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로 이민을 가서 식구들은 거기에 두고 그야말로 기러기 아빠가 되어 먹이를 물어다 주어야 할 시절 이였습니다. 아는 사람도 한명 없고 해서 만약에 내가 아프던가 아니면 생활비를 못 보낸 다거나 하면 그 후는 상상하기가 끔찍한 시절 이였어요. 그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아니 기억을 하기 싫은 거겠지요.
하여튼 저작료 나오는 것 하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작곡의뢰가 들어오면 작곡도 해주고 그런 시절 이였는데 유일하게 히트를 못 친 곡들이 많이 나온 시절 이였습니다. 작품이 안 좋아서도 그렇게 되었겠지만 아마 운도 안 따라 주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의뢰한 몇 곡이 히트를 못 치니까 의기가 소침해지고 모든 일에 자신감도 없어지고 아주 슬럼프였지요. 그때 어느 신인가수를 줄려고 써 놓은 곡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 였습니다. 곡을 써 놓고도 제 자신도 자신이 없고 과연 이런 제목이 이치에 맞는지도 자신이 서질 않는 그런 곡 이였습니다. 그러니까 1995년 이 곡을 써놓고 그 신인가수를 주니까 전혀 부를 생각이 없는 눈치였지요.
저는 그 순간 아... 나도 이제는 갔구나... 가수가 내 곡을 거부하다니... 하고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앞 전 에도 말씀드렸지만 가수와 작곡가는 서로 견제를 하는 묘한 사이입니다. 가수의 입장에서는 당신이 준 이 곡이 나를 스타로 만들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하고 작곡가의 입장에서는 이 가수가 과연 이 곡을 잘 소화해서 내 곡을 히트를 시킬 것이냐... 하고 서로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그런 묘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결코 인간적으로 친해 질수가 없는 사이입니다. 그때 첫 번째로 준 가수는 이 곡을 녹음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요. 그래서 버려졌던 곡 이였지요.
지금은 거의 12년전 에 발표한 곡 이 지만 어제 KBS 아침마당에서 야구 평론가 하일성씨가 그랬답니다. 나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 라는 그 노래 제목처럼 리얼리티가 있는 제목은 본적이 없다. 라고요... 사람이 얼마나 보고 싶으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겠냐는 말을 하면서 한참 이 노래를 대화의 주제로 삼았답니다.
제 친한 친구 놈이 이 노래가 히트를 치니까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임마.. 보고 있는데 어떻게 또 보고 싶냐 ???
그렇죠 그 말이 사실은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작사를 하고 작곡을 하는 스타일에 작곡 가 들은 그 어떠한 가사가 나오면 즉시 그것을 멜로디로 만드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요.
저는 주로 아침에 산책을 하면서 그 날의 작곡을 할 주제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걸으면 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합니다. 어떨 때는 말도 안 되는 주제를 가지고 별별 상상을 다 합니다. 남들이 볼 때 는 우습겠지만 저 에게는 아주 심각하지요. 하여튼 이 노래 제목을 생각해놓고 거의 한달 에 거쳐 멜로디를 썼습니다. 그렇게 힘들여 쓴 노래도 임자가 없으면 버려집니다. 사실 그런 곡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대중들은 히트 친 곡들만 기억 하지만 작곡가들은 그 보다 몇 배의 노래들을 썼다 가 찢어 버리죠. 정말 이 노래는 좋다 라고 생각해도 히트를 못 치면 아무도 그 노래를 모릅니다. 꼭 이것은 우리 계통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예술 장르가 똑같습니다. 그것은 직업적으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 당시 제가 KBS 에 드라마 음악을 여러 편 할때 였는데 “첫사랑”(사진) 드라마에 음악 감독을 할 때였지요. 중요한 음악을 골라 스텝들한테 건네주고 캐나다에 들어가 있을 때였지요. 그 당시 저는 두 달은 한국에 두 달은 캐나다에 있는 그야말로 양다리 인생 이였습니다.
비행기 값도 비싸니까 많이 왔다 갔다 할 수는 없고 가능하면 생활비를 줄여야할 요량으로 일년 의 반은 그곳에서 반은 이곳에서 생활하는 방식 이였습니다. 대충 음악을 마무리 짓고 캐나다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텔레비전이 그곳에는 나오지를 않았고 한국에서 방영된 다음에 일주일정도가 지난다음에 비디오로 연속극을 볼 수가 있었죠. 만약에 비디오가 안 나오면 한 달 정도 뒤에 볼 수 도 있을 때였지요. 그런데 아는 후배들이 캐나다 에 관광을 왔는데 저에게 이러는 거예요. “유 선배 지금 한국에서는 ”첫사랑“ 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지금 인기가 굉장하다 는 거예요.
더군다나 극중에 나오는 노래가 있는데 지금 시중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래는 김종환 이라는 신인가수가 부른 노래인데 “존재의 이유” 라 는 노래였어요. 순간 제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니 내가 그 드라마에 소위 음악 감독이라는 사람인데 이런 정보를 이렇게 뒤늦게 듣는 것에... 그러면서 그 후배들의 말은 극중에 주정남이라는 얼뜨기 작곡가가 나오는데 되게 웃긴다는 거였어요. 저는 마음이 급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급한 일들을 정리하고 며칠 후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방송국으로 직행했지요.
연출자를 만나자 연출자는 우선 저에게 상황을 설명 하는 거였어요. 너무나 그 노래가 극중 흐름과 잘 맞아 썼다는 얘기였지요. 히트치는 드라마처럼 음악, 특히 대중가요를 효과 있게 전달하는 매체는 없을 겁니다. 저는 제 생각을 차분히 감독에게 설명한 후에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한번 주정남 ( 탤런트 손현주 )을 키워봅시다. 내가 곡을 하나 써왔는데 제목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 라는 곡입니다. 이 곡을 한번 연습 을 시켜 봅시다. 라고요... 이 말을 들은 감독은 저 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유 선생님 무어라고요 ??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요 ?? 처음에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모양 이였는데 금방 그 내용을 감 을 잡고" "유 선생 그럼 빨리 이 곡을 진행해 봅시다." 라는 거예요.
노래를 부르는 가수도 아니고 기타를 치는 가수도 아닌 신인 탤런트 손현주 가 스타가 되는 순간입니다. 몇 줄 노래가 안 되니까 연결을 길게 못하고 8마디 정도 만 중얼 거리는 게 전부였는데 대중들은 이 제목에 열광하기 시작 했습니다. 하룻밤을 새워 주정남 아니 손현주 씨를 데리고 자신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총 동원하여 음반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카세트로 만들었는데 메이저급이 아니고 마이너급인 성인가요 메들리로 급조한 카세트 음반 이였는데 이 물건이 나오자말자 남대문에 있는 리어카 음반 파는곳 33곳 모두가 이 노래를 톱으로 올려놓고 팔기 시작하였지요. 아마 그때 전국에서 한 달 정도에 7, 8십 만장 정도 팔린 거로 기억 합니다. 대단한 히트를 친 것 입니다. 더군다나 건전한 가사로 하여금 주부들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단골로 나오는 곡이 되었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실은 스타가 탄생합니다.

이 곡이 한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중가요가 되었지요.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던 노래가 임자를 만난 것입니다.
가수가 아닌 배우가 엉성하게 불러도 히트를 칠 곡은 히트를 칩니다. 저는 그 무서웠던 IMF를 이 곡 덕분에 무사히 견디고 캐나다 에 있는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 첫사랑 드라마가 일본에서 욘 사마 덕분에 큰 인기를 얻는 바람에 이곡을 일본에 유명한 가수 (소노 마리) 가 취입을 한다고 연락이 와 부부동반으로 일본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잘 다녀왔습니다. 한번 일본 가수의 노래로 이 노래를 감상해 보시죠.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그대-
작사, 작곡: 유승엽 . 노래: 소노마리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그대여
처음 본 그때부터 내 마음은 그대의 포로가 되었어요
그대의 눈빛에 난 그만 눈감았죠
우리가 처음 만난 그 순간 사랑의 예감으로 떨렸죠
그리고 운명처럼 사랑은 다가왔어요
사랑은 누구라도 한다고 그렇게 쉽게쉽게 말들하죠
그러나 우리 사랑 틀려요 특별하니까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그대여
이제는 내 인생을 부탁해요 영원히 영원히 부탁해요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그대
당신이 내곁에만 있어주면 난 이런 느낌으로 살테야
당신을 태양처럼 느끼면서 살아갈테야
사랑은 사랑으로 하여금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죠
그래서 우리들은 행복하죠 그대 있으니까
당신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당신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보고있어도 보고싶은그대(연가)- 소노마리.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