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신공44-2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흑룡신공은 쓸데없는 무공인 것 같아. 겨우 잠이나 재우다니......" 이천운은 작게 투덜거리며 한연화에게 다가갔다. 그를 발견한 한연화는 반가운 기색으로 눈을 치켜떴다.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이천운이 한연화를 풀어주며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깜박했군." 그는 뒷머리를 가볍게 긁적이며 한연화의 혈도를 풀었다. 오랜만에 혈도가 풀어지자 그녀는 몸이 뻐근함을 느끼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넌 총타로 가지 않았냐? 여기서 뭐 하는 거냐?" 황대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그는 문틈으로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게...... 오라버님들과 헤어진 뒤 어머니 앞으로 한 통의 서찰이 갑자기 나타났어요. 아버지의 행방을 알고 싶으면 혼자서만 남창근처의 숲으로 나오라는 거죠. 어머니와 저만 몰래 일행들과 떨어져 빠져나왔다가 놈들의 함정에 걸린 거죠. 나머지는 아직도 근처의 객잔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엥? 그놈들이 어떻게 너의 아버지를 아는 거지?" 이천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도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마교측에 부모님의 일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요." "음...... 그러면 어머닌 어디 계시냐?" "저도 모르겠어요. 웬 이상한 노인이 나타나 그놈을 잡는다며 어머닐 데리고 어디론가 갔어요. 어서 어머님을 구해야 될텐데......" 한연화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걱정 마라. 우리가 구해주마." 이천운은 한연화를 끌어안고 다독거리며 위로했다. 황대호는 그 장면을 보고 갑자기 진미령을 떠올렸다. 뭐라 말하려 했으나 한연화의 침중한 표정에 황대호는 말을 삼켰다. "그러면 이 놈을 깨워서 알아보자." 이천운은 좌측의 사내를 내려다보며 제안했다. 자신의 신변에 커다란 위 험이 닥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는 움찔하며 몸을 살짝 움직였다. "어~이~! 어서 일어나봐!" 이천운은 수면지를 쏠 때 일부로 내력을 약하게 했기 때문에, 좌측의 사내는 깊은 잠에 들지 않았다. 그가 여러 번 사내의 뺨을 두들기자 곧 그의 뺨이 붉게 부어올랐다. 그러나 사내는 여전히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흠...... 비켜봐라. 내가 해볼께." 시간이 없기 때문에, 황대호가 이천운을 밀치며 말했다. 그는 사내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아까 널 때린 놈이 누군 줄 아냐? 그 유명한 옥면호랑이시다. 너도 누군지 알지? 수해방을 전부 노예로 팔아치운 희대의 여우. 옥면호랑께 고문 받고 눈을 뜰래, 그냥 곱게 눈을 뜰래?"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내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눈을 번쩍 떴다. 이천운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감탄의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넌 누구냐? 어서 소개해 봐라." 그는 이천운을 둘러보며 어깨를 으쓱인 뒤, 은밀한 어조로 물었다. 그의 물음에 사내는 이천운의 얼굴을 힐끔 바라본 뒤, 두려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 마교 외당의 적랑대(赤狼)소속 일급무사 이무객(李無客)입니다.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사내는 주절주절 자신에 대해 읊어댔다. 설명이 길어지려 하자 그가 손가락으로 말을 막았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지." "마화교의 부교주라는 여인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연화를 납치한 목적이 뭔가?" 비밀스런 사항인 듯 송영수의 물음에 사내는 우물쭈물 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쓰~읍~!" 황대호는 눈짓으로 이천운을 가리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행동에 사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직급이 낮아 잘은 모르겠으나, 누군가를 잡아들이는데 인질로 사용한다 들었습니다." "마교는 사파이면서도 언제나 정면승부만 한다더니...... 많이 변질됐나 보군." 이천운은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는 왕군악이 이 말을 들었으면 가만 있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며 다시 물었다. "너희들이 유인한다는 그 사람은 누구냐?" "저희도 잘 모르겠으나, 교에서 높으신 분들이 많이 오신 것으로 보아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사내는 공손히 답했다. "어디서 유인을 한다는 거지?" 곁에 있던 한연화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빨리 어머니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해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백여리쯤 떨어진 사황곡(蛇黃谷)이란 계곡에서 열흘 후에 작전을 개시한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사내는 가장 중요한 기밀을 말하면서도 이천운의 눈치를 살폈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우선 일행들에게 알리자! 군악이까지 있으니 어쩌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천운은 잠시 생각한 뒤,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다시 사내의 수혈을 짚은 뒤, 천장의 구멍을 향해 몸을 솟구쳤다. "젠장할!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 거지?!" 황대호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투덜거렸다. 그는 이천운과 한연화를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산길을 헤치고 도망치고 있었다. 한연화는 오래 동안 묶여 있어 나른해 몸을 움직이고 불편했고, 이천운은 편히 잠들어 있었다. 그들이 장원을 벗어나 반각정도 이동했을 때, 뒤쪽에서 팽대웅의 노한 외침이 들렸다. 동시에 종이 여러 번 울리며 마교도들이 장원에서 뛰쳐나왔다. 놀란 그들은 급히 도망치려 했으나, 경공을 전개하는 도중 갑자기 이천운이 잠이 드는 바람에 시간을 지체했다. 그 사이 마교도들은 그들에게 가까워졌고 황대호는 다급한 나머지 잠든 이천운과 힘들어하는 한연화를 하나씩 끼고 가까운 산속으로 도망쳤다. 나무가 우거져 마교도들을 따돌릴 수 있었으나, 그들도 길을 잃어 헤매고 있었다.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그러다가 잡히면 죽는다!" 마교도들은 그들을 찾지 못해 큰 소리로 외치며 산을 뒤지고 있었다. 외진 곳이었기 때문에 산속엔 그들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젠장할~! 사내대장부가 이렇게 도망이나 치다니......' 황대호는 솟아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보면 볼수록 옆에서 태연히 잠만 자고 있는 이천운이 원망스러워지는 그였다. "으......" 나직한 신음을 흘리며 한연화가 눈을 떴다. "이제 정신을 차렸냐? 며칠동안 먹지도 못하고 너무 무리하게 갇혔던 것 같군." 황대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둘을 끼고 달리면서도 그의 모습에선 지친기색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는지 한연화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무가 빠른 속도로 뒤로 지나가 위치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나도 어딘지 모르겠다. 그냥 가까운 산으로 도망친 거라......" 황대호는 난처한 기색으로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한연화의 표정도 절로 어두워졌다. 그는 주변을 살피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햇빛도 들지 않는 게 음침한 느낌을 주었다. "저기다! 저기 곰 비슷한 놈이 있다!" 그들을 발견했는지 뒤쪽에서 큰 외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외침에 호응해 여러 군데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할! 끈질긴 놈들이군!" 황대호는 다시 둘을 옆구리에 짊어지며 투덜거렸다. 급히 달렸지만 그들을 포위했는지 마교들의 외침소리는 점점 가까워져왔다. "안돼겠어요. 우린 내버려두고 오라버님 먼저 달아나세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심사숙고하던 한연화가 고개를 들며 제안했다. "그럴 수 없다. 나 혼자 살아보겠다고 도망이라니...... 난 절대 이천운이 아니다!" 황대호는 이천운까지 들먹이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러다간 전부 잡혀요. 먼저 달아난 뒤, 일행들을 이끌고 다시 와서 구해주세요. 소문을 들어보니 그 동안 강한 동료들이 생겼다고 하던 데......" 한연화는 지난 며칠간 이천운에 대해 떠돌던 소문을 상기하며 말했다. 그러나 그 소문이란 것들이 어이없을 정도로 나쁜 소문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절로 미간을 좁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돼!" "우린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죽이진 않을 거에요." "그래도 안돼!" 둘은 옥신각신하며 다퉜다. 그 사이 마교도들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져왔다. '아~! 내가 천운이를 숨겨놓고 놈들을 유인하면 돼겠군. 혼자라면 빠져나갈 수도 있으니, 천운이놈이 잔머리로 며칠만 버텨주면 군악이를 데려올 수 있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황대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태도를 바꿨다. "좋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곧 구하러 오마."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자 한연화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어디쯤이 적당하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에 작은 동굴이 들어왔다. 입구가 좁고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게다가 주변에 커다란 나무들도 많았기 때문에 은신하기에 적당해 보였다. "저기로 가자. 저런 곳이라면 며칠간을 버텨낼 수 있을 거다." 황대호는 턱짓으로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까이 에서 보자 동굴은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일장정도의 깊이에 높이도 한자반에 불과했다. 동굴이라기 보다는 작은 천연움막에 가까웠다. 이천운도 허리를 굽혀야되는 크기였기 때문에 황대호가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오늘밤까지 일행들을 데려오마." 그는 둘을 동굴안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워낙 좁았기 때문에 한연화와 이천운은 몸을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밀착이 심해서 그녀는 얼굴을 붉혔으나, 그늘졌기 때문에 황대호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근처에서 작은 나무를 뽑아와 입구를 가렸다. 반각정도 작업을 하자 그들이 다녀간 흔적은 남김없이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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