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0일 아침 배에서 나와 밖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탔다.
아침 7시50분에 출발 30분만에 바이디청(白帝城)에 도착했다.
나는 배삯만을 냈기에 입장권을 별도로 사야한다. 지금껏 모두가 70세 이상은 무료였기에 여권을 보여주니 온표 120元을 내라고 한다. 가이드와 매표원이 무슨 눈 싸인을 하는 것을 곁눈질로 보았다.
입장권
제길량 동상
풍우화랑
이곳까지 와서 세사람만 안 볼수 없어 할수없이 온표를 끊고 볼 수 밖에...백제성은 봉절현(奉節縣)에 있다.
광장에 제갈량의 동상이 크게 눈에 들어온다. 화랑을 지나 산을 오른다.
이곳은 삼국이 지역을 두고 패권 다툼을 한 곳으로 촉(蜀)이 오(吳)나라에 대패하여 유비와 제갈량이 임종한 곳이다. 따라서 두분을 모신 무덤과 사당이 있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 침울한 기분이 돈다.
한나라를 재건하려던 유비가 쓸쓸히 임종함으로서 촉나라는 삼국에서 밀려났다.
우리가 탄 선박
배에 돌아와 점심을 먹은 후 배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야에 구당협(懼塘峽)이 들어온다. 강과 산이 잘 조화를 이루어 참으로 아름답다.
장강에는 구강협(瞿塘峽), 무협(巫峽), 서능협(西陵峽)이 있는데, 구당협만 가이드한테 들어서 알고 솔직히 어디가 무슨 협곡인지 잘 모르겠다.
선녀봉
장강은 중국 역대 유명시인인 이백, 두보, 소동파 등 다수의 문장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고 책에서 본 바 있다. 이 부근이 시인이자 정치가인 굴원과 중국 4대미인중 하나인 왕소군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럼 여기에서 이백의 시 한 수를 옮겨본다.
“朝發白帝城” 李 白
朝辭白帝 彩雲間(조사백제 채운간) 아침 일찍 동트는 백제성을 출발하여
千里江陵 一日還(천리강릉 일일환) 천리 떨어진 강릉까지 하루 만에 돌아가네.
兩岸猿聲 啼不住(양안원성 제부주) 협곡 양안의 원숭이울음소리 끊어지지 않고,
輕舟已過 萬重山(경주이과 만중산) 내가탄 조각배는단숨에 수많은 산을 지내왔구나
이백(701-762)은 중앙아시아와 실크 교역을 하는 부유한 무역상인의 아들로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인근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어머니가 꿈에 금성(venus)을 보고 잉태하였다하여 태백(금성의 옛 이름)이 되었다.
이백은 영왕을 도왔다는 죄로 귀주성(貴州省)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의 유배길이 백제성 근처에 이르렀을 때 뜻밖에 은사(恩赦)를 받게 된다. 그는 기쁜 나머지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작은 배를 빌려 동이 트기 전에 물길 따라 400km 정도 떨어진 강릉(湖北省 荊州市)으로 한숨에 달려 나온다.
중국사람 들이 “조발백제성”을 특히 좋아하는 것은 어려운 시절이 끝나고 동 트는 새아침 처럼 희망에 부푼 이백의 기분이 이 시를 통해 들려주는 것 같다.
서능협은 파초(巴楚)문화와 형주(荊州)문화가 만나는 완충지라고 한다.
다음에 소삼협(小三峽)을 배에서 내려 적은배로 갈아타고 간다고 하는데 또
별도로 300元을 내라고 한다. 3사람이면 900元이다. 이돈 이면 일주일을 구경 다닐 수 있는 돈이다. 우린 그냥 포기하고 배에서 쉬었다. 알고 보니 대다수가 배에 남아있다.
소삼협 가는 작은배
다음날 눈을 뜨니 배는 목적지인 후베이성(湖北省) 이창(宜昌)에 도착해 있었고 아침을 먹으니 하선하라고 한다. 여기에서 다시 삼협땜을 구경한다고 200元씩 내라고 하여 우리는 이창 터미널로 가버렸다.
이창 선착장
집에 와서 알았는데, 이창이 땜 완공 후 새로이 주목받는 장강의 여행지가 되었다고 한다. 땜으로 인해 수위가 70m가 상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창에서 서쪽으로 17Km지점애 새로이 조성된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곳이 산샤런쟈(三峽人家)인데, 귀국 몇일 후 EBS 방송에서 이를 보았다.
진작 알았으면 들렸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