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검이 될만한 막대기 있나?" "예, 목검으로 사용하던 것이 있습니다. 대나무가 두 자루 있습니다." "가지고 연못가로 나오게." "예. 옷을 갈아 입고 나가겠습니다." 요시다는 먼저 거실을 나와 연못가로 갔다. 좀 전보다도 하늘이 더 밝아졌다. 동쪽 하늘에 여명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달은 계속 밝게 비쳤고, 별은 하늘 가득히 빛났다. 조금 떨어진 길에 세워진 보안등 불빛과 달빛 때문에 나무 그림자는 두 개가 생겨 있었다. 요시다는 연못가 빈터에서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풀었다. 두 자루의 목검을 들고 나왔다. 그는 머리에 방공(坊空) 두건을 쓰고 나왔다. 솜을 많이 넣은 두건을 머리에 맨 것은 목검으로 머리를 맞으면 위험했기 때문에 대비한 것이다. 모리가와는 자신만 두건을 쓸 수 없어 다른 하나를 더가지고 나와서 요시다에게 주었다. 요시다는 그것을 받기는 했으나 머리에 매지는 않았다. 요시다 대위와 모리가와 중위는 목검을 들고 대련했다. 대나무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라 놓았다. 모리가와의 검법은 날카롭고 섬세하다는 것을 느끼며 요시다는 그의 약점을 찾으려고 했다. 기본적인 숙달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도 미처 모르고 있는 약점을 찾아내어 공격하는 것이 필승이라는 있는 버릇이 운동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모리가와에게서는 좀체로 허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섬세하고 침착한 그의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공격하기 전에 주춤거리며 망설이는 기색이 있었으나 그것은 상대방을 생각하여 맹렬한 공격을 생략하는 겸손인지도 모른다. "직속상관이라고 봐주면서 하지는 말게." "천만의 말씀입니다. 반장님 검도도 대단합니다." "자네도 보통이 아니군." 목검으로 수십합의 부딪침이 있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땀이 흘렀다. 어둠이 걷히고 동이 트기 시작했다. 보안등 불빛이 밝기를 잃으며 황량한 대지에 여명이 깃들었다. 동쪽 돌았다. 나뭇가지 그늘이 흐려지고 숲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숲을 뛰어가는 고등관들의 모습이 보이고, 밤을 새우며 철야작업을 했던 군속들이 관사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독신자 관사로 들어오던 장교들이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다가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새벽이 되면서 소년대 교육 연병장에서 아침 점호를 하는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그들이 힘차게 외치는 구령과 군가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가족 진료소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숙소로 들어가던 후미코(美子)가 요시다와 모리가와의 대련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나무 뒤에 몸을 감추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온몸에 땀을 흘리며 지켜보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슬픔이 밀려와서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고등관 관사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프자덴(傳家甸)의 밤 거리는 항상 비슷한 모습이었다. 언제나 흥청거렸고 작부들의 노래소리가 거리까지 들려오고, 유리가 깨지는 싸움이 벌어지면서 길거리까지 물건이 날아왔고, 욕지거리를 하는 여자들의 아귀다툼이 있고, 파이프를 물고 밤인데도 색안경을 끼고 여러 명에 둘러싸여 걷는 주먹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아편 중독자가 몸을 떨거나 히죽히죽 흥얼거림이 있고, 담 옆의 으슥한 곳에서는 술집 여자와 서서 실제 성합을 즐기는 주정뱅이도 보였다. 백화료(白花寮)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푸르스름한 검은색 2톤 트럭을 타고 731부대 세균반 팀들이 프자덴 거리로 들어간 것은 밤 10시 무렵이었다. 세균살포 작전은 자정을 기해서 실시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복 차림은 한 요시다 대위와 모리가와 중위는 프자덴 폐쇄작전에 참가했다. 작전 암호 (오봉탈춤)은 관동군 사령부에서 결정한 것이었으나 실제는 하얼빈 헌병대 본부의 의견을 참작한 것이었다. 731부대에서는 협조하는 입장에 있었다. 하얼빈 헌병대에서 프자덴을 폐쇄하려고 한 것은 계속 기승을 부리는 잠복하면 추적이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댄스 홀이나 술집도 스파이들의 계보가 있고, 종업원들도 그 정보 제공자가 아니면 직접 스파이 행동을 하고 있었다. 소련과 중국군, 조선 독립군, 멀리 떨어진 유럽의 스파이들조차 프자덴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활동했다. 요시다와 모리가와는 작전이 수행되고 있는 동안 프자덴의 민심과 상황을 살피기 위해 떨어졌다. 그들의 거점은 카투사 댄스 홀로 정하였다. "관동군 사령부는 신경(新京:長春)에 있는데, 어째서 하얼빈이 스파이들의 소굴인지 모르겠습니다." 카투사 댄스 홀로 향하면서 모리가와 중위가 입을 열었다. 모리가와는 검정 빵모자를 쓰고 있었다. 장사꾼 같은 차림이었다. "그건 하얼빈이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그럴 거야. 하얼빈은 북쪽으로 대흥안령(大興安嶺)으로 향한 철도가 뻗쳐 있지. 하이랄, 찌찌하루, 논샨으로 향하는 철도가 있고 흑룡강으로 뻗친 손오(孫吳), 흑하(黑河) 철도가 있고, 남쪽으로는 신경, 봉천, 대련으로 이어지지. 또 다른 철로는 남동쪽으로 뻗쳐 목단강(牧丹江), 임구(林口), 동녕(東寧)과 연결되어 우수리 강(鳥蘇里江)에 인접해서 소련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톡과 이어지지. 그러니 여기가 국제 스파이 소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남쪽으로 뻗친 철도는 봉천으로 해서 이러한 지역적인 특성 뿐만이 아니라 하얼빈을 중심으로 일본 관동군이 집약되어 분포되고 있었다. 하얼빈에서 남방 20킬로미터 떨어진 731부대, 즉 관동군 방역 급수부 본부가 세균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는 새어 나가고 있고, 그 실상을 파악하려는 각국의 첩보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731부대에는 너댓 곳의 지부와 시험 비행장이 있었다. 목단강(牧丹江) 지부는 만주 제 643부대로 오노에(屋上正男) 소좌가 부대장으로 있었다. 2백 명의 대원들이 731부대의 세균전 준비를 돕고 있었다. 목단강에서 1백킬로미터 떨어진 임구(林口) 지부는 만주 제162부대로써 226면이 주둔하고, 손오(孫吳) 지부는 만주 제637부대로 제543부대로써 226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모두 731부대를 지원하고 있던 지부(支部)였다. 프자덴에 있는 카투사 댄스 홀은 하얼빈 특무기관의 비호를 받는 방첩부대 아지트였다. 그래서 비교적 안심이 되었기 때문에 요시다 대위와 모리가와 중위는 카투사 댄스 홀로 들어갔던 것이다. 요시다는 헐렁한 밤색 바지에 흰 남방을 입었다. 그리고 권총은 가슴에 품지 않고, (지난번 여자 댄서와 춤을 출 때 권총을 휴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킨 이후) 허벅다리 옆에 끼었다. 요시다와 모리가와는 창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요시다는 웨이터에게 지배인을 오도록 부탁했다. 지배인이 오자 왕서방이라는 그 지배인은 지난번에 요시다를 단 한번 보았는데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기억하십니까, 왕서방?" "하이, 하이." 지배인은 여러 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나를 기억하면 그때 나하고 짝이 되었던 중국인 댄서를 불러 주시오." "하이, 그런데 그 애가 누구였는지요? 손님은 기억나도 그 댄서는 생각이 잘 안나는데, 이름을 얘기해 주시면......"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요시다는 곰곰히 생각했다. 떠오르지 않았다. 그를 만난 지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도 사랑한다고 진지하게 고백하던 가슴에 권총을 차고 있는 당신의 신분을 알고 싶지만,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고 속삭이던 중국 여자였다. "생각이 안 납니다. 지배인." "그럼 저도 생각이 안 나서 찾기 힘듭니다. 여긴 댄서만 해도 1백여 명이 있습니다. 손님, 예쁘고 춤을 잘 추는 다른 아가씨를 소개해 올리도록 하지요." "반장님은 그 아가씨에게 반했나 보지요?" 모리가와가 나직한 어조로 말하며 싱글싱글 웃었다. "반했다기보다 아직 때가 덜 묻은 것 같고, 마음에 들게 행동해서 그래. 더구나 오늘밤 그 애를 데리고 나가 프자덴에서 데이트를 해야 되지 않겠나?" 여자를 데리고 나와 프자덴의 거리 안내를 맡기면서 돌아다닐 계획이었다. 남녀가 함께 다니는 것이 타인이 보기에 덜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예쁜 아가씨를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지배인이 확인을 하듯이 말했다. "하얼빈의 술집이나 댄스 홀에서 예쁘지 않은 아가씨가 있습니까? 그러지 말고 대위님에게 전번의 아가씨를 찾아 데리고 오시오." 모리가와의 말에 요시다가 핀잔을 주었다. "모리가와, 프자덴에서는 대위라고 부르지 말게."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요시다라고 부르거나, 적당히 다른 말을 "형님이라고 부를까요? "좋을 대로." "손님, 여기서는 괜찮습니다." 하고 지배인 왕서방이 웃으며 말했다. "여긴 일본군 장교들이 많이 오고 있으며, 안심해도 되는 곳입니다." "그 여자의 이름이 생각났네. 본명인지 가명인지 모르지만 손진영(孫眞英)이라고 했소."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애가 방금 다른 파트너가 불러서 갔습니다만, 이쪽으로 오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파트너? 나는 그 애를 데리고 나갈 참인데 가능하겠습니까?" "그건 본인들의 의사입니다. 저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이 미남 친구에게도 예쁜 중국 아가씨를 소개 시켜 주시오." "하이, 하이." "술을 가져 오십시오, 맥주를 주시오." "하이, 하이." 지배인이 물러간 후 웨이터가 술을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은 맥주를 마시며 홀 안과 창밖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조명은 흐리고, 음악은 플로어 뿐만이 아니라 전체 홀을 울렸다. 이따금 여자의 웃음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들렸다. "오늘 0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했지요?" "응." "우리는 위험하지 않을까요? 오봉탈춤은 어떤 방법입니까." 제사 지내는 불교 행사로써 731부대에서는 그날 각종 오락회를 열며 하루를 즐겼다. 모리가와가 말하는 오봉탈춤이란 오봉제에 여자 군속이 군복을 벗고 무명 홑옷을 입고 속띠를 허리에 매고 추는 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프자덴 폐쇄작전 암호명을 뜻하고 있었다. "글쎄, 그건 세균반 담당이라 잘 몰르겠지만 아마 1호 작전일 걸세." 1호 작전이란 무엇인가. 세균전에는 크게 세 가지 전법이 있었고, 그것을 분류하여 1호, 2호, 3호 작전이라고 요약해서 불렀다. 1호 작전은 적진 깊숙히 침투한 결사대가 하천이나 댐 저수지에 세균을 넣는 모략적인 전법이었다. 2호 작전은 포탄 속에 세균으로 오염된 작은 동물이나 전법이었다. 3호 작전이 항공기를 사용해 세균 폭탄을 투하하는 방법이었다. 이시이 중장은 주로 3호 작전을 연구하면서 도기(陶器) 폭탄을 개발하고 있었다. 프자덴 거리는 시민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포탄을 쏜다든지 하는 표면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소리없이 전염병이 퍼지게 하려면 1호 작전처럼 모략적인 전술을 써야 했다. 731부대 세균반(장티푸스에 한정시켰다)이 자정을 기해 프자덴 거리에 세균을 살포하려는 만년필용 세균총과 지팡이용 세균총도 동원되었고, 술에 균을 투입시키는 방법, 음료수에 세균을 푸는 방법, 그리고 마루타까지 사용하기 위해 특별 이송시켜 길림가(吉林街)에 있는 백화료 지하 감옥에 장티푸스에 오염되어 소생 가능성이 없고 곧 사망할 마루타 열 명을 프자덴 거리에 풀어 놓고, 그들을 통해서 전염되는 것을 시도하였다. 장티푸스에 대한 치유 왁찐이 개발되지 못한 1941년 여름의 시기에는 장티푸스에 전염되면 높은 열을 내면서 거의 사망하였다. 그 효과는 빠르면 두세 시간에 나타났고 늦어도 이 삼일 이내에 파악할 뿐 새로운 정보를 청취하기 위해 프자덴 사람으로 가장한 관계 관동군의 정보요원들이 스며들었다. 요시다와 모리가와는 731부대 방첩반으로 그 일을 맡았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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