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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웅]마루타 1-16

작성자고향설470|작성시간26.06.07|조회수50 목록 댓글 1


그들은 비를 맞고 그릴에 도착했다.
우산을 썼으나 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 우산으로 비를 가리지 못했다.
그릴에는 세명의 고등관이 같은 테이블을
창가에는 세 명의 여자 군속이 있었다.
그들이 들어가자 여자 군속들이 일어나서
경례를 붙였다. 세 명의 여자 군속들은
후미코와 요시코, 그리고 도미코였다.
  요시코는 바이러스 연구반장 가사하라
에이도쿠(笠原永德) 기사(의사)의 딸로서,
가족 진료소에서 후미코와 함께 간호원으로
있는 여자였다. 도미코(大田富子)는
오오다(大田高利) 총무부장의 딸이었고,
총무부 회계과에 근무하는 군속이었다. 세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요시다 대위와 모리가와 중위는 여자
군속들 옆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그릴의
여자 군속 하루코가 다가와서 고개를
숙이며 방긋 웃었다.
  "어서 오세요. 대위님, 커피를
  "둘 부탁해."
  "어머, 옷이 젖었네요."
  "비가 세차서......"
  그릴에서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곡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흘러나왔다.
  "실수로 만두를 먹었다면 연구팀에서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같군."
  "전에도 그랬는데요. 마찬가지예요."
  "내용은 없고 형식만이 난무하는 조직은
고쳐져야 해."
  "모든 게 그렇습니다. 저기 있는
피아노도 아주 비싼 독일제 피아노죠.
그런데 저게 장식용으로 놓여져 있을 뿐
연주하는 걸 못 봤습니다."
  "칠 사람이 없는 모양이지."
  "음악가가 없어서 그런 모양이지요."
사람도 없나?"
  "오봉제 때 오봉춤을 추거나 연극을 하는
건 보았어도 고전음악을 아는 여자는
없습니다."
  "모리가와 중위님, 여자 군속들을
무시하지 마세요."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세 명의 여자
군속들이 요시다 대위쪽을 돌아보았다.
항의를 한 여자는 도미코였다.
  "후미코가 얼마나 피아노를 잘 치는지
모르시죠?"
  "얘, 그런 소리 하지마."
  후미코가 얼굴을 붉혔다.
  "후미코가 피아노를 잘 연주한다면
들어봅시다."
  모리가와 중위의 말에 여자들이
붉히며 사양하였다. 계속 사양했으나 두
친구가 팔을 잡아끌고 피아노가 놓여 있는
단 위로 데려갔다. 하루코에게 레코드
음악을 중지시키고 후미코는 피아노를
쳤다.
  후미코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悲愴)을 쳤는데, 잡담을 하던
고등관들이 대화를 멈추며 돌아보았다.
요시다 대위는 고전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교토 제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한때는 작곡가가 되고 싶어서
공부를 한 일이 있었다. 음악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요시다 대위는
후미코가 치는 피아노곡을 들으며 적이나
놀라고 있었다. 썩 잘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려운 곡을 악보 없이 외워서
열성으로 보던 것이다. 요시다는 후미코의
피아노곡을 들으며 잠깐이지만 731부대의
세균이며, 마루타, 그리고 만두이며,
전염병이라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빗물이 그릴의 유리창에 부딪쳐
흘러내렸다. 밖에 내리는 빗줄기와
커피잔의 따뜻한 감촉, 커피 냄새, 그리고
후미코의 피아노곡, 그녀의 손놀림과 몸짓,
부끄러움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보면서
요시다는 조그만 휴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
휴식은 잠깐이었지만,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3.마루타 제 3 장

  "처음에는 오해할 수 밖에 없었지요.
이시이 대위가 후미코와 결혼할 것이라고
 하니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잖습니까?"
  "너무 뻔뻔스러운 남자예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혼자 좋아하는 척해요. 그 사람은 많은
여자를 울렸어요."
  "후미코가 포함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 남자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싫다는 데도 그렇게 집요하게 달려들어요."
  "후미코를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나
보지요?"
사람한테 나하고 결혼한다는 소문을 내서
창피해 죽겠어요."
  "......"
  "하루는 오빠가 저를 부르더니 이시이
대위와 결혼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어요."
  "오빠라면 나가야마 이에미쓰(永山家光)
대좌를 말하는 것이지요?"
  "네."
  가랑비가 날리고 있는 송화강변 길을
요시다 다카부미(吉田幸文) 대위와
나가야마 후미코(永山美子)는 전세 마차를
타고 달려갔다. 바람은 잦아들고 가랑비는
약간 휘날려 얼굴을 시원하게 했다. 회색
말이 끄는 마차는 두 사람이 나란히 타도록
理罐좌?바라보고만
나부끼는 나이든 노인 마부가 비단으로 된
중국 옷을 입고 말을 몰고 있었다. 마차
덮게는 낮아서 그들의 머리 바로 위에
있었다. 등받이가 뒤를 가렸을 뿐 앞과
옆은 막히지 않아 주위의 풍경이
내다보였다. 촉촉하게 젖은 강변 길은
자갈이 반질거렸고, 이따금 파인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었다. 휴일이었으나
송화강변에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비가 와서 거니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마차가 지나다닐 뿐이었다.
시가에서 떨어져 나와 들판 옆을 달렸다.
마차는 송화강 옆을 지나고 있었다.
  요시다는 사복을 한 후미코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노란 바탕에
흰 벚꽃이 새겨진 일본 옷을 입고 허리를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요시다 역시
하늘색 바지에 소매 짧은 남방을 입었다.
그의 짧은 머리카락에 이슬 같은 물방울이
맺혀 대롱거렸다. 후미코가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요시다의 머리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었다.
  "나는 그때 후미코 양이 어머니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라니요?"
  후미코가 웃는 얼굴로 요시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밝고 큰 눈이 호수처럼
맑게 빛났다.
  "얼마 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던 길림가의
백화료(白樺寮)에서 말씀입니다. 그때
데리고 온 애들이 누굽니까?"
  "아, 네. 요쿠오스(良雄)와
그애들은 우치우미 이에모지(丙海家茂)
기사(의사)님의 아들과 딸이에요."
  "혈청담당 연구반장이지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이지요?"
  "예. 그분 부탁으로 두 아이를 하얼빈
병원에 데리고 갔다오던 길이에요."
  "부대에도 진료소가 있는데 하얼빈
대학병원까지 갑니까?"
  "가족 진료소는 믿지 못하는 것이죠, 뭐.
고등관 자녀들은 그래요. 부대 내에
국민학교가 있는데도 고등관과 판임관
자녀들은 하얼빈에 있는 일본인 학교
화원(花園) 국민학교를 다녀요."
  "후미코 양이 부대에 온 지는 얼마나
됩니까?"
  "일 년 넘었어요. 오빠가 와서 일할
  "동생이라면? 소년대원에 있는......"
  "예. 소년대에서 훈련을 받느라고 만날
기회도 없지만."
  "훈련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그렇답니까?"
  "예. 교관들이 너무 심하게 다루는 것
같아요. 참, 요시다 대위님.
야스테(安田龍成) 가족 세균전염 사건은
어떻게 됐나요?"
  "만두 때문으로 밝혀졌습니다. 야스데가
페스트와 콜레라 연구반에 들러서 만두를
봉투에 넣어 집으로 가져갔어요. 그걸
아침에 쪄서 먹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당한
것이지요. 네사람 모두 고열로 신음하는데
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어머, 어쩌나......"
  "연구반에서 관리를 잘못한
  요시다는 며칠 전에 야스데 집 앞을
지났다. 수사는 종결이 났으나 우연히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야스데의 관사
앞에는 새끼줄이 쳐 있고 세워 놓은
팻말에는 <이 집 가족 전원이 페스트에
감염되었음. 집을 당분간 폐쇄하니 출입을
금함>이라고 쓰여 있었다. 집 안팎을 모두
소독했으나 세균 감염은 무서웠다. 아무도
그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만주인 소년들이나 만주인 하급 노동자들이
비어 있는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쳐 가는
경우가 있었으나 새끼줄이 쳐진 세균 감염
지역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본부 건물 총무부 2층 중간 복도가 있는
총무부 서무과와 기획과 사이에 영안실이
있었다. 영안실에는 죽은 군인, 군속
죽은 대원들은 대부분 세균을 제조하거나
관리하다가 실수해서 감염된 사람들이었고,
가끔 야스데 가족처럼 세균이 외부로
유출되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한 달에 서너
명씩 죽어서 영안실에 안치되고 있었다.
대원들은 누구나 그 앞을 지날 때는 묵념을
하였다.
  "요시다 대위님은 작곡을 하고 싶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제가 글을 지을 테니 곡을 붙여
주실래요?"
  "그럴까요? 무슨 글을 주시렵니까?"
  "송화강(松花江)에 대해서 쓰고 싶어요.
시를 쓰고 싶어요."
  "좋지요. 시가 완성되면 주십시오.
드리지."
  "요시다 대위님은 왜 음대를 다니시지
않고 경영학을 전공하셨어요?"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사업가가 되기를 바랬지요. 내가 대학에
들어간 다음 해에 돌아가셨지만."
  "어머님은 계시나요?"
  "예, 교토에 계시지요."
  요시다는 목에 걸고 있는 메달을 꺼내어
후미코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간부 후보생이 되어 군생활을
시작할 때 어머니가 걸어 주신 것인데
이번에 만주로 올 때는 잠시도 목에서 떼지
말라고 당부하신 부적입니다."
  "부적? 상평통보(常平通寶)라고 쓰여
있네요. 무슨 뜻이에요?"
조상들의 부적이라고 하셨는데,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조선의 옛날 돈이랍니다.
조선에는 상평청이 있어 거기서 돈을
만들었답니다. 3백 년 전에 말입니다."
  "이게 3백 년 전의 것인가요?"
  "그래요."
  후미코는 재미있다는 듯 상평통보를
만지작거렸다. 요시다 대위는 상평통보
생각을 하자 그곳에서 가까운 요정
송강(松江)이 떠올랐다. 그리고 송강에서
만난 조선인 기생 강숙희(康淑姬)라는
여자가 생각났다.
  "우리 소강(松江)에 가서 점심을
먹을까요?"
  "송강? 일본 항구 마쓰에(松江)
말씀인가요?"
점심을 먹습니까? 아마 그 항구가 고향인
일본인이 송화강변에 세운 음식점일
것입니다."
  후미코는 눈을 치켜뜨며 애교있게
흘겼다. 요시다는 마부에게 송강으로
가자고 했다. 마차는 넓은 길목에서 방향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저편으로 송화강을 가로지른 긴 다리가
보였다. 다리 위로 아치형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가랑비는 안개처럼
휘날리며 길 옆의 콩밭을 적시고 있었다.
밭둑에 황소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고,
밀짚 갓을 쓴 만주 소년이 옆에 앉아
막대기로 장난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끌고
있는 마차의 말 목에 매인 방울이 경쾌하게
소리를 내었다. 늙은 마부는 채찍으로 말
속력이 나자 안개 같은 가랑비가 얼굴이며
가슴에 쏟아져 들어왔다. 후미코는 처음에
손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가랑비의 촉촉한
감촉이 좋아 손을 떼었다. 그녀의 오똑한
콧날에 가랑비의 이슬이 맺혔다. 그녀의
모습은 수선화에 이슬이 맺혀 대롱거리듯이
예쁘다고 느끼며 요시다는 여자의 옆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람결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뒤로 쏠리며 넓고 하얀 이마가
드러났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네, 아름다움이 묻어 있군요."
  "어머, 놀리시면 싫어요."
  후미코가 주먹으로 요시다의 어깨를
때렸다. 그들은 웃으면서 송화강변의
가랑비와 젖은 바람을 가슴으로 받고
떨어진 앞쪽에 철로가 보였고, 철길 다리
위로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열차의
화통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고,
객실과 화물칸이 이어진 열차는 길었다.
마차는 철길 건널목을 지나 비스듬한
언덕을 올라갔다. 그곳으로 조금 올라가면
바위가 많이 있는 강변에 요정 송강이
있었다.
  송강 한쪽에 마차를 세운 요시다 대위와
후미코는 천장에 발과 덩굴잎이 쳐진
강변의 노천 탁자 앞에 앉았다. 의자가
물에 젖었으나 후미코는 휴지로 닦아내고
앉았다.
  "노천에서 괜찮겠어요?"
  요시다가 후미코에게 물었다.
  "잠깐 앉았다가 들어가요."
  "네, 송화강변도 처음이에요. 이렇게
나와서 돌아다닐 마음의 여유도 없었어요.
가족 진료소는 일요일이 더 바빠요."
  "오늘은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었군요."
  "그러니 행운으로 아세요."
  "명심하지요."
  기모노 옷차림을 한 여자 한 사람이
그들에게 와서 비가 내리지 않는 안쪽
거실로 모시겠다고 하였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허리를 꼬았는데,
요시다가 지난날 밤 환영 향연을 한다고
이시이 대위를 비롯한 특무기관원
야마가케(山崖二郞) 일행과 왔을 때 보았던
그 여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중국인 두 명과 러시아
여자 두 명이 식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별로 없었다. 요시다는 생선초밥을
주문하였으나, 후미코가 김초밥을 원해서
요시다도 같은 김초밥으로 바꾸었다.
  "여기 조선 여자 강숙희라고 있습니까?"
  요시다는 송강에서 만났던 그 날 밤의
조선 여자가 생각나서 찾았다. 목에 맨
메달이 상평통보 조선의 돈이라는 것을
알려준 여인이었다.
  "매화는 저녁에나 출근합니다."
  밤에 출근하는 여자라고 하였다.
후미코가 숙희라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래서 요시다는 그녀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들이 주문한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 예쁜 중국 인형을 파는 할머니
한 사람이 거실로 들어와 물건을 사라고
권했다. 행상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했다. 인형은 중국 궁궐 의상을
입은 왕족 여인이었다. 후미코가 인형이
특이하고 예쁘다고 해서 요시다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오십 전이라고
했으나 요시다는 만은권(滿銀) 1엔을
주었다. 거스름 돈을 받지 않고 노인에게
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여러 번
숙이면서 뭐라고 말했다. 기모노 옷을 입은
일본 여자가 중국말을 통역해 주었다.
  "복을 받으셔서 아들을 낳으라고 합니다,
손님."
  "아들?" 하고 요시다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부부인 줄 아는 모양이지? 아들
낳는 것이 복인가? 이 노인은 아들이 없는
모양이군."
  후미코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고개를
앵두빛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고맙다고 해주시오." 하고 요시다는
요정의 일본 여자에게 말했다.
  "그리고 염려해 준대로 아들을 많이
낳겠다고도 말입니다."
  일본 여자가 노인에게 그렇게 전했다.
요시다는 계속 싱글싱글 웃었고, 후미코는
노인이 나간 후에도 붉어진 얼굴이 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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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올포유 | 작성시간 26.06.07 즐감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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