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상면 연남천과 화무결은 화림(花林)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연남천은 비록 화무결을 볼모로 하기로 했으나 그의 혈도를 점하거나 하지 는 않았다. 그는 화무결이 도망가지 않겠다고 한 이상 절대 말썽 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화무결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가볍게 탄식을 토했다. "강소어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언제 동 선생의 손아귀에 들어갔지?" "어젯밤이오." 연남천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가 동 선생의 손아귀에 들어간 지 벌써 하루가 됐군." "그러나 연 대협은 안심을 하시오. 동 선생은 절대로 그를 해치 지는 않을 것이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의 말은 그 연유를 몰라도 믿을 수 있는 경우가 있 소." 연남천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 였다. "동 선생이 그렇게 무서운 무공을 지니고 있다면 내가 왜 들어 본 적이 없을까? 넌 혹시 그의 내력을 아느냐?" "오직 그의 무술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알 뿐이오. 그의 내력 은 하나도 아는 것이 없소." "음! 만약에 내 짐작이 맞다면 그는 필시 어느 고수가 이름을 감추고 변장을 한 것일 게야." "천하에 그 누가 그런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겠소?" "이화궁주!......." 화무결은 고개를 흔들며 업을 열었다. "스승이 왜 다른 사람으로 변장을 해야 한단 말이오? 왜 굳이 저를 속이겠소. 연남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생각에 그 동 선생이란 사람이 정말 소어아를 너에게 무사 히 데려다 줄 것 같으냐?" 화무결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동 선생은 어둠을 타고 소어아를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 그 방 법외에는 당장 별다른 수가 없었다. 소어아는 침대에 누워 코까지 골며 잠에 골아 떨어졌다. 동 선생은 마치 인형처럼 의자에 꼼짝 하지 않고 앉아서 소어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소어아는 마치 어머니 곁에서 잠을 자고 있는 어린애처럼 입가 에 미소까지 띠우고 잠이 들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이상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으며 어린애처럼 순진하 게 보였고 사랑스럽기만 했다. 동 선생은 그의 얼굴에 그어진 영원히 가시지 않을 칼자국에 눈 동자가 머물자 몸을 부르르 떨며 의자를 꽉 움켜 잡았다. 그의 싸 늘한 눈동자에 뜨거운 불길이 일었다. 그러자 '팍' 하는 소리가 나면서 의자의 손잡이가 부러져버렸 다. 그 소리에 소어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비비며 그 를 향해 웃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오랫동안 잠을 잔 모양이지요?" 동 선생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아주..... 오래 되었지." 그는 억지로 말소리를 평온하게 하려 했으나 떨리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쭉 거기 앉아서 나를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흥." 소어아는 기지개를 펴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내가 당신의 침대를 차지해 버렸으니 정말 죄송하군요." 동 선생의 눈동자가 소어아의 다리에 머물자 갑자기 무서운 목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 너는 다리를 다치지 않았구나?" 소어아는 그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문쪽으로 결어나 갔다. 동 선생이 소리쳤다. "어딜 가려는 거지?" "난 잠에서 깨어나면 뒷간에 가는 버릇이 있소." 동 선생은 울컥 치미는 분노를 간신히 참는 듯했다. 그러나 그 의 목소리는 날카로왔다. "못 간다." 소어아는 쓰디쓴 표정을 지었다. "못 간다면 바지에 실례를 할 수밖에 없소. 냄새가 별로 좋지 않을 텐데." 동 선생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너..... 네가 감히!" "아무리 흉악하고 살인을 밥 먹듯 하고 다니는 사람도 대변을 보지 못 하게 하지는 않을 거요." 동 선생은 눈에서 불꽃을 내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소어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기만 했다. "날 대변을 못 보게 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소. 지금 나 를 죽이시오, 난 지금....... 참을 수가 없소." 그는 말을 하면서 바지를 내리려 했다. 동 선생이 급히 소리쳤다. "안 돼...... 여기는 안 돼......." "그럼 나가도 되겠소?" "어서 꺼져라!" 소어아는 걸어 나가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안심을 할 수 없다면 뒷간 밖에서 지키시오." 동 선생은 정말로 그를 따라 나셨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깨끗한 성질이어서 남이 만졌던 물건을 절 대로 만지지 않을 정도였을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남과 같이 밥 을 먹어본 적도 없었다. 그의 앞에서 사람들은 숨도 크게 쉬지를 못했었다. 그런 자기가 뒷간 밖에 서서 남이 대변보고 나오기를 기다리게 될 줄이야! 약 반 시간 후에야 소어아는 배를 만지면서 천천히 걸어 나왔 다. 동 선생은 불 같이 노했다. "그 안에서 죽은 줄 알았다!" "며칠 동안 참았던 것을 한꺼번에 청산하자니 자연히 힘이 들었 소." 동 선생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을 했던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어아는 여전히 웃음을 띠우고 말을 이었다. "뱃속의 물건은 청산했으니 이젠 밥을 먹읍시다." 동 선생은 다시금 크게 노한 기색이었다. "네가...... 네가 감히 뭐라고?" "먹고 싸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일인데 왜 그러시오? 당 신은 밥 먹자는 말을 처음 듣소?" 동 선생은 기가 막혔다. 한참을 어안이 벙벙해있는 듯하더니 돌 연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비록 뒷간에 가는 것을 막지는 못 했으나 먹는 것은 금할 수가 있어." "먹지 못 하게 한다구요?" "내가 줄 때만 먹고 그렇지 않을 땐 입을 다물고 있어라, 알았 는가?" 소어아는 눈을 몇 번 깜박거렸다. "내가 밥을 먹고 싶다고 할 때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주는 것을 먹지 않고 굶어 죽어버리겠소, 그렇게 되면 당신의 계 획은 끝장이 나는 거요, 알겠소?" 동 선생이 소어아의 옷깃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네..... 네 녀석은 도대체........" 소어아의 얼굴에서는 시종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비록 당신을 이길 수는 없어도 굶어 죽을 수는 있소. 안 그렇 소?" 동 선생은 한참 생각을 거듭하더니 결국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 었다. "나를 따라와!" "나는 당신을 따라 가지 않겠소. 당신이 나를 따라 오시오. 물 론 내가 먹는 음식값은 당신이 치루어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나 는 굶겠소." 동 선생은 화가 치민 나머지 온 몸이 떨렸으나 듣지 못 한 척 했다. 연남천과 화무결은 화림을 두 바퀴나 돌았으나 결국 철심난과 소어아를 찾지 못했다. 한참을 가만히 서있던 연남천이 돌연 입을 열었다. "너 술을 할 줄 아느냐?" "약간은 하지요." "좋아, 우선 술이나 마시자." 두 사람은 성내로 들어왔다. 연남천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강호 일대의 안주는 달고 북방의 것은 싱겁구나, 사천의 안주 는 맵지, 그것이야 말로 사나이 대장부의 구미에 맞는 듯한테 자 네의 의사는 어떤가?" "성내에 양자강이란 술집이 있다고 하는데 사천요리가 일품이라 더군요." 성 안은 복잡하고 사람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으며 양자강 주루 에도 술꾼들이 꽉 차 있었다. 거기에서 강별학이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이틀간 그는 불편한 일들이 많았다. 소어아, 화무결...... 그리고 그의 아들 강옥랑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때 돌연 한 사나이가 급히 이층으로 달려오며 강별학에게 소 리쳤다. "화 공자가 돌아왔습니다." 강별학은 막 입술에 댄 술잔을 내리며 급히 물었다. "어디에?" "바로 밑에 있는데 이곳에 와서 술을 마시려는 것 같습니다." "혼자냐?" "한 남루한 옷을 입은 사나이가 같이 있는데 마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별학의 안색은 납처럼 창백해졌다. 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빨리......빨리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막아라." 그러나 이미 화무결과 연남천은 이층으로 결어 올라오고 있었 다. 화무결은 강별학을 보자 미소를 띠우며 그에게로 걸어왔다. 강별학은 상 위에 손을 을려놓은 채 멍하니 서있었다. 화무결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강 대협도 이곳에 계신줄은 몰랐군요." "네..... 네........ " 그는 머뭇거리며 연남천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는 목이 바싹 탔 고 두 다리가 맥이 빠져 주저앉을 것 같았으며 목이 막혀 말이 제 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해 있었다. "후배는 벌써부터 연 대협의 협명을 흠모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뵈오니 정말 영광입니다." 연남천은 크게 웃었다. "그렇소. 비록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지만 흉금을 털어놓 고 술을 마셔봅시다. 하하하!" 이 '처음 만난 사이'라는 말을 듣자 강별학은 이상한 생각이 들 었으나 크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말 통쾌히 마셔야지요. 취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 습니다." 연남천이 상을 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좋아,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기로 합시다. 빨리 술가져 오 너라." 동 선생과 소어아가 여관을 나올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 고,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길 양쪽의 점포들도 어느 사이에 문 이 닫혀 있었다. 소어아는 무척 기쁘다는 듯이 활짝 웃으면서 등짐을 지고 여유 있게 걸었다. "너무 급하게 서둘지 마시오. 식당이 문을 닫았어도 돈만 있으 면 되오. 밥을 못 먹을까봐 걱정이오?" 동 선생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참았다. "여기 식당이 있으니 네가 문을 두드려 보아라." "이 식당의 이름은 삼화루요. 필시 강호의 요리일 것이니 안 되 오....... 음! 저기 진북평이 있는데 필시 북방 요리라 그것도 안 되오." 동 선생은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어 소리쳤다. "왜 안 된다는 거냐?" "강호의 요리는 새우가 별미인데 밤이 되면 새우가 신선하지 못 하고, 북방 요리 역시 마찬가지요." 동 선생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먹겠다는 것이냐?" "짜고 매운 요리, 즉 배에서 땀이나는 사천 요리가 제일 좋소."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느냐?" "안 되오. 사람은 누구나 친구에게는 약간 미안한 짓을 할 수도 있지만 절대로 자기의 위장을 속여서는 안 되오. 친구는 내가 어 려울 때는 모두 달아나지만 위장은 한평생을 따라다니는 것이기 때문이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두려워 하는데 너는..... 너는 어째 서 나를 두려워하지 않지?" 소어아는 웃었다. "남들은 당신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절대로 직접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두려워 한단 말이오." 동 선생은 돌연 몸을 돌려 큰걸음으로 걸어갔다. 소어아는 또 크게 웃었다. "화를 낼 필요는 없소. 당신이 화를 낼수록 내가 기뻐하는 줄 알텐데 왜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오?" 그들이 걷고 있는 길 앞에는 이층 집이 한 채 있었는데 아직까 지 불이 켜져 있었다. 그들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불빛을 받아 그 집의 간판이 보였다. '양자강 주루 정종천채' 그러나 이때 양자강 주점은 이미 손님이 다 나가고 없었고, 몇 명의 종업원만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비질을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자식들, 저 세 놈의 자식들은 어디서 왔는지 정말 술통이다. 밤이 이렇게 깊도록 가지 않고 우리를 괴롭히다니......." 이때 이 몇 명의 종업원들은 문득 한 사람이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한 가면을 쓴 사람이 언제 왔는지 싸늘하게 그들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소어아는 히죽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넋을 잃고 있느냐. 우리 나으리는 비록 동으로 된 가면을 쓰고 괴상한 모습이지만 금은 얼마든지 있다. 빨리 손님대접을 해 야지." 한 종업원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영업이 이미 끝났습니다." 동 선생은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돌연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 던져버렸다. 그 종업원은 마치 구름을 탄 듯이 날아가버렸다. 그가 정신을 되찾아 보니 식당의 기둥을 안고 있었다. 그는 비록 부상을 입지 는 않았지만 간이 콩알만해져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소어아가 받지 않았다면 온 몸이 박살날 뻔했다. 동 선생이 말했다. "그가 먹고 싶어하는 것을 전부 가져와라. 단 한 가지라도 모자 라면 네 녀석들을 살려놓지 안 겠다." 종업원들은 결코 안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소어아는 크게 웃었다. "유쾌하군. 당신과 같은 사람과 식사를 하니 정말 유쾌하오." "우선 네 그릇의 양채를 가져와라. 그리고 닭과 소고기 또 오리 고기와 불고기......" 한참 음식 이름을 줄줄이 대던 소어아는 숨을 돌리며 웃더니 다 시 입을 열었다. "밤중이니 너무 많은 안주는 필요 없지, 그러니 이 정도면 됐 다. 그러나 술은 좋은 것으로 가져와야 한다." 종업원들은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그 요리들은 모두 스무 사 람이 먹을 분량이었다. 이때 한 종업원이 머리를 조아리며 더듬거 렸다. "미안합니다. 우리...... 우리 점포의 술은 벌써 세 분의 손님 이 몽땅 마셔버렸습니다." 동 선생이 재빠르게 말을 받았다. "다른 곳에서라도 사 와야지. 조금만 모자라도 너희들은 목숨을 내놔야 해!" 종업원들은 모두 탄식을 했다. 방금 세 놈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두 놈의 악당을 만났으니....... 반 시간 안에 술과 안주가 모두 주문대로 올려졌다. 소어아는 곧 걸신 들린 것처럼 음식을 먹기 시작했지만 동 선생은 그저 묵 묵히 서서 지켜보고 있을 뿐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당신은 왜 앉지를 않죠? 그렇게 서있으니 내가 불편하지 않 소." 그는 술잔을 들고 다시 웃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당신이 화가 나서 먹지 않으면 나도 기분 잡치는 것이 아니겠 소?" 그러나 동 선생은 그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그저 서있을 뿐이 었다. 소어아는 요리를 골고루 먹으면서 연신 탄성을 발했다. "입은 당신 얼굴에 달려있소. 그러니 당신이 먹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가 없지. 하지만 그렇게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 어떻 게 견디겠소?" 동 선생은 돌연 손을 내밀어 옆의 탁자를 부수어버렸다. 가슴 속에 누적된 울분을 터뜨리고야 만 것이다. 소어아는 그것을 보고도 재미있다는 듯 웃을 볕이었다."탁자는 당신과 원수가 아닌데 왜 탁자를..... 차라리 나를 놓아 주는 것 이 좋겠소. 더 고생하기 전에 말이오." 동 선생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 하고 소리쳤다. "흥, 너를 놓아달라고? 그런 꿈은 아예 꾸지도 마라!" 소어아는 술을 한 잔 들이키고는 또 웃었다. "사실 지금 나를 놓아 준다해도 나는 가지 않을 것이오. 잠을 잘때 보호해주고 술을 마시면 돈을 내주는 사람을 내가 어디서 또 찾는단 말이오?" 동 선생은 그를 한동안 쳐다보고 있더니 싸늘하게 한마디를 내 뱉었다. "살아있을 때 많이 즐겨라. 죽을 때는 고통스럽게 죽게 될 테니 까." 소어아는 그 말을 듣자 젓가락을 내던졌다. "내가 한 번 물어 보겠소. 우리는 서로 알지도 못 하는 사이인 데 왜 나를 미워하는 것이오? 또 당신은 그토록 나를 미워하면서 왜 직접 나를 죽이지 않는 거요?" 동 선생은 천장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은 뒤 입을 열었다. "그 비밀을 너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모른다고?" 동 선생은 힘주어 다짐하듯 말했다. "그렇다. 영원히..... 영원히." "알지도 못 하는 사람에게 죽어야 하는 것도 억울한데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는다면 그것 같이 더 비참한 어디에 일이 있겠소?" 동 선생이 한바탕 음산하게 웃었다. "그렇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참한 일이지. 너는 그 비참한 운명을 빠져나갈 수가 없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그 비 밀을 알 수는 없으니까." 그는 미친 듯이 크게 웃더니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실컷 즐겨라. 시간이 있을 때 즐겨보란 말이다." 연남천, 화무결, 강별학, 세 사람은 몸을 비틀거리면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강별학은 평생 처음 이렇게 많은 술을 마셨다. 사람이 비밀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취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상례였 지만 연남천이 거듭 잔을 권하자 그도 눈치를 보아가며 따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연남천은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세 마리의 말, 그리고 아가씨들, 좋은 술로 많은 고난을 잊어 버린다........" 그 노래 속에는 슬픔이 담겨 있으면서 울분이 섞여 있는 듯했 다. 연남천은 갑자기 강별학의 손을 잡더니 무서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 왔다. "너도 강씨냐?" 강별학은 흠찔 놀랐으나 곧 표정을 바꾸었다. "후배의 이름은 강별학인데 연 대협께서는 벌써 잊으셨습니까?" 연남천은 하늘을 향해 팔을 뻗으며 길게 탄식을 했다. "이 세상은 가장 좋은 사람이나 가장 악독한 놈이나 모두 강씨 라니......." "그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 둘째 동생 강풍은 아주 훌륭한 인재였지, 그러나 강금 은......." 연남천의 입에서 '강금'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강별학은 온몸의 신경이 가시처럼 곤두섰다. 연남천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놈은 몇 푼 은자에 동생을 배반했어!" 강별학은 전신이 온통 식은땀으로 젖어왔다. 연남천은 양손으로 강별학의 어깨를 불쑥 쥐더니 더욱 큰소리로 소리쳤다. "애석하게도 난 그 놈이 어디로 달아났는지를 몰라, 그놈을 잡 으면 반드시 산산조각을 내버리겠어." 강별학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하여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연 남천의 손은 그의 뼈를 부술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강별학은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연 대협은 후배의..... 후배의 어깨를 부술 작정이십니까?" 연남천은 문득 정신을 차리며 손을 놓았다. 그는 다시 노래를 부르며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강별학은 조용히 화무결의 옷깃을 끌어당기며 조심스레 말을 건 냈다. "화 공자, 연 대협이 이미 취한 것 같으니 우리 그만 인사를 하 고 갑시다." 화무결은 미소를 띠웠다. "나는 강 대협과 작별 인사를 해야겠소." 강별학은 놀랐다. "그대...... 그대는 연 대협과 동행하겠다는 것이오?" 화무결은 강별학을 바라보았다. "그렇소." 강별학의 온 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당신의 스승이 알면........" 화무결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이 안다 해도 나는 같이 가야만 하오." 강별학은 잠시 동안 할 말을 잊고 서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는 것이오?" "강소어를 찾으러 가오." 강별학의 몸은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연남천이 아직 내 정체를 모르고 있구나! 그가 강소어를 만나 게 되면 끝장이다.)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동 선생이 묶고 있는 여관을 지나가게 되 었다. 강별학이 눈동자를 굴리다가 돌연 웃었다. "이 여관에는 좋은 술이 있는데 연 대협께서는 한 잔 하시지 않 겠습니까?" 연남천이 호탕스럽게 웃었다. "자네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군...... 가자, 우리 들어가자." 세 사람은 힘차게 여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것을 본 종업원 은 매우 불쾌했다. 그러나 단합비의 손님 강 대협이 그들 속에 있 는 것을 보자 기분 나쁜 표정을 보일 수가 없었다.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연남천은 술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강별학은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며 몰래 동 선생의 방으로 건너갔 다. 그는 동 선생을 찾아 연남천을 상대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방에는 예의 그 은은한 향기가 풍겨나오고 있을 별 동 선생은 없 었다. 강별학의 실망은 대단했다. 그가 힘없이 방으로 돌아와 보니 연 남천은 이미 많은 술을 마셔 취한 빛이 역력했다. 화무결도 많이 취한 것 같았다. 강별학은 급히 다시 밖으로 나 가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고 술을 다 토해버리고는 방으로 돌아왔 다. 그는 다시 잔을 들어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연남천은 마치 냉수를 마시듯 술을 퍼마셨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연남천이 드디어 탁자에 쓰러지더니 잠이 들은 듯했다. 이때 화무결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술이 좋은 친구를 만났으니 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지. 자! 한 잔 더........" 그러나 그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상에 엎드려 코를 골기 시작했다. 강별학은 한동안 가만히 앉아 연남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극도의 긴장 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연 대협, 제가 한 잔 따라 드릴까요?" 연남천은 코를 골 뿐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는 이번에는 화무결을 향하여 속삭이듯 말했다. "화 공자, 한 잔 더 하겠소?" 화무결도 탁자에 엎드린 그대로 움직일 줄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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