로 당신은 그이를 잊
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의 모습과 말소리는 당신의 가슴에
영원히......."
 "당신...... 당신은 저를 용서해 주시겠죠?"
 그녀의 눈동자는 눈물이 가득 고여 반짝거렸다. 화무결은 고개
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을 보지 못 했다.
 "당신은 나의 용서를 받을 필요가 없소, 내가 당신이라도 그렇
게 하지는 않았을 거요."
 "그러나 나는 정말 당신에게 미안해요. 당신은..... 왜 저를 꾸
짖지 않죠? 나무라지도 않고? 그것이 저는 더 괴로워요. 당신의
동정은 나의 고통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에요."
 그녀는 목이 메어 더듬거리다가 드디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
다.
 
             골치덩어리 강소어 
 
 
 화무결은 한동안 침울한 표정을 짓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
했다.
 "나는 절대로 당신을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오. 나는
비록 당신...... 당신과 같이 있지 못 한다 해도 영원히 당신을
동생으로 생각하겠소."
 철심난은 돌연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반짝 들었다.
 "정말이에요?"
 "내가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소?"
 그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종래에도 강소어를 미워해 본 적이 없었소. 비록 운명
이 나와 적으로 맺어졌지만 그는 내평생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하
오. 당신....... 당신이 그와 같이 있는다면 나도 정말 기쁘겠
오....... "
 "오...... 오라버니, 난 한평생 영원히 당신을 존경하겠어요.
정말로 존경하겠어요."
 그녀의 눈물 속에는 기쁨과 슬픔이 어우러져 있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오. 당신을 원망
할 수도 없고 남을 원망할 수도 없으니 내 스스로 자학할 필요는
더욱 없을 것이오."
 "그러나 당신...... 당신은......."
 화무결이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잊혀지지 않는 고통이란 없는 법이오. 날이 가면 무슨
일이든 점차 잊어버릴 수가 있소. 그러니 당신도 근심할 필요가
없소."
 철심난의 목소리는 떨려 나오고 있었다.
 "당신..... 당신은 정말 너그러우시군요."
 그녀는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려왔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어요. 당신은 비록 겉으로는 그렇게 말을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저를 미워하고 있을 거예요. 이...... 이런
사실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에요."
 화무결은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지 않소."
 그는 철심난이 오라버니라고 불렀을 때 이미 이 한마디가 평생
동안 다시는 변경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느껴졌다. 그는 이 년 동
안 철심난에 대해 많은 애틋한 감정을 쌓아 왔지만 그 감정은 '오
빠'라는 이 소리에 의해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 오빠라는 말은
가까우면서도 매우 먼 거리를 두는 말이었다.
 화무결은 하늘을 향해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나는 그가 당신에게 그렇게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기를 바라오.
진정으로."
 철심난을 사랑하기에 하는 그의 말은 깊은 기도였고 아픔이었
다.
 화무결의 마음 속에서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들의 마음은 많이 안정 되어갔다. c오빠'라는 말로 서로의 감
정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철심난도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눈물을 거두었다.
 "그런데, 당신은 무슨 일로 여기에 오셨죠?"
 그는 주저하면서 소어아의 행방을 철심난에게 말을 해야 할지
숨겨야 할지 잠시 생각해야만 했다. 이것은 그녀를 근심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철심난이 또다시 물었다.
 "혹시 연 대협을 만나려고 온 것이 아니에요?"
 화무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철심난의 눈이 밝아지면서 다시 물었다.
 "혹시 그이의 부탁을 받고 온 것이 아니에요?"
 "음!"
 "그이...... 그이는 왜 오지를 않지요?"
 화무결은 대답을 피하면서 반문했다.
  "연 대협은 어디에 가고 당신만 여기에 있소?"
 "어젯밤에 연 대협이 저를 찾아와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저에게 오늘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했지요. 오라버니도 알다시피
연대협의 말을 거절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했지?"
 철심난은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입술을 살며시 깨물면서 주저
하다가 입을 열었다.
 "연 대협은 그이와 저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리고는........."
 이때 돌연 숲밖으로부터 한 사람이 큰웃음을 터뜨리면서 들어왔
다.
 "너희들 둘은 이야기를 모두 나누었는가? 내가 너무 일찍 온 것
은 아니겠지?"
 화무결이 몸을 돌리자 연남천은 웃음을 거두며 물었다.
 "어, 너는 어떻게 여기에 왔지?"
 그는 눈길을 급히 철심난의 얼굴로 돌리면서 물었다.
 "소어아는?"
 철심난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전 모르겠어요. 그는........ "
 "강소어는 나에게 연 대협께 알려드리라고 했소. 어쩌면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화무결의 말을 들은 연남천은 큰소리로 소리쳤다.
 "그가 무엇 때문에 오지 못 하지?"
 "그는 지금 다른 사람에게 감금 되어 있기 때문에 오지 못 하는
것이오."
 화무결의 말을 들으며 철심난은 안색이 크게 창백해졌고, 연남
천은 노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누가 그를 감금했지?"
 화무결은 주저하다가 결국 실토하고 말았다.
 "한 분의 무림 선배인데 그는 동 선생이라고 하오."
 연남천의 노기는 더욱 거세어졌다.
 "동 선생? 난 강호에 몇십 년 동안이나 돌아다녔지만 동 선생이
란 이름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지를 못 했다. 혹시 네가 지어낸 것
이 아니냐?"
 그는 급히 화무결 앞으로 다가서며 다시 소리쳤다.
 "네가 그를 죽이고 이제와서 시치미를 떼는 것은 아니냐?"
 "분명히 나는 그의 부탁을 받고 온 것이오. 그런데 연 대협께서
는 저를 의심하니, 저는........"
 연남천은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네가 어쩔 테냐?"
 "제가 비록 연 대협의 상대는 못 된다 하더라도 지금 저는 연
대협과 무술로써 승부를 가려야겠소!"
 연남천은 하늘을 향해 박장대소했다.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간도 크구나!"
 "간이 크지는 않지만 죽음을 두려워 하지는 않소."
 "그래, 정녕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네 소원을 들어
주마!"
 이때 철심난이 달려들면서 연남천을 막아섰다.
 "연 대협, 저는 그를 잘 알고 있어요. 그는 절대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소어아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너는 그를 위해서 변명을 해주
려느냐? 그래서 소어아가 너를 외면 하는구나. 너는 마음이 잘 변
하는 여자란 말이냐?"
 철심난은 눈물을 흘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소어에게 위험이 있다면 저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를 구출
할 거예요. 그러나 화....... 공자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믿을 수
가 없어요."
 이때 화무결이 나섰다.
 "연남천, 나는 당신을 일대의 영웅으로 존경해왔소. 그런데 연
약한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당신이 과연 영웅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럽소."
 철심난이 급히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라버니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연 대협께서는 저
를 모독할 생각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에요. 다만 저를 이해
하지 못 했을 뿐이에요. 또 소어아를 걱정하기 때문에....... "
  그녀는 이렇게 부르짖듯 말했으나 연남천과 화무결은 그녀의 말
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서로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돌연 연남천은 소리를 지르며 일장을 날렸고 화무결도 몸을 날
려 이에 맞섰다. 단 일장씩의 공격이었지만 엄청난 살기가 도사린
장세였다. 연남천이 두번째 장을 날리려는 순간, 철심난이 둘 사
이에 끼어들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안 됩니다. 두 분이 싸워서는 아니 됩니다."
 연남천은 손을 거두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네가 소어아를 위해서도 목숨을 걸 수 있고 또 화무결을 위해
서 너도 죽을 수 있다면 너는 도대체 몇 개의 목숨이 있다는 말이
냐?"
 철심난은 구슬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연 대협께서 무슨 욕을 한다해도 저는 변명을 할 수가 없습니
다. 연 대협께서 저를 몹쓸 년으로 보아도 저는 어쩔 수가 없어
요."
 그녀는 땅에 쓰러져 통곡을 했다.
 "저는 다만 연 대협께서 화 공자를 놓아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금후에 만약 그가 거짓말한 것으로 밝혀지면 저를 죽여도 좋습니
다."
 연남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너의 목숨을 걸고 그의 보증인이 되겠다구? 너 같이 변덕스러
운 여인의 목숨이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그는 다시 거세게 일장을 뿜어냈다. 천생이 화급하고 불 같은
성질이었는데다 소어아에 대한 근심 때문에 더욱 화가 치밀어 사
태를 판단해 보기 보다는 난폭한 행동이 먼저였다.
 
 권풍과 장풍 속에 나무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것은 강호에서 백 년 이래 최고의 결투라고 해도 아무런 과장
이 없을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그들은 검으로 무공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적수공권(赤
手空拳)이었지만 전황은 매우 격렬했고 지난번 싸움보다 결코 뒤
떨어지지 않는 혈전이었다.
 연남천의 권세는 검을 사용할 때와 같이 종횡무진해서 맹렬함은
천하무적이었다.
 그에 비해 이화궁의 무술은 본래 이연극강 후발제인(後發制因)
이었다. 화무결의 연약한 성격도 사실 그가 어릴 때에 배운 무술
과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의 수법은 완전히 그 풍(風)을 달리했다.
 그도 맹렬한 자세로 공격을 퍼부었으며 공격의 초식 하나하나에
예리한 살기가 드러났다.
 자기 일생 중 가장 관심을 둔 사람 앞에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
기위해 화무결은 고군분투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쌓아왔던 철심난
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도 허허로운 자신만의 기대였다는 것이 확
인되자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고 온몸을 던져 무엇인가 끝을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철심난의 울음소리는 그의 피를
더더욱 들끓게 했다.
 그의 이런 기질은 자기의 어머니에게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사
랑을 위해서 아무 두려움 없이 죽을 수 있었던 그러한 뜨거운 피
가 화무결의 몸에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화궁의 차디차고 혹독한 가르침 속에서 숨어있던 그 천생의
피는 사랑의 정열로서 다시 뜨겁게 용암처럼 분출했다. 그는 죽음
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피로써 자기가 가장 관심을 둔 사람의 억울함과 자
기의 억울함을 씻고 싶은 일념 볕이었다.
 격렬한 장풍은 하늘을 뒤덮고 땅을 흔들었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비가 올 것만 같이 음산했다.
 화무결은 종횡무진하여 쉴사이 없이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연남천은 마치 강철로 만든 견고한 벽처럼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화무결의 머리카락은 엉성하게 헝클어져 이마에 흘러내렸다. 그
의 얼굴은 격동하는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의 장세(掌勢)는 예리한 못과 같았으나 연남천 앞에서는 바람
에 휘날리는 가랑잎처럼 무력화 되어 버렸다. 그러나 연남천의 권
세(拳勢)는 마치 천근의 망치처럼 그를 후려쳤다.
 화무결은 자신의 몸이 흙 속으로 박혀 들어가는 것 같은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점차 숨을 쉬기도 벅차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절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물러서지 않을 결심이었다.
 그러나 이때 돌연 연남천이 몸을 뒤로 날려 물러서면서 입을 열
었다.
 "멈추어라!"
 화무결이 숨을 거칠게 내쉬며 물었다.
 "왜 멈추자는 것이오?"
 연남천의 눈길이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비록 동 선생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지만 네가 거짓말
을 하지 않은 것으로 믿겠다."
 "?......."
 "네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갑자기 너를 믿겠다고 하
는 이유를 알지 못 하겠는가?"
 "그렇소."
 "거짓말을 한 사람은 마음이 허할 것이고, 마음이 허하면 강렬
한 수법을 쓰지는 못 해."
 화무결이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하늘을 향해 대소했다.
 "지금에야 믿는다면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자네를 모독한 것을 용서하게."
 화무결은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리가 분명하고 절대로 우기지를 않으니 당신은 과연 천하의
영웅이오. 정말 예삿 인물들은 따르지 못 할 것이오, 소인은 당신
과 싸울 기력이 남아 있다해도 지금은 감히 손을 쓰지 못 하겠
소."
 "그러나 나는 여전히 손을 쓰겠네 !"
 화무결은 놀랐다.
 "네?"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알지만 나는 너를 보내지 않겠
어. 너를 붙잡아 두겠다."
 "그건 무슨 이유요?"
 "동 선생이라는 자는 너와 무슨 관계가 있는 모양인데?"
 "그렇소, 관계가 있소."
 "그가 강소어를 감금한 것은 자네 때문인가?"
 "내가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지는 않았소. 그러나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소."
 연남천이 소리쳤다.
 "바로 그거야. 그가 강소어를 붙잡고 있으니 나도 너를 잡아 두
겠다는 것이다. 그가 강소어를 놓아 주면 나도 너를 놓아 주겠
다."
 그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무거운 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가 만약 강소어를 죽이면 나도 너를 죽여버릴 테다."
 "그것은 공평하군요."
 "내가 하는 일은 항상 공평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
 "그러나 당신이 철 아가씨에게 한 말은 공평치 못 하오. 그녀는
......."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돌연 나무 밑의 철심난이 사라진 것을 발
견하였다. 마음이 산산조각으로 갈라진 아가씨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연남천이 소리쳤다.
 "너는 자원하여 나를 따라 가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다시
손을 쓰게 하겠는가!"
 "따라갈 용의는 있으나 지금은 가지 않을 것이오."
 "왜?"
 "만약 이 일 때문에 철 아가씨에게 무슨 사고가 생긴다면 당신
이 나를 보내준다 해도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연남천은 크게 웃었다.
 "좋아, 내가 철심난과 강소어를 찾기 전에는 우리는 해어질 수
없겠군."
 "그렇소!"
 
 동 선생은 소어아를 안고 다시 나무 위로 올라섰다.
 그 나무는 가지가 많았고 높이가 약 일장이 되었다.
  동 선생은 소어아를 가지 위에 올려 놓고 나무잎이 무성한 잔가
지들로 덮기 시작했다.
 소어아는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미소를 띠
고 있었다.
 "정말 좋은 은신처로군.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는데 오늘은 잠을
푹 자겠는 걸."
 동 선생이 싸늘하게 말했다.
 "점잖게 이곳에서 자고 있어라."
 "당신은 가려고?"
 "흥!"
 "당신은 고독을 좋아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열난 사람이라
나를 지키지는 않을 줄 알고 있었소."
 동 선생이 역시 싸늘하게 웃었다.
 "도망갈 생각은 말아라! 매일 너를 보러 올 테니까. 우선 할 일
을 다 처리한 후 너를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마."
 "손가락 조차도 움직일 수 없으니 나를 길거리에 내버려 둔다
해도 달아나지 못 할 것이오."
 "사리판단을 잘 해서 다행이로군!"
 소어아는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그런데 만약 비가 내리면 어떻게 하죠? 내가 비를 맞으면 병이
걸릴 테고, 병에 걸리는 것은 좋지만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
게 되면 당신의 명예에 손상을 입게 되니 말이오."
 그는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당신은 나를......"
 동 선생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잘랐다.
 "혹 네가 큰 병에 걸린다 해도 나는 치료해 줄 수가 있다."
 소어아는 생각을 거듭한 후 다시 말했다.
 "나도 어디가 부러질 텐데?"
 "그런 염려는 마라."
 소어아는 눈을 크게 뜨고 계속 말을 이었다.
 "독수리 같은 것들이 내 눈을 비둘기 알인줄 알고 삼켜버리면
어떻게 하겠소?"
 이 말에는 동 선생도 노기를 나타냈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말이 많으냐??
 "나는 다른 재주가 없소. 그저 남을 말로 괴롭히는 재주 밖에는
귀찮다고 느끼면 날 죽이시오. 그러면 될 테니까."
 동 선생은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이렇게 귀찮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목숨을 끊어 놓았을 일이었다.
 그러나 소어아는 어떻든 간에 죽일 수가 없었다. 소어아는 단
하나 그가 세상에서 죽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동 선생은 화가 치밀어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조차 했다. 그는
수건을 한 장 꺼내더니 소어아의 얼굴을 덮고 무서운 소리로 말했
다.
 "이렇게 하면 되겠나?"
 소어아는 깊이 한숨을 내쉬면서 웃었다.
 "당신의 수건은 정말 향기로운데요. 혹시 아가씨한테서 받은 정
표가 아니오?"
 동 선생은 더욱 크게 분노를 느낀 모양이다.
 "넌 왜 입을 다물고 있지를 못 하지!"
 "나의 혀를 점해두면 말을 못 할 텐데요. 그러나 당신도 아시겠
지만 혀를 점하며. 세 시간 이상을 견딜 수 없소."
 그는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만약 혀를 점해두고 세 시간마다 나의 숨을 틔워줘야 한다면
아마 당신이 상당히 귀찮을 거요."
 동 선생은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듯했다.
 "너는 아는 것도 많구나!"
 "하지만 그것 말고도 방법이 있소."
 그는 말을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것은 가는 것이오, 소위 삼십육계요. 가버리면 내가 무슨 말
을 해도 듣지 못 할 테니까."
 동 선생은 그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이미 몸이 나무를 내려가
고 있었다.
 소어아는 일부러 탄식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가는 것은 좋으나 절대로 일찍 오지는 말아라. 누가 나를 구할
지도 모르니."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 선생이 다시 달려오더니 그
의 얼굴에 덮은 수건을 제치며 무서운 소리로 물었다.
 "네가 말한 사람이 누구냐?"
 소어아는 일부러 놀라는 척했다.
 "아! 내가 한 말을 들었소?"
 "백장 이내에서는 나르는 낙엽도 나를 속이지 못 해."
 소어아는 다시 탄식을 했다.
 "이렇게 해두면 결코 남들이 나를 발견할 수 없을 텐데 누가 나
를 구할 수 있겠소? 그냥 해본 말이오."
 동 선생도 절대로 사람이 그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지는 않
았다. 그러나 소어아의 말을 듣자 오히려 의심이 생겨 다시 언성
을 높였다.
 "말을 안 할 테냐?"
 "무엇을 말하라는 거요?"
 "누가 너를 구한다는 거냐?"
 "당신은 생각도 못 하오?"
 동 선생은 한참을 침울하게 생각하다가 업을 열었다.
 "그렇다. 어쩌면 화무결이 돌아와 너를 구할 지도 모르지."
 그는 소어아를 안고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소어아는 암암리에
웃고 있었다.
 사실 소어아 자신도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나무 위에 있고 싶지가 않았다. 나무 위에서는
도저히 달아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사실 그는 동 선생 곁에서 계
속 그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그 틈을 이용해서 달아날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나무 밑으로 내려온 동 선생은 잠시 주저하고 서있었다. 소어아
는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 작정이오?"
 "흥!"
 "나를 이렇게 계속 안고 다닐 작정이오?"
 "흥!"
 "난 며칠 동안 목욕을 하지 못 했는데 당신은 내가 더럽지도 않
소?"
 그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동 선생은 손을 놓아 버렸
다.
 소어아는 '털퍼덕'하며 땅에 떨어졌다.
 "아야, 큰일났소. 뼈가 부러진 것 같소."
 동 선생은 발로 그의 다리의 혈도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일어서서 나를 따라와라."
 소어아는 양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맛살
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뼈가 부러졌는데 어떻게 일어서겠소. 이제부터는 정말 나를 안
고 다녀야겠소!"
 동 선생은 기가 막힌지 소리를 질렀다.
 "너의 뼈는 무엇으로 만들어졌길래 그렇게 가볍게 떨어졌는데도
부러진단 말이냐?"
 "떨어져서 부러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 걷어차서 부러졌을 거요.
아! 아이구 아파!"
 소어아는 신경질을 부리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동 선생은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부러졌는가?"
 "믿지 못 하겠다면 좀 만져 보시오."
 동 선생은 한참 주저하다가 결국 몸을 구부리고는 소어아의 다
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니 거기가 아니오."
 "그럼 어딘가?"
 "넙적다리가 아니고 좀 더 윗쪽이오."
 그러자 동 선생은 당황한 듯 돌연 손을 거두더니 그 자리에 우
두커니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소어아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왜 만지지 못 하오? 당신 혹시 정말 여자가 아니오?"
 동 선생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닥쳐 !"
 소어아는 여전히 혀를 내밀면서 역시 웃었다.
 "간단하지. 천으로 내 입을 막으면 되지 않겠소!"
 동 선생은 분명히 천으로 소어아의 입을 막아 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어아의 말을 따라 한다는 것도 우스운 모양이었다.
 동 선생은 싸늘하게 쏘아부쳤다.
 "왜 내가 네가 말하는 대로 들어야 한단 말이냐?"
 소어아는 '피식' 웃으며 비웃는 듯한 투로 말을 받았다.
 "나의 말이 매우 감미롭고 듣기 좋은 모양이지요? 내 옆에 앉아
우리 재미있게 이야기나 나눕시다."
 동 선생은 그를 바라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들부들 떨었
다. 그는 지금까지 세상에 자신이 해결하지 못 할 일이 없다고 생
각했고, 또 자기를 상대하여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강소어라는 골치덩어리는 그
의 일생에 처음 만난 괴물이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올포유 | 작성시간 26.06.21 즐감 하고 갑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