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타를 실은 군용 버스가 지하 입구 방에 들어왔을 때 이시이는 특별반에게 신원이 기록된 서류와 열쇠를 건네주었다. 특별반 군속은 버스 뒷문을 열고 마루타를 내리게 했다. 그리고 인원을 확인한 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세 명의 여자는 기록에 없는데 특별 주문입니까?" "그렇소." "이상이 없습니다."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받고 이시이 대위는 다른 헌병들과 함께 물러갔다. 승용차와 군용 버스도 밖으로 나가고 방 안에는 마루타와 특별반 군속들만이 특별반이 마루타를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특별반 군속 당직사령 다나카(田中永水) 판임관(判任官)이 요시다의 곁으로 오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 이시이 각하께서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했다는데 거기 가보시는 게 더 좋을 것입니다. 여긴 구경할 데가 못 됩니다." "구경? 난 지금 재미로 구경하는 것이 아니오. 마루타 수송과 관리에 있어 방첩의 필요성이 있는 허점을 가려내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시이 부대장님의 지시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보시지요." "지금이 밤 2시가 넘었는데 무슨 간부 회의입니까?" "그건 각하의 뜻이지요. 우리 각하는 못하는 성미이십니다. 즉각 간부들을 깨워 회의를 소집합니다." "자정이 넘은 밤에도 말이오." 요시다는 어이가 없는지 특별반 다나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간부들은 불평을 하지만 부대장의 뜻인데 어쩝니까? 전에는 보통 밤 12시 전에 소집했는데 오늘은 한 시가 넘어 소집하는 걸 보면 상당히 좋은 계획이 떠오르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잠자는 고등관(高等官)들을 깨워 깊은 밤에 회의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 아니었다. 전선에서 적의 공격이 있거나 작전을 급히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모르나 후방 부대에서는 너무 심한 부대장의 괴벽으로 마루타들은 다섯 명씩 쇠사슬에 묶인 채 한쪽 복도로 들어가 더욱 깊숙이 끌려갔다. 그곳에는 마루타 특설감옥 바로 옆에 욕실(浴室)이 있고 처치실, 탈의실 등이 있었다. 마루타를 모두 목욕시키고 새로운 수의를 갈아 입힌 후, 부상이 심한 마루타는 응급처치를 한 후 고유번호를 붙여 감옥에 넣는 것이었다. 마루타의 성격에 따라 독방에 넣기도 했으나 처음에는 3명에서 10명 정도 있는 잡거실로 보냈다. 욕실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하자 수리공 출신 주지민(朱志敏)이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했다. 중국말로 무엇인가 호소하면서 두 손을 비볐다. 살려 달라고 빌고 있었다. 그러나 특별반 대원 머리를 후려쳤다. 퍽, 하면서 머리에서 피가 터졌다. 호되게 얻어맞자 주지민은 울음을 그치고 엎드려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그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어서 함께 묶었던 다른 네 명의 포로도 움직이지 못했다. 다른 마루타와 연결한 쇠사슬을 풀고 네 명을 데려갔다. 대원이 엎드려 있는 주지민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쳤으나 그대로 엎드려 몸을 떨었다. 화가 치민 대원이 방망이로 사정없이 쳤다. 끌려가면 죽는 것으로 생각한 주지민은 매를 맞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원이 심하게 매질을 했기 때문에 그대로 있으면 주지민을 맞아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요시다가 말리려고 다가가자 옆에 있던 당직 사령 다나카 판임관이 그의 소매를 "저렇게 죽일 것입니까?" "할 수 없지요." "할 수 없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요시다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나카 특별반 대원이 조용한 어조로 설명했다. "요시다 대위, 저렇게 때려 죽이는 것을 다른 마루타에게 보여 주어야지 앞으로 말을 고분고분 잘 듣습니다. 일부러 시범을 보이기도 했지만, 근래에 와서는 마루타를 아끼는 의미에서 금했지요. 처음에는 이십여 명 데려오면 그중에 말을 잘 듣지 않는 마루타를 골라 몽둥이로 때려 죽였지요. 다른 마루타가 보는 앞에서 말입니다. 너희들이 고분고분 따르면 잘 석방될텐데 우리 말을 따르지 않으면 이렇게 죽는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러면 믿는 마루타도 있고, 믿지 않는 마루타도 있지요. 믿던 믿지 않던 효과가 있습니다. 죽더라도 그렇게 매 맞아 고통스럽게 죽기를 원하지 않으니까 시키는 대로하지요. 처음에 마루타를 몽둥이로 때려 죽이는 시범은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특별반 대원들이 대부분 농촌 출신의 순박한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부대장 각하의 고향에서 많이 왔지요. 그런데 이 청년들이 너무 순박해서 마루타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원들이 담력을 키워 주기 위해 몽둥이로 때리게 했지요. 처음에는 못하는 대원도 이제는 잘합니다. 저렇게 말입니다. 몽둥이를 우리는 특별반 대원들에게 교육을 시키지요.-- 여기 끌려오는 마루타들은 모두 사형수들로서 악질적인 적의 포로다. 그들은 너희들의 동족을 무참히 죽인 적이다. 그러니 죽여라 -- 하고 말입니다." "모두 그렇게 믿습니까?" "이제야 믿던 안 믿던 습관이 됐지요. 저기 보십시오. 죽었군. 아주 잘 해치웠군." 요시다는 당직사령 다나카 판임관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 사람도 제 정신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 생각하면 제 정신이 아닌 것은 자기 혼자뿐인 것 같기도 했다. 두려워하는 것은 요시다 혼자뿐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대원들은 열심히 일을 해내고 있었다. 방망이에 맞아 죽는 것을 지켜보던 남은 마루타 십여 명은 핼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당직사령 다나카가 쓰러진 주지민 앞에 가서 서더니 마루타에게 말했다. "앞으로 있는 동안 우리들의 명령에 거역하면 이렇게 맞아 죽을 것이다. 그러나 시키는대로 잘 따르면 너희들은 곧 석방된다. 건강이 회복되면 석방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협조해 주기 바란다." 마루타들에게 희망을 주자 일본말을 알아듣는 일부의 표정에 핏기가 도는 것 같았다. 생명의 애착은 무엇일까. 그러한 상황에서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을 듣자 마루타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나카 특별반원이 요시다에게 했던 말처럼 그후에 마루타들은 대원들의 말을 잘 들었다. 포로도 있었다. 걸음걸이가 좀전과는 달랐다. 세 명의 여자 마루타는 2층 8동 여자 전용 특설감옥으로 올라가고 보이지 않았다. 요시다는 특설감옥을 나오며서 부들부들 떨면서 재대로 말을 못하던 그 소녀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들도 목욕을 하고 파란 수의를 갈아입고 감옥에 들어 갔겠지. 무엇 때문에 이곳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소녀들은 지나간 일 중에 잘못한 일은 없었는가 그것을 기억해 내려고 애쓸 것이다. 이웃집 아이가 먹던 사탕을 빼앗아 먹은 기억이 되살아난다면 그것 때문에 잡혀온 것은 아닐까 하는 짐작도 해볼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을 후회하며 참회의 인체를 해부한 부품들이 진열장에 가득 차 있는 전시실에서 이시이 중장이 주최하는 심야 회의가 열렸다. 멀리 출타하지 않은 고등관은 모두 잠자다가 일어나 전시실로 들어와 앉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십여 개의 의자가 거의 가득 찼다. 밤에 회의를 하면 오히려 출석률이 좋았다. 그것은 대부분의 간부들이 잠을 자고 있다가 불려 왔기 때문이었다. 요시다 대위가 독신자 숙소로 가려다가 발길을 돌려 회의실에 들어갔을 때는 모두 불이 꺼지고 영사기가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고등관들이 앉아있는 앞쪽에 영사 영사기가 드르륵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한쪽에 앉아서 스크린과 고등관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고 있는 이시이 중장은 무엇 때문인지 몹시 흥분해 있었다. 좀 들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스크린에서는 731부대가 가지고 있는 99식 쌍발 경폭기가 보였다. 양쪽 비행기 날개에 일장기가 붙어 있었고, 화면은 비행기가 날개의 그 일장기를 클로즈업시키고 있었다. 화면은 다시 바뀌어 그 폭격기에 지상 근무원이 크고 작은 두 가지 종류의 폭탄 같은 물건을 열심히 날라다 적재하고 있었다. 지상 근무원들의 복장은 731부대 제복을 입은 항공대원들이었다. 비행기가 서 있는 뒷 배경은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었기 때문에 있는 곳이 731부대 옆의 전용 비행장인지 확실치 않았다. 지상 근무원들이 비행기에 적재하고 있는 폭탄은 대형 우유 운반용 통같이 생긴 것들이었다. 그것은 음료수통 같이도 보였지만 실제는 페스트와 콜레라등 각종 세균이 들어 있는 폭발물 도구였다. 그것이 지상으로 내려가면 폭발하게 되었고, 폭발하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세균이 지상에 떨어지도록 되었던 것이다. 세균은 벼룩등 곤충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세균 자체를 용기에 넣기도 했다. 그 용기는 크고 작은 여러가지 형태였다. 그러한 세균 폭탄이 20여 개가 적재되자 카메라는 뒤로 쑥 빠지면서 비행기 전체가 화면에 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엔진이 시동되면서 날개에 영화였기 때문에 프로펠러가 도는 것을 보고 폭격기 엔진이 시동된 것을 알 수 있었다. 화면에는 항공병이 흰 기를 흔드는 모습이 나타났다. 쌍발기의 프로펠러는 더욱 힘차게 돌더니 서서히 움직였다. 폭격기가 활주로로 나가더니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햇빛을 받아 폭격기의 날개가 은빛 고기비늘처럼 반짝였다. 화면에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광활한 평야가 나타났다. 그 넓은 대지가 확대되면서 폭격기에 적재시켰던 흰 용기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용기들은 구름 아래로 사라져 내려갔다. 구름 사이로 해서 대지가 가까워 오자 집들이며 시가지들이 아득한 저 아래로 시작했다. 화면은 장면이 바뀌어 중국의 시가지가 나왔다. 그리고 밀집한 집과 집 사이의 골목에 하얀 옷을 입은 군의료 반원들이 긴박한 표정으로 소독약을 뿌리며 움직였다. 의료반 병사들은 금속제 통을 들고 휴대용 분무기로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다. 다른 의료반들은 들것에 사람을 싣고 바쁘게 움직였다. 전염병이 퍼져 쓰러진 사람들을 치우고 있었다. 그러한 화면은 다시 바뀌어 99식 쌍발 경폭기가 기지로 돌아와 착륙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번에는 일본군 위생병들이 분무기를 둘러메고 뛰어가 비행기로 들어가서 소독을 하였다. 경폭기의 기내는 분무기에서 뿌리는 뿌연 소독약으로 가득 앉아있는 항공대원까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소독약 가루가 기내를 가득 메웠다. 항공대원들과 위생병들이 기내에서 내리는 장면이 나오다가 화면이 하얗게 되면서 영사기가 헛도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영사기가 멈추고 전시실에 불이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이시이 중장이 일어나서 고등관들 앞으로 성큼 나섰다. "에또, 지난번에도 여러분이 몇 차례 보았던 우리 부대가 만든 신병기 실습장면입니다. 이걸 이 밤에 왜 보여 드렸느냐면 여기에 하나의 문제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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