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을 본직후 적벽시내로 들어와 고속철역으로 직행, 늦은 오후 5시반이다.
조선시대 한강(漢江) 북쪽에 한양(漢陽)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한수(漢水) 남쪽에 한양(漢陽)이 있었다. 한양 옆 창장(長江) 건너에는 101년 전 중국의 황제 지배체제를 무너뜨린 도시 우창(武昌)이 있었다. 한수 건너 한커우(漢口)와 함께 세 개의 도시가 1949년 합쳐져 후베이(湖北)성의 성도 우한(武漢)이 됐다. 중국의 중앙에 위치한 ‘동방의 시카고’로 불리우고 있다.
우한은 호수의 도시다. 총 면적의 4분의 1이 물이다. 물의 고향이다. 우창·한커우·한양 3개 도시가 ‘삼족정립(三足鼎立)’의 형세를 이룬다. 우한은 물고기와 쌀이 풍부해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리는 후베이성의 중심지다.
이곳에서도 역 근처에 있는 아파트 단지내의 숙소에서 1박을 하였다. 역에서는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출발하기에 움직이기가 수월하다.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이지만 역사의 규모가 엄청 크다.
버스터미널
우한기차역
지하철 노선도
다음날 중국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3대루각 가운데 하나인 황허러루를 찾아갔다. 우한의 랜드마크다. 악양루(岳陽樓), 등왕각(騰王閣)과 함께 강남 3대 누각으로 불린다. 사산(蛇山) 위에서 창장을 굽어보고 있다. 황학루는 높이 55.47m로 중국의 누각 가운데 가장 높다. 삼국지의 손권(孫權)이 223년 유비(劉備)와 전쟁을 대비해 세웠다. 손권은 군사 요충지인 이곳에 군사도시를 세워‘무로 나라를 다스려 번창케 하겠다(以武治國而昌)’고 말했다. 우창(武昌)의 유래다.
황학루에는 다음과 같은 신선의 전설이 있다.
옛날 한 술집에 공짜 술을 즐기는 도사가 있었다. 주인은 싫은 내색 없이 그를 환대했다. 어느 날 도사는 먼 길을 떠나야 한다며 밀린 술값을 대신해 황학 한 마리를 벽에 그려줬다. “손님이 올 때 손뼉을 치면 황학이 춤을 추며 주흥을 돋울 거요”란 말을 남겼다. 주인이 손뼉을 치자 황학이 튀어나왔다. 입소문을 탄 술집은 크게 번성했다. 십년 뒤 도사가 홀연히 돌아와 피리를 불어 황학을 타고 돌아갔다. 도사 덕에 큰돈을 번 주인은 이를 기념해 술집 자리에 누각을 세웠다. 황학루의 유래다.황학루 편액에는‘초천극목(楚天極目)’이 새겨져 있다.‘초나라 하늘을 끝까지 본다’는 뜻이다.
우한역에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후싱루(復興路 또는 서우이루(首義路) 역에서 내려 2Km정도 물으며, 걸어 찾아갔다.
우리는 여기서 여행을 끝내고 한커우역에서 칭도우가는 기차를 탔다. 무한역에서 4호선 지철을 타고 가다가 홍산광창(洪山廣場)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서 한커우역 에 도착한다.
이렇게 하여 2016년도 하계여행은 끝을 보련다. 이번 역시 수만 키로를 달리고 걸었다. 3천키로 이상의 고지대에서 일주일을 지낸 것도 모든 지난 여정이 하나 하나 뇌리에 떠오르며 또 해 냈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낀다.