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쟝첸후묘우쟈이(西江千戶苗寨)보다 덜 문명화된 살아있는 자연박물관 이라고 칭하는 총쟝(從江)
의 빠사촌(巴沙村)을 찾아서 길을 재촉하였다.
이곳은 黔東南 똥주(侗族), 묘오주(苗族) 자치주이며, 쟈오싱(肇興) 똥주마을, 샤오황 똥주마을, 리핑
똥주마을이 있는데 쟈오싱 똥주마을은 중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6개 시골 꾸즌(古鎭)의 하나로 손꼽
히고 있다. 어찌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 쟈오싱은 가지를 못해 아쉬웠다.
싼두(三都)에서 버스를 타고 먼저 1시간여 거리에 있는 용쟝(榕江)에 가서 차를 환승하여 다시 시간
반을 달려서 총쟝에 도착했다. 이 구간은 산이 너무 험하여 시내로 들어가는 톨게이트 직전까지 약
15개의 굴을 지나야만 했다. 굴도 최단 400여m 에서 최고 4,000여m의 긴 굴을 통과한다. 평균
2Km...우리 강원도 길은 이에 비하면 양반이다.
산위를 고속도로가 잘도 만들어져 있다. 길이 아주 매끄럽다. 우리가 흔히 중국인들의 상품이나 공
정들을 대체적으로 나쁘게 폄하하는 것이 보통이다.그러나 이 길이나 굴을 보고 와! 하고 놀라워했
다. 파인곳이 한군데도 없다. 어떻게 이 어려운 작업을 했을까 하고 탄복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매번 우연찮게 우리의 목적지를 도달하였을 시간은 항상 저녁 늦은 시각 이었다. 늦은 김에 빠사촌
까지 가서 자려고 택시를 타고 산속으로 무리해서 올라갔다. 씨장과는 달리 숙소가 너무 초라하고
어둡고 쓸쓸하게 느껴져서,사실 그 보다 추워서 잘 수가 없을 것 같아 다시 차를 타고 내려왔다.
시기가 冬季이고 비수기라 더 그리 느꼈을 런지도 모른다.
이 마을은 산 위에 위치한다. 몇 개의 마을이 모여서 빠사촌을 형성하고 있다. 아직 문명의 때가 덜
묻은 원시마을 그 자체이다. 사실 나는 이런 형태의 소수 민족촌을 보기를 갈망하였던 터라 속으로
는 쾌제를 불렀다.
마을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휘젖고 한바퀴 돌았다. 가옥구조가 현대물을 하나도 먹지 않은 원주민
가옥 그 자체였다. 이곳은 지대가 높은 탓인지 과거에는 수렵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풍속을 보여주는 춤에서 유독 총기를 구경할 수가 있었다. 공연을 구경 하지는 못하였으나 마을 청
년들이 총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총기를 가지고 가는 젊은이
豚舍
아궁이
집안이 어둡다
마침 촌민위원회 사무실 간판이 있기에 노크하고 들어갔다. 마침 촌장이 계셨다. 담화를 나누었다.
경제상황을 물었더니 지금은 전과 달리 수렵을 안하고 농사와 가축을 기르고 나아가 관광수입이
늘어 생활이 많이 윤택해졌다고 대답하신다. 이곳에 와 정착 하게 된 동기를 물으니 조상이 중원
(中原)에서 살다가 전쟁에 패해 남쪽으로 쫓기다 보니 이곳 산속으로 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며,
현재 인구는 도합 2,600명 정도라고 한다.
賈元兩 촌장과 함께 담화를 나누며...
어느 책에서 본 기억으로는 4천년전 漢族이 중원으로 들어옴에 이에 밀려 두 갈래로 찢어졌는데,
한 갈래는 한국으로 가서 東夷族라고 불리웠고 다른 갈래는 이곳으로 내려와 苗族으로 살게 되었
다고 한다. 그래서 가무를 즐기고 용맹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들은바 있다. 믿거나 말거나...
꿰이저우 에는 苗族 외에 彛族, 灰族, 侗族, 水族, 壯族, 布依族, 回族, 瑤族등 다양하게 분포하여
또는 함께 살고 있다. 이중 苗族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